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열자 (列子)
열자 / 시공사 / 2001.1.31
그리스에 ‘이솝우화’가 있고 인도에 ‘판차탄트라’가 있다면 중국에는 ‘열자'(列子)가 있다. ‘열자’는 한 마디로 이야기, 그것도 우화에 가까운 이야기 책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란 말의 출처가 되는 이야기 ‘원숭이 달래기’,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출처가 되는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비롯하여 철학적 논리나 어떤 가설이나 명제를 증명하는 글이 아닌, 지혜로움과 넉넉함을 주는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 목차
1. 천서(天瑞)
2. 황제(黃帝)
3. 주목왕(周穆王)
4. 중니(仲尼)
5. 탕문(湯問)
6. 역명(力命)
7. 양주(楊朱)
8. 설부(設符)
○ 저자소개 : 열자(列子.?∼?)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열자(列子.?∼?)
본명은 열어구(列禦寇). 중국 도가의 기본사상을 확립시킨 3명의 철학가 가운데 한 사람이며, 도가 경전인 ‘열자’의 저자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책 속에 포함된 글 가운데 많은 부분이 후대 사람들의 위작(僞作)으로 밝혀져, BC 100년경 전한(前漢)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사기 열전(列傳)에서 열자를 제외시켰다. 이런 사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가공인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의 학자 대부분은 그가 실존인물이었다고 믿는다. 열자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나, 그 당시의 다른 학자들처럼 많은 제자들을 거느렸고, 전국시대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왕후(王侯)들에게 유세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작품은 해학에 가득 찬 문체와 결정론을 강조한 철학이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도가의 주요사상가인 노자나 장자와는 달리 인간의 미래는 운명이 아니라 주로 인과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르쳤다.
중국 고대의 사상가. 이름은 어구(禦寇). 정(鄭)나라 출신. 도가(道家)의 대표자, 또한 그 서적을 말한다. 노자(老子)의 제자, 또는 관윤자(關尹子)의 제자라고 하며 혹은 노상자(老商子)의 제자라고도 한다. 이 외에 장자(莊子)의 선배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사적(事績)은 불분명하다. <열자(列子)>와 <장자(莊子)>의 책 가운데 열어구(列禦寇)의 설화가 실려 있는데, 어느 것도 사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그 때문에 인물의 실재를 의심하는 설도 있다.
열자의 사상은 확실하지 않으나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허(虛)를 숭상했다’고 밝혀놓은 것을 근거로 한다면 이해득실에 얽매이지 않는 허심처세(虛心處世)의 사상으로 보인다. <노자>에서 말하는 무위(無爲)ㆍ무지(無知)ㆍ무욕(無欲) 등과 통할 수 있는 사상이다. <열자>에서는 천지의 생성변화를 형(形)과 기(氣)와 질(質)의 3가지가 섞인 ‘태역(太易)‘을 그 시원(始源)에 두고 생과 사의 왕복(往復)을 말함으로써, 신선적 양생설에도 도달하였으며, 운명을 말하고 꿈을 말하면서 대담한 쾌락설을 주장하는 등 여러 가지 특색이 있는 내용이 있으며, <장자>를 비롯한 다른 책들과 중복되는 부분도 많다.
열자의 모습은 <장자>에서 ’바람을 제어하며 가다‘ 등으로 소개되어, 마치 선인(仙人)과 비슷한 풍모를 지닌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열선전(列仙傳)>이나 <신선전(神仙傳)>에서는 선인으로 쓰여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唐)나라 때부터 도교신앙에서 장자나 문자(文子)와 함께 신격화되었으며 충허진인(沖虛眞人)이라고 하여 모시게 되었다.
– 열자 소개
중국 전국시대(BC 475~221)의 사상가.
본명은 열어구(列禦寇). 중국 도가의 기본사상을 확립시킨 3명의 철학가 가운데 한 사람이며, 도가 경전인 〈열자〉의 저자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책 속에 포함된 글 가운데 많은 부분이 후대 사람들의 위작(僞作)으로 밝혀져, BC 100년경 전한(前漢)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사기〉 열전(列傳)에서 열자를 제외시켰다. 이런 사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가공인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의 학자 대부분은 그가 실존인물이었다고 믿는다. 열자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나, 그당시의 다른 학자들처럼 많은 제자들을 거느렸고, 전국시대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왕후(王侯)들에게 유세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작품은 해학에 가득 찬 문체와 결정론을 강조한 철학이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도가의 주요사상가인 노자나 장자와는 달리 인간의 미래는 운명이 아니라 주로 인과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르쳤다.
– 열자소개
열자(列子: 기원전 4세기)는 중국 전국 시대의 도가(道家) 사상가로, 이름은 어구(禦寇)이다.
정(鄭: 806~375)의 은자로서 기원전 4세기경의 사람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열자(列子)》 8편이 남아 있으나 그것은 후세의 위작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열자의 사상도 분명히 일부나마 남겨져 있다. 《열자》의 〈황제편〉을 보면 열자가 관윤(關尹)과 나눈 담화가 기재되어 있으므로 열자는 관윤을 통하여 노자의 사상을 배운 사람이 아닌가 한다.
노자는 현상의 본원을 도(道)라고 불렀으나 열자는 도를 태역이라고 바꾸어 불러 천지만물을 생성시키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열자는 도가적 우주론을 노자 이상으로 깊게 구축하였다. 그리하여 우주를 통해 흐르고 있는 우주적인 법칙을 좇아 사는 것이 인간의 진실된 삶의 방법이라고 했다.
《열자》의 〈천서편(天瑞篇)〉에는 “정(靜)하고 허(虛)하면 그 거(居)를 얻으리라”하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잡가(雜家)의 대표작인 《여씨춘추》의 〈불이편(不二篇)〉에서는 “열자는 허(虛)를 귀히 여긴다”라고 평하고 있다.
유명한 “우공이산(愚公移山)”과 “기우(杞憂)”의 고사는 《열자(列子)》에 실려 있는 우화(寓話)로서, 《열자(列子)》는 《장자(莊子)》와 함께 도가적 우화가 풍부한 서적으로도 알려져 있다.
– 역자 : 정창영
1955년 충남 전동에서 태어나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뒤 강릉과 금산에서 목회 활동을 하였다. 지금은 언어의 틀이나 도그마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만나게 되는 신성(神性)의 빛을 추구하며, 성경을 동양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작업과 함께 인도, 티베트, 중국 등 동양의 고전과 경전을 쉬운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80년대에『현대의 성서』번역팀에 참여하면서 고전과 경전 번역에 관한 이론적 기초를 닦았으며, 고전 번역을 수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옮기거나 엮은 책으로는『종교에 매이지 않은 그리스도인』『성경에 관한 논쟁』『예수와 여성』『내면의 불꽃』『동양정신과 서양정신의 결혼』『창세기의 비밀』『초인생활』『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등이 있으며, 샴발라 총서『도덕경』『바가바드 기타』『탈무드』『티벳 사자의 서』가 있다.
○ 책 속으로
어떤 사람이 깨달은 사람인지 아닌지가 무슨 문제인가? 만약 그대가 그대의 일에 정직하고 진실되고 올바르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른 사람이 그대의 덕을 알아 주어야 그대의 덕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깨달은 사람인지 아닌지에 신경쓰지 말고 그대 자신의 깨달음을 성취하라. 공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 p.143
송나라에 원숭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원숭이를 좋아하다 보니 온 집안이 원숭이 천지였다. 그는 식구들이 먹는 음식을 줄이면서까지 원숭이를 배불리 먹였다. 이러다 보니 그는 원숭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되었고 원숭이들도 그의 마음과 기분을 알아차렸다.
그러다가 생활이 점점 쪼들리게 되어서 원숭이에게 주는 먹이를 줄여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먹이를 줄이면 원숭이들이 말을 안듣고 말썽을 피우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는 원숭이들을 속여서라도 달래 볼 생각으로 말했다.
“너희들에게 도토리를 주려고 하는데 아침에는 세 개씩 주고 저녁에는 네 개씩 줄 생각이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그랬더니 원숭이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소리를 꽥꽥 지르며 성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아침에는 네 개씩 주고 저녁에는 세 개씩 주겠다. 그러면 되겠지?”
이 말에 원숭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좋아했다.
영리한 지도자들이 어리석은 백성을 농락하는 방식이 대체로 이렇다.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사람을 현혹하는 방식도 대체로 이렇다. 아침에 세 개씩 주고 저녁에 네 개씩 주건, 아침에 네 개씩 주고 저녁에 세 개씩 주건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건만, 말하기에 따라 원숭이를 성내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 하기도 하지 않는가! — pp.101-102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