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 칼럼
식물의 꽃과 색소
지난 8-9월에, 시드니에는 장마철처럼 비가 많이 내렸다. 비교적 강수량이 적은 탓으로 매년 집 주변의 꽃나무들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었는데, 금년에는 한을 푸는듯이 백화[白花]가 휘드러질 정도로 만발[滿發]하였다. 신주 모시듯 가꾸고 있는 두 그루의 대추나무가 있다. 매년 봄이 되면 잎이 피지 않아 죽지 않았나하고 작은 가지도 꺽어보고 조바심을 하기가 일수였는데 금년에는 일찌감치 연두색의 잎을 피우며 봄을 맞이하고 있다.
몇일전, Blue Mountains에 위치한 Leura에 꽃구경을 따라 갔었다. 시가지를 관통하는 Leura의 중앙도로에 몇 십년을 되었을 벚꽃나무가 꽃이 만발하면 장관을 이룬다. 절정을 이룬 것은 아닌가 하고 못처럼 Leura를 찾았으나 꽃잎을 터뜨리지 않은 채 count-down을 기다리고 있었다. 벚꽃하면 일본의 국화[國花]로 생각하며 거부감도 있어 왔지만 일본은 우리나라 무궁화 처럼 법률로 정해진 국화[國花]는 없고 일본 황실의 상징으로 삼고 있을 뿐이라고 하며,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벚꽃을 두고 한 표현일까? 일본인들이 일주일정도 벚꽃의 화사함을 자랑하다가 저 버리는데서 인생의 무상함과 비교하며 서글퍼하고 뒤끝이 깨끗한 벚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일본일들이 그토록 좋아 하는 사쿠라[벚꽃나무]는 제주도에 자생하고 있는 왕벚꽃나무를 일본인 선원들이 가져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본식물학자들이 일본의 자생지를 찾으려고 노력하였지만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측은 어쩔 수 없이 제주도가 원산지라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우여곡절[迂餘曲折]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식민지 시절에 형성된 일본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꺼림직 하게 생각해 왔던 것인데 그 이미지를 떨쳐 버리게 되었고, 진해시[鎭海市]나 여의도[汝矣島]의 윤중제 등 벚꽃축제를 마음껏 펼치게 된 것이다.
꽃이 없는 생활은 삭막[索莫]함을 느끼게 되는 때문일까? 온갖 이벤트[행사]에 반드시 꽃들이 요처[要處]를 차지하고 행사를 지켜보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온갖 식물들이 인간의 장식품으로 그 찬란한 꽃송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꽃의 아름다움에 미혹[迷惑]하기보다 현란한 색깔을 만들어 가는 메카니즘[mechanism]을 밝혀보려고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다. 식물들은 철저하게 자연을 활용한 생존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며, 식물종류에 따라 꽃을 만들기 위한 생체 전략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봄에 피는 꽃을 장일성[長日性] 식물이라고 하며, 감나무나 사과나무 등 목본성[木本性] 식물은 화아를 형성하려면 일조시간 이전에 잎, 뿌리, 줄기가 왕성하게 자라는 유년기를 거처야 하지만 초본성[草本性] 식물은 유년기도 짧고 일조시간에 민감한 반응을 통해서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장일식물은 하루의 일조[日照] 시간이 12-14시간은 되어야 꽃눈이 형성되고 개화하며, 보리 같은 것은 일조시간도 영향을 받지만 저온에 노출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늦가을에 파종해서 겨울 내내 추위와 부딪쳐야 꽃을 만들게 되고 결실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텃밭에서 상추나 배추 등은 장일성이라 봄이 되어 일조 시간이 길어지면서 꽃대를 만들고 꽃을 피우게 된다.
식물의 잎은 일조시간의 길고 짧음을 감지[感知] 해서 꽃이 될 ‘FT’라는 단백질을 만들게 되고 저온 등의 자극에 의하여 생장점으로 이동해 개화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꽃눈 형성이나 개화가 일반적으로 온도, 일조량 등의 외적조건의 영향을 받지만 식물의 나이, 유전적 환경 등의 상호작용에 의해 차이를 나타내게 된다. 한국의 경북과학시술원 연구팀[단장-난홍길]은 1999년에 꽃이 피는 시기 등을 조절하는 또 다른 유전자를 발견하였으며, 이를 자이겐티아 ‘GI-gigantia’라고 명명하고 특허를 획득해서 크게 뉴스가 된 일이 있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잎의 세포의 핵안에서 자이겐티아라는 물질이 모임과 흩어짐을 통해 개화를 조절하게 되는 것이고, 일조시간의 영향을 받아 하루를 주기로 변화를 계속 하면서 개화시기가 결정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유전자의 암호에 의하여 식물들은 꽃을 피우는 효소도 만들고, 꽃피는 것을 억제 하는 효소도 만들어 적절한 시기를 선택하게 되는 것인데 이를 자이겐티아가 하게 되는 것이며, 자이겐티아는 일조량의 영향도 받고 온도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식물들이 오묘한 생리 화학작용을 다양한 색깔의 꽃을 창출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의 자손을 번창시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사람들이 꽃을 보고 ‘아름답다’, ‘예쁘다’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만든 말이지 꽃 자체와는 관계없는 말이다. 식물의 생식기관으로서 배우자의 만남을 주선하는 역할이 있을 뿐이다. 꽃은 어느 식물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자를 만들어 자손을 퍼뜨리는 종자식물 만이 있는 것이다. 양치식물이라고 하는 고사리는 꽃이 없고 포자[胞子]를 만들어 번식한다. 종자식물도 겉씨식물은 꽃은 피지만 아름다운 색상을 나타내지 않고 바람 등을 이용해 정자에 해당하는 꽃가루를 받아서 수정하기 때문에 요란스럽게 꽃 색깔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어있다.
속씨식물은 겉씨식물과는 다르게 곤충 등 다른 생명체를 의식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생식활동을 한다. 겉씨식물이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여 무수한 꽃가루를 만들어 공중에 날라 갈 기회를 엿보는 다소 무모한 방법인 반면에 겉씨식물은 꿀단지에 꿀을 저장에 놓고 다양한 색깔의 꽃잎과 향수를 풍기며 곤충들을 유혹해서 배우자를 만나러 가려고 한다. 꽃잎의 색깔이 어떤 성질[性質]인가를 알아보는 실험으로 리트머스 용액을 사용하게 된다. 지의류[地衣類-바위 등에 꽃무늬처럼 보이며, 자라는 조류[藻類]와 균류[菌類] 복합체의 일종인 리트머스 이끼[litmus lichen]가 있는데 이 식물체는 안토시안[anthocyan]이라는 색소를 가지고 있다. 이 성분을 리트머스라고 하며, 이 화합물은 중성에서는 보라색, 산성에서는, 붉은색, 염기성에서는 푸른색을 나타낸다. 이 성질을 이용하여 용액의 성질을 알아보는 지시약으로 쓰이며, 과학실험의 마법사 노릇을 톡톡이 하고 있다. 가을이 되어 기온이 5℃이하로 내려가면 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층이 형성되고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탄수화물이 줄기로 이동하지 못하고 쌓이면서 잎의 용액이 산성으로 변하고 녹색의 엽록소가 파괴 된다. 이때 보라색이던 안토시아닌이 이파리가 산성화되면서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이며, 기온이 내려갈수록 산도가 더욱 높아지게 되고 색깔은 더욱 진한 붉은색의 단풍 색깔을 발현하게 된다.
딸기, 복분자, 오디, 포도 등은 산성이라 붉은색을 띠게 된다. 잡초처럼 자라며 까만 색깔의 열매가 달리는 까마중이라는 식물이 있다. 열매가 머리를 빡빡 깎은 중의 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까마중 열매에 안토시안 함량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은 색소들을 생성하는 것은 인간의 건강과는 관계없는 일이지만 생리작용과 관계를 연구하여 항암작용, 항산화 작용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뉴스가 있은 후 거들떠 보지도 않던 까마중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되었다. 필자의 집주변에도 까마중이 자생하며 영역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모든 식물들이 생존전략으로 특이한 꽃 모양, 다양한 꽃 색깔, 잎의 크기 모양, 천적을 막기 위한 방어물질, 다른 식물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 등을 갖고 있기에 현존[現存]하며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나무 잎이 녹색인 것은 7개의 가시광선 중에서 녹색은 흡수하지 않고 반사하기 때문이며, 나머지 색을 흡수해서 광합성을 하고 탄수화물을 만들어 에너지를 저장하는 것이다.
식물의 색깔중에 황색, 주황색, 적색등의 색을 나타내는 색소로서 기름에 녹는 성질[지용성-脂溶性]을 가진 카로티이드[carotenoids] 계열의 색소가 있다. 베타카로틴[b-carotene]과 라이코펜[lycopene] 같은 것이 카로티노이드 계열의 색소이다. 베타카로틴은 동물이 흡수하면 비타민A로 전환되어 생체의 주요한 기능으로 작용하게 되며, 라이코펜[lycopene]은 붉은색을 띠며 항암효과와 노화억제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토마토의 빨강색은 라이코펜이라는 색소이며, 심혈관 질환에도 뚜렷한 효과 있다는 등 과학자들의 관심이 계속되고 있는 중요한 색소이다.
식물 색소중에 빼놓을 수 없는 색소는 플라보노이드[flavonoids] 계열의 색소다. 식물의 노란색을 띠는 것들이며, 라틴어의 노란색이라는 뜻의 플라보스[flavus]에서 유래한 것으로 플라본[flavon]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식물의 노란색이 아닌 적색 및 청색을 띠는 플라보노이드도 있다. 사과, 오렌지, 레몬 등의 과일과 토마토 감자 등의 야채, 차, 포도주 등의 천연음료 등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수용성 화학물질이다.
식물들이 곤충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꽃 색깔과 꽃 모양등을 설계해서 꽃을 발현 시키는 것인지 일방적으로 곤충들이 달려드는 것인지 그 속내를 누가 알랴! 꽃의 다양함이 너무나 많고 곤충들도 좋아하는 꽃들이 각기 다르다. 배추흰나비는 노랑, 보라, 빨간색 계통을 꽃을 선호하고 흰색이나 녹색의 꽃을 즐겨 찾지 않는다. 꿀벌은 자주색 꽃을 좋아한다. 노랑색 꽃은 일반적으로 꿀을 적게 가지고 있으며 위를 보고 피는 꽃들이 많다. 자주빛 꽃은 꿀이 많고 꽃의 구조가 통모양이거나 복잡하다.
그러나 상호간의 정보협정을 맺은 것인가? 곤충들은 꽃의 구조에 맞게 나비처럼 빨대를 길게 진화시키는 등 신체구조를 이루어 좋아하는 꽃 속의 꿀단지에 저장되어 있는 꿀을 찾아내서 빨아들인다. 과학자들도 자연속의 상부상조의 관계를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밝혀지지 않은 꽃의 비밀은 너무나 많다. 다만 근본적인 꽃 속의 과학적인 메카니즘보다는 인간의 생노병사와 관련된 유익하고 경제적 이득이 없는가에 관한 정보를 얻기에 혈안이 있다. 식물들이 꽃잎을 활짝 터뜨리며 화사함을 드러내기까지의 과정은 치밀하고 정교하며 고된 과정이기도 하다. 혹독한 추위를 극복한 후에야 꽃망울이 만들어 지는 것도 있고 오랫동안 비 오기를 기다리며 움츠리고 있다가 새싹과 함께 찬란한 개화의 환희를 세상에 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꽃들은 인간의 청각으로 감지 할 수 없을 뿐이지 인간의 삷보다 더 지혜롭게 자연과 소통하며 한 순간도 낭비 하지 않고 실기[失期] 하지도 않으며 삶을 이어 가고 있다. 금년에는 시드니 지역의 식물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생명의 단비를 흠뻑 맞고 마음껏 화사한 꽃의 자태를 뽐내는 봄의 축제를 여는 것 같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