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아까시꽃의 계절(1)
아까시나무는 학명이 “Robinia pseudoacasia”
한국의 5월에는 아까시꽃을 빼 놓을 수 없다. 많은 분들이 “아까시꽃”이라는 제목부터 고개를 갸웃 등 할 것 같다. “아카시아꽃”이 바른 표기 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 “과수원 길”에 나오는 “아카시아꽃”이 잘못된 표기라는 한국임학회의 정정[訂正] 결정이 있었다. 아카시아 나무는 원산지가 호주 동쪽이며 학명이 “Acasia dealbata” 로 노랑 꽃이 피고 나무 모양이나 이파리가 아까시나무 와는 전혀 다르다. 시드니의 nursery에는 여러 종류의 Acasia 묘목을 팔며 잎이며 나무 모양이 한국의 아까시나무 와는 전혀 딴판이다. 아까시나무는 1492년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었다고 한다. 아까시나무가 유럽에 도입된 것은 1601년 프랑스 Henry IV때 약초 식물학자인 Jean Robin이거나 그 아들 Vespasien Robin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까시나무는 학명이 “Robinia pseudoacasia”로 가짜[pseudo]아카시아 라는 뜻이다. Robinia는 Robin의 이름을 딴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까시나무 를 Locust Tree라고 하는데 이 나무를 지중해 지방에 있는 쥐엄나무 같이 생긴 Ole-World Locust Tree(Ceratonia seliqua)의 지방종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었으나 이 나무의 이름인 black locust가 되어 버렸고 학명은 속명이 Robinia가 되고 종명은 acacia와 비슷하다고 하여 pseudo- acacia라고 명명 한것이다. 아까시나무인 “Robinia pseudoacacia” 를 아카시아라고 누가 맨 먼저 부른 것인지 확인 할 수 없지만 번역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구나 국립국어연구원은 기왕에 귀가 닳도록 들어온 “아카시아”를 굳이 고칠필요가 있느냐?며 “표준국어대사전”에다 “아카시아”라고 표기 하는 바람에 “아까시나무”가 “아카시아”로 굳어져 버렸다. 사정이 이러 하니 그 즐겨 부르던 동구 밖 “과수원”길의 작사자 “박화목”을 나무랄 수도 없고 이 사실을 확인한 이상에는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이라고 부르기도 찜찜하고 그렇다고 “아까시꽃”이라고 하는 것도 어색하게 되었다. 노래는 그렇다 치고 한국의 나무이름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한국임학회”에서 아까시나무라고 부르기로 했으므로 이제부터는 “아까시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것이다. 아까시나무꽃이 무슨 죄인가? 아까시나무꽃의 향긋한 그 향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기에 한국의 꿀벌들이며 양봉업자들은 제철을 만나 동분서주 하고 있을 것이다.
아까시나무가 한반도로 이주 해서 넓게 뿌리 내린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까시나무를 처음 들여온 사람을 검색해 보니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인천에서 무역회사 지점장으로 있던 사가끼란 일본사람이 1891년에 중국 상해에서 묘목을 구입하여 인천 공원에 심은 이후 한반도에 비로소 아까시나무 세상이 펼쳐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인 것 같다[박상진 교수의 나무이야기에서] 미국을 고향으로 하는 이 나무는 그 후 1910년 일제 강점기에 들어오자 심는 양이 많아져 강토의 구석구석을 누비게 되었으며 콩과식물 이기 때문에 토사가 흘러내릴 정도로 황폐해진 민둥산에도 뿌리를 잘 내렸다. 잘라 버려도 금새 싹이 나올 만큼, 강한 생명력과 화력이 좋아 땔나무로서의 역할도 컸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무분별한 화전과, 도벌 등으로 거의 전국의 산들이 민둥산이 된 것을 50여년 전[1960년대 중반]에 주민을 동원하는 거의 반강제적인 방법으로“사방공사[砂防工事]”라는 사업을 하며 토양 침식을 막기 위해 석축[石築]을 쌓고 풀과 나무를 심어서 산을 푸르게 가꿨다. 이때 심은 나무 종류가 척박한 땅에 자랄 수 있는 수종인 오리나무나,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등 이었으며 사방공사로 식재 된 나무 중에 아직 까지도 산의 많은 면적을 차지 하고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까시나무 일 것이다.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에 꽃피는 산골의 정경 묘사 중에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있는데 복숭아꽃이나 살구꽃보다는 아까시꽃의 향수가 더 짙게 배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필자가 다니던 초등학교 에도 거목으로 자란 아까시나무가 교정을 압도 하고 있었으며 졸업단체 사진도 이 나무 앞에서 찍었다. 아까시꽃에서 향기가 진동하며 때를 만난 꿀벌들이 윙윙거리고 치렁치렁 매달린 꽃송이가 산들 바람에 군무[群舞]를 하면,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콩과 식물인 아까시나무
아까시나무는 뿌리혹박테리아와 공생하는 콩과 식물 이기에 풀도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도 뿌리를 박고 잘 자라며 땅을 비옥하게 바꾸는 습성도 있고 뿌리가 넓게 잘 퍼져 나가기 때문에 토사[土砂]의 유실이 예상되는 경사지에는 안성맞춤의 나무다. 버큼힐의 필자의 집 앞에 20여m 깊이의 계곡 숲이 있는데 4-5년전, 계곡으로 내려 가는 언덕배기에, 어떤 사람이 분홍색 꽃이 피고 가시가 없는 아까시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한 그루는 필자가 가꾸고 있는 도토리 나무 바로 곁에다 심어서 필자가 다시 조금 떨어진 쪽으로 옮겨 심었으며 바위와 돌이 받쳐서 제대로 뿌리를 붙일까? 의심 하였었는데 4-5년이 지난 현재 족히 7-8m는 자란 것 같고 10m되는 지점에 뿌리가 뻗어 나가서 새로운 아까시나무 3개가 돋아 낳다. 척박한 땅을 비집고 자라는 데는 유칼립투스를 따를 나무가 없다고 하지만 옆에 빽빽히 서있는 유칼립투스와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아까시나무 2개의 영토확장작전을 지켜 볼 작정이다. 아까시나무가 한때는 일본인들이 한국의 산을 버려 놓을 속셈으로 의도적으로 퍼뜨린 것이라는 주장도 이었고 아까시나무 뿌리가 묘소를 뚫고 들어 가는 것도 정서상 비난 의 원인이었는데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할까?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아까시나무 숲이 수종갱신사업으로 다른 수종으로 바뀌었으며 자연 상태에서도 다른 종류의 나무와의 생존경쟁에 밀려 서 감소하는 추세라, 한국의 양봉업자들이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양봉협회에서는 아까시나무 식재 를 권장할 때는 산 면적의 10%를 차지 하는 32만ha이었으나 9만ha[2014년]정도로 줄어 들었으며 양봉업계의 타격은 물론 아까시꽃의 꿀을 찾는 벌을 비롯한 곤충의 화분매개 활동의 저하 등 농업생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이 예상 된다며 관계당국의 시급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약3만 5천의 양봉농가가 있으며 연간 4000억원어치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화분매개를 통한 공익적 가치를 6조원 이상이라는 분석도 있다고 한다. 양봉업자들이 6-7년 까지만 해도 양봉 1군[꿀벌2-3만마리]당 25-30kg의 꿀을 생산 했었으나 2013년에는 10-15kg으로 줄었다며 “고사위기에 직면했다”는 비명이다. 아까시꽃이 지구 온난화[溫暖化]영향을 받는 것도 양봉업자들에게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다.
아까시꽃과 꿀
아까시꽃의 개화시기가 남부지방[목포 기준]의 평균 기온으로 5월 10일 전후이며 몇 년간 큰 차이가 없으나 남한의 최 북단인 양구의 경우 6-7년전에는 6월 6-7일경에 개화 하여 목표지역과 근 1개월의 시차[時差]가 있었으나 작년[2014년]에는 이보다 열흘이나빠른 5월 25일경에 개화하는 바람에 이동[移動] 양봉업자들이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작년이 이상 기온이라기 보다 온난화의 영향을 받는 것은 심각성이 큰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양봉업의 위기감을 해소 시킬만한 소식도 있다. 서울대 산림과학부의 이경준 교수는 15년간의 연구 끝에 개화기가 차이가 나는 3개의 아까시나무 신품종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이3가지 품종을 한 장소에 심으면 채밀 기간을 두 배로 연장할 수 있고 채밀 양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품종으로 밀원을 조성하면 벌통을 싣고 아까시꽃이 피는 시간대에 맞추어 전국 방방곡곡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국내 총 꿀 생산량 연간 평균 2만7000톤중 아까시나무 꿀은 1만9000톤을 차지하고 있다. 양봉업자들의 의욕을 크게 위축시키는 더 큰 암[?]덩어리가 있다. 벌에게 설탕을 먹여서 설탕꿀을 만들어 파는 것이다. 꿀이라기 보다 벌의 뱃속을 거쳐 나왔을 뿐인 설탕물 인데 진짜 꿀 행세를 하니 양봉업자들이 배겨 날 수 없다는 것이다. 설탕물 이라고 하였지만 설탕물이 아닌 자연속의 꽃에서 채밀된 진짜 꿀과 가짜꿀의 식별은 상당한 전문가의 첨단 검사 기능을 갖추지 않는 한 불가능 하다. 벌통곁에 설탕물을 풀어 놓으면 벌들이 삼켜서 벌통으로 들어가 꿀처럼 관리 하는 것이다. 한 양봉농가 평균 10드럼에서 15드럼을 생산하는데 설탕꿀을 생산 하는 사람은 한 100드럼에서 300드럼까지 생산한다고 하니 양봉업계의 질서를 보통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다. 꿀벌의 소화기관은 꿀은 만드는 고도의 절밀 기능을 갖춘 인간의 지능으로 모방할 수 없는 복잡한 생체구조다. 곤충의 소화기 구조는 식도-모이주머니-소화액 분비선-위장(-말피기관 다발)-창자-직장으로 이어져 있으며, 꿀벌은 투명한 풍선 같은 모이주머니 뒤의 소화액을 분비하는 분비 샘 구멍이 안쪽으로 들어가 열려 있는데 여기서 변기의 물 내리듯이(…) 소화액이 분비된다. 벌이 식물의 꽃에서 흡입 한 것은 꿀이 라기 보다 흔히 사탕수수나 사탕무에 들어 있는 설탕이라고 하는 자당[蔗糖]의 형태인데 이것을 소화작용을 통해 과당과 포도당으로 분해하며 자기 몸에 필요한 양은 위장으로 내려 보내고 나머지를 남는 것은 토[吐]해 내서 꿀을 제조해 벌집에 저장하는 것이다. 꿀의 생성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지만 말이 쉽지 아무리 과학이 발달 하였어도 인공적인 제조는 엄두도 못 낼 과정이다. 꿀 1kg 을 채취하려면 벌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 다녀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아까시꽃에서 꿀이 만들어 지는 것이며 벌들이 천신만고[千辛萬苦]의 목숨을 건 노동으로 꿀을 모아다가 인간의 삶 까지 달콤하게 해주니 신비 아닌가?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1963년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여주 대신고등학교 교감과 수원 계명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은퇴,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