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 그리스도 (Christ in the House of Mary and Martha)
피터르 더 호흐, 캔버스에 유화, 47×66cm, 1637년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더 호흐 (Pieter de Hooch, 1629 ~ 1684)는 얀 페르메이르 (Jan Vermeer)와 더불어 델프트 화파의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힌다.

호호는 1629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를럼에서 풍경화가 니콜라스 베르헴 (Nicolaes Berchem)에게 미술을 배웠고, 1650년대 초반 리넨 (식물섬유)을 취급하는 상인이자 미술수집가인 유스투스 드 라 그랜지 (Justus de la Grange)의 화가이자 종업원으로 일했다.
1654년 자네트 반 더 버치 (Jannetje van der Burch)와 델프트에서 결혼했으며, 이듬해 그곳의 화가조합에 가입했다.
피터르 더 호흐는 얀 페르메이르 (Jan Vermeer)와 더불어 델프트 화파의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힌다.
두 화가는 주로 델프트에서 활동하며 중산층 가정의 일상생활을 화폭에 담았다.
낯익은 실내의 내밀함을 포착한 점에서 더 호흐 회화의 일부 주제는 페르메이르의 그것과 흡사해 보이지만, 페르메이르가 늘 특정 상황 안의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면, 더 호흐는 대부분의 작품들 속에서 매우 진부해 보이는 것들을 찬양했다.
예를 들면 이를 잡거나 안뜰 청소하기, 리넨을 정리하기 등 일상의 소소한 사건과 인물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다가섰다.
더 호흐도 페르메이르처럼 물체의 표면에 비치는 빛에 관심을 두었다.
특히 그의 그림에서는 미묘하고 반투명한 빛이 두드러진다.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그만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데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작품에 심리적 혹은 물질적인 확장을 보여준다.
또한 교묘한 원근법과 환상적인 색채의 구사로 그때까지의 풍속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공간감을 부여했다.
더 호흐는 1661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주로 서민층 여성과 아이들을 그리던 더 호흐는 암스테르담에서는 좀 더 세련된 도시생활 풍경과 부유한 여성들을 모델로 한 초상화에 주력했다.
간결한 실내풍경 대신 네덜란드 상류사회의 화려한 생활을 담기 위해 캔버스의 크기도 과거에 비해 커졌다.
그러나 그의 붓 터치의 정교함은 점점 퇴보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현상은 1670년대 말 작품에서 눈에 띄게 나타났다.
호흐는 1684년 암스테르담 정신지체자보호소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주요 작품에는 《델프트 주택의 안뜰 The Courtyard of a House in Delft》(1658), 《나무 그늘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안뜰 Courtyard with an Arbor and Drinkers》(1658), 《두 남자와 술을 마시는 여인과 하녀 Woman Drinking with Two Men and a Maidservant》(1658), 《아기요람 옆에서 보디스에 수를 놓는 어머니 Mother Lacing her Bodice beside a Cradle》(1661~1663), 《사과 깎는 여인 A Woman Peeling Apples》(c. 1663), 《벤치에 앉은 여인 Seated Woman on a Bench》(1972) 등이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