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스섬의 테오도로스 (Theodorus, 그: Θεόδωρος, BC 6세기경)
테오도로스 (Theodorus, 그: Θεόδωρος)는 사람 이름이며, “신(神, theos)의 선물(dōron)”이라는 뜻이다.

사모스의 테오도로스 (BC 6세기경)는 사모스섬에 위치한 헤라의 대신전인 헤라이온은 그리스 신전이 최초로 주주식 (周柱式) 기둥들로 둘러싸인 기원전 8세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기원전 7세기에 이를 계승한 헤라 신전은 전면을 가로지르는 두 열의 기둥이 있는 첫 번째 신전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들은 둘 다 가장 초기의 이오니아식이다. 그러나 기원전 570년 무렵, 로이쿠스 (Rhoecus)와 테오도루스 (Theodorus)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45m×80m나 되는 거대한 신전에 의해 뒷전으로 물러났다. 그 건축물은 적어도 100개의 기둥에 의해 지지되었다. 이 기둥은 테오도로스가 설계한 형판 (型板) 위에서 성형된 기부 (基部, base)로 만들어졌다. 30년 후 이 신전은 페르시아 인의 침략으로 파괴되었고 이보다 더 방대한 규모의 대체 건물이 계획되었지만, 완성되지는 않았다.
헤라 신전 주위에는 제단들, 더 작은 신전들, 주랑들, 조각상의 기부들이 있는데, 모두 5세기의 기독교 바실리카의 잔해와 함께 보호구역 안에 있다. 헤라 신전은 고대 그리스 건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유적이다. 이 신전에 이어 발전한 건축 양식과 구조상의 혁신은 그리스 세계를 통틀어 신전과 공공건물의 설계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에우팔리네이오의 기술적 승리도 이와 비슷하게 공학과 공공 공사의 모델이 되었다.
○ 유네스코의 ‘사모스 섬의 피타고레이온과 헤라 신전‘ 소개
소아시아 근처 에게 해의 작은 섬 사모스는 기원전 제3천년기 (3rd millennium BC, 기원전 3000~기원전 2001)부터 많은 문명들이 거쳐 간 곳이다. 고대 항구 도시 피타고레이온 (Pythagoreion)에는 고대 그리스 · 로마의 유적지, 장관을 이루는 수로-터널, 헤라 신전인 헤라이온 (Heraion)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 상세정보

.국가 : 그리스(Greece)
.위치 : 북에게 해 지역(Region of the North Aegean) 사모스 현(Prefecture of Samos)
.좌표 : N37 41 26.988 E26 56 35.988
.등재연도 : 1992년
.영문명: Pythagoreion and Heraion of Samos
.유산면적: 668㏊
.완충지역: 402㏊
.참고번호: 595
소아시아 근처 에게 해의 작은 섬 사모스는 기원전 제3천년기(3rd millennium BC, 기원전 3000~기원전 2001)부터 많은 문명들이 거쳐 간 곳이다. 고대 항구 도시 피타고레이온(Pythagoreion)에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유적지, 장관을 이루는 수로-터널, 헤라 신전인 헤라이온(Heraion)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 등재기준
기준 (ⅰ) : 사모스의 헤라 신전은 고대 그리스 건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유적이다. 이 신전에 이어 발전한 건축 양식과 구조상의 혁신은 그리스 세계를 통틀어 신전과 공공건물의 설계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에우팔리네이오의 기술적 승리도 이와 비슷하게 공학과 공공 공사를 위한 모델로 작용했다.
기준 (ⅲ) : 사모스는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 세계를 선도하는 해상 무역 강국이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고고학 유적의 범위와 풍부함에 나타나 있으며, 이들 유적은 이후의 개발에 의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사모스는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 세계를 선도하는 해상 무역 강국이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은 고고학 유적의 범위가 상당할 뿐 아니라 그 내용 또한 풍부하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유적은 개발로 인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유적은 섬의 북동쪽 해안 지역에 있으며, 이를 둘러싼 산이 유산의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다. 유적은 고대 도시 피타고레이온과 고대 그리스의 헤라 신전인 헤라이온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파른 배후의 산들에 의해 보호되는 천혜의 항구 주위에 자리 잡은 피타고레이온은 그리스 식민지 시기의 고대 유적지이다. 이곳은 또한 소아시아 본토와 매우 가깝다는 이점을 안고 있다.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유적은 기원전 제4천년기 또는 기원전 제3천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그리스 이전의 것이다. 하지만 주요한 정착촌은 크레타의 미노스 인들이 이곳을 식민지로 삼은 기원전 16세기에 시작되었으며, 나중에 미케네 인들로 이곳에 살게 되었다.
고대 사모스 인의 조상들은 기원전 11세기에 트로이 전쟁 후에 에피다우로스(Epidauros region) 지역에서 들어왔다. 기원전 6세기 무렵 사모스는 소아시아와 그리스 본토를 연결하는 근접 무역으로 동지중해의 주요 해상 강국이 되었다. 이오니아의 해안, 트라키아, 심지어 서지중해까지 무역 식민지를 세울 만큼 그 힘이 막강했다.
사모스의 정치적 영향력은 기원전 6세기 말엽 페르시아에 의해 섬이 정복된 후 약해졌지만 그리스와 로마 시대 내내 여전히 중요한 상업 도시였다. 사모스는 3세기에 게르만족에게 파괴된 이후 한 번도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 후 몇 세기 동안 번갈아 가며 비잔틴, 터키, 베네치아 등의 통치를 받았으며 1910년에 와서야 그리스와 통합되었다. 도시를 둘러싼 방어 시설은 헬레니즘 양식의 증축 부분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 기원이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기간에 걸친 고고학적 발굴로 고대 도시의 도로 지도(street plan)와 함께 수로가 다량 발견되고 하수 시스템, 공공건물, 성지와 사원들, 아고라(agora), 로마식 공중목욕탕, 로마와 헬레니즘 양식으로 건설한 경기장과 도시의 집들이 드러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에우팔리네이오 (Eupalineio)’인데, 도시로 물을 가져오기 위해 산비탈을 파서 1,040m 길이의 수로 터널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기원전 6세기에 메가라 (Megara)의 에우팔리노스 (Eupalinos)가 만든 작품이다. 한 권위자는 에우팔리네이오를 이렇게 묘사했다. “고대 측량의 기적으로서, 광부들은 양쪽 끝에서 수평으로 곧게 나아가기 시작하다가 거의 오류 없이 중간에서 만났다.”
헤라의 대신전인 헤라이온은 그리스 신전이 최초로 주주식(周柱式) 기둥들로 둘러싸인 기원전 8세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기원전 7세기에 이를 계승한 헤라 신전은 전면을 가로지르는 두 열의 기둥이 있는 첫 번째 신전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들은 둘 다 가장 초기의 이오니아식이다. 그러나 기원전 570년 무렵, 로이쿠스 (Rhoecus)와 테오도루스 (Theodorus)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45m×80m나 되는 거대한 신전에 의해 뒷전으로 물러났다. 그 건축물은 적어도 100개의 기둥에 의해 지지되었다. 이 기둥은 테오도로스가 설계한 형판(型板) 위에서 성형된 기부(基部, base)로 만들어졌다. 30년 후 이 신전은 페르시아 인의 침략으로 파괴되었고 이보다 더 방대한 규모의 대체 건물이 계획되었지만, 완성되지는 않았다.
헤라 신전 주위에는 제단들, 더 작은 신전들, 주랑들, 조각상의 기부들이 있는데, 모두 5세기의 기독교 바실리카의 잔해와 함께 보호구역 안에 있다. 헤라 신전은 고대 그리스 건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유적이다. 이 신전에 이어 발전한 건축 양식과 구조상의 혁신은 그리스 세계를 통틀어 신전과 공공건물의 설계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에우팔리네이오의 기술적 승리도 이와 비슷하게 공학과 공공 공사의 모델이 되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