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반투 스티브 비코 :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
원제 : The Revised Edition Biko
도널드 우즈 / 그린비 / 2003.10.30
– 남아공 흑인저항운동의 상징적인 인물 반투 스티브 비코의 평전
만델라와는 또다른 길을 걸었던 급진적인 민권운동가 비코를 통해 남아프리카의 해방운동을 표상하고자 하였다. 비코는 1960년대 초, 지도력의 공백과 아프리카너 (Afrikaner) 백인 정권의 탄압으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흑인들의 자존심 회복과 의식의 고취를 주장하며 흑인운동의 전면에 나선 인물이다. 이 책은 당시 남아공 신문 「데일리 디스패치」지의 편집장이자 비코의 친구였던 저자가 백인정부의 보안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쓴 것으로, 비코와의 만남과 우정, 비코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의 잔혹함에 대한 분노와 고발을 담고 있다. 덴젤 워싱턴이 주연하고 《간디》로 잘 알려진 리처드 아텐보로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 목차
추천의 글(진중권)
신판 서문
프롤로그
1. 배경
백인 이주자들
흑인의 대응
비코의 선배 운동가들
흑인의식운동의 막이 오르다
나의 백인 세계
2. 인간 비코
스티브 비코를 소개받다
우리의 첫 만남
친구가 되다
개인적인 추억 몇 가지
경찰국가에서 산다는 것
비코의 관점
논쟁과 토론들
3. 재판
4. 살해와 심리
비극에 대응하다
보안관찰 처벌을 받다
심리 무대
13일 동안의 심리
평결
5. 기소장
에필로그
부록1 비코 사망 사건에 대한 심리과정
부록2 주요 인물
부록3 주요 사건
옮기고 나서

○ 저자소개 : 도널드 우즈 (Donald James Woods CBE, 1933 ~ 2001)
도널드 제임스 우즈 (Donald James Woods CBE, 1933년 12월 15일 ~ 2001년 8월 19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언론인이자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였다.
데일리 디스패치 (Daily Dispatch)의 편집자로서 그는 남아프리카 정부에 구금된 뒤 경찰에 의해 살해된 동료 활동가 스티브 비코 (Steve Biko)와 친구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즈는 런던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계속했으며, 1978년에는 유엔 안보리에서 연설한 최초의 민간 시민이 되었다.
우즈는 Conscience-in-Media Award, from the American Society of Journalists and Authors (1978), World Association of Newspapers’ Golden Pen of Freedom Award (1978)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Asking for Trouble: The Autobiography of a Banned Journalist. Atheneum (1981), South African Dispatches: Letters to My Countrymen. Penguin (1987), Biko. Paddington Press. 1978., later edition published by Henry Holt, New York (1987), Rainbow Nation Revisited: South Africa’s Decade of Democracy. André Deutsch (2000) 등이 있다.
본서 ‘반투 스티브 비코 :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 (원제 : The Revised Edition Biko)은 당시 남아공 신문 「데일리 디스패치」지의 편집장이자 비코의 친구였던 저자 도널드 우즈가 백인정부 보안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쓴 것이다.
‘반투 스티브 비코 :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에는 비코와의 만남과 우정, 비코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의 잔혹함에 대한 분노와 고발을 담았다.
– 역자: 최호정

○ 책 속으로
– 흑인의식운동의 창시자
식민주의자들은 기존의 아프리카 사회에 구축되어 있던 구조들을 완전히 파괴하고 자신들의 제국주의를 관철시키 위해, 그저 민중을 장악하고 그들의 두뇌에서 모든 형식과 내용을 비우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피억압 민중의 과거로 눈을 돌려 그 과거까지도 왜곡하고, 손상시키고, 파괴하였다는 것이다. 더이상 아프리카 문화는 거론되지 않았고, 아프리카 문화라는 말은 곧 야만을 의미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아프리카는 ‘암흑의 대륙’이었으며 종교적 관행과 관습들은 미신으로 간주되었다. 아프리카 원주민 사회의 역사는 종족간 전쟁과 내분으로 전락했다.―본문 중에서(P. 245)
오랜 백인 통치가 흑인들에게 강요했던 궁핍과 굴종은 흑인들로 하여금 백인들의 가치를 우월한 것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가치를 열등하고, 야만적이며, 극복되어야 할 무언가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타운십(흑인들의 거주구역)에서의 가난과 흑인간에 벌어지는 일상적인 폭력, 백인들에게 굴종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체계, 백인을 위한 노예의 역할만을 가르치기 위한 저급한 교육이 바로 뿌리깊은 열등감의 근원인 것이다. 스티브 비코에 의해 창안되고 그 활동의 기반이 마련된 흑인의식운동은 이러한 흑인들의 열등의식을 떨쳐버릴 것을 촉구하였다.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고, 굴종에 익숙해 있던 이전의 자세에서 벗어나 경제적 자립과 흑인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 고취를 통해 흑인들 자신이 흑인해방운동의 적극적인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에 기반하여 많은 흑인 조직들이 생겨났는데 비코가 주도한 대표적인 조직으로 흑인민중회의 (Black People’s Congress, BPC)와 흑인만으로 구성된 남아프리카 학생조직 (South African Students’ Organization, SASO)을 들 수 있다. 특히 비코와 그의 동료들은 이 단체들을 출범시키기 위해 자유주의적 성향의 단체들에게 냉혹한 비판을 가했는데, 이는 흑인의식을 위해서는 먼저 백인자유주의자들로부터 흑인들을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깃발 아래 제안된 ‘통합’의 신화는 깨져야 한다. 왜냐하면 인위적으로 통합된 조직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인가 성취되고 있다고 믿게 만들지만, 실상 그것은 죄의식에 시달리는 백인들의 양심을 달래주는 것이면서 흑인들에게는 수면제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P. 121)
실제로 스티브 비코가 흑인의식에 착상하게 된 것은 자유주의적 다인종 학생조직인 남아프리카 전국학생연합 (National Union of South African Student’s, NUSAS)의 한계를 보면서이다. NUSAS가 비록 자유주의적 이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생들의 대다수가 백인이라는 현실과 그 백인 학생들이 태어나면서부터 특권과 우월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NUSAS가 내세우고 있는 비인종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스티브 비코는 흑인 학생들만으로 구성된 SASO를 NUSAS에서 분리하여 창설하고 그 초대 의장에 선출되었다. 이후 스티브 비코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흑인의식운동의 대중조직인 BPC의 구성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비코는 이러한 활동들로 인해 1973년 3월 보안관찰처분을 받았지만 보안관찰 지역인 킹윌리엄스 타운에서 흑인들의 권익신장을 위한 흑인공동체 운동을 주도하고 정치범과 그 가족들을 위한 지멜레 신용기금을 조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지속했다. 그리고 도널드 우즈와 만나 우정을 쌓은 것도 이 즈음의 일이었다.

– 체제를 뛰어넘은 우정
이 책에서 도널드 우즈는 스티브 비코와 나누었던 우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한 쪽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에서 특권을 타고난 백인 신문 편집장이었고, 다른 한 쪽은 흑인의식과 흑인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흑인운동가였다.
백인으로서는 드물게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였던 도널드 우즈는 비코를 만나기 전 비코가 이끌고 있던 흑인의식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인종주의를 거부하는 도널드 우즈에게 비코의 운동은 흑인에 의한 새로운 인종주의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티브 비코의 흑인의식운동은 백인의 지배를 흑인의 지배로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흑인의식운동은 백인 통치에 의해 자신들에게 덧칠된 부정적인 의식을 극복하자는 긍정의 운동이며, 또한 인종주의적 가치관과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백인들의 의식을 해방시켜 궁극적으로 남아공을 흑인이나 백인이 아닌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인간들이 사는 나라로 만들려는 것이 바로 스티브 비코의 운동이었던 것이다. 결국 도널드 우즈는 비코를 직접 만나서 스티브 비코의 이러한 사상과 그의 인간성에 매료되었다. 그는 인종문제에 관한 새로운 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고 아내 웬디와 함께 비코와 비코가 이끄는 운동으로 빠져들게 된다.
앞서 나는 스티브가 내가 만나본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위대함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함을 어떻게 측정하는가? 사람마다 각기 다른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만나보게 되는 영광을 누렸던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 스티브 비코라고 말할 때,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그가 대다수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삶의 영역인 정치에서, 내가 만나본 그 어떤 사람도 갖추지 못한 감동할 만한 자질과 능력들을 지녔다는 뜻이다.―본문 중에서(P. 141)
스티브 비코는 명철함과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유머감각과 온화함도 지니고 있었다. 이 책의 곳곳에서 스티브 비코와 도널드 우즈가 나누는 장난기 어린 농담들은 우리에게 스티브 비코가 얼마나 명랑하고 활기찬 인물인지를 잘 보여준다. 흑인에 대한 일상적인 억압이 자행되고,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흑인에게는 엄중한 탄압이 가해지는 나라에서 흑인으로, 그리고 흑인운동가로 살면서 겪는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비코는 결코 인간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누구나 그에게서 온화함과 친근함을 느끼는 이유였다.
설사 그것이 남아공 보안경찰의 수장인 크뤼에르 경찰총장이건, 남아공 총리인 포르스테르건 스티브 비코는 인간으로서의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티브 비코가 항상 온화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보안경찰에 대해 말할 때면 그것이 보안경찰 한 명을 지칭한다 해도 항상 ‘체제’라는 말을 사용했다. ‘인간’으로서 그에게 다가온다면 비코는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그것이 ‘체제’라면 스티브 비코는 끝까지 저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잘 들어, 너희들이 너희들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고 싶으면 내게 수갑을 채우고 발도 같이 묶어야 할 거야. 그래야 내가 대응을 할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대응하도록 내버려두면 나는 반드시 저항할 거야. 그렇게 되면, 너희들이 의도치 않게 나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지.”―스티브 비코, 본문 중에서 (P. 27)
– 히틀러는 죽지 않았다
1994년 5월 넬슨 만델라를 대통령으로 하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정부가 출범했다. 이는 길게는 350년 전 유럽인들의 이주로 시작된 백인통치 역사의 종말을, 짧게는 1948년 법제화된 아파르트헤이트의 종말을 의미했다. 히틀러가 전쟁에서 패한 지 거의 50년이 되었고, 냉전조차도 끝나 버린 20세기의 끄트머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또한 그 승리는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지배하는 역사는 이제 끝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인류는 보편적 인권이 살아 숨쉬는 21세기로 함께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고, 그래서 더이상 급박한 생존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스티브 비코처럼 싸우다 죽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라디오를 켜고 폰돌란드 숲에서 누군가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나는 우리가 이제껏 속아왔다고 말한다. 히틀러는 죽지 않았다. 라디오를 켜고 누군가 감옥에서 비누 조각 하나에 미끄러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우리가 이제껏 속아온 것이라고 말한다. 히틀러는 죽지 않았다. 프리토리아에 가면 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브 비코, 본문 중에서(P. 245)

○ 출판사 서평
– 검은 거인, 반투 스티브 비코!
반투 스티브 비코 (Bantu Steve Biko)는 그의 삶과 죽음 모두가 남아공 흑인저항운동의 상징인 인물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한창이던 1960년대 초 주요 흑인지도자였던 만델라와 소부퀘가 로벤 섬에 수감되었고 남아공 흑인운동은 지도력의 공백상태에 놓여 있었다. 아프리카너(Afrikaner) 백인 정권의 탄압으로 흑인들은 깊은 패배감에 빠져 활력과 자신감을 잃고 있었고, 더이상 희망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이때 흑인들의 자존심 회복과 흑인의식의 고취를 주장하며 탁월한 지도력으로 흑인운동의 전면에 나선 이가 바로 스티브 비코다. 그는 특유의 명철함으로 흑인들이 흑인 존재 자체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할 것을 촉구하는 흑인의식운동을 창안하였고, 또한 탁월한 카리스마로 흑인들의 삶을 개선하고 흑인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여러 조직들과 운동을 이끌었다. 이러한 두드러진 활동들로 스티브 비코는 결국 남아공 백인정부의 탄압을 받게 된다. 스티브 비코는 남아공 정부로부터 받은 보안관찰 처분으로 집필과 정치활동을 금지당했으며, 거주를 제한당했고 다양한 혐의로 수차례의 체포와 구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의 동료들과 남아공의 흑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해외의 반인종주의 운동가들 사이에서 그는 이미 남아공의 중요한 흑인 정치지도자로 부각되어 있었다.
스티브 비코는 1977년 8월 18일 도로상에서 동료인 피터 존스와 함께 체포된다. 알몸으로 씻을 물도 없이 수감되어 있던 스티브 비코는 9월 6일 보안경찰 건물인 샌럼빌딩 619호실로 옮겨져 당한 고문과 구타로 인하여 사망하였다. 나라 안팎으로 이름이 알려진 주요 지도자가 보안경찰에 의해 사망하자 국내외의 여론은 들끓었고, 남아공은 거센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이 책을 쓴 도널드 우즈(Donald Woods)였다. 스티브 비코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남아공의 신문 「데일리 디스패치」(Daily Dispatch) 지의 편집장이었던 도널드 우즈는 비코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폭로하고, 아파르트헤이트의 잔혹성을 고발하며 대중적 항의를 이끌었다. 백인 정부는 이러한 도널즈 우즈의 활동에 대해 비코에게 내렸던 것과 같은 보안관찰 처분으로 대응하였고, 공개적인 활동을 금지당한 도널드 우즈는 보안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이 글을 쓰게 된다. 비코와의 만남과 우정, 비코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의 잔혹함에 대한 분노와 고발을 담은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도널드 우즈는 국외로의 아슬아슬한 탈출을 감행하였고, 결국 영국으로 망명하여 이 책의 초판을 출간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또한 영화 「간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리처드 아텐보로우 감독에 의해 「Crying Freedom」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덴젤 워싱턴이 스티브 비코 역을, 케빈 클라인이 도널즈 우즈 역을 맡아 열연했고, 덴젤 워싱턴은 생애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한 작품이다. 스티브 비코에 관한 이 책과 영화는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렇게 스티브 비코는 죽은 후에도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저항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87년 한국은 박종철의 죽음과 6월 항쟁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박종철의 죽음과 너무도 흡사한 스티브 비코의 죽음을 그린 이 영화는 그해에 국내에 개봉되지 못했고 2년 뒤인 1989년에야 「자유의 절규」라는 제목의 비디오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