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땅속의 터줏대감, 지렁이(1)
<옛날, 옛적에 천금 같은 눈을 가진 지렁이와 눈은 없지만 목에 아주 곱고 훌륭한 비단 띠를 두른 가제가 있었다네. 호랑이 담배피우고 까막까치 말하던 때니 그럴 만도 하지. 이들 둘은 같은 동네서 매일 만나는 짝짝쿵 친구였다는군. 아! 그런데 둘이 즐겁게 놀기는 놀아도 지렁이는 가재의 목에 두른 비단띠가 탐이 났다네. 가재는 또 지렁이의 눈이 무척 부러웠지. 지렁이는 용기를 내서 가재에게 제안을 하지 않았겠나! “얘, 네 목에 두른 그 비단 띠를 내게 줄 수 없겠니? 만약 그래만 준다면, 그 대신 내 눈을 너에게 줄게.” 가재가 미쳤지. 아! 이게 될 법이나 한 소린가? 그렇잖아도 가재가 눈을 가지고 싶었던 참인데 이런 횡재가 어딨나! 쾌히 승낙을 할 수 밖에. 아! 그래서 가재는 목에 두른 비단 띠를 벗어 지렁이에게 주고, 지렁이도 천금 같은 눈을 떼어 가재에게 주었다네. 눈 없이 지낸 가재는 눈이 생기니 딴 세상을 만났지. 지렁이도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비단 띠를 목에 걸치고 보니 기분이 엄청 좋았지. 그런데 기분이 좋은 것은 잠시뿐이고 지금까지 그 잘 보이던 앞이 보이지 않으니 이런 환장할 노릇이 있나? 가슴이 답답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며 후회 막급이였지. 참다못한 지렁이는 가재를 찾아 가지 않았겠나. “얘, 가재야. 내 눈을 도로 내 놓아라. 네 비단 띠를 돌려 줄께.” 하지만 가재가 들어 줄리가 있나? 지렁이가 달래도 보고 욱박지르기도 해 보았지만 가재가 응할리가 없지. “안돼! 한 번 바꿨으면 그만이지. 어때 대고 딴 소리야” 하고 말 하는 순간, 지렁이가 벼락같이 달려들어 가재의 눈을 확 잡아챘지. 가재의 눈을 잡아 빼려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돼야 말이지. 한동안 승갱이를 하였지만 지렁이가 가재를 당할 재간이 없었지. 단지, 지렁이가 가재의 눈을 잡아 챌 때 눈알이 불쑥 튀어 나오니 않았겠나. 가재의 눈을 잘 보게나. 가재의 눈이 지금도 아물지 않고 불쑥 튀어 나와 있다네. 제 눈을 도로 찾으려다 실패한 지렁이는 창피해서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너무너무 억울해서 초가을 어스럼 달밤이면 흙이나 씹으면서 구슬프게 울고 있다네.>
지렁이의 비단띠
가재나 지렁이의 특이한 신체구조의 합리성을 강조하려는 원시적 심리의 허구적인 예날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렁이가 운다”는 이야기는 문학작품 속에 자주 등장한다. 지렁이의 발성기관이 없는데 어떻게 운단 말인가? 필자는 아직 까지 “지렁이가 운다”는 확실한 근거를 확인 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한국에서도 그렇고 호주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초가을에, 땅속으로 부터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울음[?]소리가 있다. 귀뚜라미 소리하고는 또 다른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이 소리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필자는 확인하지 못했다. 옛날이야기에 언급되듯 지렁이는 목덜미의 비단띠가 있는 것은 분명하고 가재의 눈이 툭 튀어 나온 것도 사실이다. 지렁이의 목덜미의 띠는 분홍색 또는 연한 누런색이며 환대[環帶]라고 한다. 지렁이는 선충과는 달리 몸에 마디[環節]가 있다. 마디 수는 각 종의 특징이다. 그러나 각 성체에 따른 실제적인 수는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다양하다. 다양성은 각각의 다른 물리적 환경에 기인하며, 이 물리적 환경은 장소와 시간에 따라서 유충과 알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어린 충체 (풍부한 알부민 영양소로 알 껍질을 만든다)는 최적의 온도와 습도 상태에서 성장하고 춥고 건조한 시기에는 적은 알부민으로 성장한 새끼들보다 많은 마디를 만든다. 환대는 제10~13마디 부분에 있다. 몸의 마디는 외부 가로 홈에 의해서 칸막이로 나누어지며 신체내 격막의 위치를 마디 수는 종에 따라 비교적 일정하며 작은 개체일수록 더 그러하다. 그러나 약간의 차이는 있다. 예를 들어 붉은줄지렁이는 80-150마디이고 한국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많이 채집되는 참지렁이는 80-120마디이다. 대부분의 어린 지렁이는 알에서 깨어 났을 때 그 종의 최종적인 성체의 마디 수를 가지고 있으며, 나중의 마디 증가는 손상, 즉 꼬리의 재생에 의한 대체물이다. 환대(Clitellum)는 성체의 몸 앞쪽 부분 몇 개의 마디에 걸쳐 나타난다. 이 환대가 가재가 가지고 있었다는 분홍색이 나는 비단띠다.
생식행위
그런대 이 환대가 악세사리[accessory]로 목덜미에 두르고 다니는게 아니다. 생식기관[生殖器管]이다. 지렁이는 암수 한 몸으로 한 개체에 숫생식기[♂]와 암생식기[♀]를 함께 갖고 있으며 다른 개체와 짝짓기를 해서 다른 개체의 정자를 받아 들여야 한다. 한 개체의 정소와 난소의 구조상 자기 몸에서 생산된 정자를 난자가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 있다. 대립유전자의 빈도를 통해 돌연변이·교차·환경조건 등에 적응하려는 진화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지렁이의 환대가 교접기는 아니지만 생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생식기가 머리 쪽에 있기 때문에 지렁이의 짝짓기는 머리 부분의 1/3∼1/4을 거꾸로 밀착 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 개체의 지렁이가 서로 몸을 밀착시키면 양쪽 지렁이의 체내에서 끈적끈적한 액체가 분비되어 두 몸체를 한 몸처럼 감싼다. 마치 홋이불을 둘이 덮듯, 두 개체가 액체속에 파묻히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토끼나 말처럼 좀 고등하다는 동물들은 번개불에 용알 구어 먹듯 순식간에 수컷이 암컷 몸안에 정자만 주입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지렁이는 꽤 절차가 복잡하다. 점액속 액체속에서 서너 너덧 시간은 유지돼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정소에서 정자가 수정공으로 방출되며 방출된 정자는 정랑이라 불리는 특수한 보자기에 쌓인 체로 난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게 된다. 난소에서는 정자가 출정 준비를 하는 것과 타이밍이 맞게 신부[?]가꾸기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환대에서 신부[난자]를 정자에게 데려다 줄 준비를 한다. 수정작용이 임박하면 환대의 표면에서 투명한 액체가 분비되고 이 분비물은 굳어지며 난포막이라는 얇은 막이 형성된다. 이곳에 단백질 성분이 가득 채워지게 되는데 이는 조류의 알의 흰자위, 노른자위 역할을 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곳에 단백질 분비물이 가득 채워지면 암생식기에서 난자가 방출되어 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난자의 방출이 끝나면 난자가 들어있는 난포막이 머리쪽으로 이동을 한다. 입고 있던 T셔츠를 벗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난포막이 머리와 환대 사이에 있는 숫컷생식기를 지나게 되는데 수정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자가 신부[난자]가 기다리고 있는 난포막 안으로 들어가 수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난포막은 신랑[정자]과 신부[난자]가 한 몸이 된 수정란을 실은 채 머리쪽으로 계속 이동하며 난포막의 앞과 끝 부분이 수축, 봉합되어 레몬처럼 양끝이 뾰족한 형태가 되는데 이를 난포[cocoon]라고 한다. 지렁이가 짝짓기를 한 후 7∼10일이면 약 2∼3㎜의 레몬 모양의 타원형 난포를 산란한다. 산란한 난포는 처음에는 백색이었다가 2∼3일 후에는 갈색으로 변한다. 이 난포는 14∼21일 후에 부화되는데 한 개의 알에서 부화되는 어린 새끼 지렁이의 개체수는 평균 7마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으나 여러 가지 환경조건과 지렁이 종류 등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지렁이의 성장
부화 후에 어린 지렁이는 크기가 약 1.2㎝에 지나지 않지만 약 40일이 경과하면 3㎝ 정도로 성장하고 약 100일이 되면 5㎝까지 성장하고 환대도 생성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또한 재미있는 사실은 지렁이 몸체의 색깔이 붉은 관계로 원래부터 붉은색을 띤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처음에는 흰색에서 차츰 노란색으로 변하다가 약 40일이 경과되면 머리 부분부터 붉은색을 띠다가 꼬리부분으로 확산되면서 부화한 지 60일이 지나면 전체가 붉어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렁이는 살아 있는 생물체이고 신체의 수축이완 작용에 따라 크기가 변동되므로 크기를 측정한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작은 지렁이 종류로는 주로 숲속에 서식하는 것으로 직경 1∼1.5mm, 길이 10∼20mm인 것이 있고, 큰 종류로는 온대와 열대지역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직경 1.0∼1.5mm, 길이 20∼30mm인 것으로 주로 삼림의 토양심층이나 초지, 습지 등에서 발견된다. 큰 종류의 지렁이가 호주에 많은 것 같다. 오스트레일리아 지렁이라 불리우는 메가스콜리데 오스트라리스(Megascolides Australis)가 직경 20mm에 길이가 1.4m나 되고 무게는 400∼450g이지만 멜본의 박물관에는 최대 5.9m의 지렁이사진이 있다고 한다. 브라질의 글로소코랙스자이언테스(Glossoscolex giganteus)라는 지렁이는 길이 1.3m, 두께 3cm,무게는 500∼600g 정도이며 도깨비 지렁이라고 불리어 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큰 지렁이가 딱딱한 토양속에 서식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주로 습지나 부드러운 토양속에 사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지렁이는 먹이를 섭취한 후 약 12∼20시간 동안의 소화기간을 거친 후 분변토를 배설한다. 먹이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이화학적[理·化學的-dissimilation] 특성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지렁이 분변토는 대개 0.2∼2.0mm의 둥글거나 타원 모양이고, 색깔은 안정화되어 흙갈색을 나타내며 흙냄새가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다음호에 계속>.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