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동풍서풍
펄 S. 벅 / 길산 / 2009.11
한 중국 여인의 입을 통해 말하 듯 서술된 구술사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 젊은 여인 궤이란의 인생은 은밀하면서도 고된 동시 흥미롭다. 그녀는 중국의 전통적인 여인상에 가까우면서도 전통이란 이름으로 묵인되어온 불합리한 세계를 깨치는 인물이다. 또한 긴 인고의 세월조차 사랑으로 껴안을 수 있는 긍정적인 자세로 삶을 일관한다. 슬픔보다는 정열, 회피보다는 충돌이, 신선한 이야기 속에 그려지는 이 작품은 중국 여인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중국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고스런히 묻어나고 있다.
펄벅은 긍정적이고 헌신적인 궤이란을 통해, 전통에 대응하는 젊은이들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었던 무조건적인 희생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그려나가는 소설 속의 세 젊은이들을 통해 격동기의 중국의 모습을 그려낸다. 또 사랑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시대에 사랑 하나로 모든 것을 이겨내려는 궤이란의 천진무구함을 강조하며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부는 자리라 할지라도, 그곳에 사랑만 있다면 달려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가진 희망은 또다시 사랑뿐임을 전하고 있다.

– 서평 : 동풍과 서풍이 만들어낸 이야기
1930년대 서양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온 의학자를 남편으로 맞아야 하는 중국 여인 퀘이란, 전통적인 중국의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서풍을 몰고 온 남편을 만나 그려지는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다. 주인공(퀘이란)이 아는 언니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글은, 읽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사실 그 당시에 주인공이 느꼈을 문화적인 충격과 심연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2017년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그때 주인공이 가졌던 감정과 상황들을 읽어 내려가자니 그저 황당할 뿐이다.
‘아니 어떻게’…?가 읽는 내내 느꼈던 나의 주된 감정이였다.
남편을 주인님으로 모시는 여자, 그리고 오로지 남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자신을 치장하는 여자, 그러나 정작 그러한 사랑을 받는 남자는 첩을 몇 명씩 두고도 또 다른 첩을 물색하는 기묘한 이야기에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러나 퀘이란의 말처럼 여자는 그저 꽃이나 몽롱한 아편처럼 자극만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되거나, 혹은 그녀의 엄마가 했던 말처럼 오직 남편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사람이라는게 퀘이 란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들 이기게, 유학하고 돌아온 의학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주인공의 오빠는 서양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부모님과 그들이 가진 전통에 맞서 갈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전통을 지키려는 부모님과 새로운 삶을 원하는 젊은 세대들.. 서양문물과 그들의 문화를 접하면서 격정적인 변화와 갈등을 겪는 시대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집안끼리의 약속으로 정혼자를 정해놓고 얼굴도 모른 채 서로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들의 결혼이 내게는 너무도 낯설다. 하지만 그보다 태어나 어느 정도 자라면 오로지 결혼과 출산, 남편을 주인님으로 모셔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보일 온갖 기교와 자태를 익히기 위해 자신을 수련하며, 매일 밤 현란한 치장으로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해야 하는 그 당시 여인들의 삶이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러한 것들에 아무런 저항 없이 자란 퀘이란에게 유학을 다녀온 남편이라니.. 그녀의 삶에 불어닥친 서풍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지만 이내 남편의 뜻을 받아들게 된다.
물론 그의 뜻을 받아들인 것은 시집 간 여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남편의 뜻이야 둘째치고 주인인 남편에게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신주님의 “감정 수업”‘에서는 사랑을 위해 자신이 지켰던 모든 것을 버리고 남편의 뜻에 따라 신식 여성으로 거듭나는 그녀가, 오로지 자신의 원하는 모습일 때에만 사랑을 느끼려 하는 그녀의 남편보다 행복할 것이라고 했지만 여자인 내가 이 글을 읽었을 땐 그 이야기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퀘이란이 남편의 뜻에 따라 신식 여성으로 거듭나는 모습은 그를 사랑해서라기 보다 여전히 그녀 안에 있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힘을 두었기 때문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육체가 아니라면 다른 면에서 그를 즐겁게 해줘야 했다’라는 그녀의 말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변화가 결국엔 그를 사랑해서라기 보다 그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자신도 행복할 수 있다는, 남편이라는 주인에 예속된 여성으로서 딱 그만큼의 자리에서 시작된 변화이기 때문이다. 결국 퀘이란은 사랑에 몸을 던져 서풍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동풍에 몸을 던져 서풍을 견딘것이라 생각한다. 퀘이란의 사랑은 결국 자신이 가진 동풍에 순응한 결과인 것이다.
물론 그녀의 남편은 퀘이란이 전족을 벗으며 느꼈을 정신적 상실감이나 육체적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변화하는 그녀에게 남편으로서 충분히 위로와 힘을 보태어 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퀘이란과 그녀의 남편은 결국 완전한 사랑을 이루진 못했을 것이다. 만약 퀘이란 이 끝까지 전족을 벗지 않고, 삶의 모든 면에서 자신이 배우며 살아온 전통을 지키려 했다면 아마도 서풍이 아닌 그보다 더한 바람이 그들에게 몰아쳤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퀘이란의 사랑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전통적 가치관이, 그녀의 남편에겐 퀘이란이 신식 여성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랑이었다.
사랑은 단지 욕망, 아들을 얻고 싶은 여자의 욕망일 뿐이라던 퀘이란의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욕망이 충족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게 사랑이라던 그 공허한 울림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 했다. 오로지 남자의 육체적 만족이나 그의 아들을 낳기 위해 살아온 그 세월을, 그 여인의 말못할 아픔을 누가 감히 알수 있을까. 그것이 그네들의 전통이며 그렇게 순순히 살아 갔다고 한들 정말 그녀의 마음엔 사랑의 미묘한 떨림이 없었을까.. 그 떨림에 가슴이 쿵쾅 거리던 그 느낌을 붙잡고 싶었던 적이 없었을까…
퀘이란의 오빠가 데려온 서양 여자를 끝까지 거부하며 결국 죽음을 맞이한 그녀의 완고함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러나 신 ,구 세대의 갈등 안에서 뜨겁게 피어났을 그들의 사랑과 서로에게 맞춰가며 삶에서 균형을 찾아간 퀘이란 부부의 사랑도 그 안에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였을 거라 생각한다.
동풍과 서풍,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바람 앞에서 자신들의 삶과 사랑을 지키기 위한 모든 세대들의 아픔과 행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재미있는 책이였다.

– 저자소개 : 펄 S. 벅(Pearl Buck,필명: 존 세지스)
인간의 삶과 숙명적 굴레를 리얼리즘 서사로 표현하였으며, 중국인보다 중국을 더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녀는 미국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상과 동시에 퓰리쳐상을 수상하였으며, 인도주의적인 부분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인종간의 이해를 위한 가교 형성에 헌신해 왔다.
189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 만에 장로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전도사업에만 열중했기 때문에 집안 일은 어머니가 도맡았다. 펄 벅은 1910년 대학을 다니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1914년 랜돌프 매콘 여자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열여덟 살 때까지 중국에서 자란 펄 벅에게는 중국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고향이요, 미국은 바다 저편에 있는 꿈의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1917년, 뒤에 중국농업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존 로싱 벅(John Lossing Buck) 박사와 결혼을 하였다. 이때 성이 “Buck”이 된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두 딸이 있었는데, 큰 딸은 극도의 정신박약아였다. 자서전에서 펄 벅은 큰 딸이 자신을 작가로 만든 동기 중 하나라고 밝혔다(백치 딸은 『대지』에 왕룽의 딸로 그려져 있다).
중국에서 사는 동안 겪었던 역사적인 사건과 중국인 유모에게서 들은 많은 이야기들이 미국인인 그녀가 중국의 영혼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고 예리한 작품을 그려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국공내전의 와중에서 1927년 국민당 정부군의 난징(南京) 공격때 온 가족이 몰살당할 뻔했던 위기를 체험하여 피치 못할 균열을 깊이 자각한 일도 그녀로 하여금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한 동기였다. 이 균열은 작품의 바닥에 숨겨진 테마로 흐르고 있다. 그녀는 이 균열을, 자기가 미국인이라는 입장에 서서 제2의 조국 중국에 대한 애착서 평생을 두고 어떻게 해서라도 메워 보려고 애썼다.
1930년 중국에서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장편 데뷔작 『동풍 서풍』을 출판하였는데, 출판사의 예상을 뒤엎고 1년이 채 안 되어 3판을 거듭하였다. 이어 빈농으로부터 입신하여 대지주가 되는 왕룽(王龍)을 중심으로 그 처와 아들들 일가의 역사를 그린 장편 『대지』(1931년)를 출판하여 작가로서의 명성을 남겼다.
이는 『아들들』(1932년), 『분열된 일가』(1935년)과 함께 3부작을 구성한다. 1934년 이후로 그녀의 저서들을 출판해 온 J.데이 출판사의 사장 R.J.월시와 재혼, 미국에 정착하였다. 1938년에는 미국의 여류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이 『대지』 3부작에 수여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도 평화를 위한 집필을 계속하였는데, 중국에서 내란이 일어나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본의 아닌 귀국을 할 수밖에 없었던 펄 벅은 전후의 황폐한 사회에 내던져진 전쟁고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전쟁고아와 혼혈 사생아들을 위하여 펄 벅 재단을 설립하고 전쟁 중 미군으로 인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태어난 사생아 입양 알선사업을 벌이는 등 직접 봉사 활동에 나선 것도 이 무렵부터의 일이다.
2차 대전으로 미국의 OSS에중국 담당으로 들어오면서 한국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과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스스로 박진주(朴眞珠)라는 한국어 이름도 지었다.
한국 전쟁 후에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1963년)와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1968년) 등 한국 관련 소설을 쓰기도 했으며, 1965년에는 다문화아동 복지기관인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하였다. 1967년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심곡리(현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에 ‘소사희망원’을 세워 10여 년 동안 한국의 다문화아동들을 위한 복지활동을 펼쳤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무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영원한 모성상을 그린 『어머니』(1934), 아버지의 전기인 『싸우는 천사들 Fighting Angels』(1936), 어머니의 전기인 『어머니의 초상 The Exile』(1936)과 『애국자 Patriots』, 『서태후 Imperial Woman』(1956), 자서전인 『나의 가지가지 세계 My Several Worlds』(1954) 등이 있다.
펄 벅은 일생동안 소설과 수필, 평론, 아동서적에 이르기까지 80여 권의 책을 집필하였으며, 5개의 장편소설만 존 세지스라는 필명으로 출간하였다. 또한 전 세계 다문화아동들을 위한 차별없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다 1973년 3월 6일 81세로 사랑하는 아이들의 곁을 떠나 생가가 있는 그린힐즈 농장에 묻혔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