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강의 지상중계(10)
하나님의 성품(2)
정미연 박사(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하나님의 고귀한 성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것을 다 논하기는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성품을 상세히, 그리고 치밀하게 논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넓고 깊은 태평양 바다를 티스푼 하나로 떠낸 작은 물방울 하나에 불과하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을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지난 주에 하나님의 거룩성과 사랑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번 주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선하심에 대하여 알아보자.
3. 영광
성경이 말하는 ‘영광’은 ‘하나님 본체’ 즉, ‘하나님의 나타나심’(현현, 顯現)을 의미한다. 출애굽기 33장에는 참으로 대조적인 2가지 장면이 나온다. 애굽을 탈출하여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 임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두려워하여 모세더러 혼자 올라가라고 한다. 그러나 혼자 올라간 모세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두려운 나머지 금으로 애굽의 우상을 만들기 시작하고, 아론도 이에 동참한다. 반면에 시내 산에서 모세는 “네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곳으로 다시오면 그때야 내가 너를 부른 것을 알게 되리라”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마침내 성취되었음을 본다.
산 위에서, 산 아래서
그러나 시내산 아래에서의 참혹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산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멸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 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를 위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간다. 이스라엘의 참혹함을 아는 모세는 하나님께 그들을 변론할 근거가 없음을 알았다.
그의 동역자였던 형(아론)마저도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데 동참한 이상 단 한명도 하나님께서 구원할만한 가치가 없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님 제 이름 아시잖아요(You know me by name). 저를 은총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라 부르셨잖아요. 제가 인생에서 좌절할 때에 떨기나무에서 ‘모세야, 모세야’ 두 번이나 부르셨던 하나님, 그래서 저를 구원하시고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셨잖아요. 이 백성을 용서하시고 끝까지 함께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모세는 이렇게 아뢰었다.
“주께서 친히 우리와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가나안으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저를 포함한 우리들은 주의 백성이 아닙니까? 천하 만민 중에 저와 주의 백성이 구별되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은 주가 함께 하심이 아닙니까?”
즉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가나안땅을 점령하여 토지를 소유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비롯되고 증명됨을 모세는 알았다. 이 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함께 하실 것을 모세에게 약속하신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께 이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실 것을 요청한다. 쉽게 말하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미래를 현재에서 증명받기를 원했다. 시간을 초월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 요구했다. 수없이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불평과 불순종 그리고 반역 때문에 모세는 불안하였다. 이 구제불능인 인간을 바라볼 때 모세는 자신의 믿음의 한계를 만났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한 우리는 그 누구도 믿음과 소망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경험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위 끝에 서도록 하신 후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도록 가려주시고 뒷모습의 옷자락을 보여 주신다.
영광과 믿음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이를 허락하신 여호와는 그에게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여호와의 ‘영광’은 곧 그의 ‘모든 선한 형상’과 일치한다. 이 영광은 또한 ‘전혀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을 긍휼과 은혜로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통해 나타난다. 이를 역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민족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한 치도 없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라는 언약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조건 없이 베푸시는 여호와의 절대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둘째로, 하나님의 뒷모습은 오실 예수님의 모습, 특별히 십자가를 의미한다.
이는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한 십자가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하나님의 ‘얼굴’ 즉 하나님을 총체적으로 볼 수 없기에 하나님은 모세의 눈을 가려주셨다. 하나님의 뒷모습은 인간으로서 모세가 볼 수 있었던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모습이었다. 모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하나님의 뒷모습이나마 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뒷모습 (‘등’) 은 모세가 믿음으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영광의 모습을 허락하신 것이었다. 믿음으로 볼 수 있는 최상의 하나님은 홍해와 만나를 통해 경험한 하나님이 아니고 시내산에서 모세가 지금 본 하나님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그 분을 인정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 33장에서처럼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오직 믿음이 있는 그가 택하신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이는 십자가도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기적을 베푸실 때 그의 존재에 관한 기대를 갖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직 믿음이 있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진노와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긍휼하심에 절정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유일하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의 최고점을 보여준다.
4. 선하심(Good)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영광을 드러내실 때 그 영광을 ‘모든 선한 형상’으로 재해석해주셨다. 또한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고 하셨다. 즉, 이를 통하여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통하여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을 은혜와 긍휼로 구원하시는 것을 의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윤리에 있어서의 핵심 내용이다. 즉, 왜 그토록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와 그 곳의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지, 왜 우리는 우리를 공격하고 트집 잡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인내하고 포용해야하는지, 왜 낮은 자를 위해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미연 박사 (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미국 이민 1.5세 출신의 차세대 신학자.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의 여러 신학교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몰링 칼리지 전임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기간 동안에는 콩고, 인도, 케냐, 말레이시아, 미얀마, 네팔, 르완다. 우간다 등지의 신학교와 교회에서 사역한다. 세계침례교연맹, 아태침례교연맹, 로잔회의 세계선교글로벌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