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식물의 왕국(2)
자연계에는 식물군락이 있는데 우점종[優占種]을 중심으로 식물공동체가 형성되어 여러 식물들이 역할 분담을 하고 서로간의 상부상조하며 평형을 이루고 있는 식물적 사회집단이다. 이 집단 내에 식물들이 수없이 많은 화학물질을 만들어 내며 화학물질의 전달을 통해서 생물 상호간의 소통을 하고 있다. 우점종[dominant species]을 따라 다니는 종속 식물[subordinate plant]이 있고, 우점종이 도착하기 전에 전초기지를 만드는 보조식물[nurse plant]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곤충들, 동물들이 역할분담을 하고 있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평화가 정착된 안정된식물 또는 생물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소통수단은 화학물질이다. 숲 속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향기가 나며 이 향기가 건강에도 좋다고 해서 산림욕을 권장하고 있다. 이 향기의 정체는 나무가 스스로를 방어 하기 위해서 소위 피톤치드[phytoncide] 라는 방부제[防腐劑]를 만들어 공중으로 방출하는 것이다. 피톤치드가 주로 식물이 미생물에 대항하기 위한 항균 물질인데 소나무 숲에 들어 가면 톡 쏘는 듯한 짙은 소나무 향은 테르펜[terpene]이라는 화학물질이다. 이것은 피톤치드와는 화학적 구조가 약간 다르며 피톤치드의 역할도 하면서 자신을 위한 활성물질인 동시에 곤충을 유인하거나 억제하고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등의 복합적인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휘발성 물질이다. 과학자들은 지구 상에는 약1200-3000만종의 화학물질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Toxline”이라는 정보기지[Database]에 실려있는 화학물질이 110만 종이고,인간들이 연구소등에서 매년 2000여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을 합성하고 있다고 한다.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이래 100여년 동안 20만종은 합성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고 나머지는 식물이 합성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식물은 위대한 화학자”라는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안간힘을 쓰며 인간에 필요한 새로운 화학물질은 만들어 내려고 고심하고 있는데 식물들은 연구소고 공장이고 아무 장비도 없이 그 많은 화학물질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위대하다는 소리가 안 나올 수 가 없는 것이다.
화학성분으로 메시지 전달
필자가 20년전에 시드니에 정착하며 심은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감의 당도[糖度]가 높아 먹어본 사람이면 맛있는 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보물1호다. 그런데 감이 많이 달리는 해에는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온갖 새들이 다 모여 들고 보통 때 구경도 못하던 박쥐 떼까지 달려들어 소동을 벌린다. 박쥐가 감 달린 것을 알고 밤중에 찾아 오는 것은 후각[嗅覺]을 이용하는 것인데 박쥐의 냄새 맡는 실력은 파리에 못지 않게 뛰어나다는 것이 밝혀진 사실이다. 온갖 과일이 냄새를 풍기지 않고 조용히 익으면 사람이 먹을게 많아지는 것이지만 식물 입장에서는 사람 주려고 과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생존과 번식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뒤 밭의 감나무도 새나 박쥐를 불러 들이는 것은 감 먹는 대가로 감 씨앗을 널리 널리 퍼뜨려 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열대지방의 박쥐들은 주로 과일을 주로 먹기 때문에 과일 박쥐라고 하는데 과일박쥐는 과일나무의 곤충이 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수분작용도 돕고 과일나무의 씨를 배설물과 함께 넓은 지역으로 퍼뜨려 나무 번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숲이 파괴 되면서 박쥐의 숫자가 줄어 들고 멸종위기에 처한 박쥐 종류가 많아 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열대나무 종류의 95%가 자신의 과실을 먹는 동물을 통해 씨를 퍼뜨린다.
식물, 동물, 인간은 동반자 관계
식물, 동물, 인간은 서로 간의 동반자 로서 서로 밀접한 진화적 관계를 맺어왔다는 증거다. 문제는 동반자가 더러 상처도 준다는 점이다. 약 1만4000년 전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간 초기 인류가 그랬다고 한다. 이 노련한 사냥꾼들이 도착한 지 약 1000년이 지나자 북미 대평원의 매머드·맹수 등 거대동물이 사라졌다. 이들이 씨를 날랐던 식물도 덩달아 멸종되거나 한정된 서식지로 밀려났다. 아보카도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보카도 씨가 얼마나 큰가? 아보카도를 씨와 함께 통째로 삼켜 딴 곳에다 퍼뜨릴 수 있는 거대동물이 있었던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1만년전에 초기인류가 지구의 곳곳에 진입하면서 매머드 같은 대형동물이 자취를 감춘 흔적은 뚜렷하다. 매머드 같은 동물이 아보카도 씨를 퍼뜨려 줬는데 이들이 사라지니 야생 아보카도는 거의 씨가 말랐다. 그나마 있는 것도 기껏 여문 과실이 부모 식물 바로 밑에 떨어져 하염없이 썩어갈 뿐이라는 것이다. 식물학자들은 이를 ‘시대착오적 종’이라고 부른다. 그 큰 씨앗을 어떻게 하겠다고 깊이 간직하고 있느냐? 는 한탄조의 물음이다. 아보카도는 다만 이 과일에 맛을 들인 인간이 재배해 겨우 살아남았다.
식물의 인식능력
식물의 행동에 상상을 뛰어 넘는 사례들이 있다. 주장에 그친 것도 있고 입증된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식물들이 의사 소통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에 관한 사례들이다. 최근 식물분자생물학자인 미국 애리조나대학 랠프 바크하우스, 프랑스 식물분자생물학연구소 빌라르 카마라 등은 식물도 동물처럼 상처를 받았을 때 통증을 느끼며 이때 아스피린 등의 소염제처럼 식물의 통증을 줄일 수 있는 화학물질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식물은 곤충의 공격으로 물리적 손상을 입었을 때 방어물질로 ‘자스몬산’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휘발성이 있어 이웃한 식물에 곤충의 공격에 대비해 자체방어 물질을 만들라는 경고신호로 작용한다 식물이 고통당할 때 아스피린을 식물에 투여하면 자스몬산이 생성되지 않아 그만큼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아스피린으로 동물의 고통반응을 일으키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러한 실험결과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식물의 통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식물이 상처를 받은 초기에 정보 전달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반응 메커니즘을 완전히 해명한 것이라면 식물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병에 강한 식물의 재배와 인간의 항염증제 개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식물학자들은 대부분 식물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세포 때문에 세포간 신호 전달과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왔다. 식물은 통증을 느끼는 게 아니라 단지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뿐이라는 것이다. 바크하우스의 연구결과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곤충이 식물을 공격할 경우 식물들이 방충 화학물질을 발산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테면 소나무 송진의 터펜스 같은 물질은 병원균과 다른 식물의 접근을 막고, 제라늄에 손을 대면 미모사가 잎을 오므리듯 즉각 독가스를 뿜어내 외부 침입자를 퇴치한다. 끈끈이주걱은 먹이가 있음직한 곳으로 정확히 몸을 움직여 백발백중의 실력으로 파리를 붙잡는다. 어떤 식물은 곤충과 공생관계를 맺으며 공존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식물의 반응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식물의 왕국 3으로 계속]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