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루마니아학 입문
김성기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 2005.8.3
- 루마니아의 역사, 지리, 문학, 정치, 종교 등 제 분야를 다루고 있는 루마니아학 개론서
동유럽이 한국과 가까워진지도 벌써 20년, 그 동안 이루어졌던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의 활발한 교류로 인하여 이제는 동유럽을 먼 나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본서는 루마니아의 역사, 문학, 지리 등 다양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전공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다같이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 목차
머리말
제1장 역사
제2장 문학
제3장 언어
제4장 문화
제5장 예술
제6장 과학문명
제7장 정치체제
제8장 종교
제9장 교육
제10장 법률
제11장 인구와 지리
찾아보기
○ 저자소개 : 김성기 (金成起)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루마니아문학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루마니아어과 교수이다.
저서로 『루마니아문학론』, 『루마니아문법』, 『루마니아 기초문법연습』, 『서양문학의 이해』 (공저)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이 책은 루마니아의 역사, 지리, 문학, 정치, 종교 등 제 분야를 다루고 있는 루마니아학 개론서이다. 루마니아인 (루: 로믄 român)이라는 말은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 Roma의 라틴어 표기로 로마누스 romanus에서 유래되었다. 라틴어 로마누스는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는 민족을 말하는 바르바루스 barbarus와 반대되는 말로 로마 시민 (cetăţenii români)을 일컫는 말이다. 106년 다치아 Dacia 왕국 (고대 루마니아 왕국)이 로마의 속주로 병합된 이후, 다치아에 거주하고 있던 토착민들은 카라칼라 Caracalla 황제가 로마 제국을 통치하던 212년에 로마 제국의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계속되는 이주 민족들의 침입으로 271년 로마 제국의 군대와 행정부가 다치아에서 철수하였고 그 이후에 다치아에 정착하고 있던 로마인과 다치아인들의 혼합 민족인 로마화된 다치아 민족은 자신들을 다른 이주 민족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로마인 (roma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 참고 : 루마니아의 역사
1600~01년, 왈라키아 대공 (大公)인 용담공 미하이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카르파티아 산맥을 기점으로 분리된 루마니아는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통일을 실현했다.
몰다비아 공국과 왈라키아 공국은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사이에 낀 희생자였다.
두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약화와 크림 전쟁을 활용하여 1858년 진정한 자치권을 획득하였다.
- 루마니아 공국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왈라키아 공국과 몰다비아 공국이 1861년 합병하여 루마니아 공국이 되었다.
처음에는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가 공으로 즉위하였으나, 나중에 독일계 호엔촐레른 가 출신의 카롤 1세로 교체되었다 (1914년까지 통치).
1877년 5월 10일에 루마니아 왕국으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게 되고 난 후 독립 승인은 1년 2개월 후인 1878년 7월 13일에 루마니아 독립 전쟁에서 끝나고 나서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루마니아 왕국으로 완전히 독립하고 루마니아의 새로운 이름으로 하고 나서야 독립 승인을 받았다.

-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연합국에 가담하여 한 때 전 국토가 동맹국에게 유린당하기도 했던 루마니아는 연합국의 승리로 트란실바니아, 베사라비아 및 부코비나 지방을 얻어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1939년 8월 23일 나치 독일과 리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을 맺은 소련은 중앙유럽을 독일과 분할하기로 하고 1940년 6월에 루마니아 북부의 베사라비아와 부코비나 지방을 루마니아 왕국에 요구하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소련군이 이들 지역에 진입하자 루마니아는 이에 굴복하고 요구를 들어주었다.
루마니아는 이 후 제2차 세계 대전 추축국에 가담하여 한 때 이들 지역을 회복했지만, 곧 패전하였고, 1944년에 소련군에 점령되어 종전 후 파리조약에 따라 베사라비아와 북부 부코비나 지방을 소비에트 연방에 할양하게 되었고, 1945년 3월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내각이 조직되었다.

- 루마니아 인민공화국
1946년 11월의 총선거에서는 농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공산당과 소련의 부정선거로 이듬해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47년 12월 30일에 소련군에 의해 최후의 국왕 미하이 1세가 폐위되면서 군주제도 폐지하고, 1948년 공산주의 국가인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차우셰스쿠의 독재 시기
1965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집권하여 1989년까지 독재 정치를 실시하였다.
차우셰스쿠는 소련의 내정간섭을 비판하며 소련의 위성국가이기를 거부한다는 자주노선을 내세워 동·서 양 (兩)진영의 군사 블록 해체를 호소하는 등 전방위 (全方位) 외교를 전개하여 외교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1978년 중화인민공화국과 반소노선 구축을 도모하다가 소련과 극한적으로 대립하는 사태로까지 나아갔는데 ‘파체파 망명사건’으로 정치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국내적으로는 테러와 독재로 일관하며, 인민을 친위대와 도청으로 감시하고 억압하는 철권독재를 하였다.
차우셰스쿠는 경제 정책에서도 무능하여 농업국인 루마니아를 무리하게 공업국가로 바꾸는 과정에서 외채가 110억 달러에 육박하자 수입을 중단하고 수출로 일관하는 극단적 무역정책을 취했다.
그 결과, 인민들이 생필품 부족으로 고통받게 되었고, 원자재와 기계부속품 부족으로 공장들의 운영이 중단되면서 루마니아 경제는 극심한 침체에 빠졌다.

.루마니아 혁명
1989년 12월 17일 헝가리와의 국경지대인 티미쇼아라에서 민주화를 지도하던 헝가리계 개신교 목사 라슬로 퇴게시 목사를 구속하는 것에 대한 항의 시위가 있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12월 21일 부쿠레슈티 시민들도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자, 정부는 무차별적인 사격으로 탄압했다.
그러나, 12월 22일 차우셰스쿠가 세쿠리타테만 편애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군대가 등을 돌려 시민 편에 합세함으로써 차우셰스쿠의 친위대 (세쿠리타테)는 타도당했다.
차우셰스쿠는 헬리콥터로 북한으로의 탈출을 껄끄럽게 여기던 헬기 조종사는 고공 사격을 받는다고 거짓말해서 결국 차우셰스쿠는 차를 세웠는데, 첫 번째 차는 엔진이 타버렸다고 거짓말하고, 두번째 차는 농업박물관으로 차우세스쿠 부부를 데려다주었다.
그곳의 농부는 지켜준다고 거짓말 하고, 방에다가 가두어 경찰에게 밀고한 뒤, 4일동안 감금하고, 인근 초등학교에서 재판을 받은 뒤, 1989년 12월 25일 오후 5시 30분에 초등학교 벽에서 150여발의 총탄을 맞고 사형당했다.
1990년 1월 1일, 루마니아는 민주화되었다. 그 뒤에도 수많은 폭동과 시위를 거쳐 1996년 11월, 시민의회 후보인 콘스탄티네스쿠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루마니아는 공산정권이 무너진 지 7년만에 민주 인사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루마니아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의 사형 집행을 끝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 사회민주당의 승리 이후
루마니아에서 2008년 11월 30일에 야당인 루마니아 사회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지를 많이 잃었으며, 2014년 대선에서 前 총리 빅토르 폰타는 우파인 국민자유당의 클라우스 요하니스에게 패배했다.
이로써 루마니아는 첫 번째 독일계 대통령이 탄생했으며, 2018년 1월 29일에 루마니아 사회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된 비오리카 던칠러가 총리가 되면서 좌우 동거 정부를 수립하였으나 2019년 11월 4일에 비오리카 던칠러 前 총리가 완전히 사임함에 따라서 국민자유당의 대표로 선출된 루도비크 오르반이 새로운 총리로 임명하여 이로써 국민자유당의 단독 정부를 완전히 수립하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