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칼 포퍼 :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칼 라이문트 포퍼 / 생각의나무 / 2000.1.31
–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펴내 세계 최고의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칼 포퍼의 화제의 신작
20세기 인류의 역사를 단순한 문명발전의 역사로만 보는 현재의 시각에 경종을 울리면서, 만연하는 개인주의와 매스미디어의 권력화, 줄어들지 않는 폭력 등을 21세기 인류가 해결해야 할 ‘20세기의 산물’로 규정한다.
○ 목차
<20세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1. 전쟁과 평화, 그리고 공산주의
2. 다시 돌아보는 마르크스주의
3. 1962년 – 사하로프, 흐루시초프, 그리고 소비에트의 쇠퇴
4. 오늘날의 정치적 의제 – 법의 지배와 교육 문제
5. 역사주의를 넘어서 열린 미래로
<세기의 문턱에서>
6. 우리는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
7. 텔레비전은 인류를 타락시킨다. 전쟁처럼
<민주주의와 역사에 관한 두 편의 에세이>
8. 민주국가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반성
9. 자유와 지적 책임
○ 저자소개 : 칼 라이문트 포퍼 (Karl Raimund Popper)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인물 칼 포퍼. 그는 1902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대계 변호사인 아버지로부터 강렬한 지적 호기심을 물려받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혼란 속에서 제도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고등학교를 중퇴, 한때 목수의 도제로 근무했다. 하지만 억누를 수 없는 지적 욕구로 인해 뒤늦게 빈 대학에 입학하여 수학, 물리학, 역사, 철학, 음악 등을 전공했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퍼는 십대 청소년 시절에는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사회민주당 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곧 마르크스주의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발견하고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였다고 알려져있다.
졸업 후에는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이른바 과학철학 분야에서 ‘반증가능성’의 방법을 제시한 첫 저서 『탐구의 논리』(1934)를 출간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는 1930년대 유럽 사상계의 중심적 위치에 서 있는 오스트리아 빈 학단의 논리실증주의에 맞서 반증가능성을 기축으로 하는 방법론을 전개하였는데 이는 20세기 과학철학의 가장 중요한 공헌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나치의 득세로 인해 외국행을 결심한 포퍼는 1937년에 그 당시 서구 지식인들의 주된 망명지인 유럽과 미국이 아닌 뉴질랜드에 위치한 캔터베리 대학 칼리지의 강사로 부임하여 철학을 가르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내내 그곳에 머무르며 정치철학 분야의 주저인 『역사주의의 빈곤』 (1944)을 저술하였으며 또한 이 시기에 그는 기념비적인 책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945)을 완성한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전체주의의 폭력을 체험한 포퍼는 위험천만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철학적이며 사상사적인 배경을철저히 파헤쳐 보여 주었으며 ‘열린 사회’의 최대 적으로 플라톤과 헤겔을 지목하며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러 전후 사상계에 일대 파문을 던지기도 했다. 1946년에 포퍼는 영국의 런던정치경제대학 (LSE)으로 자리를 옮겨 1949년에 논리학 및 과학방법론 담당 교수가 되었으며, 이후 ‘비판적 합리주의’로 명명되는 특유의 신조에 입각하여 철학, 정치, 사회, 과학, 교육 분야의 다양한 주제에 관해 왕성한 연구 및 저술 활동을 전개한다. 또한 그는 비트겐슈타인과의 ‘부지깽이 논쟁’ (1946), 아도르노 및 하버마스와의 ‘실증주의 논쟁’ (1961), 토머스 S. 쿤과의 ‘과학철학 논쟁’ (1965), 마르쿠제와의 ‘혁명/개혁 논쟁’ (1971) 등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지성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자유주의의 열렬한 대변인으로 전체주의와 싸운 사상적 투쟁에 대한 지성사적 공헌이 널리 인정되어 1965년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969년에 교수직에서 은퇴한 직후에도 지칠 줄 몰랐던 포퍼의 ‘끝없는 탐구’는 1994년 9월 17일, 영국 런던에서 그가 생을 달리하며 멈추게 된다.
그 밖의 주요 저서로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 『역사주의의 빈곤』, 『추측과 논박』 (1963), 『객관적 지식』 (1972), 자서전 『끝없는 탐구』 (1976), 에세이집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1994), 대담집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1996)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등이 있으며 이 책들은 29개 나라말로 옮겨져 세계 각국에서 그의 사상을 전하고 있다.
– 역자 : 이상헌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칸트 철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세종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있으며 지식융합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서양철학·기술윤리·논리학·비판적 사고·의사소통교육 등의 분야를 주로 강의했다.
『융합시대의 기술윤리』(생각의나무, 2012), 『철학, 과학기술에 말을 걸다』(주니어김영사, 2014), 『철학, 과학기술에 다시 말을 걸다』(주니어김영사, 2016) 등의 책을 썼다. 『자연에서 배우는 청색기술』(김영사, 2013), 『싸우는 인문학』(반비, 2013), 『인문학자, 과학기술을 탐하다』(고즈윈, 2012), 『따듯한 기술』(고즈윈, 2012), 『기술의 대융합(고즈윈, 2010),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아카넷, 2009), 『생명의 위기』(푸른나무, 2001), 『현대과학의 쟁점』(김영사, 2001), 『과학이 세계관을 바꾼다』(푸른나무, 2000) 등 엮은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나노윤리』(공역; 아카넷, 2015), 『임마누엘 칸트』(문예출판사, 2012:2판), 『서양철학사』(공역; 이제이북스, 2004), 『탄생에서 죽음까지』(공역; 문예, 2003),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후 50년』(공역; 지호, 2003),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김영사, 2001),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생각의나무, 2000) 등의 책을 번역했다.
칸트 철학 이외에 기술철학과 기술윤리 분야에서 「유전정보 보호에 관한 고찰」, 「인간 뇌의 신경과학적 향상은 윤리적으로 잘못인가」, 「신경윤리학의 등장과 쟁점들」, 「합성생물학의 윤리적 쟁점들」, 「유전자 특허의 정당성에 관한 윤리적 연구」, 「칸트 도덕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포스트휴먼」, 「환경교육의 방향 설정과 생물모방학」, 「자연중심기술과 환경철학의 새로운 관점 모색」, 「신생기술들에 대한 사전예방원칙 적용의 윤리적 근거 연구」, 「기술을 통한 도덕적 능력향상에 관한 비판적 고찰」 등의 논문을 썼다.
○ 책 속으로
Q. 선생님께선 소련의 쇠퇴와 연관하여 사하로프에 대한 의문과 1962년의 위기에 대해서 견해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 연관 관계를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선생님의 견해로는 흐루시초프의 군사적 모험이 실패한 것이 종말의 시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1962년은 소련이 미국을 물리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A.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사하로프의 폭탄을 보유하기 전에는 전쟁 없이 – 다시 말해서 살육에 의하지 않고는 – 미국을 파괴할 기회를 그들은 갖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다시 발발한다면 미국인들은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기 때문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사건과 더불어서 소련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 p. 91
˝우리의 문명이 살아 남으려면 우리는 먼저 위대한 인물에 맹종하는 습관부터 타파해야 한다. 역사에 관한 예언자로 행세하기를 중지할 때, 우리는 운명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 사회가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워야 한다는 견해는 흔히, 너무나 쉽게 폭력적 조치를 초래한다. 지상에 천국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인간만이 그의 동료를 위해 준비하는 지옥을 만들 뿐이다. 우리의 가장 큰 불행은 오히려 어떤 선한 의도에서, 즉 동료들의 참담한 운명을 개선하고자 하는 우리의 조급함에서 비롯되었다.˝ (4쪽)
˝통치자는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평균 이상인 자가 거의 없었고, 더러는 평균 이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론 최선의 통치자를 얻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겠지만, 그와 동시에 최악의 통치자에 대비한 원칙을 채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탁월하고 유능한 통치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가냘픈 희망에 우리의 모든 정치적 노력을 건다는 것은 나에게는 미친 짓으로 보인다.˝ (41쪽)
소비에트가 쇠퇴한 이유들을 알아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일단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물론 러시아에서는 권력을 가진 공산주의자들로 말미암아 모든 교육단계에 있는 학생들이 공산주의 교리를 배우는 체계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 시대가 되었을 때, 공산주의 지도층에서는 어느 누구도 상황을 현상태로 유지하는 수단만 생각할 뿐, 달리 마르크스주의의 교의를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가지 것만 진지하게 취급되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는 틀림없이 붕괴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 마르크스 이론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이것만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 73-74쪽
그 책(흐루시초프의 회고록)은 20세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며, 특히 1962년 쿠바 위기로 대표되는 커다란 전환점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소련은 그 시점에서 냉전의 긴장감을 상실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때 소련은 미국을 멸망시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건 마르크스 정권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상이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점은 소련이 쇠퇴의 길로 들어서는 시초였으며 그후 전반적인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76쪽
소비에트는 러시아의 물리학자인 사하로프 박사가 회고록에서 말한 사하로프 폭탄을 가질 때까지는 역사가 그들에게 부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을 갖지 못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사하로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 계기가 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나는 한때 그에게 형법적 책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하로프의 문제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 사하로프는 베리아와 함께 합동으로 스탈린 통치하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했으며, 수소폭탄을 제조하는 것과 관련하여 베리아와 반복적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쨌든 수년간의 실험을 거쳐서 완성품 폭탄이 1961년에 실제로 만들어졌습니다.(…) 흐루시초프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미국이 모르게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할 생각이 떠오른 것은 불가리아를 방문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미국은 이미 때를 놓치게 될 것이었다.”- 77-79쪽
아인슈타인은 독일이 자체적으로 원자폭탄을 제조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폭탄의 사용을 지지하는 편지에 서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서 편지에 서명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하로프는,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 시기에는, 흐루시초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직 자본주의의 ‘타파’를 원하는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는 공격적인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수동적인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정반대로 그는 자본주의는 반드시 타도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폭탄을 실험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아홉 살이었으며, 함대의 포민 소장을 만나러 갔을 때는 마흔 살이었습니다(*사하로프는 핵어뢰 프로젝트를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 86쪽
사하로프는 그가 만든 초강력 폭탄을 실험할 때마다 방사능으로 인해서 수천 명이 암에 걸릴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고, 그래서 실험을 실시하지 않도록 흐루시초프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는 화를 내며 ‘정치적인 것’과 ‘과학적인 이슈’가 섞이게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내 의무를 다하겠습니다”라고 사하로프가 맹세한 것은 그때였습니다. 사하로프에 대해서 말할 것은 그 밖에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의 회고록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87쪽
나는 말년의 사하로프에 대해서는 여전히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꼭 수정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가 전범으로 생각되기 시작했다고 말해야 하며, 그가 말년에 한 일로 인해서 그의 죄가 완전히 용서를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이탈리아의 한 언론인과의 이 대담은 1991년에 이루어졌다.) – 88-89쪽
˝인류의 구체적 역사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의 역사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과 투쟁 그리고 수난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155쪽)
˝합리적 접근법은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공동의 노력에 의해서 진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60쪽,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재인용)
˝이 책을 이루고 있는 논문들과 강의는 매우 간단한 주제의 변주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182쪽, 『추측과 논박』 머리말 중에서)
˝우리의 행정은 소수 대신에 다수를 옹호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라 불리는 이유이다. 법률은 개인들의 사적 분쟁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정의를 행사한다. 그러나 우리는 탁월한 자의 주장을 무시하지 않는다. 어떤 시민이 뛰어나면, 그는 다른 사람에 앞서서 국가에 봉사하도록 요청된다. 그러나 그것은 특권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장점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 203쪽
˝우리는 마르크스의 성실성을 인정하지 않고서 그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그의 열린 마음과 사실에 대한 감각, 그리고 쓸데없는 말장난에 대한 혐오, 특히 도덕적 훈화조의 말장난에 대한 혐오는 그를 위선과 표절에 대해 싸우는, 세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투사의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도우려는 불타는 열의를 가지고 있었으며, 입으로써가 아니라 행위로 자신을 증명할 필요를 깊이 느꼈다. 그의 재능은 주로 이론적인 데 있었으므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투쟁을 위한 과학적 무기라고 그가 믿는 것을 주조해 내는 데 엄청난 노력을 바쳤다. 진리를 모색하는 성실성과 지적 정직성은 그를 그의 많은 추종자들로부터 구별해 준다.
지적 원천에서는 헤겔의 철학과 거의 동일하다 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에는 말할 것도 없이 인도주의적 충동이 밑에 깔려 있다. 더구나 헤겔 우파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는 인간의 사회적 문제 가운데 가장 절박한 문제에 합리적 방법을 적용하려는 정직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의 가치는 그 노력이 대부분 실패에 그쳤다는 사실에 의해 감소되지 않는다. 과학은 시행착오에 의해서 진보한다. 마르크스는 그런 시행착오를 시도해 보았던 것이다.
경제적 힘이 모든 악의 뿌리에 놓여 있다는 독단은 없애버려야 한다. 오히려 모든 악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은 모든 형태의 통제되지 않은 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하여야 한다. (…) 경제적 힘이 위험스럽게 되는 것은 돈이 직접 권력을 살 수 있게 된다든지, 생존하기 위해 자신을 파는 경제적 약자를 노예화함으로써 권력을 간접적으로 살 수 있게 될 때이다. (…) 우리는 경제적 힘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제도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경제적 착취를 방어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 239쪽
˝선거일은 새로운 정부에 적법성을 부여하는 날이 아니라, 과거 정부를 우리가 재판하는 날, 즉 과거 정부가 그동안 자신들이 해왔던 일들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는 날이다.˝ – 249-259쪽
○ 출판사 서평
칼 포퍼는 반 세기 이상 자유주의의 수호자로, 그리고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자로 알려져 왔다. 실제로 그는 종교,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비롯한 모든 영역의 인문학 분야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며, 마르크스주의 비판서이자 새로운 철학 연구 방법론을 제시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명저로 꼽힌다.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에서 포퍼는 점증하는 폭력과 시건방진 민족주의, 절대권력화한 매스 미디어, 그리고 우리 시대의 집단적.개인적 이기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고 있다.
환경, 인구, 부패 문제 등에 대한 우리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조장하는 폭력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우리는 또 어떻게 세게 평화를 위한 길을 닦으면서 동시에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를 지킬 수 있을까? 포퍼는 철학자들이 시대의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여하고, 우리 모두가 역사에 대한 우리 자신의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미래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운명과 역사의 법칙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운명과 역사를 선택하고 결정해 나간다는 것이며, 그러기에 이 역사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진지하게 묻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