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경 목사 칼럼

칼 융의 분석 심리학과 케데헌 (K-pop Demon Hunters)
1900년에서 2000년 초기만 해도 심리학과 심리학 용어들은 낯설게만 들렸고, 일반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적 담론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 심리학은 더 이상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심리학은 일상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한국 TV의 일일 드라마조차 심리학적 요소가 빠지면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대중문화가 인간 내면을 다루지 않는다면, 매력과 설득력을 잃는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데헌( K-pop Demon Hunters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물론 그 인기는 이미 인정받은 탁월한 K-Pop과 K-Culture라는 문화적 영향력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 작품이 사회 문화 심리학, 정신분석학 그리고 칼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에서 제시한 중요한 이론들이 극적으로 녹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이 작품을 시청하는 것과 한국적으로 우수한 음악과 춤만 보고 작품을 이해하거나 문화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케데헌의 주인공 루미는 항상 긴 옷을 입고 다니며, 가장 친한 친고하고도 목욕탕에 가지 않는다. 이 부분에 왜 그러지?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이것을 분석하고 영상을 본 시청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루미의 몸에 새겨진 문형 때문이었다. 루미의 몸에 새겨진 문형은 루미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곧 그 문형은 밖으로 드러난 루미의 밝은 면과 극적으로 대조적인 어두움의 자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몸의 문형은 루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직접적 정보이다. 그래서 루미는 이 문형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철저히 가리고 숨긴 것이다. 이것은 융이 말한 인간이 가진 어두운 면 곧 그림자(shadow)의 전형적인 상징을 표현한 것이다. 융에 따르면, 그림자는 인간 누구나 지니고 있는 심리적 구조로,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해 무의식 속에 억압해 놓은 부정적 속성들의 집합체이다. 우리가 외면하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존재의 불가피한 한 부분인 그림자는 때때로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드러나며 개인의 삶을 규정한다. 신학적 관점에서도 루미의 문형은 비슷하게 해석된다.
어두움을 상징하는 루미의 문형은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사람이 되기 이전의 형태인 옛사람의 정체성인 죄인의 모습이다. 심리학 관점에서 그림자는 인간과 문화와 환경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본다면 신학적 차원에서 옛사람, 곧 죄의 문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 발생한 불순종의 결과에 의해 생긴 것이라는 차원에서 구별될 수 있다. 무의식의 그림자는 의식의 주인인 자아에 의해 수용되고 융합될 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옛사람의 속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해결되는 문제이다. 따라서 루미의 이야기는 단순한 캐릭터 설정을 넘어, 인간의 내면 심리를 집약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의 ‘숨기려는 몸의 문형’은 바로 모든 인간이 감추고자 하는 그림자의 은유이자 어둠의 문제이며 결국 죄의 문제이다. 이를 직면하지 않거나 해결하지 않고 서는 진정한 자아의 성숙과 영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루미에게서 칼 융이 말하는 페르소나의 개념도 찾아볼 수 있다. 페르소나라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탈춤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고 살아가던 천민들은 탈을 쓰고 탈 춤을 추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풍자적으로 마음껏 말할 때 쓰던 가면과 같은 것이다. 루미의 페르소나는 인기 정상의 아이돌 리드 싱어 라는 가면이었다. 이 가면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으며 자신의 어두움에 속한 진정한 자아는 무의식에 억압 둔 상태로 인기를 누리고 살아가는 것에 만족한다. 아이돌 싱어로 인기가 올라갈수록 루미의 페르소나는 강화되어 루미 자아와 동일시되어 버리고 말았다. 칼 융은 페르소나와 자아의 동일화라고 불렀다. 이것은 모든 개개인에게 위험한 증상이다. 유명한 카프카는 그의 작품 ‘변신’을 통해 페르소나와 자아의 동일시가 강화될 때 나타나는 위험성을 문학적 상징성과 심리학적 은유로 접근하여 서술한다. 작품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는 가족을 부양하는 성실한 아들’이라는 사회적 페르소나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의 모습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페르소나에만 매달려 살다가 진정한 자아는 억압된 채, 어느 순간 벌레로 변해버리는 초현실적 사건을 겪으며 결국 파멸하게 된다. 루미는 사회적 역할과 무대 위의 이미지를 진정한 자아와 동일시하면서 점차 내면의 긴장을 겪게 된다. 그 결과 평소에는 문제없이 올라가던 고음을 내지 못하는 위기를 맞이한다. 이 순간, 사자 보이즈의 리더이자 악인의 정체성을 지닌 지누가 등장한다. 그는 단순한 라이벌이나 경쟁자가 아니라 루미의 무의식 속 그림자를 드러내는 촉매로 작용한다. 지누는 루미의 불안, 수치심, 내적 분열과 같은 억눌린 그림자를 무대 위에서 폭로하고, 동시에 그녀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전하는 존재이다. 결국 루미는 지누와의 대결을 통해 자기 안의 그림자와 마주하고, 억압된 자아를 수용함으로써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한다. 그 과정에서 잃었던 목소리도 정상적으로 되찾게 되고, 마침내 경연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 장면은 루미가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고 개성화(individuation)의 중요한 단계를 성취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융의 관점에서 개성화란 단순히 개인이 자기중심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성화는 무의식과 의식, 페르소나와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와 같은 상반된 요소들을 통합하여 자기(Self)의 총체성에 이르는 과정이다. 융은 개성화를 통해 한 개인이 비로소 사회 속에서 온전히 자기 몫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숙한다고 보았다. 즉, 개성화는 고립된 자기만의 완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자리와 소명을 다하는 성숙한 주체로 서게 하는 길이다.
이처럼 심리학은 더 이상 학문적 담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중문화 속에서 심리학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시청자와 독자, 나아가 공동체가 자기 자신을 성찰하도록 돕는 하나의 창이 되고 있다. 케데헌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융의 분석심리학이 현대 문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잘 보여준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적 언어가 일상으로 흘러 들어올 때, 그것은 단순한 개념 전달을 넘어 인간 이해의 새로운 문화적 패러다임으로 기능한다. 이는 개인이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고, 공동체가 서로를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박만경 목사
(시드니 우림 교회 담임, Iona Trinity College 상담학 교수, Ph.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