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경 선교사의 선교기고
다문화사회속의 한국과 교회의 선교적 사명(5)
한국내 이주민 의료선교사로서 필자의 현장 경험들과, “하나님 나라 확장”에 대한 꿈과 비전을, “다문화사회 속의 한국과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10회에 걸쳐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_편집자 주.
01. 다문화사회로 급변하고 있는 한국
02. 인구로 본 한국내 이주민의 현황과 추이
03. 한국내 이주민의 노동현장과 삶의 실태
04. 점증하는 한국내 이주민의 비중과 그 가치
05. ‘선교’란 무엇인가? – 그 새로운 개념의 조명
06. ‘선교’의 올바른 이해 – ‘선교’와 ‘봉사’의 구별
07. 한국내 이주민 선교의 현실
08. 선교적 관점에서 본 한국내 이주민 선교의 효율
09. 한국내 이주민 선교의 활성화 과제 (1)
10. 한국내 이주민 선교의 활성화 과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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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현재, 세계 인구 73억4천9백만명 중 아직 복음을 영접하지 않은 이들이 약 50억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지난 1월27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세계 172개국에 2만7205명(개 교회와 노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는 제외함)의 한국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선교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왜 한국 교회는 이토록 선교에 열심을 내고 있는가? 교회 존재의 본질은 바로 선교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선교하지 않는 교회란 그 존재의 가치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5. ‘선교’란 무엇인가? – 그 새로운 개념의 조명
아직 복음을 모르고,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50억의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안으로 인도하는 일을 선교라고 말하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겠으나, 정작 ‘선교’란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가에는 상당히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초대교회의 선교활동을 예로 들어, 당시 사도직과 집사직으로 구성된 섬김의 선교적 구조를 갖추고 있었음을 지적하며, 말씀봉사와 식탁봉사가 성례전적 의미로 표현되는 곳이 교회며, 이 교회의 모든 활동이 곧 선교였다고 본다. 교회가 행하는 모든 선행을 통해서 동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줌으로 교회 성장이 이뤄졌다며, 봉사와 희생과 섬김 그것 자체가 선교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은 섬김과 희생 봉사도 중요하나, 그 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죄로 부터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론의 선포” – 죄에 대한 분명한 선포와 함께,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강조라고 말한다. “복음전도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 동반자 관계”를 이상적 선교 개념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다. 다른 일부는 본질적으로 선교란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깨닫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도 정의한다.
왜 이와같이 선교의 정의를 달리하는가? 이는 세계교회협의회(WCC)측 에큐메니칼 진영과 세계복음주의연맹(WEA)측 복음주의 진영이, 각각 상이한 선교신학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5.1 선교의 성경적 근거와 기초
신·구약 성경은 온통 “선교사역”으로 가득한 책이다. 구체적으로 그 근거를 성경에서 살펴보자. 선교를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면, 선교는 창조 때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의 창조 의미를 “하나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라”고 했다(사 43:21). 인간 창조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창조의 드라마 가운데 인간들이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날 것을 이미 알고 계셔서, 처음부터 인간들이 다시 한 번 선택의 기회를 통해 돌아올 길을 계획 하신 것이다. 인간들은 두 번째 선택인 구속의 길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창조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상태에 이르게 될 때, 비로소 창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속을 창조와 같은 의미 또는 창조의 일부분으로 보는 개념이 신학에 등장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성경을 본다면, 선교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시작된 것이고, 성경 전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활동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선교적 하나님이시고, 인간에 대한 모든 역사는 선교적 사건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보편성을 보여주시는 것과 하나님의 선교적 목적을 직·간접적으로 계시하는 것으로 선교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구약의 선교를 요약하면, 하나님께서는 신약의 선교활동과는 방법이 달랐지만 여전이 선교의 하나님으로 구약시대에도 활동하셨다는 것이다.
하나의 민족인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이들에게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주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율법을 주셔서, 이들의 율법을 준수하는 삶과 신앙을 통해, 주변의 이방들이 와서 보고 하나님을 발견토록 하는 구심적인 선교방법이었다. 또한 이스라엘이 포로된 이후, 디아스포라를 통해 각 지역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신약시대가 열리고, 복음서들은 선교에서 전해야 할 핵심내용을 보여 주고, 사도행전을 선교역사의 모델로 제시하며, 대부분 초기선교사들이 선교활동 중에 서신서들을 기록했다. 성육신 자체가 예수님의 선교사 신분과 사역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인간과 같은 모양으로,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친히 선교사로 오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자신이 예언되어진 선교사역을 수행할 자로 오신 것을, 분명히 제시하시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 즉 현대용어로 ‘선교사’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지상위임을 하시는 분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이후, 제자들과의 짧은 재회 기간 동안 하신 말씀들의 공통점은, 모든 족속을 복음화하라는 선교명령 – 지상위임명령 – 이었다.
이는 구약으로부터 제시된 하나님의 선교적 의도가 다시 재언급된 것이다. 구약에서 구심적 방법으로 ‘와서 보라’였다면, 신약은 ‘가서 전하라’는 원심적인 것이다. 선교의 근거는, 인종과 언어와 지역에 상관없이 모두가 죄인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해결 방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 없는 분이시며, 그를 통해서만 사람들은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교리적으로 선교의 근거는 ‘부활’이며, 선교의 내용은 ‘구속’이다. 그리고 선교의 수행은 ‘명령’이며, 선교의 목적은 ‘종말’이다. 이와 같이 선교는 성서적, 교리적 기초를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5.2 선교란 무엇인가 – 그 고전적 정의
1961년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가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에 합병되기 이전까지는,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이 표면적으로나마 보편적으로 공유했던 선교에 대한 견해는, 선교(mission)란 곧 복음전파(evangelism)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복음전파라는 의미는, 주로 ‘구두적인 복음선포’였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만을 ‘선교’로 간주했다. 특히 복음주의 진영에선 미션스쿨의 교사나 선교병원의 의사와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 선교복지기관의 사역들은 선교활동으로 간주하지 않기까지 했다. 개인의 영혼구원없는 사회변혁이란 기대할 수 없다는 견해에 기초한, 매우 고전적인 정의였다. 적지 않은 한국교회들의 선교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5.3 변화하고 있는 선교 –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
그러나, 이러한 고전적인 정의는 왕성한 에큐메니칼 진영의 활동으로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함께 사는 세상과 인간’ – ‘조화와 일치’를 지칭하는 헬라어 ‘oikoumene’에서 유래된, 전세계의 교회가 하나되자는 ecumenical 교회일치운동은 선교의 개념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저명한 선교학자인 데이빗 보쉬는 “변화하고 있는 선교(Transforming mission)”라는 그의 저서에서, 선교의 근본적인 변화들을 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 shifts)라는 개념으로 말하며, “교회들이 선교사역을 할 때에 바로 알아야할 것은 ‘하나님의 선교(the Mission of God)’라는 개념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선교는 단수형의 “Mission”이다. 이 “선교(Mission)”는 라틴어 신학 원어로는 “Missio Dei”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the ‘Mission of the God’ – ‘하나님의 선교’ 또는 the ‘sending of God’ – ‘하나님의 보내심’을 의미한다(Missio Dei is a Latin Christian theological term that can be translated as the ‘Mission of the God’, or the ‘sending of God’).
선교는 교회차원의 사역이 아닌, 하나님–그분 자체의 속성으로 이해해야 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세상으로 보내지는/나아가는 운동(the sending of God)으로써, 교회는 다만 그 선교를 위한 도구로 쓰여지는 것이지, 교회가 구원의 사명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교하기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지, 교회 그 자체가 선교하는 것이 아니란 의미이다. 대단히 놀라운 변화이다.
따라서 선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구원의 사랑을 그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써,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missiones ecclesiae), 하나님이시다(Missio Dei). 선교란 세상의 구원받아 야할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운동이라는 뜻이다.
Mission Alive를 창립해 “교회개척과 갱신”사역을 하고 있는 가일린 반리넨(Gailyn Van Rheenen)은 이러한 개념을, 다른 말로 표현해서 단수형의 선교(Mission)란 죄에 빠진 인류를 하나님 자신과 화해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역’이다(the work of God in reconciling sinful humankind to himself)라 하고, 복수형의 ‘선교들(missions)’이란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기 위해,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인 행동’(the plans of committed believers to accomplish the mission of God)이라고 했다(mission에 대한 Dr Gailyn Van Rheenen 의 정의, 1996년). 다시 말해, 복수형의 missions는 세분된 것들로, 하나님의 선교(Mission)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형태와 목적의 “교회 주체의 선교적인 활동들”(missio ecclesiae)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the mission of the God)를 위한 도구로서의 선교들(missions) – 예컨데 이·미용, 교육, 어린이, 직업교육, 보건위생, 스포츠, 시설 및 건축, 문화사역, 교회개척 사역들 중 한가지로 간주하는 것이다. 여러 다른 사역들이 동일한 목적(=하나님의 선교)을 위해 함께 섬기게 됨으로 팀사역(team ministry)이란 표현을 쓰게 되는 것이고, 평신도 선교사들이 요긴하게 쓰임받게 되는 것이다.
선교란 함께 이웃해 동고동락하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손수 씻어 주셨던 것처럼, 몸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가운데 예수님 사랑이 전달됨으로 ‘예수마을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선교적인 교회가 절실히 요구되어 지는 때이다.<다음호에 계속>
백문경 선교사
*은퇴장로, 예장 대신총회파송 평신도전문인선교사(치과의사), 예장합동GMS, 예장 대신선교 대학원, 호주 원주민사역(2009~2014), 한국내 이주민노동자사역(2015~2016), 현재 안식중 다음 사역 준비중/원고내용 문의 또는 평신도 전문인선교사 상담: dr_mk_paik@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