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단상
밧모섬(Patmos, 파트모스)
밧모섬(Patmos, 파트모스)은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요한이 로마의 도미기아누스 박해 시대에 유배를 가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장소로 알려진 섬이다(계 1:9). 밧모섬(Patmos)을 향하는 배안에 들어서면서 대만 구리스도인을 만나 찬양으로 함께 영광을 돌리며, 은혜를 나누며, 함께하는 시간을 갖으며, 그리스도 안에 교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요한의 유배 당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셍각 해 볼 수 있는 섬이 멀리 눈 안으로 들어오면서 마음은 벌써 요한이 갇혀있었던 외롭기도 했지만, 하나님과 독대하며 은혜 가득한 그 현장으로 간다는 설레임으로 찬양이 절로 나왔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 요한계시록 1:9~16 –
밧모섬(Patmos)은 사모스 섬으로부터 남서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이며, 모든 건물이 흰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성결, 순결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듯하다. 로마 제국 시대에 밧모섬(Patmos)은 종교, 정치범들을 주로 귀향 보냈던 유배지였다. 해안선의 길이는 63km 정도이며, 인구는 약 2,500명 정도다. 특히 요한계시록 저자인 요한은 도미니아누스 황제 때 이 섬으로 유배와서 약 18개월 동안 머물다가 네르바 황제때에 풀려나서 에베소로 가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밧모섬(Patmos)의 중심지인 호라 마을에 성요한 수도원이 있고, 계시록을 썼다는 요한의 동굴, 1713년경에 세워진 정교회 신학교가 있다. 또한 이곳에 요한이 최초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세례터가 있다. 밧모섬(Patmos)의 동굴(계시의 현장으로 추정되는 동굴의 길이는 6.5m, 폭이 5.5m 정도)에서 요한은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지내던 어느 주일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그리스 정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요한의 계시 내용을 브르고로가 대필하였다고 하지만 증명된 바 없다. 이 동굴 안에는 요한이 기도할 때 머리를 두었던 곳과 일어날 때 손을 짚었던 자리가 표시되어 순례자들이 이 자리에 입으로 맞추고 손으로 만지어 광택이 나고 있다. 동굴 입구에는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하 하더라.’ 라는 요한계시록 14:7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전승에 의하면 유배되어 호송되던 배에 로마의 관원인 미로노스 부자(父子)도 함께 있었는데, 큰 광풍이 일게 되어 미로노스의 아들이 바다에 빠져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나, 사도 요한의 절실한 기도로 잠잠해진 풍랑 뒤에 아들을 무사히 찾게 된다. 이 사건으로 사도 요한은 죄인으로서가 아닌 은인 대접을 받게 되고 미로노스는 섬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이 된다.
요한 수도원은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성으로 포위된 섬을 압도할 듯 버티고 있다. 이 수도원은 1088년 수도자 크리스둘툴러스(St. Christodoulos)가 사도 요한을 기념하여 세웠고, 이 지역에 자주 출몰하는 해적들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요새화된 것이었다. 원래 이 장소는 희랍(그리스) 여신 아르데미스(Artemis, 아데미) 신전이 있었단 곳이라고 전한다. 이 수도원에는 값진 보물과 희귀한 성경이 많은데, 특별히 500년대에 기록한 마가복음은 매절첫 글자를 순금으로 썼고, 나머지는 은으로 썼다. 그리고 해상무역으로 큰돈을 번 상인들은 안전한 항해를 기원며 많은 보물을 기증하여 엄청난 보물이 있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 계시록의 책을 펼쳐 들고 있는 요한의 초상화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성화이다.
밧모섬(Patmos)에 기독교가 정착하게 된 것은 바로 요한 수도원이 세워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다른 많은 수도원과 교회들이 속속 세워졌고, 수도사들의 학문 연구를 위해서 도서관도 세워졌다. 1453년 이후에는 터키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로마 교황청의 지원을 받기도 했으나, 16세기에는 그리스에 양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이곳에는 여름철에는 뜨거운 태양 빛과 물이 귀한 기후조건 때문에 약간의 곡식과 채소와 포도나무가 재배될 뿐이다.
요한 수도원을 내려와 남쪽 길로 택해 항구로 내려오면 엘리야 기념교회가 산 중턱에 있고 그 오른쪽에 있는 요한 신학교가있다. 요한 신학교는 1713년에 창건되었고, 희랍 정교회 신학교 중 뛰어난 사재들을 양성한 우수한 신학교였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황제에 의해 극심한 박해 속에서 시달리던 어두운 시기에 사도 요한은 이곳 밧모섬(Patmos)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계시를 보고 기록에 남겨, 오늘날 요한 계시록을 통해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주는 메시지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