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전습록 1, 2
왕양명 / 청계 / 2007.5.30
전습록 (傳習錄)은 왕양명 (王陽明)의 제학설과 교계 (敎戒) · 서간 등을 그 제자들이 편집한 것이다.
“전습 (傳習)”이라는 말은 논어(論語) 학이 (學而) 제1 (第一)의 “전 (傳)한 바를 익혔 (習)는가”에서 나온 것이다. 즉 이 명칭은 스승인 왕양명으로부터 전수받은 학문을 자신이 잘 체득하여 익히고 있는지 어떤지를 스스로 반성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전습록은 보통 ‘왕문성공전서’ (王文成公全書) 38권 중의 처음 3권에 수록되어 있으나, 전습록 만을 간본 (刊本)으로 하고 있는 것도 있다. 양명사상 (陽明思想)을 파악하는 데는 ‘왕문성공전서’ 전체를 숙지해야겠지만 ‘전습록’을 정성껏 읽으면 왕양명의 사상은 대체로 이해된다.

○ 목차
[1권]
번역을 마치면서
일러두기
왕양명과 『전습록』
傳習錄券上
서애의 이끄는 말
서애의 기록
서애의 발문
육징의 기록
설간의 기록
傳習錄券中
전덕홍 서문
고동교에게 답하는 글
주도통에게 보내는 글
육원정에게 답하는 글
육원정에게 다시 답하는 글
전덕홍 발문

[2권]
일러두기
구양승일에게 답하는 글
나정암 소재에게 답하는 글
섭문울에게 답하는 글
섭문울에게 답하는 두 번째 서신
아동 교육의 대의를 교사 유백송 등에게 보이다
학교의 규약
傳習錄券下
진구천의 기록
황직의 기록
황수이의 기록
황성중의 기록
전덕홍의 서문
황이방의 기록
전덕홍의 발문
傳習錄拾遺
전습록 습유
부록
대학고본서
대학문
문인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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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양명 왕수인 (王守仁, 1472 ~ 1528)
양명 왕수인 (王守仁, 1472년 10월 31일, 중국 닝보시 위야오시 ~ 1528년 1월 9일)은 중국 명나라 중기의 사상가이자 정치가로 양명학 (陽明學)의 창시자이다. 자는 백안 (伯安). 호는 양명 (陽明)이며, 원래 이름인 왕수인 대신 호를 사용하여 왕양명 (王陽明)이라고 곧잘 불린다.
대표적 업적은 양명학을 창시한 것이다. 양명학은 당시 과거시험 합격에 치우쳐 있던 주자학 (朱子學)을 비판하며 창시되었으며, 당대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양명학을 창시함으로써 이지 (李贄), 하심은 (何心隱), 나여방 (羅汝芳) 등 제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의 나카에 토주 (中江藤樹)가 일본에 양명학파를 설립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책에는 ‘대학문’과 ‘전습록’, ‘유언록’등이 있다.
사상 분야에서의 업적과 명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군사지휘관이었다.
소년 시절에는 무관을 동경하여 병법 연구에 몰두했고, 북방을 유람하며 오랑캐 소년들과 말타고 활을 쏘며 어울리기도 했다. 이 때의 경험은 후에 지방행정관으로서 일하면서 도적떼나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가장 큰 군사적 성공은 1519년 영왕 (寧王) 주신호 (朱宸濠)의 반란을 평정한 것이다. 정덕제가 친정을 결정할 정도로 큰 반란이었는데 당시 병주부사였던 왕수인은 뛰어난 책략으로 정덕제가 도착하기 전에 1만의 병사로 10만의 영왕군을 괴멸시키고 주신호를 사로잡았다. 이 과정에서 후장 장전식 포 불랑기포를 동양의 전장에서 처음 도입하기도 하였다. 이 후 벼슬을 떠나 있었으나 1528년 광서성에서 일어난 반란 토벌을 명 받고 성공적으로 진압한 후 귀환하던 중 병을 얻어 사망한다.
주요저서로 ‘전습록’ (한정길, 정인재 역, 청계 / 김동휘 역, 신원 / 정차근 역, 평민사), ‘대학문’ (전습록 부록), ‘유언록 : 양명선생유언록’ (소나무출판, 정지욱 역) 등이 있다.
– 역자 : 정인재

○ 출판사 서평
이 책은 王陽明 (1472∼1528)의 {傳習錄} 上·中·下와 [傳習錄拾遺], [大學古本序], [大學問]을 완역하고, 陳榮捷이 {傳習錄詳註集評}에 모아놓은 {전습록} 각 조목의 내용에 대한 고금의 학자들(韓·中·日)의 評語를 번역한 것이다.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전습록} 완역본으로서 상세한 각주와 해설은 세계적인 어떤 판본보다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무려 7년의 연구과정을 소요하면서 전문학자에 의해 <연구번역>의 모범을 드러내고 있다. 실상 연구번역이 학위논문이나 연구업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우리 학계의 잘못된 풍토에 비추어 본다면, 이 책은 동양학계의 ‘논문’ 중심의 단편적 연구 성향에 작은 경종을 울릴 수 있을 것이다.
『전습록』은 왕양명의 제자들이 선생의 학술에 대한 말씀과 학문을 논한 편지글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주로 제자들의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습록}에는 양명의 학술 내용뿐만 아니라 그의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전습록}을 통해 양명 사상의 전체 규모와 그 핵심 내용을 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공동체 질서가 해체되던 혼란한 시대를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간 양명이라는 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양명의 사상은 그의 삶과 유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破山中賊 ‘(나라의 도적을 물리침)으로 대변되는 事功의 업적이나, ‘破心中賊’ (마음의 도적을 물리침) 으로 대변되는 그의 학술은 모두 本心의 感通을 실현하여 천하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자기의 덕성을 밝히고 타인을 사랑하는 길을 의미했다. 양명은 대립과 갈등의 현실을 인간의 도덕적 본심을 각성시키고 실현하여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편안하게 하고 길러주는 大同社會로 이끌고자 했던 것이다. 陽明學은 양명이라는 한 개인의 삶의 경험 속에서 자각되고 실천을 통해 확인된 체험적 진리로 짜여져 있다. 따라서 양명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려면 그의 가르침의 기초가 되는 삶의 체험에 주목하고, 그 가르침이 양명을 읽는 자의 마음 속에서 거듭 체험되고 자각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 서평
양명학 연구번역 첫 모범서
전습론 (전 2권, 왕양명 지음, 청계출판)
“이 마음이 환하게 밝은 데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此心光明 亦復何言).”
선사 (禪師)의 열반송을 연상케 하는 왕양명(王陽明·1472~1528)의 유언처럼 ‘심학(心學)’으로 상징되는 양명학파의 종지(宗旨)를 집약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 있을까. 학자로선 드물게 무인(武人)의 자질을 겸비했던 왕양명은 주자학이 관학(官學)으로 교조화되면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 이를 비판하고 나와 명대 사상계의 흐름을 일거에 역전시킨 인물이다.
그가 주자학에 대해 불신과 회의를 품은 계기는 젊었을 때 경험이 중요한 원인이 됐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그것의 이치가 있으며, 이를 끝까지 캐묻는 것이 격물궁리(格物窮理)다”란 주자의 말에 따라 7일동안 관서(官署)에 있는 대나무를 바라보며 ‘격물’을 했으나 몸에 병만 들고 대나무의 이치는 전혀 깨달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책상물림이 아니라 호방한 성격에 시와 문장을 잘 짓고 불교와 노장의 학문까지 섭렵했던 왕양명은 37세때 변방인 후이저우(貴州) 룽창(龍場)에 유배된 것을 계기로 ‘심즉리(心卽理)’ ‘지행합일(知行合一)’ ‘치양지(致良知)’ 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독자적인 사상 (양명학)을 구축, 발전시키게 된다.
왕양명이 깨달음을 얻고 난 다음의 어록과 그의 제자 및 당시 사람들에게 답하거나 학문을 논한 편지글 등을 모아 놓은 ‘전습록(傳習錄)’이 완역됐다. 주자의 ‘근사록(近思錄)’과 더불어 신유가의 고전인 책은 주자학 일변도인 우리나라의 풍토상 제대로 된 완역이 없었다. 1970년대 이래 번역본이 몇 종 나왔으나 양명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 중요한 부분만 편역하거나 자기의 사상에 맞춰 풀이를 시도한 것에 불과했다. 따라서 정인재 서강대 교수와 연세대에서 ‘왕양명의 마음의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정길씨가 2년여 동안의 작업끝에 내놓은 책은 국내 최초의 양명학 전공자에 의한 번역이란 사실 외에도 연구번역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책은 ‘왕양명전집’을 기본판본으로 중국 출신의 재미학자 천룽제 (陳榮捷)의 ‘전습록상주집평 (傳習錄詳註集評)’에 실린 ‘전습록’ 각 조목에 대한 한·중·일 학자들의 논평을 덧붙였다. 책 말미에 번역된 ‘전습록습유 (傳習錄拾遺)’나 ‘대학고본서 (大學古本序)’ 등은 국내에 처음 번역된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조선에서 양명학은 퇴계 이황의 비판이래 노론·소론·남인 할 것 없이 모두에게서 배척을 당해 양명학자라곤 정제두·정인보 정도밖에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없지만 이들의 학설도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다. ‘전습록’ 각 조목에 대해, 독자적인 해설과 상세한 각주를 붙여 놓아 “국내 어떤 박사학위 논문에 못지 않은 훌륭한 번역서를 내겠다”는 번역자들의 각오가 빈말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_ 최영창
○ 독자의 평
왕양명의 ‘지행합일설’은 주자학의 ‘선지후행설’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것이다. 양명의 수제자 서애가 지금 어떤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것을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효도할 줄 모르는 경우가 있으니, 앎과 행위는 분명히 두 가지가 아닌지 질문하였다. 양명은 그것은 이미 사욕에 의해 가로막힌 것이지 지행의 본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없다는 것이다.
……
군자는 자기를 위하여 학문을 하기 때문에 남이 나를 속일까 미리 짐작하지 않고 남이 나를 믿어 주지 않을까 억측하지 않지만, 도리어 먼저 깨닫는 사람이 현명한 것이다. 밝고 투명한 양지를 속이지 않고, 자신의 양지를 믿으며, 항상 자신의 양지를 깨닫는 데 힘쓰면 남이 속일까 미리 짐작하지도 않고 남이 믿어주지 않을까 억측하지도 않으면서, 또 다른 사람의 속임을 먼저 깨달을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