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민족주의의 장래
E. H. 카 / 평민사 / 1989.10.1
민족주의는 과거 수 백년 동안 가장 강력한 정치적 이념이었다. 모든 현대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족주의와 민족국가 이데올로기는 다른 사상체계도 지배한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비합리주의적이고 다의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일률적인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민족주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민족과 국가에 대한 개념과 민족-국가에 대한 상관관계의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민족의 개념은 정치적이라기보다 사회적인 것이며 민족이라는 용어는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
이는 언어, 거주하는 지리적 범위, 경제생활과 문화, 또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집단이다. 서로 혈족관계의 강력한 유대관계를 가진 사람들에 관한 용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 민족은 비록 특정한 국가 내에 포함되지 않거나 특이한 정부의 지배를 받지 않을 지라도 존재할 수 있다.
한 민족이 그 인종구성에 의하여 명백히 동일시 될 때에도 그 민족의 사람들은 여러 나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같은 정부 체제의 국가가 없이도 존재가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로 게르만인과 유대인 등을 들 수 있다. 이렇듯 민족은 여러 지역에 분포될 수 있으며 그 존재가 어떤 특정지역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 국가는 일정한 영토 내에서 주권을 가지고 있는 어떤 정부하의 국민들은 의미하는 정치적 용어이다.
국가라는 용어는 민족의 개념과 달리 확실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 통상적으로 국가라는 표현은 국민, 주로 특정 공간에 한정된 지리적 공간인 영토, 또 일정한 영토 내에서의 궁극적인 법적 권위인 주권, 그리고 정부의 4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모든 국가에는 영토의 경계가 있다. 다음으로 국가와 민족의 유일한 공통된 특징은 국민이다. 그러나 민족이 그들 자신의 국가를 창설하고자 할 때, 그 결과로 인한 정치적 존재인 민족-국가는 매우 중요하다.
민족이라는 용어는 어떤 국민의 사회적 통일체를 상징하고 있으며 국가라는 용어는 그러한 연합을 정치화한 것이다. 현대사회는 민족-국가로 조직되었다고 정의되고 있다. 민족-국가는 국민을 통일시키고, 이를 통해 그들 스스로를 동일시하며, 정치적인 사건을 평가하는 초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민족-국가는 오늘날 지배적이며 역사상 유일하게도 가장 최근까지 존재하고 있는 권위적인 정치제도라고 할 수 있다.
사회는 국가에 대해 실질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가 발전되었다고 확신한다.
국가의 사유재산을 명확히 하고, 보호하고, 전달하는 수단으로 발전해왔다. 과거의 국가 기원에 관한 몇 가지 이론은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
과거의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국가의 기원에 관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하였다. 사실 여부는 어떻든 간에, 그중 많은 이론들이 정치이론과 현대 이데올로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
이들 각 이론은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사상으로서 민족주의에 기원하였다. 따라서 제 이론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저자소개 : E. H. 카 (Edward Hallett Carr)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역사학자이자 국제정치학자.
1892년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뒤 외무부에 들어가 활동하다, 1936년에 사임하고 웨일스 대학교의 국제정치학 교수가 됐다.
1941년부터 1946년까지 《타임스》 부편집인을 맡았고, 1948년에는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기초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 베일리얼 칼리지의 정치학 개별지도 교수를 지냈고, 1955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의 특별 연구원, 1966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의 명예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소련사 분야의 권위자인 카는 1950년부터 1978년에 걸쳐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14권)를 완성했다.
또한 1961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한 G. M. 트리벨리언에 관한 강의를 엮어 만든 《역사란 무엇인가》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밖에도 《위기의 20년, 1919~1939》(1939), 《평화의 조건》(1942), 《소련이 서구에 준 충격》(1946), 《새로운 사회》(1951), 《러시아 혁명》(1979),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1980)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별첨
○ 민족주의 정의 및 민족주의 이론
민족국가 (nation state)는 한 민족이 다수를 이루며 통치하는 국가를 의미하며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발달되었다. 민족국가는 근대산물로 근대 세계체제가 됨으로 각 국가가 행위자가 되고 각 국가가 모여 국제사회를 이루어 서로 협력하게 되었다. 민족주의에 대한 여러 이론들이 있다. 이들 이론들은 민족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서로 모순되는 측면이 있는데 먼저 민족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주요 민족주의 학자들의 민족주의 이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 Anthony Smith : 민족은 혈연공동체
안토니 스미스는 민족이란 급조된 것이 아니고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연적 공동체임으로 쉽게 소멸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민족은 Ethnic community요 Extended Family(확장된 가족)로 혈연공동체라는 것이다. 혈연공동체 속에서 인간관계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 Benedict Anderson : 민족은 근대화의 산물/ Press Capitalism(인쇄자본주의)
Anderson은 민족은 « 의도적으로 » 어떤 사회, 정치적 조건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고 한다. 근대 계몽주의 이후 생긴 것으로 200-300년 역사를 가진 민족은 imagined community(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한 실상이 아니고 허상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혈통으로 따져봐도 실제로 같은 피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각자가 민족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근대 이후부터 라고 하며 민족주의는 교황→왕→신흥부르조아로 권력이 이동됨에 따라 생긴 현상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권력의 이동이 문자를 통해 가능했으며, 문자 중심으로 민족 공동체 정신이 강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유럽에서 교황이 지배할 때는 라틴어를 사용하여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였다. 그러나 왕조국가가 발달하여 왕이 지배할 때는 각 나라의 spoken language가 발달하여 국가의 권력이 강화되었다. 나아가 왕/귀족/평민/노예로 형성된 견고한 중세 신분제도가 ‘중상주의’로 교역이 발달하여 신흥부르조아들이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부터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이들 신흥부르조아들이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 것이 프랑스 혁명이였다. 이들 신흥부르조아 즉 지배 엘리트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민족주의 정신을 불어넣었다. 이때Press Capitalism (인쇄자본주의)이 발달하여 행정을 자국어로 하고 공식문서를 자국어로 씀으로 언어중심으로 민족주의 의식이 점차 강회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민족국가가 발달함으로 각국은 고유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게 되자 지배 엘리트들에 의해 언어중심으로 민족국가가 점차 형성되었다. 이처럼 언어 및 문자와 민족은 아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 뒤르카임(뒤르겡) : Totem이론
뒤르켕은 프랑스계 유대인으로 토템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혁명시 국기나 국가와 같은 국가 상징이 강조되는냐?”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토템을 숭배하게 되어 있는데, 왕이 무너짐으로 새로운 민족주의를 토템으로 만들기 위해서 국기나 국가와 같은 국가를 상징하는 요소들을 강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숭배의 대상이 되는 토템의 중요 조건이 힘(Power: 신적 능력)과 거룩(Holiness: 선한 신)인데, 신흥부르조아들은 결국 국가를 토템화한 것이다.
– Hobs Baum(홉스 봄) : 관주도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
홉스 봄은 민족은 국가 엘리트들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라고 본다. 그에 의하면 민족주의는 일부 엘리트들이 필요에 의해서 근대 사람들에게 심어준 조작된 역사(Inventing History)라는 것이다. 그는 순수 혈연공동체는 지금 존재하지 않고 불가능하다고 한다.
– 오토 바우어(Otto Baur) : 문화적 가치(Culcural Autonomy)
오토바우는 아래에서 살펴볼 카우스키와 함께 사회주의 민족이론(정통 마르크스주의)가이다. 그는 스미스의 주장과 같이 민족은 운명공동체라서 민족주의는 소멸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민족은 언어/혈연/지연/문화로 연결된 총체적 자연 공동체라는 것이다. 소비에트가 국가를 다 말살하고 사회주의 공동체(sovietnation화)를 만들려고 하지만 반발만 거세지지 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그러니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라”(Culcural Autonomy)고 주장한다. 즉 이데올로기 중심의 정치적 공동체만 강조하지 말고 문화 특수성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는 문화형식을 그대로 두고 문화를 사회주의적으로 재해석을 하여 사회주의에 기여하도록 하면 된다고 강조한다.(형식은 두고 내용만 바꾸면 저항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
– Kautsky(카우스키) : 언어가 소멸되면 민족도 소멸된다
칼 막스는 민족주의를 자본주의 산물로 보고 없애려고 했지만 (민족주의자들을 부르조아로 봄)카우스키는 민족은 문화적, 민족적 기초다고 강조했다. 문화가 없는 민족은 없으니 민족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인간과 문화를 절대 분리할 수 없다). 그는 또 언어가 민족 결속력의 주원인으로 언어가 살아 있는 한 민족은 존재할 것이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언어만 소멸하면 민족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소련에서는 실패하고 언어를 없애는 대신 적극적으로 언어를 만들어 주게 된다. 정치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배제된 언어 공동체, 문화공동체 인정해준 것이다. 따라서 소비에트 내에서 민족이 소멸 안 되고 남아 있게 된 것이다.

○ 민족주의의 기원 및 발달 과정
위에서 살펴본 민족주의 이론에서 우리는 3가지 파라독스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근대성문제. 역사가 입장에서 볼 때 민족주의는 근대의 산물이라고 봄으로 (국가는 그전부터 있었지만 국가의식은 근대에 형성) 민족주의를 특수현상이라고 본다. 둘째, 고대성문제.민족주의 이론가 입장에서 볼 때 민족주의는 고대부터 연속성을 가진다. 따라서 이들은 민족주의는 보편적 현상이다고 주장한다. 단 미국은 multi-nation으로 특수한 경우라는 것이다. 셋째, 국적과 민족의 불일치로 인한 긴장관계(한국은 예외 : 국적과 민족 일치). 민족은 독립된 정치 공동체를 희망하기 때문에 민족주의는 장기적으로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이런 파라독스외에 민족주의는 정치적으로 대단한 위력이 있지만 지적체계가 없기 때문에 철학적으로는 이론이 빈곤한 실정이다. 우리는 여기서 파라독스에 답을 찾기 위해 민족주의의 기원 및 발전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민족주의에는 고대성이 있다. 민족주의 관점에서 고대를 조명하는 학자들은 민족주의가 가능하게 된 주요 요인으로 언어사용의 보편화를 든다. 농경사회에서는 계층적 분업이 엄격했다. 상업적, 종교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를 통해 문명이 형성되었고, 이 문자는 기득권의 권력유지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직자들이 사회적 특권유지 및 계급의 권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문자를 독점(경전 연구 및 종교적 가르침을 문자로 전달)하였다. 즉 문자언어가 성직자와 비성직자의 차이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특권층의 권력유지를 위해 문자를 보편화시키지 않는 것이 고대 농경사회의 특징이였다.
이처럼 농경사회의 계층적 분업은 문자 해독 능력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발달로 상부층이 통합되었다. 산업사회의 키워드는 유동성이다. 자본주의가 발달되고 문자가 보편화됨으로 의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계층 간 장벽들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즉 산업사회의 지식, 자본의 유동성은 수평적 계층구조를 해체시키고 통합시켰던 것이다. (상부사회는 하나의 의식화된 집단화가 되고 하층구조인 농민에게 영향을 주면서 전체가 통합됨.)엘리트들의 의식화 작업에 의해 산업사회는 민족 간의 장벽을 심화시킨다. 어네스트 겔너(Gellner)는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계층 간의 불평등이 그 전 단계보다 완화되었으나 그 대신 민족 간의 장벽이 심화되었다고 주장한다(민족주의가 같은 문화 코드를 가진 공동체가 이데올로기화됨).
유동성이 강하면 사회적 불안정성은 증대된다. 과거에는 신분변동이 없었는데 유동성에 의해 도전받게 됨에 따라 지배계급들은 권력에의 접근을 통제하게 된다. 농경사회의 권력통제 방법은 거세제도(Gelding)였다. (1) 생물학적 거세 : 권력을 못 갖도록 왕의 측근들 거세 (2) 제도적 거세 : 성직자들 결혼 금지 (3) 사회학적 거세 : 소수 이방인 엘리트를 데려다가 키움(피지배 소수민족 인재 양성) 민족주의 출범 후 권력 통제방법은 공통된 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평균화시킴으로 총제적 거세를 하게 된다. 근대 교육의 발전으로 직업이동이 쉽도록 공통적 교육을 시킴으로 특수층이 사라짐과 동시에 세습이 해체되었다. 이처럼 지식정보를 가지고 이데올로기화하여 시스템을 장악한 자들이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정부가 나타나게 되었다(관주도 민족주의[국가 엘리트]가 탄생함[Official nationalism]).
이처럼 근대 국가 권력을 잡은 엘리트들에 의한 민족주의가 교육을 통해서 강화되었고, 현대의 민족주의는 국가 엘리트들이 국가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국가 의식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 민족주의 미래
이렇게 해서 발달한 민족주의는 현재 세계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강하게 도전을 받고 있다. 세계가 global화 되면서 민족주의가 약해지고 세계권력의 힘이 강해지게 된 것이다. (세계정부) 1995년 WTO설립 이후 강화된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간에 팽팽한 긴장관계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민족주의의 미래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말세에 어떻게 세계정부가 지배하게 되는 세계주의에 대응해야 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세계 경제가 통합되면서 엘리트들은 세계주의 이데올로기로 만들어가고 있다.경제통합을 중심으로 세계를 하나로 만들려는 강력한 세계주의 이데올로기는 앞으로 계속 추진될 것이다. 이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는 민족주의는 과연 사라질 것인가 ?
Paul Kenedy는 한민족이 지배적인 위치로 한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민족국가의 소멸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Peter Drucker(피터 드러커)도 케네디와 의견을 같이하며 WTO생길 때 민족주의는 소멸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오토바이어가 주장한 바와 같이 민족은 언어/혈연/지연/문화로 연결된 총체적 자연 공동체임으로 쉽게 소멸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민족의 소멸원인으로 경제적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민족의 이면에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요인들이 있는 것이다. 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연적 공동체다. 또한 민족은 Ethnic community요 Extended Family(확장된 가족)로 혈연 공동체인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 이면에는 특수현상이 있다. 예를 들어 민족국가 구성원 사이의 부, 권력, 계급의 불평등은 심하다. 따라서 그렇게 강한 연대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은데,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아주 특수한 현상이 나타난다. (개인의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민족의식을 버리지 않는다.) 왜 민족의식은 종교와 같이 자발적 헌신을 하느냐?는 질문에 아무도 쉽게 답을 제시할 수 없다.
EU가 대표적으로 민족주의를 넘어 통합하고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며 민족주의로 돌아가고 있다. 결국 EU통합도 프랑스, 독일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추진한 또 다른 민족주의의 양상이 아닌가 ? 통합의 비젼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가 많고 주도적인 국가들이 유익하니 리더쉽을 공식화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해본다. 이런 의미에서 에릭 홉스본은 독일과 프랑스는 여전히 민족주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 과연 민족주의에 경제적 요인이 어떻게 작용할까 ? 경제적인 위기가 오면 국민들은 국가의 이익보다는 당장 자기 이익을 추구해서 다국적기업 편에 설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요인이 상당한 파급효과가 있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은 세계주의를 표방하지만 철저한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그들은 이익을 우선시 하기 때문에 민족국가에는 관심이 없다. 따라서 민족중심으로 자국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