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강의 지상중계(8)
삼위일체의 신비함
정미연 박사(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물론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삼위일체로서 알기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신약성경이 명백히 증거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보혜사 성령님 또한 예수님과 동일한 동시에 또 다른 인격체인 신이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요14:16).
이러한 삼위일체를 바탕으로 구약을 재조명해 보면, 이미 하나님께서는 ‘관계성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이라고 하면서 복수를 나타내는 대명사로 스스로를 지칭하셨다. 또한 ‘이스라엘아 들으라(쉐마)’로 알려진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때의 ‘하나’ 역시 단순한 ‘숫자 1’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통일성(unity)을 의미한다. 이는 곧 ‘복수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이사야서 등에서 성령에 관하여 언급하는 할 때는 ‘하나님의 영’이라는 명칭이 성령(Holy Spirit)이라는 명칭과 동시에 사용된다. 이는 ‘성부 하나님’의 명칭 대신 또 다른 위격의 ‘성령’을 하나님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서로 다른 위격의 하나님이 한 하나님 안에서 관계성을 이루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동양적 사고와 매우 닮아 있다. 서양적 사고는 ‘나’가 있고 ‘너’가 있어서 합쳐서 ‘우리’가 된다는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반면에 동양적 사고는 모든 존재는 ‘처음부터’ 관계성(relationality)안에 존재한다고 보는 ‘공동체적 사고’를 한다.
처음부터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은 ‘처음부터’ 하나이셨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각각 개별적 존재(individuation)이심과 동시에 온전한 하나이심을 성경은 전한다.
여기서 ‘처음부터’라는 수식어를 시간이나 순서의 개념 안에 국한해서 생각하면 안된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속에 존재하기에 인간의 언어와 사고는 시간과 순서에 의해 의미가 전달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시고 시간 속에서 역사하시지만,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즉,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각각 먼저 존재한 후, 나중에 하나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 하나 되어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나’가 있고, ‘당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나’와 ‘당신’은 ‘우리’로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 역시 처음부터 관계성 안에 존재하도록 만드셨다. 그럼 창세기 1장 26절과 2장을 함께 보고 통합적인 결론을 내려보자. 아담과 하와가 각각 독립적으로 창조되어 나중에 하나된 것이 아니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이미 하와와의 관계성(relationality precedes individuality)을 계획하신 가운데 그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창조에서 시간적 전후 관계는 신학적인 의미를 아는데 우선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연합성
기독교 윤리에 적용해보자. 우리는 흔히 결혼 청첩장에서 “반과 반이 만나 하나를 이루었다”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솔직히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즉, 성경에서의 ‘하나’의 개념은 ‘반과 반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하나와 하나가 만나 또 다른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두 가지 예가 바로 ‘부부 관계’와 ‘엄마와 태아와의 관계’이다. 비록 인간의 관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온전히 나타내지는 못해도 남편과 아내는 각각 온전한 인격체인 동시에 하나인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성경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 2:24)로 설명한다. 여기서 ‘한 몸’이라는 표현은 부부관계의 근본적인 연합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는 마땅히 각각 하나의 인격체로서 서로 존중해야 마땅하다. 또한 부부는 함께 연합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관계를 피조물의 차원에서 경험하게 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 부부 관계는 매우 파괴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태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태아 역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낙태 반대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다양성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함께 존재함’에 있어서의 중요한 특성 또 하나를 도출해 낼 수 있다. 바로 ‘다양성’이다. 우리가 공동체를 구성할 때, “모든 구성원이 다 나 같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다양성은 하나 됨의 중요한 조건이며,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혼성 결혼’의 성경적 근거를 이해할 수 있으며, 교회론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교회의 경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됨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하나로 꾸려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혼에 있어서의 부부 관계’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한민족’은 그동안 단일 민족이라는 것을 매우 강조해 왔다. 물론 그것이 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우리 민족이 역사적, 유전학적으로 완전한 단일 민족이 아닐 뿐더러, 단일 민족임을 강조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 내에서 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양성과 연합성이 우리 생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인 것이다.
정미연 박사 (몰링 칼리지 교수_조직신학, 윤리학)
미국 이민 1.5세 출신의 차세대 신학자.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의 여러 신학교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몰링 칼리지 전임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기간 동안에는 콩고, 인도, 케냐, 말레이시아, 미얀마, 네팔, 르완다. 우간다 등지의 신학교와 교회에서 사역한다. 세계침례교연맹, 아태침례교연맹, 로잔회의 세계선교글로벌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