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유학 (儒學)의 갈림길
데이비드 S.니비슨 / 철학과현실사 / 2006.1.20
– 데이비드 S. 니비슨의 <유학의 갈림길>을 우리말로 옮긴 책
유학의 도(道)란 하나가 아니며, 유가란 단일한 사상을 가진 하나의 학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제1부에는 니비슨이 1980년과 1984년에 스탠포드대에서 행한 일련의 강연들을 수록하였다.
제2부에서는 특정한 구체적인 사상가들 혹은 더 나아가 특정한 구체적인 구절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3부에는 송, 명, 청대의 유학에 관한 니비슨의 논문을 실었다.

○ 목차
제1부
1 서론
2 뼛조각과 청동기에 등장하는 “virtue”
3 “덕”의 역설
4 덕은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것인가?
5 중국 도덕 철학에서의 황금률 논변
제2부
6 고대 중국 철학에서의 의지 나약의 문제
7 맹자에게서의 동기 부여와 도덕적 행동
8 기원전 4세기 중국의 철학적 의지주의
9 근본은 두 개인가 하나인가?
10 “맹자”에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들: 6A3-5
11 “맹장”에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들: 7A17
12 “맹자”의 번역에 관하여
13 “인간의 본성”에 관한 순자의 입장
제3부
14 왕양명의 철학
15 왕양명에게서의 도덕적 결단: 중국적 “실존주의”의 문제
16 장학성의 철학
17 두 종류의 “자연주의”: 대진과 장학성

○ 저자소개 : 데이비드 S. 니비슨 (David Shepherd Nivison, 倪德衛, 1923 ~ 2014)
데이비드 셰퍼드 니비슨 (David Shepherd Nivison, 倪德衛, 1923년 1월 17일 ~ 2014년 10월 16일)은 미국의 중국학자이자 철학가였다. 그는 기존에 기원전 1122년이라고 알려진 주나라의 건국을 천문 고고학을 통하여 기원전 1046년이라고 제대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메인주에서 1923년 1월 17일에 태어났다. 그의 친척 에드윈 알링턴 로빈슨은 유명한 19세기의 미국 시인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였다. 니비슨은 1940년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학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니비슨은 일본어 통역병으로 미군에서 근무했는데 그가 근무했던 부대는 에드윈 라이샤워에 의해 조직된 부대였다. 전후 하버드 대학교로 돌아와서 1946년 학부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장학성에 대한 논문으로 1953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48년부터 1988년까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했고 그 후 명예교수를 역임했다.
– 역자: 김민철
전라북도 촌에서 태어났으나, 두 살 때 강제 상경했다. 모범적인 학창생활을 했지만, 고등학생 때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에 반발하다가 아이스하키 스틱으로 50대를 맞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학했던 기억이 있으며, 학부모들이 돈을 모아 선생님께 전달하는 데 반발해 학생회를 통해 무산시키는 등 그리 범상한 모습은 아니었다.
대학 입시에서 운 좋게(?) 좋은 성적을 받았으나, 이른바 전도가 유망한 학과에 진학하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삶에 대한 궁금증을 풀려고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 20여 년 철학 공부를 했으며, 대학원 시절에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의 동양학연구장학생 선발시험에 합격해 하버드행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장기간 비행기를 타는 것이 싫어서 한국에서 공부하겠다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
지은 책으로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포르노를 허하라』 (문광부 우수 교양도서)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윤리의 역사, 도덕의 이론』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 『유학의 갈림길』이 있다. 서울대, 경기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다양한 분야의 저술활동과 강연을 병행하고 있다.
○ 독자의 평
H은 니비슨의 『유학의 갈림길』 2장을 요약 발제하며 갑골문 시대의 덕을 정치성, 비의성, 도덕성 이 세 가지의 특징을 지닌 것으로 정리하였다. 정치성이란, H의 표현을 따르면 “사회적 결과를 수반하는 힘”이다. 본인은 이것을 “사회적 재화를 분배하는 제도적 장치의 작동”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비의성이란 덕의 초월성, 내면성을 의미한다. H은 갑골문 시대의 인간의 덕이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영혼과 같은 초월적이고 심리적인 요소와도 연관되어있음을 제시한다. 다만 이 비의성은 비의성으로 남아있지 않고 외부적 힘으로 드러난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마지막으로 그는 도덕성을 표현하는데, 이 도덕성은 “자기희생”이라는 단어로 바꿔 쓸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태도가 덕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 내용에 대해 H은 각 요소들이 상충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런데, 첫 번째로는 정치성과 도덕성이 양립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이 둘이 상충되는 이유는 정치성은 각자의 몫에 맞게 재화를 분배하는 권력의 제도적 장치의 작동을 의미하는데, 도덕성은 자기희생을 수반하는 것으로 자신의 몫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더 분명하게 표현하자면 “각자의 몫에 맞게 분배하는 것”과 “자신의 몫을 포기하는 것”은 상충된다는 것이 H의 주장이라고 판단된다.
본인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분배적 정의와 개인의 희생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분배를 정확하게 하는 것은 제도, 권력의 역할이다. 여기에서는 개인성보다는 사회성, 공동체성이 강조된다. 반면 자기희생은 말 그대로 개인의 희생이다. 이것은 개인의 내면적 결단과 관계된 것이지 사회적 분배 시스템과는 큰 관련을 지니지 않는다. 가령 대한민국 사회는 복지 시스템을 통해 재산을 분할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것이 개인적인 자선 행위나 개인적인 사회와 이웃에 대한 헌신과 상충된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갑골시대의 덕 개념은 덕의 사회적 차원과 개인성의 차원을 모두 포착하고 그것을 서술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H이 지적하는 것은 비의성과 정치성/도덕성과의 상충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비의성이 정치성 내지는 도덕성으로 이행되는 과정에 대한 해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본인은 H의 지적의 요지는 지지하지만, 보다 논점을 구체적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비의성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즉 비의성이 정치성과 도덕성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해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느 부분이 제일 문제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가령 우리는 “비의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고 비의성과 정치성/도덕성 사이의 이행 매커니즘이 해명되지 않았다는 식의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다. 또는 현대의 이원론 비판을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비판을 가했으면 더 심도있는 비판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
G는 니비슨의 덕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일종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고대의 중국 사상가들에게 ‘덕’ 개념은 어떤 내재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해석이 타당하다면, ‘덕’이라는 기능어, 혹은 분류적 개념어를 독립 개념이자 소유 대상으로 바라보는 니비슨의 ‘덕의 역설’ 문제 자체가 일종의 범주 오류(category mistake)에 해당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니비슨의 ‘덕의 역설’ 문제는 도덕과 관련한 여러 사상가들의 대비를 간단한 구도로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 사상가의 ‘덕’ 개념과 함께 고찰되는 개별적, 구체적 맥락들을 배제할 경우 그 한계를 드러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G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1) 중국 사상가들은 분명 덕의 본성, 덕의 배움에 대해 논쟁을 벌여왔다. 이는 중국 사상가들이 덕에 대한 합의된 관점, 내재적 관점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한 이들이 덕이라는 것에 대해 공유하는 전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논쟁이라는 것은 서로 합의된 전제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G의 주장대로 덕이라는 개념이 그저 분류 개념어이고 각자에게 있어 전혀 유사하지 않은 상이한 것만 지시하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학자들 간에 덕에 대한 논쟁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2) 이런 맥락에서 니비슨은 당시 학자들이 덕에 대해 공통적으로 합의한 부분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즉, 니비슨의 작업은 정확히 G가 말한 덕의 가족 유사성을 밝히는 일종의 고고학적/발생론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오히려 니비슨은 G와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니비슨의 표현이 범주적 오류를 저질렀다고 하기 어렵다. “덕을 소유한다”라는 표현은 니비슨이 고안한 말이 아니다. 분명 중국 고대 철학자들은 “덕을 갖춘 사람”, “덕을 배움”, “덕의 함양”과 같이 덕을 실체화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였고 이 맥락에서 논쟁을 벌여왔다. 따라서 니비슨은 범주 오류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 고대철학의 도덕철학의 일반적 특성을 잘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추가적으로, 니비슨이 2,3장에서 보여준 작업은 덕의 개별성, 맥락성을 배제하는 작업이 아니라 오히려 덕이 사용된 역사적 맥락을 밝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갑골문 시대의 덕과 이후 시대의 덕의 개념의 변천을 보여주며 덕 개념의 다양성, 다의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니비슨이 제기한 덕의 역설은 이런 발생론적 작업을 통해 얻은 결과물로부터 도출된 것이며, 따라서 니비슨은 덕에 대한 개별성, 맥락성, 역사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너무 강조하여 발생론적 오류에 빠진 것이 아닌가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니비슨 본인이 선제적으로 검토한 문제이기도 하다. 니비슨은 본인의 작업이 일종의 발생론적 오류를 일으킨 것이 아닌지 점검하며 이 작업이 그런 오류에 빠진 것이 아님을 역설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