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목사의 나침반 논단
건강한 교회를 향한 출발
1. 본문 중심적 설교(The bible centered preaching)
가끔 부흥회를 참석할 때 당혹스러운 경우가 있다. 성경 한 구절을 읽고는 성경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이다. 자신의 이야기나 경험 그리고 철학을 신나게 설교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본문의 내용과는 전혀 안 맞는 해석으로 성도들에게 설교를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말씀을 듣고 성도들을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웃으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정직하게 설교의 모습을 돌아보면 이것은 아니다. 물론 설교에는 예화도 들어가고, 개인의 경험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하나님 말씀 선포”이다.
* 본문 중심적 설교란?
본문 중심적 설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해 설교”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데니스 레인(D.J.V LANE)은 강해설교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 강해설교란 성경의 특정한 구절의 뜻을 그 회중의 필요와 환경에 맞추어 설명함으로써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깨닫게 하는 과정을 말 한다.” 강해설교- 본문 중심적 설교-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이 3가지 표현은 현 시대의 설교 흐름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는 말들이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성경으로부터( from the bible)” 설교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본문 중심적 설교는 단순히 성경의 특정 구절에 대한 주석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설명을 뛰어 넘어 구체적인 적용과 성도들이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설교자가 먼저 그 말씀을 믿는데서 출발한다.
마트 데버(Capitol Hill Baptist Church)의 말을 빌리면, “많은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성경의 무오류성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가 실제로 본문 중심적 설교에서 떠난다면, 그 목회자는 목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알고 있었던 수준 이상으로 결코 설교 할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본문 중심적 설교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충실하다는 것이다. 즉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시인 할 뿐 아니라, 실제로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 성경은 설교의 도구가 아니라, 실제이다.
본문이 이끄는 설교가 되기 위해서는 설교자가 점점 더 성경적인 사고방식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설교자는 성경을 자기가 전부터 말하고 싶어 하던 것을 말하기 위한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연속 강해 설교”를 하는 것이 유익하다. 설교자가 강해 적이지 않은 설교를 계속 하게 되면, 설교는 설교자가 관심이 있어 하는 주제로만 한정되기 쉽다. 그 결과는 설교자와 교인모두 본문을 볼 때 말씀 속에서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내용만을 듣게 되는 것이다. 본문 중심적 설교를 할 때 3가지 말씀의 역할을 회복할 수가 있다.
1) 생명을 주는 말씀의 역할 회복
에스겔 37장의 위대한 환상 속에서 우리는 생명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6절의 내용을 읽어 보면 에스겔 골짜기 현장은 참혹했다. 하지만 7절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이 요구하신 말씀을 대언했을 때, 절망의 상황에서 기적의 상황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된다.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뼈, 저뼈가 들어 맞아,,”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말씀이 선포될 때 영혼들은 살아나고 생명을 태어나게 된다. 오늘 교회들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말씀이 빠진 다양한 방법이야 말로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유혹이다.
마르틴 루터는 종교 개혁자로서 이룬 업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글을 썼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 한일이 없습니다.,, 말씀이 이 모든 것을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가져 온다.
2) 거룩하게 하는 말씀의 역할 회복
요즘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필자는 이말에 전적 동의를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는 거룩해 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거룩은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대제사장 기도를 드리시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계신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우리는 구원 받기 위해서만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도 말씀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 말씀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계속 빚어 가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3) 진정한 설교자의 역할 회복
오스 기네스는 “마귀와 저녁 식사”라는 책에서 오늘날 설교의 “청중 중심적”성격을 개탄하는 글을 인용하고 있다. “설교자는 세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대인 여론을 주의 깊게 살피며 대중이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내려 애쓴다. 그리고는 다른 설교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여론을 재생산해서 완제품을 시장에 내 놓은 일에 전력을 다한다. 세상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우리의 교회문화를 살펴보는 대중은 교회에 세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모습만 발견할 뿐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교회와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것이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는 방법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위원회를 구성”하라고 말했는가? 그렇지 않다. “심방에 시간을 투자하라” 그랬는가? 그렇치 않다. “책을 읽어라” 그랬는가? 그렇치 않다. 오직 한 가지 일을 요구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딤후4:2) 생명의 말씀에 목회의 승부를 걸 때 목회자 스스로는 살아나게 되고 교회 역시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진실로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주차와 회중석과 인사와 프로그램과 유아실과 음악과 그 밖의 외부 시설이 아니다. 심지어 설교자도 아니고 설교된 내용, 즉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본문 중심적 설교로 통해서 우리 시드니 교회들이 더욱 건강한 교회로 일어나길 기도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4:4).
박성훈 목사
시드니 한인장로교회 청년부 담당 교역자
총신신학대학원(M.Div)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D.M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