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람바레네 통신
알베르트 슈바이처 / 일신서적출판사 / 1988.9.1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1913년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오고웨 강변의 람바레네 (현재의 가봉공화국 지역) 밀림에 자력으로 열대병의 병원을 개설한다.

람바레네 (프: Lambaréné)는 가봉의 도시로, 무아얭오고웨 주의 주도이며 적도에서 남쪽으로 7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의료 봉사를 한 곳으로 알려져 많은이들이 순례하고 있다.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에 병원을 열 당시 그곳은 미지의 땅에 가까웠다. 이 책은 19세기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현재의 가봉 공화국이 된 랑바레네 병원에서 슈바이처가 활동한 사연을 모아 엮었다. 아프리카에서 겪은 체험들과 오고우에 강 유역에 병원을 지은 이야기, 그리고 원주민을 더욱 존중하게 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슈바이처가 원시림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그 곳의 실상을 전하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사는 흑인들은 백인처럼 많이 병에 걸리지도 않고 고통도 못 느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백인들이 옮긴 질병 때문에 유럽에 사는 자신들과 똑같이 아프고 더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흑인들의 삶을 목격하게 된다. 생애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접한 슈바이처는 백인들로 인해 고통 받는 원주민들의 모습에 죄책감을 감추지 못한다.
아프리카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고, 슈바이처를 탄식하게 만들었으며 때로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했다. 그는 90세까지도 병원 일을 돌보다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가 지은 랑바레네 병원 주변에 아내와 함께 묻혔다. 이 책은 슈바이처가 의료봉사를 시작하던 초기의 기록으로 그의 의료 행위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자연과학적 지식까지 담아냈다.
○ 저자소개 : 알베르트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 1875-1965)
스트라스부르 대학 신학과의 젊은 교수,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1905년 30살의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 그는 벌써 세 권의 저술을 가진 작가였으며, 음악(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905), 종교(예수 생애 연구사 1906), 철학 방면에서 뚜렷한 학문적 성취를 거둔 학자였다. 또한 바흐의 오르간 곡 연주에 관한 한 세계적 권위자로 명망이 높았고, 교회 부목사(스트라스부르 성 니콜라이 교회, 1910)로, 신학교의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1913년 슈바이처와 그의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는 당시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 현재는 가봉 공화국인 된 그곳 랑바레네에 병원을 열기에 이른다. 1920년에 그는 이곳에서 활동한 사연을 모아 이 유명한 책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를 집필하였다. 당시 아프리카는 거의 미지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프리카에서 겪은 체험들과 오고우에 강 유역에 병원을 지은 이야기, 그리고 원주민을 더욱 존중하게 된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슈바이처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을 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 국적을 가진 두 사람은 의료 활동을 중단해야 했고, 급기야 아프리카를 떠나 프랑스의 포로수용소에 구금당한다. 1924년에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와서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설과 모금 활동을 위해 유럽을 다녀오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1928년에 괴테상을, 1952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65년 90세에 병원 일을 돌보는 와중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랑바레네의 병원 주변에 아내와 함께 묻혔다.
의사로서 유명하지만 본업은 신학박사로서 강단에 선 학자였고 동시에 프로 음악가이자 파이프오르간 전문가였다. 각각의 분야에 책을 냈다.
“아프리카 봉사에 한정한” 대표 저서로는 ‘나의 생애와 사상'(판본에 따라 노벨상 수상때의 연설문이 번역돼 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람바레네 통신’ 등이 있다. 성장기와 병원 운영과 수술 이야기만 있지는 않고 다양한 주제로 쓴 단편이 때로는 몇 쪽, 때로는 한 챕터를 할애해 들어 있다. 책에 따라 신학적인 주제, 음악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현지에 와서 다양한 백인과 흑인을 만나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적어 놓았다. 적도 아프리카에서 지성인으로서 살아남기, 이상적인 선교 사업, 재정 문제, 아프리카 의료의 현실, 열강의 식민지 정부 운영 문제, 식민지의 수출과 수입, 목재 산업, 강제 노동, 흑인 사회 비평, 아프리카의 자연, 병원 반경 약 2백 km 지역에 사는 부족들과 그들의 관계 등.. 약 100년 전 서아프리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그 외 사후 서한집이 국문으로 출판됐고, 철학서로는 “문화와 윤리”도 번역된 적 있다.
– 역자 : 권미영
○ 출판사 서평
– 슈바이처는 왜 원시림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사가 되었는가
슈바이처가 알자스 지방의 고향 마을을 떠나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의 랑바레네(현재 가봉공화국)로 향한 것은 1913년 7월이었다. 의사학위를 받은 것이 그해 봄이었다. 1905년 서른 살의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의사가 되기 위해 7년간을 매진한 결과였다. 1904년 우연히 프랑스의 한 잡지에 실린 기사를 읽었다. 콩고 강 유역에 사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참상에 대한 기사였다. 당시 그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신학교 교수였고, 스트라스부르 성 니콜라이 교회의 부목사였고, 신학교의 책임자였으며, 바흐의 오르간 곡 연주의 권위자였다.
슈바이처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스스로 묻고 답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의사가 없는 곳에서 고통에 시달리는 원시림 속 흑인을 돕는 일이 인도주의적 과제로 여겨졌다. 원시림 속 흑인이 성경 속의 거지 라자로라면, 이를 방관하고 도외시하는 유럽인은 배부른 부자로 보였다. 육체의 고통은 인종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게 가장 절박한 실존이라는 깨달음이었다.
– 치열한 휴머니즘과 그 기록
1913년 독일의 고향 마을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하여, 프랑스 파리를 거쳐 보르도로, 다시 기차를 타고 포이약 항구에 도착하여 콩고행 증기선을 타는 여정이 책의 서두에 등장한다. 파리 복음 선교회가 랑바레네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병원 건물을 짓는 것을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여행경비와 의료 활동에 필요한 물자는 스스로 충당해야 했다. 많은 친구들의 성금 모금이 있었지만, 자신의 저서 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인세와 오르간 연주회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마련했다. 당시 슈바이처는 유명 파이프오르가니스트, 특히 바흐의 오르간 곡에 능통했다.
배 이름은 ‘유럽’이었다. 혼잡한 소음과 짐꾼들의 외침 속을 지나 배에 올라타면서, 슈바이처는 하나의 계획을 세운다. “여기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 시기에 행하는 것을 기록한다면 과연 어떤 책이 될 것인가? 어느 한 부분도 그냥 대충 읽어 넘기지 못하리라!”
‘과연 어떤 책이 될 것인가?’ 그 대답이 바로 이 책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