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 캔버스에 유채 / 1614-1620 / 우피치미술관 소장
유디트는 성경의 외경 (Apocrypha) 중 <유딧서(Book of Judith)>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성이지만 눈앞에 보이는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하녀 아브라와 함께 그의 목을 베어 나라를 구한 여인이다. 이 주제로 수많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지만 유독 젠틸레스키의 그림은 특별하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1593~1620, 로마)는 초기 바로크 화가로 오늘날엔 바로크 미술의 거장 카라바조에 비교될 정도로 그 이름이 재평가되고 있다. 특유의 드라마틱한 빛이 만들어내는 극적인 명암 효과와 화면의 역동적인 구성은 젠틸레스키의 명성을 증명하는 동시에 바로크 미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당신들은 카이사르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보게 될 것이오.”

젠틸레스키는 사회적으로 ‘강요당하는 여성성’에 대한 심리적 분노와 차별받는 부조리에 대해 강렬하게 반대하는 편에 서서 이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성역할에 맞춰 살아야 했던 당시의 세태 속에서 이 작품은 단박에 논란거리가 됐다. 그러나 여성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깊은 공감의 눈으로 이 그림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남성 화가가 그려내는 세계는 여성 화가가 그려내는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실제로 젠틸레스키는 카라바조가 그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를 보고 이 그림을 그리게 됐다. 하지만 이른바 ‘같은 옷 다른 느낌’처럼 그 차이가 극명하다. 카라바조의 그림에 등장하는 유디트는 적장의 목을 베고 있지만 왠지 주저하는 듯하고, 심지어 그 와중에 순수함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순백색의 드레스를 입고서 ‘베이글 녀’ 같이 귀여움과 글래머러스한 느낌을 동시에 풍기고 있다. 표정도 애매하다. 늙은 하녀도 소녀 같이 여리여리한 주인마님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 수동적인 역할에 그치고 있다.
반면에 젠틸레스키는 살인 현장의 정황 연출에 임팩트를 뒀다. 그녀의 유디트는 전혀 예쁘거나 우아할 필요가 없다는 감독의 요구에 따라 연기하는 여배우처럼 저항하며 버둥대는 거대한 짐승을 적극적으로 제압하고 살육하는 캐릭터에 충실함으로써 카라바조의 유디트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하녀마저도 이 거사의 성공을 위해 능동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으로 연출해 여성이 정의를 실행하는 히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 유디트가 젠틸레스키의 영혼이 투영된 자화상이라고 보는 관점이 무성한 것도 괜한 소리가 아닌 듯하다.
젠틸레스키는 이제까지 남성 중심적이었던 역사와 종교의 주제의 위계를 무너뜨린 최초의 여성이 됐다. 남성에게만 허락됐던 교육받을 권리를 ‘운 좋게도’ 누린 젠틸레스키는 기꺼이 여성의 존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일련의 노력은 명맥을 잇지 못하고 잊혀져갔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 여성주의는 다시 젠틸레스키를 주목하게 된다. 린다 노클린이 <왜 위대한 여성 화가는 없는가?>에서 여성의 재능 부족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그 원인이라고 지목하면서 젠틸레스키의 사례를 든 것이 그녀를 다시 이 세상으로 불러낸 것이다.
21세기인 작금에도 패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화두에 오르고, 현재 우리나라에 여성가족부라는 기관이 존재하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양성평등이라는 것을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7세기 바로크의 한 여성이 그림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을 시작으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양성평등이 이뤄진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수많은 젠틸레스키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러한 미래는 멀지 않았으리라. _ 조경희

○ 젠틸레스키, 목을 치는 유디트가 이토록 잔인했던 이유
- ‘여성스러움’의 고정관념 벗어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라는 이 그림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최근이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이처럼 대범하고 잔인하게 표현한 적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섬찟한 그림이다. 그래서인지 수백 년간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의 한 건물에 감추어졌었다고 한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여자다. 더구나 이 그림을 여러 번 그렸고, 초기 작품으로 짐작되는 나폴리 카포디몬테미술관에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대담하게 그렸다.
징그럽지만 그림을 자세히 보기 바란다. 칼을 쥔 손과 머리를 누르는 왼손, 그리고 그 얼굴. 멀리 있는 도우미의 두 팔과 표정을 보면 똑같은 분노와 원한심에서 행동한 것이다. 아마 두 여자가 잠자고 있던 이 남자에게 다가가 한 사람은 목덜미를 누르는 바로 그 참에 다른 한 사람은 머리칼을 움켜쥐면서 목에 칼을 대었을 것이다. 마치 내 목에 칼이 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하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1593-1652/3). 아버지 오라지오(1563-1639)가 유명한 화가 카라밧지오의 제자였다. 그는 아버지의 화풍을 이어 카라밧지오스러운 사실주의와 극적인 주제를 자주 그렸고,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당시 유디트 이야기는 여러 화가들의 손을 통해 그려졌는데, 그중 카라밧지오가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
그의 화폭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대개 잔인하고, 동물적이며, 뚱뚱하고, 무뚝뚝하게 그려졌다. 종교 경전에 나오는 위대한 여성을 찬미하는 그였지만 종교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특징도 보인다. 19세기의 여성문필가 한 사람은 이 그림에 대하여 “그녀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그림이다. 그러나 한편 그녀의 타락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고 썼다. 감정이 풍부하고 힘차며, 희생적인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상을 접한 사람들은 일반적인 여성 유형으로는 깜냥이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지금의 우리도 적이 곤란해 할 것이다. 연약함, 우아함, 섬세함 같은 테두리로 여성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보면 그녀는 너무나 거칠고, 그래서 곤란했다.
이런 탁월함의 뒷면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아버지의 친구인 남성화가가 그녀를 가르치던 중 그녀를 범했고, 그녀는 이를 법정에 기소하여 오랫동안 우여곡절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해, 분노, 절망이 오갔을까?
이런 애로에도 불구하고 성품은 대단히 온화했다고 한다. 그녀는 걸출한 화가가 됐고, 자신이나 아버지처럼 화가가 된 네 명의 딸도 키워냈다. 그의 자화상을 보면 위 그림과는 다른 여성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연극무대를 떠올리게 하는 카라밧지오파의 분위기를 풍기는 사실주의에 충실하면서 예술의 상징이기도 한 여성이라는 다분히 우의적인 느낌도 준다. 그러면서도 직업미술가로서의 여성상을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림에서 묻어나오는 단단함이 세월을 넘어, 그의 그림들을 편안해하지 못하는 뭇 시선들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그의 존재를 증언하는 것이 아닐까. _ 최석태 / 미술평론가

○ 젠틸레스키는 왜 ‘유디트’를 잔인하게 묘사했을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20)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화가로, 당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여성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오늘날에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세대 중 가장 뛰어난 화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신화와 성경 속에 등장하는 강인하거나 혹은 고통받는 여성(예를 들어 희생자, 자살, 전사 등)을 많이 그렸고, 특히 유디트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그렸습니다.
유디트는 성경의 외경(Apocrypha) 중 유딧서(Book of Judith)에 등장하는 인물로, 전쟁에서 패배할 위기에 놓인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시리아 군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그의 목을 벤 여성입니다. 16세기부터 이탈리아를 비롯해 북유럽에서까지 상당한 인기를 끌던 주제로, 조르조네(Giorgione),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 등을 비롯한 다수의 화가들이 이와 관련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는 끔찍한 분투와 유혈이 낭자한 장면의 묘사를 보여줍니다. 그는 카라바조(Le Caravage))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를 보고 이 그림에 영향을 받아 그렸는데요. 같은 주제를 다뤘지만 젠틸레스키는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강인한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켜 주인공이 행동하고 있는 장면을 더욱 강렬하게 연출했습니다.
그렇다면 작품의 주제인 유디트 이야기부터 알아볼까요? 유디트(Judith)는 기원전 2세기 이스라엘 베툴리아(Bethulia) 지방의 과부였습니다.
당시 베툴리아 지방은 아시리아의 홀로페르네스 군대에 의해 점령됐습니다. 유디트는 사절로 위장하고 적진에 접근했는데, 홀로페르네스가 그의 아름다움으로 매료됐습니다.
축제 중 홀로페르네스가 천막으로 들어가 술에 취해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을 때, 유디트와 그의 시녀 아브라는 기회를 엿보다가 홀로페르네스의 칼로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유디트는 홀로 페르네스의 목을 몰래 고향으로 가져갔고, 그의 죽음으로 아시리아 군은 퇴각했습니다. 베툴리아는 다시 평화를 찾게 됐죠.
왼쪽 작품에서 유디트는 그녀의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서 적군의 장수를 살해하고 있는 중대한 순간에 처해 있습니다.
젠틸레스키는 당시 유럽에서 기대했던 여성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유디트를 폭력을 행하기로 마음먹은 강인하고 영웅적인 여성으로 그려냈습니다. 특히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인데, 전체적으로 피가 흥건한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또한, 인물들과 그들의 팔이 만들어내는 삼각형 구도가 인상적입니다.
유디트의 자세는 카라바조의 작품과 다소 비슷하지만, 젠틸레스키의 그림은 감정을 완화시킨 카라바조의 묘사와는 전혀 다릅니다. 특유의 드라마, 빛의 효과, 색의 혼합은 젠틸레스키의 솜씨를 증명하는 동시에 바로크 미술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젠틸레스키는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가 극적인 효과도 매우 강하게 나타내곤 했습니다. 어둡고 평평한 배경을 뒤로한 채 홀로페르네스를 죽이고 있는 유디트의 위로, 왼쪽에서 내려오는 작위적인 빛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는 긴장감을 최고조에 달하게 하며 압도감을 줍니다. 또한, 붉은 침대 보와 새하얀 시트의 대비 역시 장면 속의 공포와 잔혹함을 부각시킵니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능동적으로 강한 확신과 의지를 갖고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고 있는데요. 이 작품에서 유디트는 자신의 행동이 위계에 어긋나거나 부도덕한 일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소매를 걷어붙인 채 결연한 표정을 한 유디트는 머뭇거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임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디트가 장면을 지배하는 히로인으로 등장함으로써, 젠틸레스키는 이제까지 남성 중심적이었던 역사와 종교의 주제의 위계를 무너뜨린 최초의 여성이 됐습니다.
유디트가 젠틸레스키의 영혼이 투영된 자화상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이는 젠틸레스키의 개인적 인생에서 비롯되는데요. 젠틸레스키는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는 당시 존경받던 화가로, 카라바조의 화풍을 따랐습니다. 젠틸레스키는 단독으로 주문을 받기 전까지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습니다.
“내 딸은 견줄 만한 화가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솜씨가 뛰어나다.” -오라치오 젠틸레스키
17살이 되던 해에 젠틸레스키는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1612년 아버지의 조수인 피렌체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에게 성폭행을 당했는데요. 아버지는 자신의 딸에 대한 강간 혐의와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젠틸레스키는 당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입증해야 했고, 이로 인해 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타시는 제기된 모든 의혹을 부인했고, 과거에 성범죄기록이 두 번이나 있었으나 고작 8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고 가벼운 유죄판결로 풀려났습니다.
젠틸레스키는 스스로도 경험했던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에 격앙됐고, 이 시기 이후 페미니즘적인 주제를 많이 그리게 됐습니다. 젠틸레스키는 유디트를 자신에게, 홀로페르네스를 타시에게 빗대어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처벌하는 장면을 그리게 된 것이죠. 작품에 나타나는 구성은 여성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권력과 정의를 표출할 수 있다는 그의 세상에 대한 외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를 통해 젠틸레스키는 심리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배출했고, 여성이 경험하는 부정의에 대해 강렬하게 호소했습니다. 모든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에 이 작품은 그 자체로 다른 여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최근의 문학과 영화에서 이 작품을 젠틸레스키의 일대기와 연결했습니다. 생전에 동료 화가들과 후원자들에게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던 젠틸레스키가 죽자 일부 출판물에서는 그의 재능보다는 악명에 주목했습니다. 최근에야 그녀는 비로소 바로크 시대의 위대한 화가로 복위됐습니다.
선구적인 화가 젠틸레스키의 죽음은 삶만큼이나 극적이었습니다. 작품 주문에 대한 기록들이 소실됐고 그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나폴리에서 페스트에 걸려 죽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젠틸레스키의 운명이 어떻든 그의 개척 정신과 작품은 후대의 화가들 특히 여성 화가들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_ 올댓아트 김도연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