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버섯의 특성(4)
자작나무
20여년 전에, 러시아를 비롯한 스웨덴, 핀랜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을 여행한 일이 있다. 이때 인상적인 풍경은 빽빽하게 들어찬 자작나무 숲이다. 훤칠하고 호리호리한 은백색 체구의 자작나무는 나무중에 귀공자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침엽수가 주종을 이루는 북극 지방에서는 드물게 활엽수인 자작나무가 산림속을 파고들어 광대한 영역을 점유하고 기품있는 자태를 뽑내고 있었다. 자작나무가 산림속만 들어찬 것이 아니라 기차역 마다 쌓아 놓은 자작나무 목재 덤이며 상점마다 진열된 자작나무 공예품 등을 보며 자작나무 문화가 속속들이 들어찬 고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작나무가 한국의 강원도 북부를 비롯한 북부지방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자작나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나무다. 검색해보니 자작나무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자작나무는 껍질과 잎 전체에 기름샘이 발달해 있어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불쏘시개로 많이 쓰였다고 하며, 불을 붙이면 “자작 자작”하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자작나무를 한자어로 백단(白椴), 백화(白樺)라고도 부른다. 화(樺)는 자작나무를 뜻하며, 자작나무의 얇은 껍질은 붉을 밝히는 초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를 화촉(樺燭)이라고 한다. 흔히 결혼식에서 ‘화촉(華燭)을 밝히다’라는 말을 쓰는데, 화(華)는 자작나무(樺)와 뜻이 서로 통하므로 화촉(華燭)은 바로 자작나무로 만든 초인 셈이다. 자작나무로 만든 초는 양초가 등장하기 아주 오래 전부터 일상생활에서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자작나무를 시라카바[シラカバ, 白樺]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흰 자작나무’라는 뜻이다. 영어로 자작나무 종류를 버취[birch]라고 하며 특히 자작나무는 화이트 버취[white birch]라고 한다. 버취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브헤렉-’[bhereg-]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며, 그 뜻은 ‘어스레한 빛’ 또는 ‘흰색’을 뜻한다. 산스크리트어를 어머니로 삼는 수많은 유럽 언어들 속에서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 특히 영어와 아주 가까운 친척 언어인 북유럽 여러나라 말 속에서도 버취와 유사한 형태와 발음을 띤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비르케[Birke], 네덜란드는 베르크[berk], 덴마크는 비르크[birk], 스웨덴에서는 비요크[björk]라고 한다(겨울 숲의 귀족, 자작나무, 이주희 글에서 참조). 차가버섯은 생물학적으로 동물과 식물로부터 구별되는 제3의 생물인 균류(菌類)에 속하고 따라서 편의상 버섯의 일종인 차가버섯으로 부르고 있지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버섯과는 많은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버섯류는 기본적으로 자실체와 균사체와 같은 “버섯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차가버섯은 80%가 목질로 구성되어 있고, 본체로부터 자실체가 생산되어 포자의 형태로 이동하다가 다른 기주[寄主]에 자리를 잡고 번식하는 버섯과는 달리 차가버섯은 자실체가 없고, 따라서 번식을 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버섯류가 나무 등걸과 같은 죽은 기주[寄主]에 착생하여 자라지만 차가버섯은 살아있는 자작나무에 기생한다. 버섯류 중에 살아있는 생물체에 기생하는 방식은 차가버섯과 동충하초 등 극히 일부의 특수한 종류에서만 발견된다. 그리고 버섯류는 기주[寄主]에 가볍게 부착되는 형태로 기생하여 쉽게 떨어지지만, 차가버섯은 뿌리와 비슷한 형태의 조직을 갖추고 자작나무 내부를 깊이 잠식하면서 성장한다. 버섯의 수명 또한 큰 차이를 보이는데 대부분의 버섯이 짧게는 3~5일, 아주 길어야 수 년에 불과하지만 차가버섯은 자작나무에 착생한 후 기주(寄主)가 생존할 때까지 수명을 이어가게 되어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의 수명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와 같이 차가버섯은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형태인 바이러스로부터 발생하여 식물과 동물과도 구분되며, 그리고 균류와도 차이를 보이는 매우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버섯의 특징과 나무의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어서 엄밀히 말하면 식물과 균류의 중간지대에 속하는 생물체라고 할 수 있다. 차가버섯의 기원체인 Inonotus Obliquus는 바이러스의 일종으로서 사실상 차가버섯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며 여러 종류의 나무에 착생한다. Inonotus Obliquus는 자작나무 뿐만아니라 오리나무, 물푸레나무 등에도 착생하여 기생물체를 생성한다. 그러나 차가버섯과 같은 특징을 가진 기생물을 탄생시키는 것은 자작나무가 유일하고 다른 나무에 착생하여 자라는 버섯 형태의 물체는 차가버섯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러시아에서 차가버섯의 공식이름은 나무도 버섯도 아닌 “차가”이며, 학문적으로 “차가”라는 공식명칭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자작나무의 옹이”로 불렀던 기록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여러가지 면에서 독립된 버섯이라기보다는 자작나무의 변형된 한 부분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한다. “차가”라는 이름은 러시아어로 “고통”의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하여 차가버섯이 생존하여 자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작나무와의 고통스러운 투쟁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기도하고,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생물이라는 의미로 “차가”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차가버섯의 성장 과정
차가버섯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차가버섯 균[菌]은 바람 등에 의해 인근 자작나무로 이동하게 되며, 자작나무 표면의 상처 등에 자리잡은 차가버섯 균은 자작나무의 섬유 조직(셀룰로오스)과 목질 조직(리그닌)을 분해시켜가며 자작나무 내부에 뿌리를 만들어간다. 뿌리의 길이는 1~2미터에 달하며, 이를 통해 자작나무의 목질ㆍ수액과 플라보노이드 등을 영양분으로 해서 차가버섯은 자작나무 내부에서 5~10년 정도 성장한다. 이후 차가버섯은 자작나무의 껍질을 뚫고 표면으로 돌출되어 나온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차가버섯이란 이렇게 자작나무 껍질 바깥으로 돌출된 부분을 말하며, 영양분을 저장ㆍ보관하는 창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차가버섯은 자작나무의 표면으로 돌출되어 나온 이후 10~20년을 더 자라난다. 차가버섯 균이 자작나무의 상처에 침투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자작나무 내부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에 세균이 들어오면 이를 인식하고 면역체계를 이용해 세균과 전투를 벌이는데, 평소 면역력이 강하다면 이를 쉽게 이겨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질병에 걸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작나무 또한 자신의 몸에 침투한 차가버섯 균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자작나무는 자기보호물질인 플라보노이드[Flavonoid] 등을 분비하는 방식으로 차가버섯 균에 대항한다. 만약 이 싸움에서 자작나무가 패배하게 되면 이때부터 차가버섯은 자작나무 내부에 긴 뿌리를 내리고 자작나무의 영양분을 빼앗게 되며, 제대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 자작나무는 그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 현지에서는 차가버섯을 ‘자작나무의 암’이라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자작나무와의 싸움에서 차가버섯이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면역력이 강한 사람이라면 세균이 몸속에서 쉽게 자리잡기 힘들 듯이, 건강하게 자라난 자작나무에는 차가버섯이 자리잡고 자라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자라는 튼튼한 자작나무에서는 차가버섯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차가버섯은 주로 평지의 자작나무에서 발견되며, 보통 수백 그루의 자작나무 중 하나 정도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도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버섯은 영양 기관인 균사체와 고등식물의 꽃에 해당하는 번식기관인 자실체로 구성된다. 차가버섯이 자실체인가 아니면 균사체의 덩어리인 균핵[菌核]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버섯은 ‘균류 중에서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크기의 자실체를 형성하는 무리의 총칭’으로 정의되는데, 차가버섯은 외형적으로는 자실체라 할 수 있으나 영양분을 저장ㆍ보관하는 영양기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솔제니친, “암병동”의 차가버섯 언급
차가버섯이 만병통치 효과가 있는 듯이 회자 되었지만 어떤 종류의 식품이나 약이라 하여도 한마디로 만병통치는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차가버섯도 마찬가지라고 보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효능도 있겠지만 복용상태에 따라 부작용도 따르게 되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이다. 차가버섯의 효능에 관련된, 세상에 알려진 사실과 이야기가 있다. 차가버섯은 1951년 구 소련 과학아카데미 코마로프과학연구소를 통해 암 치료 약재로 공식 인정받는 등 성인병 치료에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1918.12.11–2008.8.3)은 1950년대 말 위암말기 진단을 받고도 성공적으로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 소설 ‘암병동’을 1968년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차가버섯의 효능과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검은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차가버섯은 북위 45℃ 이상 극한지역의 자작나무에 기생해 나무수액을 먹으며 15년 가량 혹독한 기상조건을 극복하고 자란다. 강원도 일대에도 자생하곤 한다. 그러나 생산량이 많지 않다. 또 더 추운 곳에서 자라야 약효가 좋다고 한다. 러시아 시베리아처럼 극한의 맹추위를 겪는 동안 약성이 좋아지는 것 같다. “검은 다이아몬드” 소리를 들으니 차가버섯에 손을 않댈리가 없다. 1950년대 초부터 차가버섯의 인공 재배(栽培)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었고 재배에 성공했으나 두 가지 원인으로 차가버섯 재배는 더 이상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 이후로는 차가버섯 인공재배에 대하여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첫 번째 문제는 차가버섯의 유용성이다. 차가버섯은 살아있는 자작나무에서 자작나무의 수액을 먹으며 10년 이상 성장해야 하고, 어떤 경우는 20년 이상 자라기도 한다. 자작나무 톱밥에다가 밀가루를 섞어서 만든 영양배지에서 몇 달 만에 성장한 인공재배로 채취한 차가 버섯은 자연산 차가버섯과 비슷한 성분을 조금 포함하고 있었지만 그 성분의 절대적인 양에서는 비교도 되지 않게 미량이었고 유용성도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자연산 차가버섯이 시베리아 타이가에 필요한 만큼 충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1950년대의 시베리아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지만, 그 후 벌목사업이 크게 일어나고 석유와 천연가스, 금과 다이아몬드, 석탄 등 지하자원을 개발하면서 시베리아에 많은 도로가 개설되고 중요한 국가정책으로 시베리아에 새로운 도시들이 만들어지면서 차가버섯이 시베리아 타이가[Taiga-냉대기후지 중 유라시아 대륙에서 북아메리카를 동서 방향 띠모양으로 둘러싼 침엽수림 지역의 총칭. 원래는 시베리아에서 툰드라의 남쪽에 접한 우랄산맥에서 오호츠크해에 이르는 침엽수 삼림지대를 가리키는 말]에 많이 있고 채취도 어려움이 없이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고부터는 차가버섯의 인공재배개념은 러시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러시아에서 차가버섯 인공재배를 연구하면서 얻은 성과는 차가버섯 성장의 조건 중에서 온도를 춥게 하면 성장 속도가 더운 조건에서 보다 훨씬 느리지만 차가버섯 성분은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1997년도부터 러시아에서 차가버섯 인공재배에 관한 기술을 가져가서 새로운 재배기술을 접목하여 차가버섯 인공재배에 관하여 연구를 했고 실제로 재배도 하였지만 결론은 인공재배 불가였다. 러시아 시베리아는 대단히 넓은 지역이다.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인공재배에 신경 안쓰게 되었다는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