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생체시계(circadian clock, biological clock)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생체시계를 내재하고 있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생체시계라고 하면 좁은 의미로 하루24시간 낮과 밤이 반복되는 일주기[日周期]와 조화를 이루며 반응하는 생체리듬[biological rhythm]을 말하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로 계절 속에 온도, 광선, 명암의 주기적 변화와 함께 생체에서 작동하게 되는 mechanism에 관한 것이다. 외부환경의 영향(예, 낮-밤의 일주기)과는 전혀 관계없이 생체에 내재 되어 있는 생체시계가 자발적으로 주기성을 가지고 되풀이되는 리듬(self-sustained rhythm)을 의미하기도 한다. 북반구의 온대지역의 낙엽식물은 이듬해 봄에 필 꽃눈을 그해 여름부터 준비한다.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9개월 전부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코스모스는 잘 알려진 단일성[短日性] 식물로서 낮 시간이 12시간 이하로 짧아지기 시작하면 생체시계가 작동하며 꽃눈을 만들어 가는 것인데 북반구에 있던 코스모스가 호주로 이주해서 혼란을 겪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어느 가을에 도로변에서 코스모스 씨를 받아 매년 묘를 길러 재배하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하였는데 금년엔 제절로 땅에 떨어졌던 씨앗이 한겨울인 7-8월에 발아하며 자라더니 9월 중순부터 개화하기 시작하여 여름날씨처럼 무더운 요즘까지 화사한 꽃잎을 자랑하고 있다. 코스모스의 생체시계가 인간이 생각하는 월별의 기상특성을 인식하기보다 호주의 낮 시간이 짧은 7-8월의 일조시간을 인식하게 된 것일 게다. 사람들은 식물의 생체 시계의 속성을 이용해서 화예농사를 하고 있다. 가을꽃의 여왕인 국화도 대표적인 단일성 식물이지만 조명과 암막 커튼을 이용해 낮과 밤의 길이를 인공적으로 조절해서 사시사철 국화를 화예시장에 내다 판다.
벼는 일조시간이 부족하면 광합성 효율이 낮아지므로 수확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한국의 농업관계 당국은 그해의 일조량으로 벼수확량을 예측한다. 그러나 벼를 재배하는 논 근처의 가로등에서 밤새도록 조명이 들어오면 벼의 생체시계가 작동을 멈추게 되며 개화하지 못하고 잎만 무성한체 결실하지 못한다. 벼는 밤의 길이가 10시간 이상은 되어야 개화할 수 있으며 차조기는 9시간 45분 이상은 되어야 꽃이 핀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대부분의 식물은 밤길이가 9시간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식물의 생체시계가 일조시간에 영향을 받지만 온도에도 민감하다. 식물의 종자는 콩 종류 처럼 결실 후에 즉시 발아하는 것도 있지만 많은 종류가 휴면[休眠] 기간을 거쳐야한다. 보리를 가을에 파종하는 것은 겨울의 저온 기간을 거쳐야 개화 결실의 생체시계가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저온과는 관계없이 일정기간 휴면해야 생체시계가 작동하며 발아하는 식물들도 있다. 벼품종은 1주일에서 6개월의 휴면기간을 거쳐야하고 맥류가 약 3개월, 잣이나 산수유, 복숭아 등 씨껍질이 두꺼운 종류는 수개월에서 수년의 휴면기간을 거쳐야 발아한다. 동물이나 인간이 잠을 자듯 식물도 잠을 자야 새싹이 나온다. 씨앗의 휴면은 식물의 안전한 종족 보전과 생존전략이다.

생체시계는 생명체의 DNA의 유전자 명령으로부터 시작한 instruction이 착오없이 작동하게 되어 있다. 철새들의 생체시계는 count-down하며 고향땅을 떠나야할 시간을 알고 있으며, 연어 같은 회귀 어류는 몸 안에 간직하고 있는 생체시계로 회기일[回歸日]을 결정하고 navigation을 이용하여 방황함이 없이 그들이 출생하였던 하천을 찾아와 산란하며 종족번식을 이어간다. 최근에 시드니의 벚꽃나무 등 활엽수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여 졌다. 매미 울음소리 나는 나무 밑을 살펴보면 그들이 5-7년간의 영어[囹圄]속의 수형[受刑]기를 마치고 광명의 세계로 나온 출구가 보인다. 활엽수가 많지 않은 시드니의 주택가에서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으나 활엽수가 많이 있는 Blue Mountains일대[一帶]에서는 요란하게 우는 매미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매미도 그 캄캄한 나무 밑 땅속에서 생체시계의 count-down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궁금증에 중독[中毒]된 과학자들이 생체시계를 구경만 하고 있을 수가 있는가? 김원진[연세대], 조원진[아주대] 연구팀은 2년 전[2012년]에 인체의 생체시계라고 할 수 있는 특정 단백질의 정체를 밝혀냈다. 생체에서 “피어리드”라고 하는 단백질이 당의 일종인 “아세틸글루코사민”과 결합하는 정도에 따라 생체시계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단백질이 생체에서 당이나 인산과의 화학적인 변화과정을 “수식화”라고 하는데 생체시계의 핵심 단백질인 “피어리드”에서 일어나는 “수식화”가 생체시계의 작동원리라는 것이다. 생체에서 “수식화”가 잘되면 24시간의 정상속도를 유지하지만 잘 안되면 생체시계가 빨라져서 21시간 등의 주기로 작동하기도 하고 과도하게 일어나면 27시간의 행동리듬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늦은 밤에 과식하면 살이 찌는 이유는 소화나 흡수에 관여하는 생체리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살이 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쥐들을 유전조작을 통해 생체시계가 불규칙하게 돌아가도록 만든 결과 낮과 밤을 가리지 못하고 먹으면서 체중조절 능력을 상실한다. 97년에는 쥐의 생체시계 유전자를 조작해서 쥐의 행동을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유전자 조작으로 생체시계가 뒤밖인 쥐들은 정상적인 먹이를 주었을 때도 체중조절을 하지 못해 지방이 많은 먹이를 준 정상 쥐들처럼 체중이 증가했다고 밝히고 이는 “식사습관은 먹는 시간이 중요함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을 여행할 때 밤낮이 바뀌어 고생한다.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적어지거나 야행성이 된다고 한다. 가만히 누워 있거나 어두운 곳에 갇혀 있어도 상당 기간 동안은 24시간 주기의 생리활동이 이어진다. 누구든지 자기의 의지[意志]와는 상관없이 24시간을 주기로 반복되는 생체리듬이 있다. 밤에 잠을 자는 동물이나 인간은 잠을 자는 동안에 체온이 낮아지고 호흡과 맥박이 약해지는 등 24시간을 주기로 생리학적 리듬의 일주기성[日週期性]을 갖고 있다. 호르몬도 낮에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밤에는 멜라토닌이 나온다. 이처럼 일주기성을 관장하는 조직은 뇌시상하부(hypothalamus)의 교차상핵(supra chiasmatic nucleus, SCN)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이 신체기능을 24시간 주기에 맞게 조절하는 생체시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면을 조절한다고 알려진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뇌의 뒷부분에 있는 송과선에서 분비된다. 적정량이 분비되지 않으면 잠들기 힘들고, 지속적으로 분비가 안되면 일찍 잠에서 깨어난다. 지나치게 계속 분비되면 다음날 아침에도 계속 졸게 된다. 송과선에서 멜라토닌이 나오는 것을 24시간 주기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바로 교차상핵의 임무다. 바이오 기술의 발전으로 최근 들어 일주기성을 관장하는 시계 유전자들이 밝혀지면서 생체시계 연구도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생체시계는 인간의 수면이나 체온, 혈압 변화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동시에 호르몬 분비량이나 면역 활성도를 24시간 주기로 조절하고, 순환기나 배설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장거리 여행이나 불규칙한 생활 및 야간 교대근무를 계속하면 생체시계 내부의 정보가 교란돼 생체시계의 이상을 가져온다. 이는 내분비계 이상으로 이어져 다양한 형태의 생리적, 생화학적 이상을 불러온다고 한다. 실제로 생체시계가 계절적 우울증이나 암, 간질환, 불면증도 직간접적으로 생체기계와 관련이 있다는게 증명되고 있다. 생체시계의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면 사람의 수면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수면제와는 달리 생체시계를 밤으로 조정해 자연스럽게 잠자리에 들게 하고, 긴급한 일이 터지면 즉시 깨게 할 수도 있는 신약 개발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생체시계 이상으로 생긴 문제들을 생체시계를 회복시켜 치료하게 된다는 것이다. 생체시계 이상을 늦추거나 기능을 다시 활성화시켜 노화를 늦출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 되고 있다. 노화가 오면 생체시계가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않아 수면량이 적어지고 호르몬 분비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실제로 노화과정에 접어든 실험쥐의 교차상핵을 떼어내고 어린 실험쥐에서 떼어낸 교차상핵을 이식해 수명을 20%정도 늘렸다는 보고도 있다.
현재 생체시계를 치료하기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미국의 뉴로젠 [www.neurogen.com]라는 회사는 기존 불면증 치료제와는 전혀 다른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수면상태를 자유자제로 유도하고, 일정시간 후에는 투약효과가 완전히 사라지는 신약을 개발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생체시계와 관련한 유전자들이 밝혀짐에 따라 가능해진 것이다. 생체시계와 관련된 학문분야를 시간 생물학(Chronobiology)이라고 해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연구활동이 활발하다. 인간의 생체시계는 인간의 출발에서부터 있어온 것이라 인간사회가 만든 시간개념과 충돌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야생동물들은 그들의 생체시계의instruction으로 살아 갈 것이고 오지[奧地]에서 원시생활을 하는 부족들도 시계가 필요없이 생체시계의 신호에 의존해서 불면증 같은 고통은 모르는체 살아 갈 것이다.
시간 생물학자 틸 뢰네베르크의 “시간을 빼았긴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시차증[時差症]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체시계와 사회가 요구하는 시차로 만성적수면 부족으로 집중력, 인지능력, 식욕감퇴, 우울증으로 시달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중부유럽의 경우 인구의 60%가 생체시계와 2시간이상의 시차를 느낀다는 것이다. 8시간기준으로 93%정도 잔 사람은 98%로 푹잔 사람보다 감기에 거릴 확률이 2.5배가 높아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생체시계는 개인의 생리특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교육,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젊은이들이 술과 담배에 빠지는 것도 사회적 시차증에서 오는 스트레스, 우울 등 정신불안정에서 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원한다면 자기와 생체시계가 맞는 배우자를 고르라고 권하고 있다. 생체시계는 생명과학의 핵심적인 과제가 되었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