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자디그, 또는 운명
볼테르 /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 2011.1.20
‘자디그 또는 운명: 동양이야기’는 배경을 중동을 가리키는 동양을 중심으로 하였고, ‘천일야화’를 염두에 두고, 그 당시 크게 유행하던 이런 종류의 작품들에 대한 풍자적 성격을 암시하는 명칭이다. ‘동양 이야기’라는 부제는 볼테르 자신이 붙인 것으로서, 당시에는 작품 아래에 ‘철학 콩트’ ‘역사 소설’ ‘실화 이야기’ 등의 장르 명칭을 붙이는 것이 통례였다고 한다.
○ 목차

1장 애꾸눈이
2장 코
3장 개와 말
4장 샘바리
5장 관대한 사람들
6장 장관
7장 논란과 청중
8장 질투
9장 매맞은 여인
10장 노예제도
11장 화형대
12장 저녁식사
13장 약속
14장 강도
15장 낚시꾼
16장 바실리스크
17장 시합
18장 은자
19장 수수께끼
○ 저자소개 : 볼테르 (Voltaire, 본명 :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 (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 (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 (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 (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 (Sceaux)성 (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청년 시대에 섭정 오를레랑 공을 풍자한 시의 작자로 간주되어 바스띠유에 갇혔다가 출옥한 뒤, 볼떼르란 필명으로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 (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 (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 (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 (L’Ingenu)』 (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 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 (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에는 대시인으로 대접받았지만, 그의 재능의 본질은 풍자 작가, 명쾌하고 기지에 찬 프랑스적 산문 작가의 전형에 있으며, 특히 철학적 에세이와 우화 소설에 뛰어났다. 이신론(理神論), 이성론의 입장에서 초자연을 강하게 부정하고 신랄하게 성서를 비판해, 후세에 그의 이름은 회의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계몽주의의 보급을 통해 대혁명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철학의 간』(1734), 『깡디드』(1759), 『관용론』(1763), 『철학사전』(1764) 등이 있다.
– 역자 : 이효숙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4대학(파리-소르본)에서 프랑스 문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숨어 산 아이》 《지구인 사용설명서》 《왜 병에 걸릴까요?》 《자디크》 《등대》 《80일간의 세계 일주》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볼테르’에 대하여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Francois-Marie Arouet). 1694년 파리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717년 섭정 오를레앙 공에 대한 풍자시를 써서 투옥되었는데, 이때 완성한 작품인 <오이디푸스>가 큰 성공을 거두며 볼테르라는 필명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1726년에는 명문가 귀족과 갈등을 빚어 또다시 투옥되었다가 영국 망명을 조건으로 풀려난다. 영국에서 정치적, 사상적 자유를 체험하고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절실히 느낀 볼테르는 《영국인들에 관한 편지 혹은 철학 서간》(1734)을 발표하여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체포령이 떨어지자 볼테르는 연인의 성에서 10년간 은거하며 다양한 연구와 저작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 나간다. 1744년 복권되어 잠시 고국에 정착하는 듯했으나 얼마 못 가서 또다시 루이 15세의 신임을 잃는다. 그는 1750년 프로이센의 왕의 초청으로 베를린에 머물기도 했으며 이때를 전후하여 그의 독특한 문학 형식인 철학 콩트(conte philosophique) 작품을 다수 출간한다. 《자디그》(1747), 《미크로메가스》(1752), 《캉디드》(1759) 등 그가 남긴 철학 콩트는 총 26편에 이른다. 1758년 볼테르는 페르네에 정착하며 평생에 걸친 망명 생활을 끝낸다. 말년에도 부당한 권력과 교회의 불관용에 대항해 끝없이 투쟁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저항 정신은 훗날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1778년 <이렌> 상연을 위해 프랑스로 금의환향한 볼테르는 파리 시민의 열렬한 환영 속에 숨을 거둔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