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자연법
G. W. F. 헤겔 / 한길사 / 2004.3.5
인륜성의 체계 속에서는 천재의 펼쳐진 꽃이 결집되고 절대적 개체들이 보편성으로 완전하게 서로 하나가 되며, 실재성 내지 육체는 영혼과 최고도로 하나가 된다. 이는 육체의 실제적 다수성 자체가 바로 추상적 이념성이고 절대적 개념들은 순수한 개체들일 따름이며, 이를 통해 개체들 자체가 절대적 체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것이란 그가 자신을 직관한다는 것, 그것도 자기 자신으로서 직관한다는 것이고 저 절대적 직관과 이 자기인식, 저 무한한 팽창과 이 무한한 팽창의 자기 안으로의 무한한 환수가 전적으로 하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이 속성으로서 실제적일 경우, 정신은 자연보다 우월하다.

○ 목차
자연법에 대한 학적 취급방식들, 실천철학에서 자연법의 지위와 실증법학과의 관계에 관하여
옮긴이주
헤겔 연보
근대 자연법론 비판과 절대적 인륜성의 체계/김준수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 저자소개 :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
독일의 철학자이자 독일 이상주의 (理想主義, Idealismus) 철학의 이론을 완성한 거장. 1770년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궁정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튀빙겐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1793년에 스위스로 가서 당시 베른의 영향력 있는 정치가인 폰 슈타이거 (von Steiger) 집안의 가정교사로 일하며 이 가문이 소장한 방대한 양의 서적을 읽는 기회를 가졌다. 여기서 얻은 폭넓고 심오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훗날 그는 자신의 철학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1801년 독일 동부 예나 (Jena) 대학교의 강사직에 임명된 후 불후의 명저 ‘정신현상학’ (Phänomenologie des Geiste, 1807년)을 썼고, 이어서 두 번째 저서인 ‘논리학’ (Wissenschaft der Logik, 1812년)을 출간하였다. 1816년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수로, 1818년에는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피히테의 뒤를 이어 베를린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세 번째 명저인 ‘법철학 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1년)를 출간하였다. 대학 강사 시절인 1802년에 당시 독일문화의 중심지였던 드레스덴을 비롯해, 1822년 브뤼셀, 1824년 빈, 1827년 파리와 프라하, 칼스바트로 여행하면서 수많은 전시, 공연, 오페라 등을 관람하였고, 특유의 독창적이고 진지한 예술 감각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미학 또는 예술철학’ (Ästhetik oder Philosophie der Kunst) 강의를 하였으며, 이 내용을 제자인 하인리히 구스타프 호토 (Heinrich Gustav Hotho)가 정리하여 그의 사후 출간한 것이 바로 ‘미학강의’ (Vorlesungen über die Ästhetik) 이다.
일찍이 스피노자와 칸트, 루소 그리고 괴테의 영향을 받았으며, 열아홉 살에 직접 겪은 프랑스 혁명은 그가 이성과 자유에 바탕을 둔 철학을 과제로 삼는 데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루소의 사상,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예술 나아가 칸트, 피히테 등 당대의 주요 철학들을 깊이 탐구하면서 근대의 온갖 분열된 상황에 맞서 삶의 근원적인 총체성을 되살리려는 이상을 세웠다.
근대철학과 문화, 사회 안에서 주체와 지식의 대상인 객체, 정신과 자연, 자아와 타자, 권위와 자유, 지식과 신념,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현상을 헤겔은 ‘절대정신’을 중심으로 하는 자신의 철학체계 안에서 합리적으로 규명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던 헤겔은 1831년 병으로 사망했지만, 1820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헤겔학파’를 통해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그의 철학이 널리 전파되면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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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 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곱 살에 김나지움에 입학한 헤겔은 책이나 신문 기사 등의 자료를 꾸준히 발췌하여 정리하는 데 정성을 기울인다. 이것은 훌륭한 개인 자료가 되었으며 이 때 익힌 습관은 그의 과학적은 비판 방법의 토대가 된다.
열여덟에 김나지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튀빙엔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다분한 그리스도교 정통파의 교리 강의와 강압적인 생활 방식에 싫증이 나 철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특히 열아홉에 목도한 프랑스 혁명은 그가 이성과 자유에 대한 굳건한 믿음에 바탕을 둔 철학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 데 하나의 단초가 된다. 또 루소의 사상과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예술, 나아가 칸트, 피히테 등 당대의 주요 철학들을 깊이 탐구하면서, 근대의 온갖 분열된 상황에 맞서 삶의 근원적인 총체성을 되살리려는 이상을 세운다.
십여 년을 가정 교사로 전전하던 헤겔은 서른하나에 셸링의 도움으로 예나에 입성해 그의 대저작들의 기점인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여기에서 그는 관념론 논쟁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자신의 철학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다. 예나에서 궁핍한 사강사 시절 “이제까지 만들어진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상의 예술 작품”이라 평가받은 <정신현상학>을 집필한다. 마흔엿서에 하이델 베르크에서 비로소 정교수가 된다. 이때 강의용으로 기획한 <엔치클로페디>는 그의 철학 체계 전체를 가장 간명하게 보여주는 저작이다. 이후 베를린으로 옮겨간 그는 생을 마칠 때까지 왕성한 강의와 저술 활동을 펼친다.
셸링과 피히테 등의 의해 전개된 낭만주의 자연철학의 영향을 받은 헤겔은 당시 자연과학의 성과를 받아들여 ‘철학적 박물학’이라 할 수 있는 자연철학 체계를 발전시켰다. 이후 헤겔은 낭만주의 자연철학을 비판하면서 자연계 전체를 우주에서 인간 정신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으로 설명하는 독자적인 자연철학 체계를 완성했다. 그의 자연철학은 낭만주의 자연철학과 달리 직관을 배제한 유기체적이고 목적론적인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 역자 : 김준수
중앙대학교에서 경제학사를 취득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철학.사회학.정치학을 수학하고 헤겔에 관한 연구로 철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된 연구 분야는 독일 관념론, 정치철학, 윤리학, 상호주관성 이론, 소유권 이론 등이다. 저서로는 Der Begriff der Freiheit bei Hegel, 『헤겔』 『승인이론』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자연법』 『인륜성의 체계』 『정치사상의 거장들』 등이 있으며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 책 속으로
인륜성의 체계 속에서는 천체의 펼쳐진 꽃이 결집되고 절대적 개체들이 보편성으로 완전하게 하나가 되며, 실재성 내지 육체는 영혼과 최고도로 하나가 된다. 이는 육체의 실제적 다수성 자체가 바로 추상적 이념성이고 절대적 개념들은 순수한 개체들일 따름이며, 이를 통해 개체들 자체가 절대적 체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것이란 그가 자신을 직관한다는 것, 그것도 자기 자신으로서 직관한다는 것이고 저 절대적 직관과 이 자기인식, 저 무한한 팽창과 이 무한한 팽창의 자기 안으로의 무한한 환수가 전적으로 하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이 속성으로서 실제적일 경우, 정신은 자연보다 우월하다.
○ 출판사 서평
통상 ‘자연법’이라고 불리는 이 논문은, 헤겔의 초기 저작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청년 시기 헤겔 자신이 동조했던 근대 자연법 사상과 비판적으로 대결한 기록이자, 이후 ‘인륜성의 체계’, ‘법철학’으로 이어지는 그의 법철학 체계를 향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헤겔은 당대를 풍미했던 사상들, 즉 홉스의 경험주의적 자연법 이론과 칸트, 피히테의 형식주의적 자연법 이론을 비판하며 자신의 논지를 편다. 개인의 개별성을 무화하고 민족공동체로 합일했을 떼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지며, 절대적 인륜성을 전제로 할 때 개인의 자유가 실현되어 분열된 시민사회와 억압적 지배질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자연법 사상과 시민사회의 내적 모순에 대한 탁월한 분석, 공동체를 모델로 한 인륜성의 이념, 고대 비극작품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이의 역사철학적 작용, 실천하는 철학의 개념 등이 주목할 부분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