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 한길사 / 1998.5.31
이 책은 세계의 기이한 음식문화에 관해 문화생태학적 입장에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책이다.
문화생태학자 마빈 해리스가 전 세계 기이한 음식문화의 비밀을 밝힌 책이다. 해리스는 이 책에서 식충부터 식인까지, 특정 동물을 숭배하는 것부터 혐오하는 것까지 다양한 음식문화를 소개하며, ‘단백질 섭취’의 관점에서 이러한 문화가 생겨난 이유를 추적한다.

단백질은 인간의 진화와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따라서 인간은 단백질을 효과적으로 섭취하기 위해 각자의 환경에 적응,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 목차
1. 먹기 좋은 음식과 생각하기 좋은 음식
2. 고기를 밝히는 사람들
3. 신성한 암소의 수수께끼
4. 혐오스런 돼지고기
5. 말고기
6. 미국인과 쇠고기
7. 우유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
8. 벌레
9. 개 . 고양이 . 딩고 . 기타 애완동물
10. 식인
11. 더욱나은 음식
○ 저자소개 : 마빈 해리스 (Marvin Harris, 1927 ~ 2001)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로 문화유물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지성사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영향을 받았지만 문화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유물론적 접근법을 구축했다.

1953년부터 1981년까지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플로리다 대학으로 옮겼다. 미국 인류학협회 인류학분과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미 『작은 인간: 인류에 관한 102가지 수수께끼』와 『문화의 수수께끼』, 『문화 유물론』, 『식인과 제왕』 등의 책을 통해 국내에도 폭넓은 독자를 갖고 있는 마빈 해리스는 브라질과 에콰도르, 모잠비크, 인도 등에서 수행한 현지 조사를 통해 수많은 이론서와 대중적인 문화 분석서를 출간했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의 수수께끼』(Cows, Pigs, Wars and Witches: The Riddles of Culture), 『식인문화의 수수께끼』(Cannibals and Kings: The Origins of Cultures), 『음식문화의 수수께끼』(The Sacred Cow and The Abominable Pig: Riddles of Food and Culture) 등이 있다.
– 역자 : 서진영
이화여자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대학 인류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옮긴 책으로는 쿠시넨의 『변증법적 유물론 입문』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침팬지는 개미가 나뭇가지로 기어올라오는 것을 지켜본다. 개미가 거의 자기 손까지 도달하려 하면 재빨리 끌어들여 다른 소능로 나뭇가지를 훑어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개미를 한움큼 집어서 입을 벌리고 집어넣는다. 그리고 우적우적 씹는다. … 아이고, 더러워라… — p185
나는 세계의 요리가 주요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지역마다 생태학적 제양과 기회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육식 요리법은 상대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고 토지여건상 곡물 재배가 적당치 않거나 필요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채식 요리법은 인구 밀도가 높고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단백질과 열량의 양을 줄이지 않고는 고기를 얻기 위해 짐승을 기를 수 없는 환경 및 식량 생산 기술과 관련되어 있다. — p.16
곤충은 지구상에 가장 많은 생물 중의 하나이고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고도 유익한 공급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양소의 공급원으로서 곤충은 우너래는 동물의 왕국 전체에서 가장 비효율적인고 가장 의존할 만하지 못하다. 수확된 단위당 시간과 에너지 비용의 측면에서 볼 때 곤충은 보통의 가축과 많은 야생척추, 무척추 동물군에 못 미친다. 왜 어떤 때는 곤충을 기피하고 어떤 때는 선호하며 곤충을 먹을 때 왜 어떤 종류를 다른 것들보다 더 많이 먹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열쇠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 있다.
생태학자들은 인간이 아닌 먹이를 찾아다니는 동물들-먹이를 찾아야만 하는 동물들-의 식사에 관한 이와 비슷한 질물들에 여러가지 답을 제시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반대로 인간이 아닌 먹이 찾는 동물들, 예를 들어 원숭이나 늑대, 혹은 위 증이 자연의 서식지에서 그들이 만나는 모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먹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 점에서 인간과 아주 비슷하다. 그들이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수백 가지 먹이 중에서 자신이 먹지 않는 것들을 빈번히 만나게 됨에도 불구하고 아주 적은 수의 것만을 모으고 찾고 사냥하고 먹는다. 이러한 까다로운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생태학자들은 최적 먹이 찾기 이론이라고 알려진 일련의 원리들을 개발했다. — p. 195-196
○ 출판사 서평
마빈 해리스. 영미 인류학의 거장인 그는 유물론에 바탕을 둔 문화인류학으로 주목받았다. 그의 ‘문화인류학 3부작’은 해리스식 문화인류학의 정수다.
해리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다. 그는 문화의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열쇠로 ‘생식압력 → 생산증강 과정 → 생태환경의 파괴 · 고갈 → 새로운 생산양식의 출현’이라는 도식을 제시한다. 이러한 생태학적 적응양식을 통해 가족제도와 재산관계, 정치적·경제적 제도, 종교, 음식문화 등의 진화와 발전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해리스는 브라질, 에콰도르 등지에서 현지조사를 했고 문화생태학적 측면에서 식민지주의의 영향, 저개발국가의 문제, 인종과 민족적 상호관계에 대한 비교문화를 연구했다. 1953년부터 컬럼비아 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플로리다 대학 교수 및 미국 인류학협회의 인류학 분과회장도 맡았다. 그는 2001년 사망하기 전까지 문화인류학이라는 넓은 지평을 문화유물론의 관점으로 횡단했다.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적 관점은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외에도 그의 저서 ‘인류학 이론의 발생’ (The Rise of Anthropological Theory), ‘문화유물론: 문화과학을 위한 투쟁’ (Cultural Materialism : The Struggle for a Science of Culture), ‘문화의 수수께끼’ (Cows, Pigs, Wars and Witches : The Riddles of Culture), ‘식인문화의 수수께끼’ (Cannibals and Kings : The Origins of Cultures) 등에서 잘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는 인류학 전공자를 위한 전문서라기보다는 일반 대중을 위한 에세이 형식의 교양서이기 때문에 초심자들도 흥미롭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해리스의 문화이론의 정수이자 핵심도 잘 담겨 있다.
– 암소 숭배와 돼지 혐오 “못 먹어서 안 먹는 게 아니고 안 먹어서 못 먹는다”
진화론에서 ‘단백질’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인간의 지능이 다른 영장류보다 월등히 높은 건 뇌가 커서다. 현대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두뇌가 커진 이유로 단백질 섭취를 든다. 특히 불을 사용해 고기를 익혀 먹으면서 단백질 흡수율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인 게 결정적이었다. 기원전 200만 년 전쯤의 일이다.
해리스도 여기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단백질이 인간 진화와 인류 문명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문화도 여기에 관련 있을 거라는 지극히 유물론적 판단에서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단백질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모든 단백질을 좋아하지 않을까? 힌두교도는 암소를 숭배한다. 이슬람교도는 돼지를 끔찍하게 여긴다.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지만 프랑스인은 그렇지 않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전 세계 기이한 음식문화를 다룰 때 피해갈 수 없는 이 질문들에 해리스는 역시 매우 유물론적인 근거로 답을 찾는다. 바로 ‘생태학적 제약’이다. 간단히 말해 기후가 다르고 그래서 나고 자라는 식물과 동물이 달라 먹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못 먹어서 안 먹는 게 아니고 안 먹어서 못 먹는다’는 게 해리스의 주장이다.
가령 힌두교도가 처음부터 암소를 숭배한 건 아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경전이라는 힌두교 성전 (聖典) ‘베다’를 보아도 딱히 그런 내용은 없다. 해리스는 어떤 종교적·정신적인 이유가 아니라 인구증가의 측면에서 이를 분석한다. 즉 인구가 점점 많아져 목초지가 부족해지자 소 자체를 키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소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식량이 되므로 그 수가 적어질수록 당연히 더 귀해졌고 결국 귀하게 보살펴야 할 사치재가 되었다.
이후 어느 정도 소의 개체수가 적정선을 이룬 뒤에도 인도에서 소의 지위는 변하지 않았다. 암소는 우유를 주고 수소는 쟁기를 끈다. 소똥은 거름이나 난방용 연료로 쓴다. 유지비도 많이 들지 않는데, 왕겨, 풀 따위를 먹기 때문에 인간과 먹는 것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소를 도축하지 못하므로 (공급과 수요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으므로) 소값 자체도 싸 굳이 팔 이유도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소를 죽이지 않는 건 굉장히 합리적이라는 게 해리스의 결론이다.
이슬람교도가 돼지고기를 안 먹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슬람교도는 중동에서 산다. 사막이거나 사막에 가까운 건조한 지역이다. 그런 곳에서는 돼지를 키우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돼지는 인간과 먹는 게 겹친다. 인간이 먹는 걸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 체온조절을 못 해 물과 그늘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도 돼지가 줄 수 있는 건 고기밖에 없다. 노동수단이나 이동수단으로 전혀 쓸 수 없다. 중동에 사는 사람 중 이런 돼지를 예뻐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 최고의 단백질원 벌레 하지만 최악의 효율성 벌레
이런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벌레다. 최근 들어 미래에는 벌레를 먹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번데기를 먹는 한국인조차 식충을 구역질나는 일로 여기는데, 과연 농담 반 진담 반의 예언은 현실이 될 것인가.
해리스가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를 쓸 1980년대에도 벌레는 이미 최고의 단백질원으로 불렸다. 단백질 함유량으로만 따지면 소든 돼지든 그 어떤 동물도 벌레와 비교할 수 없다. 해리스식으로 생각하면 이런 벌레를 안 먹을 이유가 없다. 소나 돼지처럼 밥을 많이 줄 필요도 없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배변량도 많지 않고 전 세계 어디에나 있으며 수천수만 종이 존재해 멸종될 위험도 적다. 그런데 왜 인류는 벌레를 먹지 않는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해리스가 제시한 음식문화의 네 가지 규칙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 고기로서의 효용이 크면 음식으로 사용한다.
2) 고기로서의 효용이 커도 다른 효용이 크면 음식으로의 사용이 제한된다.
3) 고기로서의 효용이 적고 다른 효용이 크면 음식으로의 사용이 기피된다.
4) 고기로서의 효용이 적고 다른 효용도 적으면 혐오된다.
국내에서 식용 벌레를 넣어 만든 과자 등을 파는 한 회사의 상품들. 팔기 쉽고 사기 쉬운 게 먹기 쉬운 게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도 언젠가는 벌레를 삼겹살 먹듯 먹게 되지 않을까?
벌레로서는 1번 대접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4번으로 취급당하니 억울할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해리스는 본인의 유물론적 문화인류학을 활용해 훌륭하게 답을 내린다. 간단히 말해 벌레는 단백질 함유량이 월등히 뛰어나지만 벌레 한 마리가 제공하는 단백질의 절대량 자체가 워낙 적으므로 오히려 고기로서의 효용이 적다는 것이다. 1일 단백질 섭취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벌레 수백 마리를 잡아야 하는데, 이럴 바에는 야생에서 사슴이나 닭 따위를 한 마리 잡는 게 오히려 신체 에너지 활용에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해리스는 이를 ‘최적 먹이 찾기 이론’이라고 부른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벌레든 사슴이든 잡으러 뛰어다닐 일은 없다. 하지만 오히려 과거보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발달한 오늘날 모든 게 비용과 효용의 논리에 꽉 묶여 있다. 팔기 좋은 것, 사기 좋은 것이 먹기 좋은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은 여전히 가치 있는 책이다.
○ 독자의 평 1

인도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힌두교에서 소는 신성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반면, 중동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며, 이유는 인도와 정 반대로 돼지를 성경에서 부정한 동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및 중국, 베트남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는데, 서양에서는 이를 혐오한다. 반면, 과거 중국 사람들은 서양인들이 소의 젖을 짜먹는 사실에 경악하였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도 우유 및 유제품의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문화권에 따라 어떤 음식은 선호되고 어떤 음식은 기피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로 신의 명령에 따른 것일까? 각 문화권 내에서 공유되는 독특한 유전적 특성이 있는 것일까? 마빈 해리스는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를 통해 이런 차이가 생태학적 제약과 기회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싫어해서 안 먹는 게 아니라 먹지 않아서 싫어하는 것이다.
1. 사람은 원래 고기를 밝힌다.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그렇다고 동물성 식품과 식물성 식품을 동일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영장류1가 그렇듯 인간도 고기를 갈망하도록 진화했다. 채식에 비해 더 질 좋은 단백질과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기는 식생활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많이 먹었다는 것이 아니다.) 사회통합 또는 통제의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수렵시대부터 축제나, 중요 제례행위는 ‘특별한 날에 고기를 나누어 먹는 행위’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런 전통은 현대까지 이어진다. 회식날 비빔밥을 먹으러 가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이런 연유로 대부분 문화권에서 금기와 갈망이 대상은 동물성 식품이다. 중요해야 애증도 생기는 것이다.
2. 신성한 암소의 수수께끼
힌두교의 역사에서 소 보호가 언제나 힌두교의 중심원리는 아니었다. 베다 경전은 쇠고기를 배척하지도 암소를 보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초지가 부족해지자 쇠고기의 비용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쇠고기는 브라만 등 일부 특권층만 즐길 수 있는 사치재가 되었다.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었고, 결국 힌두교는 소 도살 자체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교리를 전환한다.
인도에서 암소는 우유를 제공하고, 수소는 쟁기를 끈다. 또한 소똥은 농사에 필수적인 거름일 뿐 아니라 중요한 난방 도구이기도 하다. 제공하는 서비스에 비해 비용은 크게 들지 않는데, 짚, 왕겨, 나뭇잎 등 인간이 먹지 않는 쓰레기들을 먹기 때문이다. 또한 소 도축 금지 때문에 소값이 싸게 형성되어 있어 가난한 농민들이 소유하기에 최적화 되어 있다.
인도에서 쇠고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3. 혐오스러운 돼지고기
돼지는 모든 포유류 가축 중에서 가장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식물을 고기로 전환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지역에서 돼지는 혐오스러운 동물로 인식되어 먹지도 심지어 만지지도 못하게 하였다. 중동에서 돼지를 키우는데 어떤 비용이 들어갈까?
먼저 돼지는 밀이나 옥수수, 감자, 콩 등을 먹일 때, 즉 인간이 먹는 것을 먹일 때 가축으로서의 효용성이 있다. 소나, 염소처럼 나뭇잎이나 풀을 먹일 수는 있으나 그러면 오히려 살이 빠져버린다. 둘째로 돼지는 물이 많고 그늘진 숲의 골짜기에서 진화한 동물이다. 돼지는 땀을 흘리지 못하기 때문에 진흙창에서 뒹굴면서 몸을 냉각시킨다. 진흙이 없다면 자신의 똥 오줌에서라도 뒹굴어야 한다. 따라서 돼지를 기르기 위해서는 그늘진 환경과 물이 필수 적이다. 셋째로 돼지는 고기를 제공하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이 없다. 쟁기를 끌지도 못하며, 젖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중동지역은 5000년 동안 산림이 황폐화되고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생태적으로 돼지치기에 부 적합한 환경이 되었다. 따라서 중동에서 돼지를 치기 위해서는 부족한 물과 그늘막을 조달해야 하고 사람이 먹어야 할 곡식을 나누어 먹어야 한다. 인도에서 소 역시 초지 감소로 먹기에 비싼 고기가 되었지만, 쟁기를 끌고 우유를 낸다는 점에서 더욱 유용성이 있었고 결국 보거나 만지기만 해도 축복이 되는 신성한 동물이 되었다. 반면, 돼지는 고기 외에 다른 기능이 없었으며, 결국 만지거나 보기만 해도 나쁜 혐오 동물이 되었다.
4.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을까?
인도의 소와 중동의 돼지의 사례를 종합해 보면, 각 문화권에서 특정 동물의 고기를 기피하거나 선호하는 여부는 다음과 같다.
1) 고기로서의 효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우 음식으로 선호된다.
여기서 효용이란 비용 대비 얻을 수 있는 단백질의 양을 말한다. 중동에서 돼지는 생태적으로 고비용 구조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되는 동물이지만 중국 및 동남아시아처럼 곡식이 풍부하거나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최고의 고기로서 널리 사육된다. 현대는 기계화된 사육 방식이 도입되어 대량 사육에 적합한 소, 돼지, 닭을 양, 염소에 비해 더욱 많이 먹게 되었다.
2) 다른 쓸모가 있는 경우, 유용한 정도에 따라 음식이 되기도 안되기도 한다.
말은 고기나 젖을 얻기 위해 사육되지 않는다. 소나 돼지에 비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대신 운송 및 수송수단으로 사용되는데 특히, 전쟁이 있을 경우 그 수요가 급증하였다. 전쟁 시에 말고기가 금지되고 평시에 다시 말고기 시장이 형성되는 양상을 보였다.
3) 유용성이 높고 고기로서 효용이 상대적으로 낮을 경우 먹는 것 자체가 기피된다.
효용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18세기 이후 영국은 말고기 자체를 기피했다. 쇠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등의 더 훌륭한 고기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반면, 몽골제국은 대체재가 없었기 때문에 말을 전쟁에 유용하게 이용하면서도 그 고기와 젖 역시 낭비하지 않았다. 개의 경우, 사냥이나 유목에 의존하는 문화권에서는 개가 대형 초식동물의 단백질을 제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개고기가 기피되었다. 반면 농경 문화권에서는 개의 역할이 크지 않고 대체재가 풍부하지 않으므로 종종 식용으로도 취급됐다.
4) 고기로서 효용도 낮고 유용성도 없을 경우 혐오한다.
벌레는 대부분 문화권에서 식용으로 기피된다. 벌레를 먹는 상상만으로도 역겨워 할 정도이다. 하지만 대부분 유인원들이 벌레를 좋아하는 점, 아직 수렵채집을 하는 (그리고 동물성 식품이 풍부하지 않은) 지역에서 여전히 벌레를 먹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벌레를 혐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실상은 벌레가 더럽고 혐오스러워서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먹지 않기 때문에 더럽고 혐오스럽게 느끼는 것이다. 벌레를 먹지 않는 이유 역시 효용이 낮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벌레 개체당 단백질 비중은 높다. 하지만 벌레를 잡고 처리하는 시간으로 나누어보면 효용이 급격히 떨어진다. 쉽게 말해 벌레를 산더미처럼 잡기 보다 사슴이나 멧돼지 한 마리를를 쫓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풍요로운 현대에서는 굶주림을 걱정할 필요가 적어졌다. 하지만 먹을 것의 효용을 계산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음식을 생산하고 파는 다국적 기업의 탄생과 함께 우리의 식생활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일방적인 형태의 비용 / 이익 계산에 구속되어 있다. 점점 더 팔기 좋은 것이 먹기 좋은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늘 먹는 당연한 것들에 숨어있던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분들에게, 음식에 대한 사고를 넓히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독자의 평 2
책은 세계의 음식문화를 문화생태학적인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음식들의 기원과 변화과정이 모두 그 음식이 생겨난 지역의 환경과 그 환경 속에서 형성된 문화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음식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
음식을 통해 문명과 문명이 만나 서로 뒤섞이는 과정과 결과를 지켜볼 수 있게 해준다.
이슬람 사회에서도 돼지고기는 특식으로, 훌륭한 맛을 가진 식재료였지만 어느 순간, 어떤 인과 관계를 거쳐 금기시 되었는가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개고기를 먹는 동양인들의 문화, 바퀴벌레를 먹는 종족, 서구인들의 고유한 식습관들을 설명하면서 각 민족과 문화가 처해진 생태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음식문화와 관습이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것을, 때문에 어떤 음식문화와 식습관도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화상대주의의 가치를 밝히고 있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세상이 보다 더 좁아지고 긴밀해지고 있는 오늘날, 이 책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는 혐오스런 음식도 적어도 그 음식을 즐기는 민족의 문화와 관습을 이해해 한 젓가락이라도 맛볼 수 있는 용기를 전해준다.
○ 독자의 평 3

나는 내가 입이 짧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짧고 가리는게 많다고 한다. 먼저 나는 닭 백숙의 그 물텅물컹하고 허여멀건한 닭 껍질을 정말 싫어한다. 결혼한 후 백숙을 먹는데 껍질을 안먹고 남기니까 눈치를 받다가 이제는 다들 이해해 주시고 가슴살만 듬뿍 주신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신다. 날개와 다리를 안 줘도 되니까. 심지어 후라이드 치킨도 대부분 가슴살만 먹는다. 그래서 치킨을 다른 사람과 같이 먹을 때 정말 주위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 역시 퍽퍽한 가슴살만 먹고 날개, 다리를 잘 안먹으니까. 8살짜리 딸과 3살짜리 아들이 있다. 딸아이는 모든게 나를 닮았다. 얼굴도 키도 성격도 식성도 다 나를 닮았다. 하지만 이아이는 닭백숙 껍질을 질겅질겅 잘 씹어 먹는다. 심지어 3살짜리 아들도 잘 먹는다. 나를 안 닮은것도 있구나. 그렇다면 내가 닭껍질을 싫어 하는것은 유전적인 이유는 아니구나. 닭껍질을 먹으면 알레르기가 생기거나 소화가 안되는 그런 이유는 아니었구나. 단지 취향이었구나. 그러면 나는 왜 닭껍질을 안 좋아하지? 이유를 모르겠다. 두번째 개고기를 안 먹는다. 먹어야 되는 자리에서는 억지로 먹는 척은 하지만 내가 먼저 먹자고 해본 적이 없다. 그 누린내 냄새가 너무 싫다. 그런데 역시 딸과 아들 둘다 잘 먹는다. 둘 다 할아버지 따라다녀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이것저것 얻어 먹더니 개고기도 잘 먹는다. 딸 아이는 요새는 자기가 먹은게 개고기라는것을 아는 눈치지만 먹는 음식 개와 키우는 개 모두 좋아한다.
92년에 1판1쇄가 출판된 이후로 지금까지 32쇄까지 온 고전중의 고전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서는 인간이 어떤 고기를 먹느냐, 아니면 왜 안 먹는냐를 다루었다.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소,돼지,말,염소,양, 닭,개 그리고 사람 (고기로서의 사람, 즉 식인종에게 있어서 사람고기)을 이야기 하면서 어떤 지역에서 어느 고기를 왜 먹느냐 다른 지역에서는 그 고기를 왜 먹지 않느냐를 인류학 ,과학, 역사 등 여러 학문을 통합하면서 설명한다. 결론은 역시 구하기 쉬운것을 잘 먹는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은 기피하는 음식보다 비용에 대한 이득이 실질적으로 더 많은 음식이다.
민족마다, 지역마다 그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고기를 먹었다. 구하기 어렵고 경제적으로 불리한 고기는 기피하고 심지어 터부시했다. 돼지고기 안 먹는다고 이상하게 볼 필요도 없고, 개고기 먹는다고 무식하다고 할 이유도 없다.
식물성 식품은 단지 생명을 유지시켜줄 수 있지만 동물성 식품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건강과 행복을 준다.
10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소고기와 돼지고기에 개고기가 완전히 밀려나 개고기는 역사책에서나 나올 것 같다.
○ 독자의 평 4
단백질 로드 : 애타게 동물성 단백질을 찾아서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이 질리도록 먹었던 군만두’는 서비스 메뉴’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추론을 해보면 유지태는 최민식을 사설 감옥’에 보내면서 날마다 밥값을 지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밥값은 사설 감옥 직원들의 공돈으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대신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를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러니깐 최민식은 15년 동안 직원들이 점심을 시켜 먹고 남은, 서비스로 나온 만두만 먹다가 속 터져버린 이야기다. 만약에 최민식에게 군만두 대신 딤섬을 點心 으로 내놓았다면 그토록 비극적이지는 않았으리라. 짬뽕이 맵고 자극적이었다면, 김이 모락모락나는 딤섬’은 담백하고 순한 맛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는 자극적인 것을 탐하다가 늙으면 순한 맛에 매료된다. – 보수란 무엇인가, < 짬뽕과 딤섬 > 중
아버지의 여름 밥상은 언제나 단촐했다. 밥은 늘 찬물에 말고 잡수시고 반찬은 마늘이나 고추를 된장에 찍어 드시는 정도가 전부였다. 소고기나 닭고기를 좋아하지도 않으셨고, 그렇다고 해서 채식주의자’는 더더욱 아니셨다. 여름 식단만 놓고 보면 영양 불균형’처럼 보이지만 사계절 전체를 놓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아버지는 가을에서 봄까지 삼시 세 끼 보신탕’만 드셨다. 남들은 삼복에 단고기’를 즐겨 먹었지만 아버지는 특이하게도 여름 삼복에는 단고기를 멀리 했다. 여름을 견디기 위해서는 겨울에 몸 보신을 해야 여름을 이길 수 있지, 여름에 먹는 보양식은 헛것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노인이었다. 아버지의 고집 덕에 집에서 키우던 개들는 삼복을 무사히 넘겼지만 소설(小雪)을 넘기지는 못했다. 개들은 김장철과 무서리 내리는 초설 사이에서 비명횡사하고는 했다.
그리고 입춘이 오기 전에도 똑같은 일이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삼복을 거쳐 첫눈 무서리를 견딘, 마지막 남은 황구는 결국 입춘을 통과하지는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당에서 뛰놀던 황구는 보이지 않았다. 훵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 하지만 꽃 피는 봄이 오면, 어미 젖을 갓 뗀 황구 새끼 서너 마리가 개집을 차지하고는 했다. 어머니는 종종 자식들에게 쇠고기 육계장이라고 말은 하고는 밥상에 올렸으나 쉽게 먹지는 못했다. 그것이 단고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단고기’를 먹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매우 맛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 맛이냐 > 아니면 < 의리냐 > 를 놓고 잠시 고민을 했지만 결국 의리’를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단고기’를 먹지 않지만 그렇다고 보신탕 문화가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신탕 문화’를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운 식문화’라고 주장하는 태도는 꼴사나운 짓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홍신 작가처럼 ”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야, 안으로는 자주 독립과 밖으로는 민주 번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 보신탕 문화를 민족의 자금심 따위’로 숭상하려는 태도 또한 꼴사납기는 마찬가지였다. 벼 농사 중심인 한국과 중국’은 동물성 단백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가였다. ( 마빈 해리스의 주장을 전제로 한다면 ) 콩이나 다른 채소에서도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수는 있으나 동물성 단백질을 대체할 만큼의 영양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소는 농사를 짓는 데 매우 중요한 일꾼이었고, 닭은 날마다 달걀을 공급하는 짐승이었으니 잔칫날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민들에게 만만한 것은 개’였다. 개는 중요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 삼복 > 할 때 복이 사람 人과 개 犬이 합쳐져서 伏(복)으로 쓰이는 꼴을 보면, 복날에는 반드시 개를 잡아먹는 풍속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모양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현대는 동물성 단백질 과잉 섭취의 시대이다. 옛날에야 질 좋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개를 잡아먹었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값 싼 고기를 얻을 수 있으니 굳이 애완동물인 개를 식용으로 사용하면서까지 먹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이유로 나는 단고기 식용에 반대한다. 문화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는 <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 > 에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을 찾기 위한 인류의 노력을 다룬다. 흥미진진하다. 그는 힌두교 사람들이 쇠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와 이슬람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단백질 공급 루트’로 설명한다. 그가 내세운 가설은 이렇다. 쟁기와 수레를 끄는 < 소 > 는 인도 사람에게 있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우유를 공급한다. 그리고 똥은 화력 좋은 연료로 쓰인다. 짚, 왕겨, 나뭇잎, 풀을 뜯어먹고 나서 싸는 똥이니 좋은 연료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인도 소는 인간이 먹지 못하는 것만 골라서 먹으니 식량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여러모로 보나 소를 죽여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이득보다는 소를 보호해서 얻는 이득이 월등히 많은 것이다. 효율 대비 측면에서 보자면 소를 죽이지 않는 것이 경제적이다. 그래서 소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결국에는 소를 숭배하는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라고 마빈 해리스는 주장한다. ) 이슬람 문화권이 돼지를 혐오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돼지는 무더위에 약해서 이슬람 문화권 기후에 맞지 않다. 돼지는 몸에 열이 오르면 물이나 진흙 속에 뒹굴어서 열을 식혀야 하는데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막을 횡단하는 유목민 입장에서 보면 돼지’는 이래저래 키울 수가 없다. 설령 악조건을 이기고 키운다고 해도 손실을 벌충할 만한 요소가 없다. 소, 염소, 닭, 낙타, 양 등은 고기뿐만 아니라 가죽은 물론이고 동물성 단백질인 우유와 달걀을 생산하며 보온을 위한 털과 쟁기를 끄는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돼지는 고기 공급 이외에는 얻을 것이 없다.
돼지를 키워서 투자 대비 비싼 동물성 단백질을 얻느니 차라리 투자 비용이 저렴하며 동물성 단백질뿐만 아니라 다른 부산물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짐승을 키우는것이 낫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속내일까 ? 이슬람교 사람들은 돼지를 더럽고 혐오스러운 짐승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힌두교가 < 숭배’> 라는 방식으로 소고기를 금지시켰다면 이슬람교는 < 혐오 > 라는 방식으로 돼지고기 식용을 금지시켰다. 마빈 해리스는 이런 식으로 말고기, 개고기에 이어 결국에는 식인 문화’에까지 접근하게 된다. 하지만 마빈 해리스의 동물성 단백질 인류사’는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그는 동물성 단백질’을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절대 반지’처럼 설명하지만 대부분의 영양학자들인 단백질에 대한 가치와 필요성을 마빈 해리스가 지나치게 과장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단백질은 중요한 영양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굳이 동물성과 식물성을 나눌 필요는 없다. 채식주의자는 간단한 동물성 단백질 섭취만으로도 건강하게 산다. 설령 우유와 계란마저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라 하더라도 건강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승려’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마빈 해리스의 주장이 모두 엉터리라고도 할 수 없다. 문화 인류의 역사’란 딱히 한 가지 조건으로만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요소들이 얽히고설켜서 지금의 문화 인류사’를 만든 것이다. 제레미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가 이동하는 경로에 따라 독자를 지식의 고고학으로 안내한다면, 마빈 해리스는 식신로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마빈 해리스는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레드 다이아몬드처럼 대중적인 문장력을 갖춘 뛰어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박찬욱 감독의 < 올드보이 > 가 생각났다. 사설 감옥에서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은 사나이 ! 어쩌면 그는 야채로만 속을 꽉 채운 야채 만두를 꾸역꾸역 먹다가 드디어 속이 터진 것은 아니었을까 ? 그가 원한 것은 유지태를 향한 복수였지만, 사실 그에게 당장 필요했던 것은 동물성 단백질’이었으리라. 일단… 먹고 나서 복수하자 !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거창한 결심보다 앞서는 것은 항상 식욕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그나저나 인간이 소처럼 짚, 왕겨, 풀 따위를 먹었다면 에너지 걱정은 덜었을 것이다. 인간이 싼 똥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 여보 ! 올겨울에는 부모님 댁에 똥을 놓아드려야 겠어요 ! ” ( 아, 인간이란 자원을 낭비만 할 뿐이니, 소똥만도 못한 존재다. )
○ 독자의 평 5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는 이전 책들인 <문화의 수수께끼>나 <식인과 제왕>에 비해 우리의 생활과 보다 밀접한 연관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 이전 책들을 총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우리는 보통 그 사회의 문화라고 얘기한다. 프랑스 여우 BB가 우리나라 개고기 먹는 것에 대해 동물보호론과 미개론을 주창할 때 우리는 보통 우리의 문화라고 너희들은 말고기를 먹지 않냐고 항변한다.
문화의 상대성론은 많은 것을 얘기해주는 듯 하지만 단지 명제로서만 얘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다’는 식으로 타자와 구별하는 것만으로는 타자에게 우리를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빈 해리스는 상대성론의 이론적 근거를 밝혀주고 있어 읽는 이를 후련하게 해준다. 20세기 중반에 <슬픈 열대>의 ‘레비 스트로스’가 있었다면, 20세기 후반에는 <문화의 수수께끼>의 마빈 해리스가 있다고 한다면 마빈 해리스에 대한 지나친 칭찬일까.
단백질 공급원에 대한 대체재가 있었는가, 그리고 해당 동물이 음식을 둘러싸고 인간과 얼마나 경쟁적 관계에 있었는가, 또 단백질을 사냥할 때 어떤 효용론에 의거해 사냥 선호 동물이 결정되는가(최적 먹이찾기 이론) 등의 분석에 의거하여 마빈 해리스는 다양한 음식문화를 분석하고 있다. 이에 의거해 인도인이 왜 소고기를 먹지 않고, 아랍인이 돼지고기를 기피하고, 유럽에서 왜 말고기를 좋아했고, 많은 나라에서 개고기를 먹고 있고, 미국에서 선호도가 돼지고기에서 소고기로 바뀌었고, 식인문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흥미있게 전개하고 있다.
‘혐오하기 때문에 안먹는 것이 아니라 안먹기 때문에 혐오하는 것이다’라는 마빈 해리스의 말 또한 비단 음식문화와 관련해서가 아니라 전반적인 주제 관련하여도 음미해볼 만 하다.
○ 독자의 평 6

먹고 살기도 힘든데 인도인들은 주인 없이 방황하는 소를 보면 좀 잡아먹지 왜 먼저 가라 길 비켜주며 숭상하고, 이슬람인들은 배고플 때 먹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돼지고기를 왜 마다하는지? 프랑스인들은 전통적으로 말고기를 즐기는데 그 이웃동네에서 건너간 미국인들은 말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할 수 없다는데 그것은 또 왜 그런 것일까?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는 이러한 각 나라가 가진 음식문화의 호불호와 특이사항을 나름의 이유와 근거를 대며 흥미롭게 설명해준다.
인도인들의 경우 그들이 목숨보다 더 소를 신성시하고 경외하는 것은 결국은 그것이 그들의 삶에 더 유리하고 그들을 지켜준 전통 때문이었다. 사막의 마른 기후에는 낙타가 적합하듯이, 인도의 토양과 기후에는 소가 가장 적합하다고 한다. 게다가 소들은 인간의 먹을거리와는 상관이 없는 풀들을 먹으며,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그들의 근면성은 가난한 인도민의 생활에는 아주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특히 암소를 숭배하는 이유는, 그들이 일은 일대로 하면서 우유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송아지를 낳는데 있었다. 그들이 낳은 송아지들은 당연 자라서 그들 어미의 역할을 소화해 낼 터이므로 인도인에게 소는 복덩이이자 든든한 존경의 대상인 것이었다. 그 뿐인가. 똥도 버릴게 없다는 말은 인도의 소를 두고 하는 말이다.
농부들이 소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단지 쟁기를 끄는 힘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생산하는 거름과 연료 때문이기도 하다. 소똥은 지금도 인도의 주요한 거름원이다. 게다가 나무와 석탄, 그리고 연료용 기름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백만의 인도 가정주부들은 요리에 마른 소똥을 이용하고 있다. 소똥을 연료로 쓰면 거의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깨끗하고 지속적이며 냄새가 없는 불꽃이 나오는데 야채요리를 끓이는 데는 아주 적당하다. – 64쪽
인도인의 소 숭배는 그렇다 치고, 이슬람 인들은 왜 돼지고기를 금지하고 혐오하는 것일까. 인도의 소에 견주자면 돼지는 한없이 미련하고 더럽기도 하고 수선스러운 등 수준이,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못난 돼지도 예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다산이다.
소는 1년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지만 돼지는 ‘4개월 임신에 한번 낳을 때마다 여덟 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고 그 새끼는 또 얼마나 빨리 포동포동 살이 찌는지. 인도의 소는 근면으로서 인간에게 보답하지만 돼지는 살신성인(?)으로서 인간에게 보답한다.
그러나 아무리 ‘살신’으로 보답한다 해도 이슬람과 중동인들이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즉 이들이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소, 양, 염소 등은 돼지와 달리 풀을 먹고 되새김을 하는 초식동물들로 인간의 먹을거리를 침해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중동의 기후와 생태에 맞았다. 그에 비해 ‘털이 성긴’ 돼지는 인간의 먹을거리를 축낼 뿐더러 덥고 건조한 중동의 기후에 맞지 않았고 유목하기에도 적당하지 않았다.
한편, 프랑스의 경우, 전쟁의 도구로만 생각되었던 말을 백성들이 기근으로 아우성치자 ‘과학자들과 지식인들’은 말고기 장려를 외쳤다. 영국은 양모 획득을 위하여 농민들에게 농업대신 ‘목축을 강요’하여 역시 농민들이 굶주림에 처하게 대자 ‘양고기를 허용’하였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말을 사랑하던 미국인들은 말고기의 금지를 동의했고 양고기, 염소고기마저 별로 인기 없게 된 이유는 돼지고기, 소고기의 물량이 워낙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돼지와 소가 번성하게 된 것은 드넓은 초원과 숲, 곡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가 하면, 동남아시아나 중국, 혹은 아마존강 유역의 사람들은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의 공급원’인 곤충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다. 라오스인들은 바퀴벌레 알을 볶아서 먹는가 하면 중국인들은 최근까지도 번데기, 매미, 귀뚜라미, 물방개, 파리의 구더기 등을 먹었다고 한다. 번데기는 우리의 기호식품이기도 하다. 이 지역 나라들이 곤충을 즐기게 된 것은 당연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의 물량부족 때문이고 그것을 보충하고자 함이었다.
이처럼 세계 여러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먹는 먹을거리들도 있지만 타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음식들을 먹기도 한다. 각 나라는 그 나라만의 특별식이 있고 나름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일련의 기호습관엔 주어진 환경과 그에 대한 작용이라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지구촌 사람들의 선호하는 먹을거리와 그와 관계된 그들의 역사와 환경 등의 상관관계에 대해 조목조목 설득력 있게 파헤쳐 주고 있다. 제목 그대로 ‘음식과 문화의 수수께끼’를 속 시원히 풀어준다.
보너스로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아즈텍’ 인들의 ‘식인풍습’이었다. 사라진 문명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켜주는 아즈텍 인들이 인육을 먹었다니….
○ 독자의 평 7
왜 소고기, 돼지고기, 말고기, 개고기, 벌레등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가? 흔히 문화적 차이라고 말해지는 것의 더 깊은 이유는 무엇일까? 를 저자는 파고 들어간다. 그리고 결론 내리기를, 고기를 얻기 위한 비용-효과 분석(의식적이라기보단 경험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터득했을)의 결과가 특정음식에 대한 선호(취향)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한다.
저자의 전제는 우선, 누구든 고기를 좋아하고 고기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옮긴이는 이 전제가 과연 맞는 것인가 의문을 제기한다) 주변에 잡아먹을 동물들이 많은가, 적은가, 또 그것을 쉽게 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 가축으로 길들여서 얻는 이득(농사, 전쟁, 이동, 우유등)과잡아먹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일까, 가축으로 기르는데 비용은 얼마나 드는가 등을 따졌을 때 더 수지타산이 맞는 쪽으로 취향이 고정되고 학습되었을 것이란 거다.(다른 말로 하자면영양이나 노동력 등의 요구를 가지고 주어진 환경에 최대한 적응한 결과)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같은 나라나 종족이라고 해서 그런 수지타산이 똑같지는 않으며 그 때는 지배계급에게 유리한 쪽으로 취향이 학습 내지 선전되었을 거라는 거다. 그리고 현대의 자본주의에 들어오면서는 수요보다는 공급, 즉 원하는 고기보다는 팔기 좋은 고기가 ‘좋은'(또는 합법적인)고기로 선전되었을 거라는 거다.
다양한 사례를 들어 자기 주장을 옹호하고 반대 주장이 놓친 부분을 꼼꼼히 파고 드는 저자의 글은 나에겐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특히나 식인풍습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일관되게 밀고 나간 점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니 식용동물들이 공장식으로 사육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인류 역사 전체에선 지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라는 것,무엇이든 그 깊은 원인을 알기 위해선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긴 과거의 모습을 반드시 참조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지금이 아니라 겨우겨우 먹고 살아갔던 시대가(인류사의 대부분을 이룬) 지금의 음식문화를 만든 것이다.이런 진화론적인 관점에 서 있는 저자기에, 진화생물학을 재밌어 하는 나에게는 당연히 설득력있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 독자의 평 8

사람에겐 자신과 다른 것을 포용하기 보다 배척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인종차별이나 성적 소수자 차별 같은 각종 차별적 행위들, 시쳇말로 ‘돈 한푼 대주지 않으면서’ 타인의 취미나 취향을 ‘이상하다’고 난도질 하는 행위들, 그리고 타인의 문화를 쉽게 ‘야만적’이라던가 ‘비인간적’이란 말로 매도하는 행위들이 그 반대의 행위보다 더 자주, 더 드러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면 내 착각일까.
하지만 나는 또한 ‘나와 다른 타인의 무언가’에 대한 인간의 공격적이고 또한 방어적인 태도는 타인에 대한 이해에 의해 많이 개선될 수 있다고도 믿는다. 이해의 바탕은 ‘앎’이다. 특히 현상뿐만 아니라 원인에 대한 앎은 이해를 더욱 깊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타인의 특정한 행동양식이 어디에서 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행동양식적 기반이 자신의 기반과는 어느 부분이 얼만큼 다른지 알고 난 후에도 배타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의 수는 상당할 테지만, 어느 정도의 개선을 기대하기에 사람들은 교육을 멈출 수 없고 멈춰서도 안 된다. 그리고 그 교육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선구적 시각을 가진 어떤 학자들의 연구일 것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3부작’은 (선구적 저작이라고까지 표현되기는 어려울 지 몰라도) 타문화를 이해하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식인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이 책과 이 책의 저자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그는 식인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민족의 끔찍한 본능’이라고 배척 하거나 반대로 ‘오로지 서양인들의 편견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함으로서 무조건적 부정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존재하는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안에 감추어진 문화적 배경을 찾아내어 그들이 ‘식인을 선택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책의 어느부분을 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인들은 왜 소를 숭배하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말이나 개의 고기를 먹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벌레를 먹는가? 그리고 왜 한국, 중국,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지금은 먹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유를 먹지 않는가?
특히 우리와 관련하여, 개와 같은 애완동물로 받아들여지는 동물을 먹는 행위와 우유를 먹지 않는 행위의 장이 매우 인상깊다. 지금이야 우리가 우유의 어느 성분을 분해하는 락토우즈 성분이 우유를 주로 먹는 서구인들에 비하여 없거나 적기 때문에 우유를 먹으면 곤란을 겪는다는 점이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등 널리알려져 있다. 하지만 서구인들이 동양세계를 발견(으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그들은 단지 동양의 물이 더럽다던가 동양인들이 물을 끓이지 않아 우유를 먹고 복통을 호소한다고 생각했다. 체질이 다른 것을 ‘더럽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몰이해 혹은 얕은 이해가 얼마나 편견을 낳기 쉬운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물론 마빈 해리스가 이 책에서 제시한 음식문화에 대한 분석이 모두 진리는 아닐 것이다. 지나치거나 모자르거나 옳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왜 타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그의 생각이 옳다고 여겨진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나와 같은 독자로서는 그 문화 기반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해도, 나름의 음식에는 나름의 문화와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만큼 그 문화를 적어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으악! 중국사람들은 불가사리도 먹어, 징그러워~’라고 하기 전에, ‘이렇게 귀여운 개를 먹는건 야만인이야!’라고 하기 전에 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달리 이야기하면 나에겐 불륜으로 보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로맨스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 독자의 평 9

‘동물해방’을 말하는 피터 싱어와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 1927 ~ 2001)의 관점은 다르다. 인간 수명이 길어진 것이 육식(肉食)에 의한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다 높게 보고, 육식 선호의 문화사(文化史)를 인류의 합리적 결정의 결과물로 판단하고 있다.
동물성식품이 필수적인 단백질과 미네랄, 비타민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수명이 길어진 것이 완전히 다른 요인들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경솔한 일이 되지 않을까? 동물성식품에 몸에 해롭다고 생각되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들어 있긴 하지만 동물성식품을 많이 먹는 것이 가져온 유리한 결과를 생각할 때 우리는 이 해로운 물질을 제거하여 그 영양가를 더 높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p52)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영양과다보다는 영양부족이 더 일차적인 문제인 제3세계에서는 영양학적 관점에서 볼 때 고기와 생선, 닭고기류, 그리고 낙농제품의 지방과 콜레스테롤 함유량을 낮추지 않아도 동물성식품이 식물성식품에 비해 영양학적으로 확실히 유용하다. 따라서 더욱 많은 고기와 생선, 닭고기, 우유에 대한 계속되는 세계의 열망은 인간의 생리와 두 가지 식품의 영양학적 구성과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완전히 합리적인 선호를 보여주는 것이다.(p52)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마빈 해리스는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The Sacred Cow and the Abominable Pig : Riddles of Food and Culture>를 통해 서로 다른 자연환경이 다양한 음식문화를 만들었으며 서로 다른 체질(體質)을 형성했음을 보이고 있다. 가령 서유럽에서 개를 먹지 않은 이유는 개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먹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중국인들은 우유를 먹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젖당못견딤증(lactose intolerance 선천적으로 젖당 lactose 을 분해하는 효소 부족 증상)이 많은 체질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해리스에 의하면 전통 음식은 영양분을 공급할 최적의 공급원이 식재료로 활용되고 이로 인한 서로 다른 문명권간 체질 차이도 설명할 수 있다. 해리스에게 서로 다른 환경은 중요한 변수가 된다.
서유럽인들은 개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애완동물이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개가 육식동물로서 비효율적인 고기 공급원이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다. 서유럽인들은 다른 동물성 식품 공급원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개는 그 고기와 송장보다 훨씬 가치있는 많은 서비스를 살아서 제공한다.(p212)… 중부 멕시코에는 폴리네시아처럼 사냥할 만한 큰 육지동물이 실제로 거의 없었다. 멕시코인들은 사냥하기 위해서 개가 필요하지 않았으며 다른 북미 원주민들처럼 가축이라고는 개와 칠면조뿐이었기 때문에 오직 고기를 위해서만 개를 필요로 했다.(p220)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중국인들은 그들이 락토우즈 과민이기 때문에 우유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유를 무시했기 때문에 락토우즈 과민이 되었다… 이는 극동지역의 사람들이 그들의 환경이나 생활방식으로 인해 칼슘이나 혹은 다른 영양소를 얻기 위해 우유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다는 것을 의미한다.(p177)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이러한 다른 환경으로부터 초래된 문화적 차이, 신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피터 싱어는 우리에게는 다양한 선택(選澤)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윤리(倫理)의 기준으로 육식을 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선택권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권리라고 볼 수 있을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