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목사의 BOOK REVIEW
서평 :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 사상”
제임스 사이어의 책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 사상”은 요즘 시대에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좋은 책으로 필자는 평가하고 싶다. 그는 고대 사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현대 사상 그리고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기독교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시대를 분석한 위대한 작업을 하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는 그의 책의 모든 부분을 소화하고, 그중에 특히 깊은 인상을 주고 나의 목회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세계관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나의 긍정적 입장과 반대적 입장에서 다루길 원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목회적 적용을 할 예정이다.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는 본래 건축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 있다. 건축가들이 콘크리트, 유리, 강철로 된 비인격적이고 꾸밈이 없는 상자 모양의 건축물을 더 이상 짓지 않고, 과거로부터 여러 특색을 끌어오되 그 본래의 목적이나 기능과 상관없이 그렇게 하여 복잡한 모양과 형태를 꾸며내는 방향으로 전환된 데서 유래한다. 요컨대, 리요타르는 포스트모던을 “거대담론들에 대한 불신”으로 정의했다. 이 사상을 쉽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일차적인 문제”가 존재에서 인식을 거처 의미 구성으로 변천된 것이다.
2. 실제 자체에 관한 진리는 영원히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 뿐이다.
3. 이야기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제공한다.
4. 모든 이야기들은 권력 놀음을 위장한다. 어떤 이야기든 일단 거대담론이 되면 억압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5. 실체적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에 관해 묘사하는 그 언어에 의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존재다.
6. 한 사회가 선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사회적 선이 될 수 있다.
7.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놀라운 속도로 우리 사회와 교회를 침투해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여기까지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 정리는 끝내고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교회 공동체 속에서 필자가 경험한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영향
필자는 교회 공동체 속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현대의 세계관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은 특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1. 대표적인 예가 바로 찬양문화의 변화하고 생각한다. 찬양에는 수직적인 개념과 수평적인 개념이 있다. 수직적인 개념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경배하고 선포하는 개념의 찬양이고, 수직적인 개념이라는 것은 공동체 속에서 다른 형제, 자매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개념의 찬양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의 찬양을 가만히 지켜보면, “명상 식”의 찬양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필자가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필자의 강한 강조점이 들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묵상”과 “명상”은 다르다. 묵상의 출발은 말씀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필자는 염두 해 두는 것이고, 명상은 출발도 나이고, 종착점도 나이다. 즉 그 누구를 위한 찬양이 아니라, 나 스스로 감상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식의 찬양의 형태가 있음을 보게 된다. 이같은 행위는 결과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와 같은 분위기의 교회탄생을 유도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머지 교회의 모든 부분을 필자는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나친 개인적인 예배, 개인적인 찬양, 그리고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해석하는 성경의 왜곡을 필자가 지적하는 것이다.
2. 또 한 가지 교회의 현장에서 필자가 발견한 것은 바로 “QT” 해석이 성경적이지 않은 적용이다. QT 즉 아침과 저녁 또는 본인이 성경을 읽고 묵상한 후에 그 말씀을 본인의 삶에 적용하는 기독교의 좋은 습관이 있다. 이것의 좋은 점은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적용하고 말씀을 해석하는 면에서 건전한 성경 신학과 올바른 문맥적 해석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용하고 이해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도전을 받게 되면 그것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인정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필자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에서 평신도 집사님이 한 달에 한 번씩 새벽 설교를 할 때가 있다. 한번 누가복음의 말씀을 설교하는데, 필자가 듣기에는 이것은 완전히 “알레고리적 해석”이였다. 현장에 있었던 저는 견디기 힘든 시간 이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성도들은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개인의 가치와 본인의 체험이 강조되지만, 절대적인 원리와 분명한 기준의 경시 풍조는 교회공동체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3. 마지막으로 “신선하고, 신비로움을 추구하려는 교회현장의 경향”을 지적하고 싶다.
요즘 “내적 치유”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많이 들린다. 필자가 볼 때 이 같은 분위기는 현대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심리학을 연구해보면 그곳에는 크게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1) 본질적으로 인간 중심적이다 – 자신의 상처 치유, 자존감의 회복이 핵심, 자기 사랑.
2) 인간 본성의 선함 혹은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인간은 죄인이 아니라 약한 것이기 때문에 회개가 필요 없음.
본질적 인간을 바라보는 인간론에 있어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같은 이론에 의해서 자기 사랑, 긍정적인 사고 상식, 성공적인 자아상 등의 모습이 나타난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심리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결합이 교회 현장에서 “내적 치유”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된다. 과거의 재해석과 쓴 뿌리의 치유는 그리스도인들에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인간론 안에서 재해석 되고, 성경적 가치관 안에서 치유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신비적이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경향으로 흘려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포스트모더니즘 대하는 바른 자세와 대안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 시대의 정신과 문화를 잘 대변하고 사람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즉 종교의 절대성을 거부하고, 절대 유일의 진리를 부인하며, 또 초월적이고 영원한 범부와 보편적인 가치와 전통, 역사와 인생의 의미마저도 부인하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상대주의와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개방성을 말하며, 지성보다는 감정적, 욕망적, 의지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는 시대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시대에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 취해야 할 자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1, “성부, 성자, 성령”님의 사역에 균형 잡힌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수세기 동안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사역에 집중하지 않았는가 필자는 여겨진다. 그러면서 조금 약하게 접근한 것이 바로 “성령님의 사역”에 관한 접근이다. 신학의 부분에서도 “성령론”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는 자체가 바로 많은 연구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 시대와 가장 맞은 사역이 있다면 바로 “성령님의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임재와 성령님의 회복 등등을 균형있는 자세로 접근하여 교회가 가르친다면 오늘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은 오히려 아주 좋은 복음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필자는 여겨진다.
2. 진정한 가족 공동체의 회복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 바로 상대성이고 개별성이다. 인간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속에는 반드시 공동체성과 연합성이 존재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 내면속에 있는 공동체성과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다. 이 세계관은 일시적으로는 자유를 주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지만 결국에는 외로움, 소외감, 정체성의 혼란 등을 야기 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자살률을 보라. 놀랍지 않는가. 경제적인 형편과 풍요로움이 더 좋은데, 왜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가. 이유는 하나다. 외롭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세계관의 약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성경적인 공동체”의 회복이다. 초대 교회는 가족 공동체였고, 운명 공동체였다. 그들은 진전한 하나였다. 오늘 우리는 시대적 세계관에 눌려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더욱더 강하게 공동체의 연합을 강조하고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3. 신앙 교육이 현상에 집중하기 보다는 원리에 집중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히 한 사람의 생각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행동과 생활의 양식까지 바뀌게 한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당시 사회의 시대적 흐름을 만드는 것이 된다. 이런 현장에서 교회들은 열매와 현상보다는 “원리”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말하는 원리는 “성경 해석”과 “성경적 신학”이다. 이것은 칼의 양 날과 같다. 세계관을 어떤 학자가 “색 안경”으로 비유한 것을 읽어 보았다. 이것은 옳은 말이다. 어떤 안경으로 세상을 보느냐는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세계관이다.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적 성경해석과 신학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현장은 이와 같이 않다. 성공주의와 상황주의에 물들어 가면서 원리와 기준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것은 위험한 것이다.
로마가 왜 망하게 되었는가? 외부의 침입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붕괴였다. 그들 스스로의 가치와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조금씩 무너져 내려갔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살아가는 현대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입장과 자세하고 필자는 생각한다.
박성훈 목사
총신신학대학원(M.Div)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D.M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