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카프카 –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
질 들뢰즈 외 / 동문선 / 2001.7.16
우리 시대의 잘못된 확실성에 맞서 인간의 불안과 소외를 그린 프라하 태생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업적, 사상을 조명한 책이다.
이른바 소수적인 문학 내에서 언어적, 정치적, 집합적으로 정의되기를 좋아했던 카프카의 문학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부제는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

○ 목차
제1장 내용과 표현
숙인 고개, 쳐든 고개 – 사진, 소리
제2장 너무 거대한 오이디푸스
이중의 초과: 사회적 삼각형들, 동물-되기
제3장 소수적인 문학이란 무엇인가?
언어-정치-집합적인 것
제4장 표현의 구성 요소
사랑의 편지와 악마적 계약-단편 소설과 동물-되기-장편 소설과 기계적 배치
제5장 내재성과 욕망
법, 죄의식 등에 반대하여-과정: 인접한 것, 연속적인 것, 무제한한 것
제6장 계역의 증식
권력의 문제-욕망, 선분 및 선
제7장 접속구들
여인과 예술-예술의 반미학주의
제8장 블록, 계열, 강렬도
카프카에 있어서 건축의 두 가지 상태-블록, 그것의 상이한 형식과 장편 소설의 구성-매너리즘
제9장 배치란 무엇인가?
언표와 욕망, 표현과 내용
색인/저자 소개

○ 저자소개 : 질 들뢰즈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페르디낭 알키에, 조르주 캉길렘, 장 이폴리트 등을 사사했다. 1969년 미셸 푸코의 뒤를 이어 파리8대학 철학과의 철학사 주임교수가 됐고, 같은 해 평생의 철학적 동지였던 정신분석의이자 공산주의자인 펠릭스 과타리를 만났다.
1995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동일성과 초월성에 반하는 ‘차이’와 ‘내재성’의 사유를 통해 기존 철학사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하고, 경험론과 관념론을 새로운 차원에서 종합하여 ‘초월론적 경험론’의 지평을 제시했다.
또한 니체적 관점에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생성과 긍정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실천철학의 향방을 제안함과 동시에 예술적 창조의 고유성을 철학적 개념의 생성 원리로 끌어들인 독창적인 예술철학적 작업들을 개진했다.
주요 저서로 『니체와 철학』 『프루스트와 기호들』 『베르그송주의』 『차이와 반복』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의미의 논리』 『시네마 1: 운동-이미지』 『시네마 2: 시간-이미지』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등이 있으며, 펠릭스 과타리와 함께 『앙띠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썼다
– 저자: 펠릭스 가타리 (Felix Guattari)
파리 북서부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청년사회주의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학에서는 의학과 철학을 공부하였고, 그후 제도적 정신요법의 토대를 실천적이고 이론적으로 생산했던 보르도 정신병원에서 의사로 일하였다. 가타리는 1953년 이래 라캉이 주도하던 세미나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68운동 과정과 그 이후에 라캉의 정신분석이 새로운 흐름을 반동적으로 회수해 가는 것을 보고, 정신분석이 지닌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감지하면서 라캉에게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입장을 차지하게 되었다.
1969년 들뢰즈를 만난 이후 가타리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종합을 시도하였고 비라캉적인 용어들을 가지고 사회정치적 무의식에 관한 이론을 구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횡단성 개념을 통해 구조주의를 공격해 나갔고 점차 분열분석방법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실천을 모색해 나갔다. 68년 혁명 이후 대중의 다양한 욕망분출에 주목하고 기존의 정치가 가졌던 억압적 방식을 비판하고 욕망의 미시정치를 제기하였으며, 국가 장치를 중심으로 한 혁명적 실천을 기계적 작동과 욕망해방이라는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려고 하였다. 가타리는 이러한 분자혁명아린 상을 1980년대 이후 생태학과 카오스모제라는 생선론으로 전개해 나갔다.
저서로는 『정신분석과 횡단성』, 『분자혁명』, 『기계적 무의식』 ,『인동의 세월』, 『분열분석적 지도제작』, 『세가지 생태학』, 『카오스모제』 등이 있다.
– 역자 : 이진경 (이진경,본명 : 박태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자들의 코뮤넷 [수유너머 104]에서 활동하며, 박태호라는 이름으로 서울산업대 기초교양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전태일의 유령, 광주시민의 유령들과 더불어 공부하고 전투하며 80년대를 보냈다. 이진경이란 필명으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1987)을 썼고, 그 책이 허명을 얻은 덕분에 본명은 잃어버렸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시작하였고, 그 첫 결과물이 『철학과 굴뚝청소부』(1994)였다. 그 뒤에도 자본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이중의 혁명을 꿈꾸며 『필로시네마』(1994), 『맑스주의와 근대성』(1997),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1997), 『수학의 몽상』(2000),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2000) 등을 썼다.
혁명을 꿈꾸면서 만나게 된 맑스와 푸코, 들뢰즈/가타리 등을 친구로 사귀게 되었고, 이들의 우정 어린 가르침 속에서 사유하면서 『철학의 외부』(2002), 『노마디즘』(2002), 『자본을 넘어선 자본』(2004), 『미-래의 맑스주의』(2006), 『모더니티의 지층들』(2007), 『문화정치학의 영토들』(2007), 『외부, 사유의 정치학』(2009), 『코뮨주의:공동성과 평등성의 존재론』(2010), 『역사의 공간』(2010),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2011), 『대중과 흐름:대중과 계급의 정치사회학』(2012),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2012),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2012), 『삶을 위한 철학수업: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2013),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하였다』(2015), 『파격의 고전』(2016), 『불교를 철학하다』(2016) 등의 책을 썼다. 지금은 ‘공부를 좋아하는 자들의 코뮨’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수유너머 104>에서 자본주의의 외부를 사유하고 실험하고 실행하고 있다.

○ 독자의 평 1
카프카 문학을 (성, 변신, 아메리카 등) 들뢰즈 철학을 통해 읽고 있다. 들뢰즈를 해석 틀로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들뢰즈는 카프카가 자신이 말하는 철학적 내용들을 문학을 통해 선취했다고 말하고 있다. 문학을 통해 재미있게 들뢰즈 철학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열었다.
오래전에 카프카 단편집(민음사)를 읽었는데,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더구나, ‘성’이나 ‘아메리카’는 전혀 읽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점이 독해를 방해했다. 또, 최근에 문학 평론이나 문학 작품을 읽지 않았다는 점도 이 책의 독해를 방해하는 점이다.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는 지 대충 알 것이다. 지나치게 연역적으로 읽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결론을 이미 내려 놓고 책을 읽었다. 그렇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들뢰즈에서 한 발 더 나아가지 못 했고, 카프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에는 이런 관습적이고 경직된 독서가 책의 마지막 두 장을 건성건성 읽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었다. 리뷰를 쓰는 데 왜 이런 얘기를 쓰는 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의 부제대로 왜 문학은 항상 소수적이어야만 하는가, 또는 이미 소수적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소수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마이너리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들뢰즈적 의미에서 ‘분자적’이라는 말에 더 가깝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비록 이 사회에서 분자적으로 살기 보다는 마이너리티로서 자격지심 속에 살고 있지만, 들뢰즈는 항상 위로가 되며 항상 새로운 정체성을 내게 부여해 준다.
이 책은 ‘앙티 오이디푸스’와 ‘천의 고원’을 잇는 징검다리이며, 들뢰즈의 저작 중 가장 쉬운 책이라고 한다. 더구나, 역자인 이진경 선생은 친절한 번역과 꼼꼼한 역주로 나같은 아무추어 들도 들뢰즈를 조금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다. 카프카의 중요 작품을 다시 꼼꼼히 읽고 다시 꼼꼼히 이 책을 읽는 다면 내가 어설프게 규정짓고 있는 들뢰즈와는 또 다른 들뢰즈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 자꾸 이런 얘기한다고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 독자의 평 2
카프카를 새로이 바라보는 데도,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도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카프카 문학에 따라다니던 존재의 불안이니 부조리니 하는 실존주의적 수사들이 꽤나 진부하고 재미없게 들릴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발견한 카프카는 욕망하고 생성하며 ‘소수적’ 글쓰기로써 ‘도래할 민중’을 창조하는 ‘문학-기계’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은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에서 등장하는 온갖 개념들이 실험되고 응용되는 구체적인 장이기도 하다. 번역자인 이진경이 역자 서문에서 이 책을 두고 들뢰즈와 가타리 철학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진경의 말은 반대로 뒤집혀야 한다. [천 개의 고원]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면서도 그만큼 오독되고 있는 3장 <소수적인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압축적이고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부분만 읽어서는 ‘소수적인 것’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데, 이에 대한 풍요로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천 개의 고원] 4장과 10장을 함께 읽을 때, 비로소 들뢰즈와 가타리가 주목한 카프카 문학의 소수성과 그 가치를 ‘찌릿찌릿하게’ 실감해볼 수 있다. 따라서 역자의 말만 믿고 상대적으로 얇은 이 책을 들뢰즈와 가타리의 입문서로 삼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개념을 설명하는 역주가 많이 달려 있지만, 해당 문맥의 이해를 돕도록 하는 데 치중했는지 몇몇 부분은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단순하여 이들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정리하자면 [카프카]는 흥미로운 책임이 분명하나, 단어 하나하나, 문장 구석구석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들뢰즈와 가타리에 대한 배경지식을 어느 정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