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예술의 종말 이후 :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아서 단토 / 미술문화 / 2004.4.20
– 예술은 끝났는가? 혹은 새롭게 시작되었는가? 예술을 이름 짓는 단토의 지적 여정, 뒤샹에서 워홀까지 현대 예술의 본질을 추적하다
『예술의 종말 이후』는 현대 예술이 전통적인 분류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책이다. 단토가 말하는 예술의 종말은 예술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이상 특정한 형식으로 정의될 수 없는 새로운 길을 맞이했음을 뜻한다. 그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에서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에 이르기까지, 현대 예술이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철학적 질문이 된 과정을 추적한다. 그는 예술의 본질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변화해 왔으며, 오늘날 예술이 더 이상 과거의 기준으로 평가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또한, 그는 예술이 단순히 서양적 전통이나 동양적 미학의 틀에 갇히지 않으며, 현대 예술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문화와 사유가 융합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은 ‘예술의 죽음’이 곧 예술의 소멸이 아니라, 그 개념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현대 예술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부각한다.
『예술의 종말 이후』는 예술 이론을 깊이 탐구하는 철학도뿐만 아니라, 현대 예술을 이해하고자 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통찰을 제공하는 필독서다. 예술은 과연 끝났는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것인가? 단토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예술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될 것이다.

○ 목차
한국어판 서문 “예술의 종말과 미래”
서문
1장 들어가는 말 : 모던, 포스트모던, 그리고 컨템퍼러리
2장 예술의 종말 이후 30년
3장 거대서사 그리고 비평의 원리들
4장 모더니즘과 순수미술의 비판: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역사적 비전
5장 미학에서 미술비평으로
6장 회화와 역사의 울타리 : 순수의 경과
7장 팝아트와 지나간 미래
8장 회화, 정치, 그리고 탈 역사적 미술
9장 모노크롬 미술의 역사적 미술관
10장 미술관과 갈망하는 수백만의 군중들
11장 역사의 양상들 : 가능성과 희극
역자해설: 단토의 예술철학 혹은 철학적 미술사 – 이성훈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에 관하여- 김광우

○ 저자소개 : 아서 단토 (Arthur C. Danto)
미국의 예술철학자. 세계적인 현대예술 비평가이자, 전위예술의 옹호자, 특히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4년생으로, 웨인주립대학교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공부한 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부터 1992년까지 컬럼비아대학교 철학교수를 지냈으며, 은퇴 후 명예교수가 되었다.
1984년부터 2009년까지 『네이션』지의 예술평론가로 활약했으며, 『철학저널』 『아트포럼』 등의 편집을 맡았고, 미국철학회장과 미국미학회장을 역임했다.
단토는 1964년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보고 ‘무엇이 이것을 예술로 만드는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으며, 같은 해 발표한 논문 〈예술계〉로 ‘예술의 정의’ 논쟁을 촉발했다.
그의 선구적 문제 제기는 예술을 어떤 미학적·형식적 특징이 아니라 예술계 종사자들의 사회적 합의로 규정하는 ‘예술제도론’으로 이어졌다.
단토는 1960년대부터 다양하게 분출하기 시작한 새로운 예술을 옹호하면서 ‘예술의 종말’이라는 논쟁적인 선언을 했다.
현대예술은 더 이상 전통적 미학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모방이론으로 대표되는 서양예술의 한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이제 예술은 역사이후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단토의 ‘예술의 종말’은 예술은 어떠해야 한다는 제약이 모두 사라졌으며 이제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곧 새로운 예술의 시작, 현대예술의 해방 선언이었다.

뒤샹의 전위예술에서 난해한 개념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원적 현대예술은 과거처럼 그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작품은 표상과 실재, 재현과 진실의 관계를 묻는 일종의 사고실험이기에, 그들의 공통분모인 작품 안의 생각, ‘구현된 의미’를 파악하려는 철학적 비평을 요구한다.
단토는 현대예술이 예술철학에 의해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헤겔의 ‘예술의 종말’에서 예술이 철학으로 승화된다면, 단토의 ‘예술의 종말’에서 예술은 육화된 철학이 된다.
단토는 아무리 추하고 혐오스러운 작품이라도 섣부른 부정적 평가를 삼가고 항상 호감과 호기심을 품었으며, 각자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는 동시대 예술의 개방성과 자유를 사랑했다. “미술관에는 분명 시시한 작품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시대 예술계에는 독창적이고 지적이고 고상한 작품도 많다. 예술계 밖의 사람들이 그것을 공유한다면 우리는 다시금 예술의 황금기에 들어설지 모른다.”
『일상적인 것의 변용』 『예술의 종말 이후』 『무엇이 예술인가』는 단토의 현대예술철학 3부작이다. 『일상적인 것의 변용』이 현대예술작품의 존재론이고, 『예술의 종말 이후』가 현대예술철학사라면, 『무엇이 예술인가』는 현대예술계에서 수상쩍은 것으로 의심받고 배척당한 미의 능욕의 역사를 들려준다.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발명되어 오랫동안 예술과 동일시되었던 미는 어떻게 모더니즘 예술, 특히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예술에 의해 버림받았는가? 미에 등을 돌리고 ‘쿨’해지기로 한 결심, 더 이상 ‘망막의 전율’을 위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예술가들의 결단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아름답지 않은 것, 노골적으로 추하고 혐오스럽고 경멸스러운 것들도 예술일 수 있다면 이제 예술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무엇이 예술인가』는 예술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모두 무너져내린 ‘예술의 종말’의 시기에 새로운 예술이론, 예술철학을 다시 세우려 시도한 단토의 개인적 고백이자 철학적 모험담이다.
미의 추구와 숭배에서 미의 포기와 경멸로의 이 극적인 여정을 더듬으며, 단토는 미를 파괴하려는 현대예술의 충동을 건강한 움직임으로 긍정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미는 행복의 약속’이며 우리의 삶에 필수적이라는 믿음도 견지한다.
2013년 10월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단토는 수많은 평론과 3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1990년 미국도서평론가협회 평론 부문을 수상한 『만남과 성찰』을 비롯해 『일상적인 것의 변용』 『예술의 종말 이후』 『브릴로 상자를 넘어서』 『경계와의 유희』 『미래의 마돈나』 『앤디 워홀』 『무엇이 예술인가』 등이 있다.
– 역자: 김광우
뉴욕 시티컬리지와 포담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예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많은 예술을 접하면서 현대미술과 비평에 관심을 가져왔다. 뉴욕미술 패러다임의 중요성을 알리는 ‘대가와 친구들’ 시리즈를 소개하는 1997년부터 국내에서 본격적인 미술비평과 저술활동을 해왔다. 그 가 소개하는 작가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갈등하며 거기서 피어난 작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예술이 우리의 삶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저서로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 『마네와 모네』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비롯하여 『마르셀 뒤샹』 『폴록과 친구들』 『워홀과 친구들』 등이 있다. 역서로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와 『바스키아』 『앤디 워홀 타임캡슐』 『컨템퍼러리 아트북』 등이 있다.
– 역자: 이성훈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경성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와 대학원협동과정 문화기획 행정 이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터키 바흐체세히르 대학교와 일본 서남학원대학교에서 교환교수를 지냈으며, 《미학》, 《예술의 종말이후》, 《미학과 예술사회학》, 《유물론 반영론 리얼리즘》, 《신미술사? 비판적 미술사!》 등 철학 미학 미술사 예술사회학 등과 관련한 여러 권의 저서와 역서를 펴냈다. 주요 논문으로 〈브릴로 상자는 예술의 종말을 신호하는가?〉, 〈현대예술의 동향과 독일미학의 두 방향〉, 〈합리성과 예술: 하버마스의 예술이론은 가능한가?〉, 〈알튀세의 철학정의와 그 미학적 귀결〉 등이 있다.
2010년 초겨울에 에스파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여러 달 동안 이른바 생존용 에스파냐어를 공부했는데, 정작 여행 때는 별로 쓸 일이 없다가 이번 번역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론의 현실적 용도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해오던 중 정말 운명처럼 다가온 이 책을 통해 그 고민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었다. 특히 본 역서는 이론의 영역에도 깊게 스며들어가 있는 앵글로색슨중심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 책 속으로
예술의 종말이라고 하는 테제는 철학적 미술사라 불릴 만한 것에 대한 하나의 기여이며, 혼돈스럽게 보이는 모던 미술에서 어떤 이해가능성을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 p.10
미술관에서는 모든 미술이 합당한 위치를 차지하여야 한다거나 그 미술이 어떠한 것으로 보여져야 하는가에 대한 선천적인 기준도 없으며, 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내용물 모두가 맞아 들어가야만 하는 특정한 내러티브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미술관을 죽은 미술작품들로 가득 채워진 장소로 여기지 않고 살아 있는 예술적 선택들이 가득찬 장소로 여긴다. — p.44
워홀은 이 따위의 말은 이제 더 이상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것, 모든 양식들이 동등하게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것보다 더 나은 양식이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바로 이것이 비평의 선택권을 열어놓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예술이 동등하면서도 무차별적으로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좋음과 나쁨이 하나의 올바른 양식이나 올바른 선언문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 p.98
“예술이 원하는 바”라는 관념에 대한 나 자신의 견해에 따르자면, 미술사의 종말과 성취라고 하는 것은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이해, 즉 우리가 각자의 인생에서 범했던 실수, 쫓아간 잘못된 길, 우리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이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아야만 포기하게 되는 허위적인 이미지들 따위를 통해 획득하는 이해와도 같은 것이다. — p.211
이것은 단지 어떤 상스러운 취미나, 더 중요한 점으로, 결함있는 취미교육을 보여주는 것밖에 안된다. 그 용어가 함축하고 있듯이, 미적 취미 (taste)와 세련된 미각 (palate)은 거의 구별되지 않으며, 이 두 경우 모두 교육을 받으면 어떤 것들이 다른 것들보다 결국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 ― 그리고 미적으로 더 낫다 ― 는 사실이 증명된다. — p.217
그들은 모더니즘의 그 거대한 내러티브가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행동했으며, 심지어 그 자리를 대신할 내러티브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이 시기의 후반부에 접어들어서는 정말 새로운 거대 내러티브가 출현하지 않았는데, 이 시기 동안 예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텍스트들에서 자신들이 행하고 있던 것과의 어떤 상관성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 p.273
예술의 종말 이후, 다시 말해 예술이 철학적 자기반성으로 상승한 이후, 예술로서의 권리를 부여받으면 무엇이든 예술작품이 될 수 있게 되었고, 이와 함께 모더니즘의 역사는 끝나게 되었다. 단토에 따르면, 이제 예술의 역사는 끝났으며 예술사의 과제는 철학자의 손으로 넘겨졌다. — p.413

○ 출판사 서평
– 〈브릴로 상자〉, 예술의 종말을 고하다
서양의 예술 개념은 플라톤의 『공화국 The Republic』과 그 밖의 저서에서 언급된 ‘모방’이었다. 시각 예술을 모방으로 보는 시각은 르네상스 사고에도 침투되었으며 최초의 미술사가이자 이탈리아 화가, 건축가, 전기작가인 조르조 바사리 Giorgio Vasari (1511 ~ 74)를 통해 르네상스를 거쳐 1960년대에까지 아무런 회의도 없이 고정 관념화되었다. 20세기 모던 아트는 이 고정 관념의 현대식 해석으로 등장했다. 이것은 각기 자체의 용어로 미술을 정의하고자 시도?경합한 동향들 중 견줄 나위 없이 두드러진 모습이었다.
모더니즘 최고 성과물 가운데 하나는 선언문이다. 단토는 선언문을 미적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요구 안에서 작용하는 미술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처럼 미술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는 예술적 문서나 다름없다고 보고, 이 시기에 선언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것은 미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농후했음을 지적한다. 이렇게 고정화된 미술 개념의 붕괴는 곧 미술사의 붕괴를 의미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발발했을 당시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역사의 반성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고 확립하게 되듯 1964년 워홀의 〈브릴로 상자〉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단토는 1980년대 중반 자신이 20여 년 전 화랑에서 본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떠올리고 그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미술사의 붕괴임을 깨닫게 된 후 〈예술의 종말 The End Of Art〉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단토는 1960년대 중반 앤디 워홀 Andy Warhol의 작품 〈브릴로 상자〉를 예로 들어 이는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개념 자체의 종식을 의미하는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브릴로 상자〉는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제 상자와 시각적으로 구별되지 않지만, 미술관에 전시됨으로써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이는 더 이상 특정한 형식이나 미적 기준이 예술을 결정하지 않으며, 예술이 철학적 해석의 영역으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 포스트모더니즘의 종말을 제언하다
단토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 사용에 반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널리 퍼뜨린 찰스 젱크스는 『포스트모던 건축의 언어 The Language of Post-Modernism』(1975)와 유사한 여러 저서에서 국제 현대 양식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경솔한 절충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원천으로 되돌아갔으며 종종 ‘익살스러운’ 방법으로 색채와 장식을 도입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 Robert Venturi (1925 ~ )는 ‘순수함보다 잡종적인 요소’를 좋아하고 ‘뚜렷한 단일체’보다 ‘복잡한 활력’을 선호한다고 했다.
건축 외의 분야에서 어떤 작품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하는 것은 더욱 어렵지만 공통점이 없는 양식들을 비슷하게 혼합하거나 역설적 방법으로 의식적인 문화적 참조들을 나타내는 회화와 조각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된다. 벤투리는 『건축에서의 복잡성과 모순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1966)에서 가치 있는 공식이 있다면 ‘순수한’ 것보다는 혼성된 것, ‘단정한’ 것보다는 절충된 것, ‘명료한’ 것보다는 ‘모호한’ 요소들이 ‘흥미로운’ 만큼 외고집스럽다고 기술했는데, 이 공식을 적용하면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 줄리앙 슈나벨과 데이비드 샬레의 그림, 그리고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 포스트모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니 홀저나 로버트 맨골드의 작품에는 이 공식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단토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하나의 양식으로 보고, 모더니즘의 계승인 동시에 초월이라는 식으로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임을 지적한다. 그는 현대의 예술계를 예술의 종말 이후 혹은 동시대란 용어로 지시하는 것이 적합함을 주장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대 예술의 복잡함과 현대 예술의 양식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단토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아닌 “예술의 종말 이후” 또는 “동시대”라는 용어로 현대 예술계를 지칭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예술이 더 이상 하나의 통합된 양식이나 명확한 정의를 가질 수 없음을 인식하고, 다양한 양식과 접근이 공존하는 현시점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단토의 이러한 주장은 예술이 단순한 양식의 변화를 넘어, 인간의 경험과 문화적 변화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현상임을 강조하며, 현대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 완전히 새로운 예술의 길을 탐색하다
단토는 미술이 다양한 형태와 질서의 미술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미술에 대한 정의가 최소한으로 축소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술품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작품이 반드시 어떤 의미를 지니고 그 의미가 물질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브제가 해석을 통해 작품으로 변형되고, 그 오브제에 읽을 만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술품으로 인정받으려면 관람자가 이해할 수 있는 비평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비평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
오늘날 동시대 미술은 점차 전문화되었고, ‘자기 지시성 (self-referentiality)’을 띠게 되었다. 자기 지시성이란 작품이 외부 세계나 다른 작품과의 관계보다 자신의 내적 구조와 의미에 의해 규정되는 것을 말한다. 즉, 작품이 자신을 참조하거나 스스로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외부의 해석이나 맥락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평가의 식견은 미술품을 정의하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비평은 작품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작품의 성립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성립 기준이 존재했지만, 동시대 미술에서는 미술가가 스스로 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대 미술이 점점 더 전문적이고 자기 지향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대 미술이 철학과 상보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이유는, 작품의 구성은 시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그 의미는 단순히 시각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독자가 동시대 미술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고, 미술 작품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공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