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편
진중권 / 휴머니스트 / 2011.7.5
– 미학자 진중권이 살펴본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진중권의 서양 미술사 : 모더니즘 편’
이 책은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 중 하나였던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당시의 예술운동은 저마다 선언과 강령을 발표하며 정당운동을 방불케 하는 정치적 수사를 구사했다. ‘모더니즘 편’에서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강령과 선언, 즉 ‘예술가 진술(artist statement)’을 중심으로 아방가르드 예술의 본질을 추적해나간다. 공장의 기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모던 시대의 복잡한 현대 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날카롭고 재치있는 미학자 진중권과 함께 모더니즘 서양미술 읽기!
‘모더니즘’은 주로 예술사조를 가리킨다. 예술에서의 ‘모던’은 데카르트적 근대가 아니라 20세기 대중사회, 소비사회인 ‘현대’를 가리킨다. 세기말을 전후하여 유럽의 사회는 전통사회의 틀을 벗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삶의 문화를 갖게 된다. 현대인은 흔히 플라뇌르(flaneur, 보들레르)로 상징되는 공동체의 뿌리를 잃고, 방황하는 원자화된 익명의 개인들이다. 모더니즘 예술은 바로 그 ‘현대성’이 투영된 예술이다.
모더니즘 예술의 특징은 비합리주의(초현실주의, 정신병적인 것, 아이-되기), 반이성주의(의식의 스위치를 꺼버리는 다다와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기술법), 반인간주의(동물적인 것, 기계적인 것), 우연성(뒤샹과 케이지의 알레아토릭Aleatorik 예술 작품을 창작할 때 우연성이나 즉흥성을 도입하는 것)의 추구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 포스트모던의 철학자라 부르는 사람들이 내놓은 이론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진중권은 이 책에서 모더니즘의 태동에서 2차대전 직전까지 제1차 모더니즘, 즉 유럽 모더니즘 운동을 살핀다. 야수주의에서 시작해 입체주의, 추상미술, 절대주의, 표현주의, 다다이즘, 신즉물주의를 거쳐 바우하우스까지 12개의 유파를 다룬다. 이들은 운동의 성향이 강한 아방가르드(전위적인)였다. 그들의 선언문을 중심으로 주요한 철학적 배경, 작품, 영향 등을 살피고 있다.

○ 목차
지은이의 말, 아방가르드의 시대
들어가기, 현대예술의 혁명
1 야수주의, 원색의 향연, 색채의 해방
2 입체주의, 형태의 해방, 원근법의 해체
3 순수추상, 형태와 색채의 교향악
4 절대주의, 회화의 영도
5 표현주의, 재현에서 표현으로
6 미래주의, 아방가르드, 미래를 향한 질주
7 다다이즘, 부조리와 무의미의 예술
8 초현실주의, 현실 속의 경이로움
9 신즉물주의, 냉정한 현실의 질서
10 구축주의, 삶을 구축하는 혁명의 예술
11 데스테일, 신조형의 양식
12 바우하우스, 사회주의 대성당에서 산업 디자인으로
나가기, 아방가르드의 이론들
○ 저자소개 : 진중권(陳重權)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 국내에 있을 때에는 진보적 문화운동 단체였던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 간부로 활동했다. 1998년 4월부터 ‘인물과 사상’ 시리즈에 ‘극우 멘탈리티 연구’를 연재했다. 귀국한 뒤 그는 지식인의 세계에서나마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과 논쟁의 문화가 싹트기를 기대하며, 그에 대한 비판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변화된 상황 속에서 좌파의 새로운 실천적 지향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 중앙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로 재직 하였다. 현재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를 대중적 논객으로 만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박정희를 미화한 책을 패러디한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은 ‘박정희 숭배’를 열성적으로 유포하고 있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과 작가 이인화씨, 근거 없는 ‘주사파’ 발언으로 숱한 송사와 말썽을 빚어온 박홍 전 서강대 총장,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옹호한 작품 ‘선택’으로 논란을 낳은 작가 이문열씨 등에 대한 직격탄이다. 탄탄한 논리, 정확한 근거, 조롱과 비아냥, 풍자를 뒤섞은 경쾌하면서도 신랄한 그의 문장은 ‘진중권식 글쓰기’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사회비판적 논객으로서가 아닌 미학자로서의 행보를 보여주는 책은 바로,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린 ‘미학오디세이’이다. 이 책은 ‘미’와 ‘예술’의 세계라는 새로운 시공간을 선물한 귀중한 교양서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대를 바꿔가면서 꾸준하게 여러 세대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이 책은 근육질의 기계 생산에서 이미지와 컨텐츠의 창조로 옮겨가고 있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를 빛낸 100권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책에는 벤야민에서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코, 들뢰즈 등의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탈근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새로운 미학을 이야기한다.
이를 이어가는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는 “과연 예술은 진리의 신전(하이데거)인가? 오늘날 예술은 왜 이리도 난해해졌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탈근대 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철학자 8명을 골라 그들을 통해 탈근대 미학의 주요 특징을 살핀다. 근대 미학과 탈근대 미학을 반복적으로 대비하면서, 패러다임의 변화의 핵심을 포착하고 탈근대 미학의 요체가 숭고와 시뮬라크르임을 밝힌다. 차갑고 짧은 문장이 덜쩍지근한 포스트모던을 새롭게 보도록 만든다.
삶의 시원 ‘에로스’를 탐색한 성의 미학을 거쳐 삶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타나토스’로 이어지는 죽음의 미학을 다룬 ‘춤추는 죽음’은 렘브란트, 로댕 뭉크, 고야 서양미술사에 빛나는 족적을 남긴 천재 화가들에게 죽음이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다. 삶의 유한성을 명상할 줄 아는 예술가들은 죽음에 대한 실존주의적 공포를 창작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말한다.
이런 저작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인문적, 미학적 사유는 비트겐슈타인의 인식 틀과 벤야민에게서 받은 영감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으로 그는 개략적으로 철학사를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탈근대의 사상이 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밝혀내는 글쓰기를 계획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철학사를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 탈근대의 사상이 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밝히는 것, 철학.미학.윤리학의 근원적 통일성을 되살려 새로운 미적 에토스를 만드는 것, 예술성과 합리성으로 즐겁게 제 존재를 만드는 것 등이다.
저서로는 ‘미학 오딧세이’ ‘춤추는 죽음’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천천히 그림읽기’ ‘시칠리아의 암소’ ‘페니스 파시즘’ ‘폭력과 상스러움’ ‘앙겔루스 노부스’ ‘레퀴엠’ ‘빨간 바이러스’ ‘조이한·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춤추는 죽음’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첩첩상식’ ‘호모 코레아니쿠스’ ‘한국인 들여다보기’ ‘서양미술사’ ‘이론과 이론기계’ ‘컴퓨터 예술의 탄생’ ‘진중권의 이매진 Imagine’ ‘미디어아트’ ‘교수대 위의 까치’ 등의 공저서와 여러 권의 번역서가 있다.
○ 출판사 서평
.그에게 미학은 ‘어떤 사안이나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학문’이고, 그의 서양미술사는 ‘열린 마음으로 좀 더 다르게 보는 법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진중권의 서양 미술사 모더니즘편’은 모더니즘의 태동에서 2차대전 직전까지 제1차 모더니즘, 즉 유럽 모더니즘 운동을 살핀다. 야수주의에서 시작해 입체주의, 추상미술, 절대주의, 표현주의, 다다이즘, 신즉물주의를 거쳐 바우하우스까지 12개의 유파를 다룬다. 이들은 운동의 성향이 강한 아방가르드(전위적인)였다. 그들의 선언문을 중심으로 주요한 철학적 배경, 작품, 영향 등을 살핀다.
‘모더니즘’은 주로 예술사조를 가리킨다. 예술에서의 ‘모던’은 데카르트적 근대가 아니라 20세기 대중사회, 소비사회인 ‘현대’를 가리킨다. 세기말을 전후하여 유럽의 사회는 전통사회의 틀을 벗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삶의 문화를 갖게 된다. 현대인은 흔히 플라뇌르(flaneur, 보들레르)로 상징되는 공동체의 뿌리를 잃고, 방황하는 원자화된 익명의 개인들이다. 모더니즘 예술은 바로 그 ‘현대성’이 투영된 예술이다.
모더니즘 예술의 특징은 비합리주의(초현실주의, 정신병적인 것, 아이-되기), 반이성주의(의식의 스위치를 꺼버리는 다다와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기술법), 반인간주의(동물적인 것, 기계적인 것), 우연성(뒤샹과 케이지의 알레아토릭Aleatorik 예술 작품을 창작할 때 우연성이나 즉흥성을 도입하는 것)의 추구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 포스트모던의 철학자라 부르는 사람들이 내놓은 이론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한스 제들마이어는 문화보수주의자로서 현대예술에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그는 현대예술을 추동해온 네 가지 근원 현상을 끄집어내어, 그 각각의 논리를 냉정하게 분석한다. 제들마이어가 보기에 현대예술의 네 가지 기획은 어느 것이든 자기모순에 빠져 필연적으로 좌절하게 되어 있다. 현대예술은 혁명을 통해 전통적 가치를 부정했으나 결국 새로운 우상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우상들의 숭배도 그들을 구원할 수 없음이 분명해지는 순간 스스로 예술이기를 거부하는 미적 허무주의에 빠져들었다. 제들마이어는 “과거와 연결된 강인한 정신”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01 야수주의, 원색의 향연, 색채의 해방
세잔이 20세기에 속하는 만큼 아직 19세기에 속했다면, 야수주의와 더불어 최초로 20세기의 예술운동이 시작된다. 야수주의 운동의 요체는, 회화의 논리를 전통적 ‘인상론’에서 현대적 ‘표현론’으로 바꾸어놓은 데 있다. 야수주의 이후 화면 위의 이미지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인상(im-pression)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표현(ex-pression)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야수주의의 화면은 모사 대상의 색깔을 닮을 의무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원색의 향연이 된다. 야수주의가 일으킨 이 색채의 해방이야말로 20세기 회화가 르네상스 이후 400년 동안 예술의 공리로 군림해왔던 재현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
02 입체주의, 형태의 해방, 원근법의 해체
색채의 해방은 형태의 해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때 야수주의에 가담했던 브라크는 야수주의를 떠나 피카소와 더불어 입체주의 운동을 시작한다. 입체주의가 분석적 단계에서 색채를 포기하고 모노크롬에 가까워진 것은 이 운동이 처음부터 색보다는 형의 문제에 집중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입체주의의 목표는 그보다 더 높은 데 있었다. 그것은 르네상스 이후 400년 동안 회화를 지배해왔던 원근법적 공간 자체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입체주의는 글자 그대로 회화의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야수주의의 영향이 비교적 제한적이었다면, 입체주의는 20세기에 나타난 거의 모든 예술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03 순수추상, 형태와 색채의 교향악
색의 해방과 형의 해방, 나아가 원근법적 공간의 해체 속에는 또 다른 회화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순수회화의 가능성이다. 입체주의가 포기한 것은 ‘원근법적’ 재현일 뿐, 그것이 재현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입체주의를 원근법보다 더 참된 재현으로 이해했다. 입체주의의 분석적 단계에서 화면은 거의 순수추상에 근접한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거기서 한 걸음 물러나 다시 재현을 강화하고, 그로써 입체주의의 종합적 단계로 이행한다. 하지만 칸딘스키는 거기서 용감하게 걸음을 내디뎌 최초로 순수회화에 도달한다. 일체의 재현을 포기하고 순수한 색과 형의 유희가 됨으로써 회화는 완전한 자율성에 도달한다.
04 절대주의, 회화의 영도
회화가 비재현적 예술이 될 때, 그것은 음악에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칸딘스키에게서 회화의 구성(composition)은 곧 음악의 작곡(composition)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추상을 향한 회화의 운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구성은 형태 및 색채 요소들의 존재를 전제하나, 말레비치의 화면에서 모든 형태는 하나의 정사각형으로, 모든 색채는 흑백의 무채색으로 환원된다. 이때 사라지는 것은 바로 ‘구성’ 자체다. 칸딘스키에게 회화는 여전히 형태 및 색채 요소들의 자유로운 유희를 의미했으나, 말레비치의 화면에서 회화는 마침내 형태와 색채마저 사라지는 절대주의로 이행한다. 절대주의는 그 너머로는 더 이상 예술일 수 없는 회화의 극한이다.
05 표현주의, 재현에서 표현으로
프랑스에서 야수주의 운동이 한창일 때 독일에서도 비슷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독일의 표현주의는 재현보다 표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야수주의와 일치하나, 색채의 예술적 효과보다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심리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야수주의와 분명히 구별된다. 주목할 것은 특히 1906년의 ‘다리파 강령’에서 최초로 미술사에 ‘아방가르드’라고 부를 만한 의식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실제로 표현주의 내에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흐름이 존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부의 현상일 뿐, 표현주의자들의 저항은 본질적으로 예술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이 모호한 태도 때문에 표현주의는 후에 좌익과 우익 모두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된다.
06 미래주의, 아방가르드, 미래를 향한 질주
예술적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표현주의와 달리, 미래주의는 미학적 급진성에 정치적 과격함을 결합한 본격적인 아방가르드 운동이었다. 미래주의 선언이 발표된 것은 1909년의 일이나, 미래주의가 제 언어를 갖게 된 것은 입체주의의 영향을 흡수한 1911년 이후의 일이었다. 이렇게 양식보다 강령이 앞선 데서 미래주의자들의 성급함을 엿볼 수 있다. 이탈리아 사회의 후진성에서 비롯된 이 조급함은 미래주의자들을 맹목적인 기술 숭배자로 만들었다. 미래주의는 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파시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으나, 파시스트 정권은 대중의 선동을 위해 외려 고전고대의 양식으로 돌아가 미래주의자들의 이상을 배신하게 된다.
07 다다이즘, 부조리와 무의미의 예술
다다이즘은 세계대전의 충격을 견디기 위한 예술가들의 심리적 방어기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아방가르드 운동도 다다만큼 급진적이지는 못했다. 부르주아 예술에 대한 다다의 비판은 ‘미적 허무주의’에 근접했고,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다다의 공격은 무정부주의적 저항에 가까웠다. 하지만 과도한 급진성은 비판의 초점을 잃고 실천적으로는 보수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 요란한 저항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다다이즘의 비판은, 공산주의 운동과 연대했던 베를린 다다를 제외하면, 대부분 예술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다다의 급진성은 외려 예술을 더 이상 예술이 아닌 지점까지 밀고 나간 철저함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08 초현실주의, 현실 속의 경이로움
‘다다이즘 양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파괴적 성격으로 인해 다다는 제 언어를 가질 수가 없었다. 다다이즘은 초현실주의에 이르러서 고유의 언어를 갖게 된다. 상당수의 다다이스트들은 앙드레 브르통이 주도하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한다. ‘형식’의 측면에서 초현실주의는 그리 급진적이지 못했다. 주로 구상적 이미지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의 급진성은 리얼리티를 재정의한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현실과 몽상이 중첩된 새로운 리얼리티를 탐구하려 했다. 현대미술을 추상과 동일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한때 모더니즘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초현실주의는 1960년대 이후 추상이 퇴조하면서 새로이 조명을 받게 된다.
09 신즉물주의, 냉정한 현실의 질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상대적 안정을 누렸던 바이마르 시대에는 예술에서도 표현주의와 다다이즘의 파토스 과잉을 억누르고 현실에 냉정히 거리를 취하는 관조적 태도가 요구됐다. 마침 1920년대에는 다른 나라에서도 복고적 경향(‘질서로의 소환’)이 나타나고 있었다. 신즉물주의는 처음부터 두 개의 상이한 경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진실주의’라 불린 왼쪽 날개는 부르주아 사회의 위선에 냉정한 해부의 칼을 들이댔고,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불린 오른쪽 날개는 정치적 메시지가 없는 데드팬의 미학을 지향했다. 표현주의처럼 신고전주의 역시 좌우익 양쪽에서 비판을 받는 가운데, 사회주의 리얼리즘 아니면 신고전주의풍의 나치예술로 변신할 것을 강요받았다.
10 구축주의, 삶을 구축하는 혁명의 예술
페터 뷔르거에 따르면, 아방가르드 운동은 부르주아 사회와 문화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데서 출발하여 곧 삶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로 나아가게 된다. 러시아 구축주의는 아방가르드 운동의 이 둘째 국면을 대표한다. 그것은 삶에서 유리된 예술을 부정하고 인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예술이 되려고 했다. 구축주의는 미적 자율성의 영역에 갇혀 ‘구성(composition)’을 하는 데서 벗어나 대중의 삶에 필요한 대상들을 ‘구축(construction)’하려 했다. 유물론적-생산주의 미학으로 인해 구축주의는 한때 ‘혁명의 양식’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구축주의자들의 정치적 앙가주망은 결국 좌초하고 만다. 스탈린주의 국가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이 설 자리는 없었다.
11 데스테일, 신조형의 양식
‘데스테일’은 자신을 ‘신조형’이라고 불렀다. 신조형을 주도한 것은 몬드리안과 두스부르흐였다. 몬드리안은 신지주의의 영향 아래 수평과 수직, 삼원색과 흑백으로 이루어진 특유의 양식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스부르흐가 엘 리시츠키를 통해 러시아 구축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몬드리안의 정신주의와 두스부르흐의 물질주의는 알력을 일으키게 된다. 몬드리안은 회화를 최고의 예술로 여겼으나, 두스부르흐는 구축주의의 정신에 따라 삶과 유리된 예술에 죽음을 선고하며 회화를 건축에 종속시키려 했다. 몬드리안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두스부르흐의 지도 아래 데스테일은 국제적 명성을 누리며 독일의 바우하우스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12 바우하우스, 사회주의 대성당에서 산업 디자인으로
데스테일의 영향이 비교적 제한적이었다면, 바우하우스는 오늘날 생활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바우하우스는 대량생산된 공산품의 조악함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공예운동으로, 초기에는 표현주의의 영향 아래 장인적 수공예를 지향했으나, 두스부르흐를 통해 데스테일에 자극을 받고, 모호이-나지를 통해 구축주의에 영향을 받으면서 기계적 대량생산을 위한 산업디자인 운동으로 변모한다. 러시아에서 실패한 구축주의가 바우하우스를 통해 미국식 포디즘과 결합하고, 그로써 ‘삶과 예술의 경계를 지양한다’는 아방가르드의 목표가 다분히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실현된다. 물론 나치는 바우하우스의 사회주의 성향과 모더니즘 취향을 용서하지 않았다.
나가기, 아방가르드의 이론들
‘아방가르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운동이었다. 여기에서는 ‘아방가르드’라는 현상의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하게 된다.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아방가르드 운동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제시한다면, 레나토 포지올리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감성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제시한다. 아도르노가 현대예술의 작품을 철학적으로 구제하려 한다면, 페터 뷔르거는 이 시대에 다시 아방가르드를 부활시키려는 정치적 기획을 시도한다. 논의의 과정에서 각각의 저자는 아방가르드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 다소 엇갈리는 견해를 내놓는다. 이 논의는 자연스레 1950~1960년대에 다시 등장한 네오 아방가르드의 성격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