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 강의
에른스트 블로흐 / 열린책들 / 2008.8.30
블로흐가 강의한 내용을 모아 놓은 4권의 강연집 중 「중세 기독교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 부분을 골자로 하여, 고대 그리스 철학과 근대 철학 ― 마이몬, 셸링, 헤겔 ― 에 관한 글을 앞뒤에 덧붙여 구성한 책이다. 이 책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사상과 시대적 상황들에 관해 블로흐 만의 독창적인 사유방식을 바탕으로 하여 서양의 철학사를 개괄하고 있다.
또한 중세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이 고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제각기 고유한 사상적 특성을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특히 각 시기의 시대정신이 각각의 철학자에게 끼친 영향뿐 아니라, 그 철학자들의 사고가 시대에 끼친 놀라운 영향을 상호 관련 속에서 세밀하게 언급함으로써, 중세와 르네상스의 철학 전통을 현실 세계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사상적 기반으로 파악하고 있다.
블로흐의 대표 저서 『희망의 원리』에서 볼 수 있었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과 메시아적 희망의 결합을 각 시대의 대표적 철학자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펼쳐보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중세·르네상스 철학과 방대한 블로흐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목차
머리말
제1부 고대 그리스 철학
비아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피타고라스
프로타고라스
플라톤의 시라쿠사 여행, 관념적 이데아
테르툴리아누스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제2부 중세 기독교 철학
학사 과정과 책의 형태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로스켈리누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
로저 베이컨
둔스 스코투스
윌리엄 오컴
평신도 운동, 피오레의 요아킴
신비주의, 보나벤투라
신비주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제3부 르네상스 철학
서언
르네상스의 출발
조르다노 브루노
토마소 캄파넬라
파라켈수스
야콥 뵈메
프랜시스 베이컨
자연과학, 수학의 형성
토마스 홉스와 국가 계약 이론
잠바티스타 비코
제4부 근대 철학
마이몬의 의식의 미분법적 특성
셸링 ─ 생산을 논할 때 생산 주체를 잊지 말자
헤겔의 형체 이론
계산의 본질 그리고 원리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에른스트 블로흐 연보

○ 저자소개 :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
1885년 7월 8일 루트비히스하펜 암 라인에서 철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뮌헨과 뷔르츠부르크에서 철학, 물리학,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 입학 후 여섯 학기밖에 지나지 않은 1908년 ‘리케르트와 근대 인식론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해명’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탁월한 천재성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루카치, 브레히트, 벤야민, 크라카우어, 아도르노 등 동시대의 지성인들과 친교를 맺으며 루카치와의 표현주의 논쟁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으며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왕성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저술 활동에 몰두하여 철학, 정치 경제학, 신학, 문학,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법철학, 예술 등 가히 백과사전적이라 할 정도로 폭넓은 분야를 섭렵하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는, 아도르노와 벤야민 등 동시대 지식인들의 청년 시절에 큰 영향을 미친 『유토피아의 정신』을 비롯해 『기독교 속의 무신론』, 『혁명의 신학자 토마스 뮌처』, 『흔적들』,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 『주체 – 객체: 헤겔에 대한 주해』, 『크리스티안 토마시우스』, 『아비센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유물론의 문제들』, 『기독교 속의 무신론』, 『경향성 – 잠재성 – 유토피아』 등이 있다.
– 역자 : 박설호
현재 한신대 인문콘텐츠 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동독 문학 연구』(1998/2005), 『하이너 뮐러 연구』(공저, 1998), 『떠난 꿈, 남은 글. 동독 문학 연구 2』(1999), 『독일인 어떻게 살(았)지?』(공저, 2000), 『유토피아 연구와 크리스타 볼프의 문학』(2001), 『전환기 잊혀진 독일 문학과 사회적 (불)평등』(공저, 2002), 『독일 문학의 이해. 동독 문학과 통독 이후 문학의 이해』(공저, 2003), 『생태 위기와 독일 생태공동체』(공편, 2004), 『새로운 눈으로 보는 독일 생태공동체』(공편, 2005), 『하이너 뮐러의 연극 세계』(공저, 2006), 『작은 것이 위대하다. 독일 현대시 읽기』(2007), 『새롭게 읽는 독일 현대시』(2007), 『현대 문화 이해의 키워드』(공저, 2007),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 고백하다』(2008), 『꿈과 저항을 위하여』(2011), 『망각의 시대에 명작 읽기』(2013),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 통일 전후의 독일 소설』(2013), 『자연법과 유토피아』(2014), 『비행하는 이카로스』(2016),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사회심리학』(2016)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베를린의 유년 시절』(1992), 『문화적 투쟁으로서의 성』(1996), 『카를 마르크스, 토마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E북, 2003), 『빵과 포도주』(1997), 『희망의 원리』(5권, 2004), 『자발적 복종』(2004),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2008),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2009),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2011), 『마르크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2012)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테르툴리아누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그리스와 로마의 이성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고유한 분별력을 찾게 됩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믿을 만한 것은 허튼 것과 같다 (credibile quia ineptum)”고 말한 바 있지요. (…) 테르툴리아누스는 스토아 사상뿐 아니라, 데모크리토스 그리고 고대의 다른 유물론자들의 견해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감각 기관이 보여 주는 대로 물질적 개체를 현실에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질적 개체는 플라톤에 의해서 구체적 형태라는 이유로 파기된 바 있지요. 이 점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지금까지의 고대 관념 철학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p. 59
오리게네스는 오로지 세 단계의 성서 독해 방법(소재의, 심리적 그리고 영혼의 독해 방법)에 관한 이론만을 거론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요아킴은 오리게네스에 의해 제기된 해석학적 공간을 시간적으로 부글부글 발효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아킴은 성서 읽기의 세 가지 해석은 역사의 세 단계, 그리고 이와 관련되는 세 가지의 복음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교회의 첫 번째 세기는 공포의 시대이고, 두 번째 세기는 사랑의 시대이며, 도래하게 될 세 번째 세기는 신의 부호, 즉 구원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세기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신비로운 민주주의를 맞이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비로운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는 “세 번째 나라 (tertium imperium)”라고 명명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용어는 먼 훗날 가장 추악하고도 더러운 단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 요아킴의 세 번째 복음에 관한 역사철학적 입장은 14세기에 나타난 모든 혁명적인 평신도의 종교 운동에서 생명력을 이어갔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쾰른에서의 자유정신의 수도사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한 바스라 지역에서 활동하던, 순수한 정신을 추구하던 무함마드 종파의 수도사들도 이에 해당합니다. 이슬람의 금욕적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교도들이라든가, 혁명적 태도를 취하던 다른 종파들의 입장 역시 궁극적으로는 오리게네스가 지적한 성서의 세 번째 의미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p. 67~68
즉 자연은 스스로 분화하고, 개별적 인간들 그리고 사물들로 나누어진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하여 자연은 다양성의 영역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이는 창조의 원인에 관한 분석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 후에 자연은 다시금 방향을 바꾸어 맨 처음의 분화되지 않았던 일원성으로 환원됩니다. (…) 이러한 주장 때문에 오늘날 스코투스 에리우게나는 “중세 초기의 헤겔”이라고 명명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는 기이한 사상가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상은 이전의 시기에나 이후의 시기에 어떤 유사성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이기 때문입니다. —p. 97
아벨라르두스의 사고의 출발점은 당시로서는 매우 참신한 것이었습니다. 12세기에 이르러, 테르툴리아누스의 “신앙은 터무니없음과 같다”는 말은 안셀무스의 “신앙은 지성을 위한 것이다”로 발전하였습니다. 아벨라르두스 역시 이 점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벨라르두스는 “지성”에 대해 방법론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학문적 연구란 의심 내지는 의혹으로 시작되는 것이지, 신앙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벨라르두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말하자면 의심을 통해서 연구로 향하게 되고, 연구하면서 진리에 도달하게 되고, 진리를 인지하게 된다.” —p. 118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른바 중세의 황금기인 중기에 지배 계층이 갈구하는 어떤 조화로움의 사상적 체계를 쌓아올렸습니다. 조화로움에 대한 지배 계급의 갈구는 당시의 생산력과 생산 관계 사이의 차이를 시간적으로 극복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욕망은 구체적으로 말해 계급과 계급 사이의 균열을 교묘하게 메우고, 주어진 현 상태를 아름다운 무엇으로 미화시키려고 하는, 이른바 체제 옹호적인 의향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 토마스 아퀴나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고유한 극단적 이원론을 대립시키면서, 그 사이에 자리하는 어떤 평형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예컨대 그가 인간의 영혼 속에서 이 세상과 제 세상 사이의 어떤 가교를 발견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p. 148
로저 베이컨이 내세우는 수학, 물리학 그리고 윤리학은 매우 세속적인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학문 영역입니다. 놀라운 것은 신학이 가장 강세를 보였던 중세 시대에 누군가 이러한 과목을 제안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에는 수학이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물리학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 역시 거의 외면당하거나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자연과학은 중세 시대에는 마녀가 비밀리에 행하는 실험의 냄새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나아가 로저 베이컨은 윤리의 개념을 전통적 신학에서 거론하는, 이른바 높은 곳에서 영향을 끼치는 신의 미덕으로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윤리란 오히려 아랍 철학자들이 가르친 그대로, “자연스러운 빛 (lumen naturale)”,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삶을 환하게 밝혀 주는 자연스러운 빛을 가리킨다고 보았습니다. 윤리학의 기본적 토대는 무엇보다도 “경험”입니다. —p. 159
이는 어쩌면 신을 모독하는 결론적 입장으로서 흥미롭기 이를 데 없습니다. 윌리엄 오컴에 의하면 십계명은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할 때도 여전히 도덕적이라고 합니다. 만약 시나이 산에서 야훼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구술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예컨대 “너는 살인해야 한다”, “너는 훔쳐야 한다”, “너는 간음해야 한다”, “너는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해야 한다”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련의 끔찍한 강령들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도덕적으로 수용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그것이 선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신이 그것을 절실히 원하기 때문에 십계명은 선한 것입니다. —p. 178
이러한 주장 속에는 엄청난 이단적 견해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러한 주장을 통하여 인류 창조에 관한 기독교의 보편적 입장을 완전히 뒤집어 놓기 때문입니다. 에크하르트의 논리에 따르면 신만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게 아닙니다. 인간 역시 끊임없이 자신의 형상 속에서 신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인간은 신에 관한 잘못된 형상을 떠올릴 뿐 아니라, 순화된 형상 자체의 신빙성 있는 내용을 정확하게 연상해 냅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전적으로 타당합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신은 “함께하는 깨달음” 속에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p. 242
어쩌면 파라켈수스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르네상스적 인물이며, 파우스트의 많은 특징들과 일치합니다. 거인이자, 몽상가, 자연 연구가, 경험주의자, 세계시민 등등 이 모든 명칭은 파라켈수스에게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 대학교를 졸업한 의사인데도 불구하고 인민의 지식에 관해서 어떤 거대한 경외감을 품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마부들에게 무언가를 듣고, 오래전에 가정에서 사용했던 도구들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가령 헉헉거리는 말을 진정시키는 마부들의 방법이나, 나이든 여자 그리고 약초 캐는 여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 파라켈수스는 자연을 면밀하게 관찰할 때는 세심한 경험주의자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는 철학의 역사뿐 아니라, 의학의 역사에서도 하나의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어쩌면 철학사보다도 의학사를 강의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학자인지 모릅니다. —p. 332

○ 출판사 서평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겨우 합격하고, 대학 입학 후 불과 6학기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천재성을 보여 주며, 1949년 64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대학 교수가 되어 1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57년 대학 교수직을 강제로 퇴임당하지만, 이후 왕성한 저술 활동에 몰두하여 가히 백과사전적이라 할 정도로 폭넓은 분야를 섭렵하며 수많은 현대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저술을 남기고 향년 92세로 생을 마감한 현대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에 이어 두 번째로 에른스트 블로흐의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 강의』가 박설호 교수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 강의』는 블로흐가 강의한 내용을 모아 놓은 4권의 강연집 중 「중세 기독교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 부분을 골자로 하여, 고대 그리스 철학과 근대 철학 ― 마이몬, 셸링, 헤겔 ― 에 관한 글을 앞뒤에 덧붙여 묶은 것이다. 구성 면에서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사상과 시대적 상황들에 관해 나열하고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블로흐만의 독창적인 사유 방식으로 철학사를 개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이 고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제각기 고유한 사상적 특성을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각 시기의 시대정신이 각각의 철학자에게 끼친 영향뿐 아니라, 그 철학자들의 사고가 시대에 끼친 놀라운 영향을 상호 관련 속에서 세밀하게 언급함으로써, 중세와 르네상스의 철학 전통을 현실 세계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사상적 기반으로 파악하고 있다. 블로흐의 대표 저서 『희망의 원리』에서 볼 수 있었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과 메시아적 희망의 결합이 여기서는 각 시대의 대표적 철학자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중세·르네상스 철학에 대한 개론서이자, 방대한 블로흐 사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박설호 교수는 『희망의 원리』를 번역했던 과정에서 축적된 블로흐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국내 독자들이 보다 쉽게 블로흐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번역에 신중을 기했다.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 강의』는 블로흐의 저서들 중에서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다고 평가되지만, 박설호 교수는 내용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마치 블로흐의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강연문이라는 특성을 충분히 살려 번역하였다. 더불어 책의 말미에 블로흐의 연보를 함께 실어 그의 삶과 저술 활동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에른스트 블로흐의 『기독교 속의 무신론 : Atheismus im Christemtum』 또한 박설호 교수의 번역으로 연속 출간
-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을 통한 ‘철학사의 중간 세계들’ 찾기!
2004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는 오늘날까지도 그 의미가 완전하게 파악되지 않은 신비스러운 저술로 평가된다. 네오마르크스주의, 신학, 문학, 음악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에 충격적인 영향을 주어 왔으며, 블로흐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와 정치 경제학자들이 현실의 계급 관계 등에 관심을 집중한 것과 달리 지금까지 연구 대상에서 외면된 미래 영역을 주 탐구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독특한 사유를 발전시킨 블로흐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강연집 가운데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중세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에 관한 내용을 통해, 블로흐의 철학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철학사의 세부 사항을 빠짐없이 다루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단편화된 사상, 다시 말해서 부분적 특성만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혹자는 이 책을 보고 여러 방면에 걸친 논문 모음집이라는 인상을 받을지 모릅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의 어떤 사상적 특성들을 간헐적으로 기록한 게 바로 이 문헌이라고 생각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관심사는 철학사에서의 「중간 세계」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문」 중 p. 22
블로흐가 말하는 중간 세계, 더 정확히 「중간 세계들 (Zwischenwelten)」은 흔히들 알고 있는 에피쿠로스학파에서 말하는 인간 세계 혹은 인간 외적인 세계로서의 「중간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한 번도 명확하게 이 개념을 설명하고 있진 않지만, 책의 내용을 통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간 세계」란, 고대와 현대 사이에 놓인 세계들(중세, 르네상스)이라는 시대적 의미, 지옥 혹은 천국과 같은 신적인 세계와 물질적 현상만을 좇는 인간적 세계 사이에 존재할 것이라고 「희망」하는 더 나은 세계라는 유토피아적·공간적 의미, 당시의 주류적 사유 체계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이후 특정한 시대 상황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즉 주류의 틈바구니에서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며 탈시대적인 특성을 보여 주는 기이하고 독특한 철학적 사유라는 사상적 의미 등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 세계」는 하나가 아닌 여럿을 의미하는 복수형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블로흐가 말하는 「중간 세계」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명확한 철학적 개념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만의 독특한 사유를 통해 철학사를 바라보는 블로흐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철학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에 이 「중간 세계」라는 표현은 분명 도움이 된다.

- 마르크스적 비판과 메시아적 철학을 결합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의 원리」를 말했던 그가 중세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블로흐의 메시아적인 철학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신학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철학적 범주들을 발견했다」고 하는 위르겐 몰트만, 「블로흐는 일반적인 사회주의 문헌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품위 있고, 공정하며, 방법적인 결함이 전혀 없는 사유라는 시민 사회의 전통으로, 그의 경우에 그것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바탕을 둔 사유로 드러난다. 고도로 정교한 개념적 수단들을 이용하여 그는 오늘날의 시민 사회의 문화 ― 유행에 극도로 민감하고, 그 결과 아주 경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정치경제적 상황에 그 의존성을 드러내는 ― 를 진단하고 해부한다」라고 한 헤르만 헤세, 「정치와 종교에 대한 블로흐의 사유는 아무리 길어 내도 결코 그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거대한 수원이다」라고 한 조지 스타이너 등등 블로흐에 대한 아낌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면, 현대의 지성인들이 블로흐를 통해 현대 사회의 새로운 사유 방식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블로흐가 중세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을 개괄하면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블로흐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기이하게 여기고 질문을 제기하는 호기심을 지니고,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자연에 대한 전율을 극복하고자 애쓰며, 끝없이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존재라고 전제한다. 그러나 인간의 개별적인 노동은 주어진 계급 사회에 의해 제한되고, 인간의 사유 또한 계급 사회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또한 특정한 시대의 주도적인 사고는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는 사고임을 동시에 강조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상황을 뒤흔드는 혁명적 사유의 출현을 막지는 못한다. 블로흐는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 강의』에서 인간의 특성인 「기이하게 여김 내지 놀라움」이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적 사유가 되고, 철학사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 등장한 유명론, 기독교의 천년 왕국설, 독일 신비주의, 르네상스의 범신론, 자연 과학의 발전, 근대적 국가 모델 등을 계몽주의적 사유와 시민 계급의 성장이라고 하는 현실 세계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사상적 기반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블로흐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간과되거나 혹은 철학자 본인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부분, 얼핏 보기에 불합리하거나 역설적으로 보이기까지 한 「지엽적」 사항들이 철학사를 통시적 관점에서 조망할 때 오히려 「핵심적인」 문제임을 깨닫게 됨을 강조한다.
가령 몇몇 이론들은 얼핏 보기에는 불합리한 것 같지만, 결코 불합리하다고 파기될 수 없으며, 오히려 어떤 핵심적 문제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가령 윌리엄 오컴 (William Ockham)이 베들레헴 헛간에서 붉은 「벽돌로 화한」 신의 특성을 철학적 신학적 사고로 규정한 것을 생각해 보세요. 나아가 이데올로기 비판의 측면에서 우리는 어떤 기이한 예외 사항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어떤 사상이 주어진 사회에 종속된다는 관점인데, 이는 과히 시대를 앞선 사고나 다름이 없습니다. 과연 스코투스 에리우게나Scotus Eriugena의 자연에 관한 가르침은 9세기의 사제들의 이데올로기적 관심사와 어떠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을까요· 로스켈리누스 (Roscellinus)의 유명론 (唯名論)이 당시에 서서히 형성되던 봉건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관심사와 어떻게 관계될까요· 상기한 모든 내용을 다루는 데 있어서 우리는 역사의 시간 순서를 항상 고수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의 놀라운 예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기독교 신비주의입니다. 기독교 신비주의는 평신도 운동 그리고 이와 유사한 종교적 움직임 등을 고려할 때 스콜라 철학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이어 나갔으며, 때로는 스콜라 철학과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서문」 중 p. 23~24
예를 들면 중세 초기 로스켈리누스의 극단적 유명론은 둔스 스코투스와 윌리엄 오컴에게까지 이어진다. 신이 베들레헴 헛간에서 「붉은 벽돌」로 예수를 태어나게 했다면 우리는 인간의 아들이 아닌 벽돌을 신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윌리엄 오컴의 사유는 스콜라 철학이 지배하던 중세의 절정기에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유명론의 전통은 민중의 시민 의식과 자의식의 싹을 엿볼 수 있는 중세 말기 기독교 신비주의, 평신도 운동의 시기를 거쳐,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계급 혁명을 이루고자 했던 이들의 사상적 배경이 된 변증법적 유물론에까지 그 전통을 이어간다.
또한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 끼어 있는 「중간」을 발견하고자 하는 블로흐의 노력은 우리로 하여금 르네상스 철학을 하나의 독자적 영역으로 재평가하게 한다. 이탈리아의 텔레시오, 폼포나치 등의 사상은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었고, 플라톤의 「국가」, 스토아학파의 「세계 국가」, 기독교의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나라」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로 이어지는 사회 유토피아를 발견하게 되며, 조르다노 브루노, 토마소 캄파넬라, 독일의 파라켈수스, 야콥 뵈메의 사상은 현세의 행복과 우주에 대한 찬란한 기대감을 심어 주었고, 이것이 프랜시스 베이컨의 실험과 발견을 통한 기술주의와 접목함으로써 당시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과 우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견지하게 해주었다.
당시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어느 날 시대정신과 만나 철학사뿐 아니라 인류의 문화사를 추동하는 힘을 발휘하게 되는 「창조적 사상들」! 이것이 바로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바탕을 둔 사유를 통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고자 했던 블로흐가 중세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에서 주목한 지점이다.

크리스찬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