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독트린의 역사 : 독트린으로 본 미국 외교사
김봉중 /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 2017.10.30
『독트린의 역사』는 독트린을 중심으로 미국 외교사를 추적한다.
‘선언 (declaration)’이나 ‘원칙 (principle)’ 등의 용어를 사용해서 정책의 중요성을 스스로 새기거나 대외적으로 공포하는 통례를 깨고, 미국은 무겁고 상징적이며 심지어 제의 (祭儀)적인 뉘앙스를 갖는 ‘독트린 (doctrine)’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초기 미국 외교 원칙의 시금석이었던 ‘먼로 독트린’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외교 원칙의 새로운 원형을 제시한 ‘트루먼 독트린’이 대표적인 예이다.
『독트린의 역사』는 그 동안 국내외 학계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먼로 독트린’부터 ‘부시 독트린’까지를 연결해서, 독트린의 기원, 변용, 변화 등을 추적함으로써 미국 외교 정책의 특징과 성격을 추출한다.
또한, 외교는 상당부분 국내 상황의 거울이자 반향이기에, 『독트린의 역사』는 단순히 미국 외교사를 넘어서 미국 문명사 전체를 조감하며, 나아가 ‘제국’으로서 미국의 정체성을 깊이 추적한다.

– 목차
프롤로그 / 3
제1장 먼로 독트린의 시대: 배경 / 13
제2장 먼로 독트린의 시대: 독트린의 정착, 1823-1860 / 45
제3장 먼로 독트린의 시대: 독트린의 적용과 변용, 1861-1904 / 79
제4장 냉전의 기원과 트루먼 독트린 / 111
제5장 전후 중동정책과 아이젠하워 독트린 / 145
제6장 베트남 전쟁과 닉슨 독트린 / 177
제7장 미국의 제3세계 전략과 레이건 독트린 / 209
제8장 탈냉전과 클린턴 독트린 / 241
제9장 9/11 테러와 부시 독트린 / 276
에필로그 / 306
– 저자소개 : 김봉중
저자 김봉중은 전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일리노이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톨레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샌디에이고시립대학 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
미국사 전공자로 미국의 베트남 개입부터 탈냉전 이후까지 미국 외교의 흐름에 주목하고 있으며, 미국의 대외관계를 통해 미국의 정체성을 깊숙이 추적하면서 일반인들이 미국에 대한 올바른 식견을 가질 수 있도록 그간의 연구 결과를 대중화하는 일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이만큼 가까운 미국≫, ≪오늘의 미국을 만든 미국사≫, ≪카우 보이들의 외교사≫ 등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탈냉전과 대서양 공동체의 분열> 등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 책 속으로
제1장 먼로 독트린의 시대: 배경
존 애덤스 John Adams는 초기 미국을 “페인의 시대 the Age of Paine”라고 명명했다. 토마스 페인 Thomas Paine은 이른바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 Founding Fathers’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건국의 사상가들’ 계보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페인의 대표작 『Common Sense 상식』은 미국 건국사의 고전으로서, 대다수 미국인들이 미처 유념치 못한 미국 독립의 역사적 필연성과 세계사적 의의에 호소하여, 독립을 놓고 좌고우면하던 미국인들이 독립의 길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영어로 작성된 최고의 팸플릿”이며, 미국 역사에서 “가장 즉각적인 영향을 끼쳤던 정치적 혹은 사회적 전단지 tract”였다.
『상식』은 미국이 독립으로 가는 과정뿐만 아니라 독립전쟁 기간과 독립 이후 미국의 초기 외교의 기본 원칙을 세우는 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상식』의 즉각적인 목표가 미국 독립의 당위성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기에 상대적으로 외교문제는 큰 분량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페인이 밝힌 미국의 외교 원칙은 다소 돌발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상식』의 전체적인 틀에서 보면 외교도 페인이 주장하는 일관적인 흐름 속에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외교 원칙을 언급하기 바로 전에, 페인은 미국 독립이 왜 세계사의 흐름에서 막을 수 없는 필연인가를 설명했다. 미국은 단지 영국에서 건너온 이주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적 종교적 자유를 위해 은신처”를 찾고자 유럽의 “모든 지역”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집합체임을 강조하며, 페인은 미국이 영국에 연연하지 말고 독립된 국가로 거듭나야 함을 주장했다.
『상식』에 나타난 페인의 외교 원칙은 이러한 큰 틀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상식』의 근본 목적은 미국 독립에 있지만, 페인이 추구하는 미국 독립의 궁극적인 목적은 갈수록 가까워지는 세계 속에서 어떤 특정한 국가와의 제한된 관계를 벗어나 범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국의 존재와 가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페인은 향후 미국 외교의 원칙과 방향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 핵심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에 종속되거나 의지하는 것은 미국이 유럽의 전쟁이나 다툼에 직접 개입하게 만든다. 우리는 관련 국가들과 우정을 나눌 수 있고 그들에 대한 특별한 분노나 불평이 없다 해도, 이러한 개입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사이가 나쁘게 될 수밖에 없다. 유럽이 우리 무역 시장이기에 우리는 유럽의 그 어느 나라와도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유럽 국가들의 세력다툼에서 떨어져 있는 것이 미국의 참다운 이익이다.”
『상식』에서 나타난 페인의 외교 원칙이 가장 먼저 적용된 것은 1778년 2월 미국이 프랑스와 맺었던 조약이었다. 이 조약을 ‘모범조약 Model Treaty’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훗날 미국인들이 그 조약을 미국 외교의 전형 model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모범조약’의 핵심은 미국은 프랑스와 정치 및 군사적 관계보다는 상업적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모범조약’의 초안을 작성한 존 애덤스는 1776년 3월 프랑스와의 동맹을 모색하면서 그의 노트에다 동맹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프랑스와 “아무런 정치적 관계 connection”를 맺지 않고, “아무런 군사적 관계”를 맺지 않으며, 오직 “상업적 관계”만을 맺는다. 애덤스는 이후 다른 기록들에서도 미국이 통상 commerce을 중심으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해야만 다른 유럽 국가들의 불필요한 쟁투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미국이 자유항 free port으로 남아있는 것은 유럽 국가들도 원하는 바이며, 이것이 유럽의 세력균형 equilibrium이나 평화 peace에 공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범조약’은 그 용어가 함축적으로 설명하듯이 초기 외교의 원칙에 절대적인 ‘모범’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유럽 국가들과 상업을 제외한 그 어떠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며, 미국이 상업적 이익을 위해 ‘중립’을 지키는 것이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에도 이익이며, 바로 그런 이유에서 미국이 그러한 원칙을 고수한다면 유럽 국가들도 미국의 독립을 지지할 것이라는 페인의 주장은 ‘모범조약’ 뿐만 아니라 독립 후 초기 미국 외교의 수사 (修辭)적 시금석 (試金石)이라고 할 수 있다.
모범조약의 원칙은 건국 직후 워싱턴 행정부의 외교원칙으로 그대로 작동되었다. 건국 초기에 워싱턴 대통령과 그의 각료들의 고민은 프랑스 혁명의 후풍으로 발발한 유럽 전쟁에서 미국이 어떠한 위치와 태도를 취하느냐에 있었다. 특히 1793년 2월에 프랑스 혁명 정부가 미국 정부에 1778년 동맹조약을 이행해 줄 것을 요구하며 노골적으로 유럽 전쟁에서 프랑스 편을 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 본문 중에서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