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2년 7월 12일, 부왕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 (思悼世子; 장헌세자, 莊獻世子) / 장조 (莊祖, 1735 ~ 1762) 별세
장조 (莊祖, 1735년 2월 13일 / 음력 1월 21일 ~ 1762년 7월 12일 / 음력 윤 5월 21일)는 조선의 왕세자이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이다.
영조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영빈 이씨이다.
그는 1762년 7월 12일, 부왕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별세한다.
정조의 아버지이며 사도세자 (思悼世子) 또는 장헌세자 (莊獻世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사도세자 (思悼世子) / 장조 (莊祖)
.출생: 1735년 1월 21일 / 음력 1월 21일, 조선 한성부 창경궁 집복헌
.사망: 1762년 5월 21일 / 음력 윤 5월 21일 (27세), 조선 한성부 창경궁 문정전
.부모: 부) 영조, 모) 영빈 이씨
.배우자: 헌경왕후 홍씨
.자녀: 5남 3녀 – 의소세자, 정조, 은언군, 은신군, 은전군, 청연공주, 청선공주, 청근옹주
* 조선의 추존 국왕 /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 / 조선의 왕세자
.재위: 1736년 3월 15일 ~ 1762년 윤5월 13일 (음력)
.전임: 효장세자 / 후임: 문효세자
.휘: 이선(李愃)
.이칭: 사도세자(思悼世子), 장헌세자(莊獻世子)
.묘호: 장종 (莊宗) → 장조 (莊祖, 1899년)
.시호: 사도수덕돈경홍인경지장윤융범기명창휴찬원헌성계상현희신문환무장헌광효의황제 (思悼綏德敦慶弘仁景祉章倫隆范基命彰休贊元憲誠啓祥顯熙神文桓武莊獻廣孝懿皇帝)
.능호: 융릉(隆陵),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산 1-15
조선의 왕세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이다.
성은 이 (李), 이름은 선 (愃), 본관은 전주 (全州), 자는 윤관 (允寬). 호는 의재 (毅齋)이다.
영조의 차남으로 어머니는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이다.
정실 아내는 혜경궁 홍씨(헌경의황후)이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정조를 낳았다. 아버지와 오랜 갈등 끝에 만 27세의 젊은 나이로 7월의 한여름에 쌀 담는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별세한 임오화변으로 유명하다.
영조는 늦은 나이 (42살)에 얻은 아들인 사도세자한테 기대가 지나쳐서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질책과 정신적 학대를 가했다.
사도세자는 기행과 비행을 일삼다가 결국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았다.

○ 생애 및 활동
후에 ‘장조(莊祖)’로 추존되는 사도세자는 1735년 (영조 11년) 음력 1월 21일,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영조는 장남 효장세자를 7년 전에 안타깝게 잃고 다른 아들을 두지 못한 상태였고, 42세의 고령에 사도세자를 낳았다. 또한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도 당시 40세였다.
이 때문에 영조는 어렵게 얻은 늦둥이 왕자의 탄생을 당연히 매우 기뻐했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태어난 즉시 정실 정성왕후 서씨의 양자 (법적아들)로 공식 입적한 후 ‘원자 (元子)’로 정했고, 이듬해인 영조 12년 (1736)에는 생후 1년만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사도세자는 젖먹이인 어린 나이에도 유달리 매우 총명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태어난 지 4달 만에 스스로 기었고, 6달 만에 영조의 부름에 어느 정도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또한 7달 만에 동서남북을 분간했고, 2살에 천자문을 배워 60자를 써내었다.
3살에 다식을 받자 수(壽) 자, 복(福) 자가 박힌 과자는 먹고 팔괘(八卦)를 박은 것은 먹지 않았다. 이에 궁녀들이 “잡수소서”라고 권하자 “팔괘는 우주의 근본이니 아니 잡숫겠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팔괘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복희를 그린 책을 보고 “높이 들라.”라고 하고 절을 올렸다고 한다.
밥을 먹던 중에 아버지 영조가 말을 걸자, 입에 있는 밥을 전부 뱉고 답한 적도 있다고 한다. 왜 음식을 뱉었는지 영조가 묻자 어린 세자는 “소학 (小學)에서 ‘부모가 부르실 때는 입에 있는 걸 뱉고 말하는 게 효 (孝)’라고 배웠습니다”라고 답했다.
또 같은 해에 천자문을 배우던 중에 사치 치 (侈) 자와 가멸 부 (富) 자에 이르자 ‘치’자를 집고 다시 자신이 입은 옷을 가리키며 “이것이 사치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영조가 어릴 때 쓰던 감투 중에 칠보로 장식된 것을 씌우자 “사치!”라고 거부했다. 그리고 돌 때 입은 옷을 입히려 하자 역시 “사치하여 남 부끄러워 싫다.”고 거부했다. 이에 세자를 모시던 나인들이 과연 세자가 알고 말하는가 모르고 말하는가 궁금하여 비단과 무명을 놓고 “어느 것이 사치고 어느 것이 사치가 아니나이까?”라고 묻자 세자는 비단을 집어들고 “이것은 사치라.”라고 하더니 무명을 집고는 “무명은 사치 아니라.”라고 하였다. 그러자 나인들이 “어느 것으로 옷을 지어 입으시면 좋으리이까?”라고 묻자 무명을 가리키며 “이것을 입어야 좋으리라.”라고 답하였다. 이것은 한중록에 나온 이야기지만, 영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부왕 영조의 기대가 너무 컸던 나머지 엄격하게만 키우다 보니, 세자는 이미 9살 때부터 부왕(영조)을 만나기를 두려워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영조가 세자를 늦게 본 것도 조급증에 한몫 했을 것이다.
1743년 9월경부터 세자는 “눈에 어지럼증(눈병)이 생겼다”고 스승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1749년 어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하였으나 부왕 영조는 늘 세자의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대리청정을 반납하자 양위파동을 일으킨다.

실록에 따르면 영조가 양위 파동을 벌이자 김상로가 “눈보라가 치는 혹독한 추위에 필시 (세자의) 몸에 손상이 올 것인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신들은 비록 돌보아줄 것조차도 없지만 원량은 생각지 않으신단 말입니까?”라며 영조에게 항의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가운데 세자는 정신적 분열로 살해하는 일까지 일었고 노론, 부왕과의 마찰과 정치적 갈등이 더한다.
결국 1762년 (영조 38년) 7월 4일 어명으로 뒤주에 갇히게 되었고 7월 12일 아사하였다.
사후 지위만 복권되었고, 양주 배봉산에 안장되었다가 다시 아들 정조에 의해 수원 화성 근처 현륭원 (융릉)에 안장되었다.
정조 즉위 후 장헌의 존호를 받았다.
정조는 재위 중 그를 왕으로 추존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노론계열의 반발로 무산되고 만다.
한편 부인 헌경왕후는 후일 저서 《한중록》에서 그가 의대증과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진술했고, 실록에도 그의 병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우울증이나 화병 같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시호와 존호는 사도수덕돈경홍인경지장윤융범기명창휴찬원헌성계상현희신문환무장헌광효의황제 (思悼綏德敦慶弘仁景祉章倫隆范基命彰休贊元憲誠啓祥顯熙神文桓武莊獻廣孝懿皇帝) 였다가 후에 고종 때 국왕으로 추존되면서 장종 (莊宗)의 묘호를 더하여 장종신문환무장헌광효대왕 (莊宗神文桓武莊獻廣孝大王)이라고 하였다.
대한제국 때 황제로 격상되어 장조의황제 (莊祖懿皇帝)로 추존되었다.
– 기타
아들 정조는 부왕 영조의 명에 따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그는 영조의 유지에 따라 효장세자를 왕으로 추존하고 청나라에 상주하여 시호까지 받았으나 못내 못마땅해 했다 한다.
그는 사후 아버지 사도세자의 곁에 묻히기를 소원하였는데, 1800년 정조 사후 그의 묘소 아래에 매장되었다가, 현재의 건릉의 위치로 옮겨졌다.
화완옹주를 근친상간한 것은 사도세자를 모함하기 위해서 화완옹주 자신이 거짓으로 지어내어 영조에게 고했다는 논란이 존재한다.

○ 가족관계
증조할아버지 : 현종 이연
증조할머니 : 명성왕후 김씨
할아버지 : 숙종 이순
할머니 : 숙빈 최씨
아버지 : 영조 이금
어머니 : 영빈 이씨
– 아내 : 헌경의황후 홍씨
장남 : 의소태자 이정 (1750년 ~ 1752년) – 요절
차남 : 제22대 정조선황제 이산 (1752년 ~ 1800년)
장녀 : 청연공주 (1754년 ~ 1821년) – 광은위 김기성에게 하가
차녀 : 청선공주 (1756년 ~ 1802년) – 흥은위 정재화에게 하가
후궁 : 숙빈 임씨
3남 : 은언군 이인
4남 : 은신군 이진
– 후궁 : 경빈 박씨
3녀 : 청근옹주 – 당은위 홍익돈에게 하가
5남 : 은전군 이찬
– 후궁 : 수칙 이씨(守則李氏) – 정조 때 30년 수절 사실이 알려져 정렬 (貞烈)의 칭호를 받았다.
– 후궁 : 가선 (假仙), 사도세자가 평안도에 갔다가 데려온 여자로, 본래 여승이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후, 가선은 사도세자를 모시던 내시 박필수 (朴弼秀) 및 기녀 5명과 함께 처형되었다.
○ 저서
능허관만고 (凌虛關漫稿)
어제장헌대왕지문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