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
원제 : Sous l’invocation de Saint Jerome (1946년)
발레리 라르보 / 아카넷 / 2012.12.31
20세기 전반기의 프랑스에서 작가, 번역가, 평론가로 왕성히 활동한 발레리 라르보의 번역에 대한 무한한 애정, 그 실천에서 길어 올린 번역에 관한 진지한 성찰, 풍부한 독서 이력 등이 어우러진 독특한 성격의 에세이집이다. 제대로 된 번역 비평의 기회를 제공해주면서 현대 번역학과 우리의 번역 문화를 검토해보게 하는, 번역학의 시원(始原)에 존재하는 번역학의 고전이다. 번역학 박사이자 전문번역가인 정혜용이 번역을 맡았다.
훗날 번역에 관한 이론적 성찰이 ‘번역학’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난 후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면서 다루게 되는 거의 모든 번역학 주제들이 담겨 있다. 성 히에로니무스(347경~419경)는 라틴어역 성서 『불가타』를 남긴 성서학자이자 성서번역가인데 저자가 ‘번역가들의 수호성인’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 목차
제1부 번역가들의 수호성인
제2부 예술과 직능
번역에 대하여
I. 소명 / II. 번역가의 권리와 의무 / III. 번역가의 기쁨과 이익 / IV. 번역가의 저울 / V. 번역의 집정관 / VI. 사랑과 번역 / VII. 끝나지 않을 이야기 / VIII. A. 프레이저 타이틀러 / IX. 뾰족한 연필심 / X. 성마른 족속 / XI. 성마름 치료법 / XII. 인간의 영예
고찰
I. 군 복무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 II. 제 손가락으로 제 눈 찌르기 / III. 미치광이 / IV. L. Q. / V. 예스러운 표현들 / VI. 서술의 부정법 / VII. 세계문학을 향하여 / VIII. “캐나다로 가다” / IX. 오래된 요리법 / X. 모국어 / XI. “돼지 잡다” / XII. 속돌과 천연금괴 / XIII. 우리의 엔니우스가 노래하듯이 / XIV. 과학의 진보…… / XV. 낯섦의 분위기 / XVI. “나에겐 애인이 둘 있네”
제3부 기법 혹은 영감에서부터 인쇄술까지
군주의 실력 행사 / “그 나머지는 모두 문학” / 맥스 비어봄, 스탕달 그리고 마시용 / 스탕달의 연옥 / 불타는 오열 – 통계 에세이 / 조화의 딸들 / 역겨운 인간들 / 선집 / 태만 / 인용 / 투사 좐 / 성년 / 생존경쟁 / 탄도학 / 정관사의 부침 / 자료: 몇 가지 지명들 / 이구아수 / 문학적 구두법 / 새 노선의 창시를 위하여 / 르낭, 역사, 그리고 문학비평 / 에밀리오 베르타나와 비토리오 알피에리 / 아름다운 세 거지 소녀 / 그라나다의 카르투하 수도원 / 인쇄업자들에게 부치는 편지 / 색인
부록
I. 월터 새비지 랜더: 『이탈리아의 높고 낮은 계층』(일부) / II. 영문학: 영어식 표현의 문제 / III. 발레리 라르보가 루아예르에게 보내는 서한 / IV. 프랑스 문학과 외국 문학 사이의 상호영향 / V. 앵글로색슨 문학
옮긴이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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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발레리 라르보 (Valery Nicolas Larbaud)
20세기 전반기의 프랑스에서 작가, 번역가, 평론가로 왕성히 활동한 인물이다.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럽 각국의 문물과 언어를 접할 기회가 잦았고, 이러한 유년기는 그에게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과 타자의 문화의 낯섦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었다. 창작에 비해 번역이라는 글쓰기의 열등성 이데올로기가 확고하게 뿌리내린 20세기에 작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서슴없이 번역에 바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 역자 : 정혜용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번역출판기획네트워크 ‘사이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번역 논쟁』, 역서로는 『동의』,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에디의 끝』, 『연푸른 꽃』, 『지하철 소녀 쟈지』, 『식탁의 길』,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삐에르와 장』,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 『에콜로지카』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 (1946)는 발레리 라르보의 번역에 대한 무한한 애정, 그 실천에서 길어 올린 번역에 관한 진지한 성찰, 풍부한 독서 이력 등이 어우러진 독특한 성격의 에세이집이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성 히에로니무스 (347경 ~ 419경)는 라틴어역 성서 『불가타』를 남긴 성서학자이자 성서번역가인데 저자가 ‘번역가들의 수호성인’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책에는, 훗날 번역에 관한 이론적 성찰이 ‘번역학’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난 후 다루게 되는 거의 모든 번역학 주제들이 담겨 있다. 동일한 주제를 놓고서도, 현대의 다양한 번역학 이론들은 비전공자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전문적인 언어를 휘두르는 반면, 라르보는 유려한 문체와 고아한 언어 그리고 박학다식하나 현학적이지 않은 면모를 통해 독자에게 지적 즐거움을 안겨준다는 것이 다른 점이자 이 책의 미덕이라 하겠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는 제대로 된 번역 비평의 기회를 제공해주면서 현대 번역학과 우리의 번역 문화를 검토해보게 하는, 번역학의 시원 (始原)에 존재하는 번역학의 고전이다.
제I부는 ‘번역가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히에로니무스에게 바쳐진 글로서, 히에로니무스에 관한 전기적 사실과 그가 남긴 텍스트들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번역에 대하여’와 ‘고찰’ 두 부분으로 된 제2부 「예술과 직능」, 제III부 「기법 혹은 영감에서부터 인쇄술까지」는 번역을 필두로 국내외 문학, 예술, 여행, 역사, 출판 등 다양한 주제의 길고 짧은 에세이들이다.

– 저자 발레리 라르보, 당시 작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서슴없이 번역에 바친 거의 유일한 인물
발레리 라르보 (1881 ∼ 1957)는 20세기 전반기의 프랑스에서 작가, 번역가, 평론가로 왕성히 활동한 인물이다.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럽 각국의 문물과 언어에 접할 기회가 잦았으며, 이러한 유년기는 그에게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타자의 문화의 낯섦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키워주었다. 요컨대 라르보는 번역가에게 필수적인 두 가지 자질을 모두 갖춘 이상적인 사례였다.
라르보는 평생을 책읽기와 글쓰기로 자신의 삶을 채워나갔으며, 책읽기를 통해 발굴한 작가를 번역이라는 글쓰기를 통해 자국의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다. 특히, 본국에서 출판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프랑스에서 출판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셰익스피어 & 컴퍼니 서점 주인 실비아 비치를 적극 도우면서, 자진하여 번역 감수를 맡고, 조이스 작품의 문학성에 대한 프랑스 문단의 인정을 이끌어낸 일은 유명하다. 라르보의 번역을 거쳐 프랑스 독자들에게 소개되는 행운을 누린 작가들로는 새뮤얼 버틀러,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라몬 고메스 데 라 세르나 등을 꼽을 수 있다.
라르보는, 창작에 비해 번역이라는 글쓰기의 열등성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이미 확고하게 뿌리내린 20세기에 작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서슴없이 번역에 바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라틴어역 성서 『불가타』를 남긴 성 히에로니무스를 번역가들의 수호성인으로 추앙했지만, 번역 실천과 번역 이론 모두에서 남긴 커다란 족적을 고려해볼 때 라르보 자신이야말로 20세기의 성 히에로니무스라 칭할 만하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에는 라르보의 이러한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 역자 정혜용, 번역 ‘이론’과 번역 ‘현장’ 그 ‘사이’를 누비는 번역학 박사이자 전문번역가
역자 정혜용의 이력 또한 관심을 끈다. 서울대 불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뒤 파리 3대학 통번역대학원 (E.S.I.T.)에서 번역학 박사학위를 받고,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인 정혜용 역시 라르보와 마찬가지로 번역 이론 연구와 번역 실천의 모두를 공유하는 보기 드문 번역가이다.
정혜용은 저서 『번역 논쟁』 (2012. 1)에서 번역학계와 번역 현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괴리와 논쟁들에 대해 문학번역 이론 전공자이자 전문번역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다. 그에게 번역은 “원작 텍스트를 주체적으로 읽고 모국어로 새로 쓰는 작업”이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는 저자와 역자 둘 다 번역 이론과 번역 실천 모두를 아우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번역 궁합이 이보다 더는 좋을 수 없는 사례라 하겠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