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강의 지상중계(14)
교회, 문화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정미연 박사(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스탠리 그랜츠는 <신약의 윤리적 비전>이란 저서에서,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이 기본적으로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행위는 하나님이 언약백성을 위해 역사하신다는 그분의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가 가까이 왔다. 이 통치의 충만함은 아직 미래에 있다. 왜냐하면 인자가 올 때 우주적으로 완전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가 현존한다고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신약시대에 와서는 한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곳, 곧 교회를 의미한다. 공간적으로는 ‘사람들’로 표현되고, 시간적으로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임하였고, 재림으로 완성된다.
여기에서 시민 내지 시민권 등의 개념들을 통하여 오늘날 현실 국가의 개념들을 비유적으로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인식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취득하는 방법은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 시민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등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교회의 문화관
그렇다면 현재 교회는 어떤 시각으로 문화를 바라보고 사역해야하는가?
로마 교황청에서는 어마 어마한 돈을 투자하여 미켈란젤로 등과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에게 교회 건축이나, 벽화 등을 만들도록 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교회들은 교회 치장이나 전례 등을 간소화했다. 조각상은 물론이고, 웅장한 건물, 심지어 음악까지도 단순화시켰다. 특히 청교도가 그랬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의 문화적 유산이 너무 없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경제 형편이 나아지자 한국 교회는 문화 사업을 많이 시도하였다. 예술을 통한 선교와 전도 등이 유행되기도 하였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복음성가가 대중들 사이에 인기가 있어,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많이 불리고 있다. 특히 이를 힌두교 사람들이 자신의 말로 번역하여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기독교가 문화사역을 통하여 세상의 문화를 선도하는 모습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호주의 경우는 고전 음악의 대중적이지 못한 점을 고려하여 많은 교회가 성가대 등을 폐지하기도 했다. 기독교인들이 문화사역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맹목적이거나 단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기독교인이 점이나 사주를 보러 다니는 경우가 있다. 이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이 요구하는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거나 복음을 받아들였음에도 자신의 비성경적인 문화적 배경을 비판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지난 호에 언급한) 그리스도와 문화에 대한 모델이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면, 기독교 문화와 한국문화에 차이를 두지 않는 모델이었을 확률이 높다.
나는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한 교회에서 예수님의 기적과 무당의 기적을 동일시하고, 예수님을 무당 중에서 뛰어난 무당으로 보는 사람들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문화사역에 있어서 문화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무분별하게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죄이다.
우리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주변국가의 제사와 예배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여호와 하나님과 그들의 신들을 동시에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을 알고 있다.
삶과 문화
또한 기독교인인 내 아들이 명문대 출신이므로 내 며느리감도 비슷한 명문대 출신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부모가 이혼한 집안의 자녀와 내 자녀가 결혼하려고 할 때, 본인의 신앙심이나 성품을 보지 않고 무조건 반대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가 이러한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리스도가 문화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교회는 정치인들에 대해 무조건 신뢰하지 않고 비판적으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더러우니까 가까이 가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최선을 다해 조금씩이라도 바꾸어나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로 알려진 미국은 건국 초기에 청교도들도 있었지만, 사리사욕을 좇아 신대륙으로 건너 온 사람들도 있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와의 상호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미국 헌법과 국가적 기틀 속에 심었다. 이처럼 우리 역시 관습, 제도, 법적으로 내려오는 문화적 요소를 성경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하겠다.
교회와 문화사역
그렇다면 현재 교회는 어떤 시각으로 문화를 바라보고 사역해야하는가?
로마 교황청에서 어마 어마한 돈을 투자하여 미켈란젤로 등과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에게 교회 건축이나, 벽화 등을 만들도록 했으나, 종교개혁 후의 교회들은 교회 치장이나 전례 등을 간소화하고, 조각상이나 웅장한 건물, 심지어 음악까지도 단순화시켰다. 특히 청교도가 그랬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의 문화적 유산이 너무 없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자 한국 교회는 문화 사업을 많이 시도하였고 예술을 통한 선교와 전도 등이 유행되기도 하였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복음성가가 대중들 사이에 인기가 있어,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많이 부르고 있다. 특히 이를 힌두교 사람들이 자신의 말로 번역하여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기독교가 문화 사역을 통하여 세상의 문화를 선도하는 모습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호주의 경우는 고전 음악의 대중적이지 못한 점을 고려하여 많은 교회가 성가대 등을 폐지하기도 하였다. 기독교인들이 문화적 사역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맹목적이거나 단순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미연 박사 (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미국 이민 1.5세 출신의 차세대 신학자.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의 여러 신학교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몰링 칼리지 전임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기간 동안에는 콩고, 인도, 케냐, 말레이시아, 미얀마, 네팔, 르완다. 우간다 등지의 신학교와 교회에서 사역한다. 세계침례교연맹, 아태침례교연맹, 로잔회의 세계선교글로벌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