매화 영광마을 이야기
“고르고 맑은 가난으로 더불어 함께”
그 김장 그 아름다운 성역(성가시러운 일, 聖域)
추운 겨울 오기 전, 잊지 않는 우리네 사람들의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혜가 미련스리, 여간 참 번거롭고, 귀찮고 성가신 일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참 이상스럽습니다.
포기 배추며, 반나절을 꼬박 들여야, 간신히 그 일 끝을 빼꼼 구경할 수 있는 무청과 무수 다듬는 일하며, 그것을 소금간에 저려 놓는 일, 게다가 여름 부터 아니 이른 봄부터 모종에 지줏대 세워주며 가꾼 고추를 혹여 날이 궂을라 치면 어쩔까 하여, 노심초사, 그렇게 정성을 기울인 태양초와 함께 곁들이는 갖은 양념 준비, 등등… 족히, 2-3일은 잡아 먹어야 하는 일들, 게다가, 행여 땅이 얼어붙을 새라, 찬 바람 부는 날, 밖에서 모진 가을 바람 다 맞으며, 몇 시간 품을 팔아야 마련할 수 있는 변변한 김치독 보금자리며…. 이쯤 되면, 김장? 다시 한번 생각해 봄직 합니다.
그래서 떠오른 엉뚱하고 괴씸한 생각이(??) 그 김치가 뭐 겨울 이겨내는 비결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김치만이 겨울을 이겨나고, 지내는 비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보다는 김장을 위해, 마음자리 비워두고, 열심히 공들여 4계절을 지내는 마음, 그리고, 그 번거로움을 거치면서, 변함없이 늘 함께 일손을 거두어 주는 이웃이 있다고 새삼 느껴보는 넉넉함, 그리고, 결국은 이웃을 위해 베푼, 밥상 위, 한입 꾹 베어 문, 김치 한 포기와 함께 떠오른 눈가의 푸근한 웃음이 이 겨울을 지탱하게 해 주는 또 다른 김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구요? 지금 제가 바로 70-80 노구에도 이 성가신 일[聖域]을 마다 않고 치르신 분의 그 김장을 한입 베어 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곳이든 지성소”
시골 장거리에 예배를 드리러 가야겠다.
일용한 양식들이 흙 묻은 발은 막 털고 나온 곳
목숨의 세세한 물목들이 가까스로 열거된 곳
졸음의 무게가 더 많이 담긴 무더기들
더 잘게 나눌 수 없는 말년의 눈금들
더 작게 쪼갤 수 없는 목숨의 원소들
부스러기 땅에서 간신히 건져 올린 노동들
변두리 불구를 추슬러온 퇴출된 노동들
붉은 내장들 엎질러져 있고 비늘이 벗겨지고
벌건 핏물에 담긴 머리통들이 뒹구는 곳
낡은 궤짝 제단 위에 염장을 뒤집어쓰고 누운 곳
보자기만한 자릿세에 졸음의 시간들이 거래되는 곳
최소 단위 혹은 마이너스 눈금이 저울질되는 곳
저승길 길목 노잣돈이 욕설로 에누리되는 곳
시간이 덕지덕지 각질 입은 동작들 추려서
아이들 입에 한술이라도 더 넣어주고
가고 싶은 애간장이 흥정되는 곳
세상에서 가장 선한 예배당에
까무룩 햇살 속으로 사라지는 계단을 밟고
예배를 드리러 가야겠다.
-“예배를 드리러”, 백무산, 창비시선(2012), <그 모든 가장자리>-
붉은 내장, 벌건 핏물 머리통이 뒹구는 현장, 자릿세와 눈금 단위의 저울질 흥정 되는 곳… 그런데 시인은 그 곳을 서슴없이 세상 가장 선한 예배당이라고 고백하고 있지요? 과연, 나는 날마다 이 삶 속에서 예배하고 있는가? 물음 앞에 잠잠히…
백남호 목사(영광감리교회)
경북 울진의 매화리 영광마을에서 현재 14년째 목회 하시고 계신 백남호 목사님께서 섬기고 계신 교회 주보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