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파르티잔 : 그 존재와 의미
(문지스펙트럼 : 우리시대의지성 9)
칼 슈미트 / 문학과지성사 / 1998.4.21
파르티잔의 국제법적 국제 정치적인 의미를 파헤친 칼 슈미트의 역작이다.
냉전 시대에 저술되었지만 오늘날의 눈으로 읽더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목차
- 출발점에 관한 고찰, 1808∼1813년
- 우리의 고찰의 지평
- 파르티잔이라는 말과 개념
- 국제법적 상태에 대한 조망
- 파르티잔주의에 대한 프로이센의 부조화
- 1813년 프로이센의 이상으로서의 파르티잔과 그 이론화
- 클라우제비츠에서 레닌으로
- 레닌에서 마오 쩌둥으로
- 마오 쩌둥에서 라울 살랑으로
- 최근 단계의 국면과 개념들 – 공간 국면
- 사회 구조의 붕괴
- 세계 정치적 관계
- 기술적 국민
- 합법성과 정당성
- 실제의 적
- 실제의 적에서 절대적인 적으로

○ 저자소개 : 칼 슈미트
1888일 독일 중서부의 소도시 플레텐베르크에서 중산층 가톨릭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7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해 뮌헨 대학을 거쳐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1년부터 1928년까지 그의 이름을 전 유럽에 알린 일련의 논쟁적 저작들, 즉 ‘독재’ (1921), ‘정치신학’ (1922), ‘정치적인 것의 개념’ (1927) 등을 잇달아 발표해 논단의 스타로 부상했고, 1933년에는 베를린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는 동시에 프로이센 추밀고문관으로 임명되어 나치스와의 밀월관계를 시작했다.
이후 소년간 나치스의 어용학자로 위용을 떨치지만, 1936년경에는 긔의 법이론이 민족적 공동체를 정치적인 것의 핵심으로 두지 않는다는 나치스 공법학자들의 공격을 받아 실각하게 된다.
이후 비교적 조용한 삶을 보내지만, 2차대전 종전 후 소련군과 미군에 체포된다.
일 년여의 수용소 생활을 한 뒤 석방된 그는 1947년 플레텐베르크에 칩거하고, 사망할 때까지 학계나 정계에서 고립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이론적 사색을 멈춘 것은 아니었고, ‘대지의 노모스’, ‘파르티잔 이론’ 등의 저작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는 노쇠할 때까지 지식인들의 끊임없는 방문을 받았는데, 방문객 가운데에는 에른스트 윙거, 야콥 타우베스, 알렉상드르 코제브 등의 인무링 포함되어 있었다.
1985년 4월 7일에 사망했고 유해는 플레텐베르크에 안치되었다.
– 역자: 김효전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2010년까지 동아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법대학장,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동안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초청교수, 미국 버클리대학 방문학자, 한국공법학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며 동아 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역자는 근대 한국 헌법의 발전을 수용사와 개념사라는 시각에서 천착하여 한국 법학의 연속성과 정체성의 확립에 주력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 공법이론의 주요 문헌, 특히 카를 슈미트의 저작 대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우리 헌법의 정신적 및 이론적 토대를 공고히 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 출판사 서평
카를 슈미트는 독일의 변호사였으며 정치철학자로서 20세기 독일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논란적인 헌법 및 국제법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간주된다. 그의 작품들은 큰 학문적 명성을 안겨주었고, 그의 이론과 견해는 오랫동안 독일에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서구 세계 전체로 퍼졌다.
슈미트는 정치적 권력의 효과적인 행사에 대해 광범위한 글을 썼으며, 의회주의·자유주의·세계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가로서 그의 연구는 정치이론, 법이론, 대륙철학, 정치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가치와 중요성은 매우 크다. 그의 출판물은 정치학, 사회학, 신학, 독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법적·정치적 작품 외에도 그의 광범위한 작품에는 풍자, 여행 기록, 사상사에 대한 조사 또는 게르만 텍스트 해석과 같은 장르가 포함된다.
슈미트는 1933년부터 국가사회주의를 옹호했으며, 1933년 5월 1일 NSDAP의 회원이 되었다. 그는 「총통은 법을 보호한다」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총통 명령”이라는 법적 원칙을 통해 1934년의 에른스트 룀의 폭동을 표면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히틀러의 살인을 정당화했다(장검의 밤). 그는 1935년의 반유대주의 뉘른베르크 인종법을 “자유 헌법”이라고 불렀다. 그는 헤르만 괴링과 한스 프랑크의 보호를 받았다. 그는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나치 정권 하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았지만, 그를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한 나치 친위대(SS)의 위협으로 공적 생활의 최전선에서 제외되었다.
슈미트의 영향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특히 초기 독일연방공화국의 헌법과 법학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의 사상이 국제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정치 사상의 고전”으로 불린다. 슈미트는 아리스토텔레스, 토머스 홉스, 니콜로 마키아벨리, 장 자크 루소, 도노소 코르테스 (Juan Donoso Cortés), 조르주 소렐 및 빌프레도 파레토와 같은 정치 사상가로부터 자신의 사고에 대한 형성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의 반유대주의 세계관은 브루노 바우어 (Bruno Bauer)에 의해 형성되었다.
슈미트의 작업은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 정치 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 위르겐 하버마스, 에릭 푀겔린(Eric Voegelin), 한나 아렌트, 법학자 에른스트-볼프강 뵈켄푀르데(Ernst-Wolfgang Böckenförde), 에른스트 루돌프 후버(Ernst Rudolf Huber), 종교 사회학자 야콥 타우베스(Jacob Taubes),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에티엔 발리바르, 사회학자 줄리앙 프룬드(Julian Freund), 이탈리아 정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 안토니오 네그리, 지안프랑코 밀리오(Gianfranco Miglio), 파올로 비르노(Paolo Virno), 슬로베니아 정신 분석가 슬라보예 지젝, 벨기에 정치외교학자 샹탈 무페(Chantal Mouffe) 등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 저자 관련
저자 칼 슈미트는 1888년 7월 11일 독일 중서부의 소도시 플레텐베르크에서 가톨릭을 신봉하는 중산층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7년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해 뮌헨 대학을 거쳐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1년부터 1928년까지 그의 이름을 전 유럽에 알린 일련의 논쟁적 저작들, 『독재』(1921), 『정치신학』(1922), 『정치적인 것의 개념』 (1927), 『헌법 이론』(1928) 등을 잇달아 발표해 학계와 논단의 스타로 부상했으며, 이 시기 (1925년)에 초창기 저작 『정치적 낭만주의』 (1919)를 새로운 서문과 함께 재출간했다. 본 대학과 쾰른 대학을 거쳐 1933년 마침내 베를린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프로이센 추밀 고문관으로도 임명되어 나치 정권과의 밀월 관계를 시작했다. 이후 수년간 나치 체제의 어용학자로서 위용을 떨치지만, 1936년 무렵부터 ‘나치의 이념에 충실하지 않다’는 동료 법학자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권력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후 비교적 조용한 삶을 보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범으로 소련군과 미군에 체포된다. 일 년여의 영어 생활을 한 뒤 석방된 그는 1947년부터 고향에 칩거하며 세상을 뜰 때까지 학계와 논단으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예순을 넘긴 시점부터 한층 더 왕성한 서신 교환 및 집필 활동을 펼치면서 향후 그를 위대한 사상가의 반열에 올려 줄 강력한 저작들을 남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대지의 노모스』(1950), 『햄릿 혹은 헤카베』(1956), 『파르티잔 이론』 (1963), 『정치신학2』(1970) 등을 꼽을 수 있다. 슈미트는 노쇠할 때까지 명망 있는 유럽 지식인들의 끊임없는 방문을 받았는데, 이들 중에는 에른스트 윙거, 라인하르트 코젤렉, 알렉상드르 코제브, 야콥 타우베스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85년 4월 7일 사망했으며, 유해는 플레텐베르크에 안치되었다. 슈미트의 비석에는 “그는 노모스를 알았다”는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 독자의 평 1
우리에게는 무장 비정규군 정도로 알려져 있는 파르티잔은 정치적으로 활동을 하는 집단과의 결합인 당파 (Partei) 에서 유래한 것으로 국가 내의 경찰과 정규군에 의해 진압되는 무장반란으로 간주되는 것과 식민전쟁 즉 2차 세계대전 전후로 하여 지배국에 대항하는 피지배국의 저항으로 간주되는 무정부주의적 개념으로 분류할 수 있다.
1808년 ~ 1813까지 스페인 인민이 외국 정복자의 군대에 대항하여 싸운 게릴라 전쟁 을 시작으로 개념적인 정립이 되었고
- 비정규성 : 훈련된 정규군이 아니라 공공성 없이 인민으로 이루어짐 (저자의 표현으로는 “제복이 없는” )
- 고도화된 기동성 : 소규모이므로 민첩하고 신속하게 기습과 후퇴가 가능
- 정치적 관여 : 사적인 이익을 위한 직업적 군인이 아니며, 정치적 활동을 하는 당파와 연계
- 대지적 성격 : 정권이 외국 정복자에 대하여 지배받는 경우 민족의 대지를 방어하기 위함(토착민중의 지원을 받음)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파르티잔의 입지가 국제법적으로 규정됨에 따라 한편으로는 이러한 고유의 성격이 모호해지고 있는데, 1813년 파르티잔의 마그나 카르타로 볼수있는 국민군 소집을 위한 프로이센 칙령을 기점으로 1870년 9월 강베타의 선언, 1907년 10월 헤이그 육전규칙, 1949년 8월 제네바협약에 의해 부상자와 병자의 상태 및 포로의 대우와 민간인 보호 등 인도성의 부분에 규정이 있게 되지만 합법성과 비합법성, 정규성과 비정규성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더불어 토착적인 향토의 방위자로서의 성격인지, 공격적이며 혁명적인 활동가로서의 성격인지에 따라 달라지므로 사실상 개념적으로 불명확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이론화 및 실행화 된다.
클라우제비츠 -> 헤겔 (혁명적) ->마르크스, 엥겔스 (사상적) ->레닌 (혁명적) -> 마오쩌뚱 (혁명적) ->스탈린 (사상적, 혁명적)
이 책은 1962년 냉전 당시 시대상의 공간적 국면, 사회구조의 붕괴, 세계 정치적 관계와의 연루, 기술적 산업적 국면에 따라 파르티잔의 방향과 의미를 기술한 것으로, 공산주의의 불순한(?) 사상의 일부인 것으로 왜곡되어 온 개념을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독자의 평 2
파르티잔, 비정규군이라는 것은 결국 다시 말하자면 국제법으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참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걷는 사람들? 법죄자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적군과 아군사이에서 피할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고립되는 존재. 그것이 파르티잔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그 특징이 비정규성과 기동성 정치적 성향에서의 격력함, 지상전을 기반으로 하는 대지적인 성격등.. 여러면에서 은밀성과 어둠이 파르티잔의 가장 큰 무기일것. 파르티잔에 대한 관심때문에 그다지 마음가는 제목이 아니었지만 선택한 책이다. 파르티잔의 의미와 그 용법에 관해 나름대로 숙지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머리속이 엉켜버렸다. 의미의 난해함때문인지, 칼슈밋의 현학스러움 때문인지.. 그리고 사족.. 나치에 협력하지만 않았어도 더 큰것을 이뤄낼수 있는 학자였을 칼슈밋. 그를 보니 역시나 권력지향적 인간의 행보는 불행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상깊은구절]
Acberonta movere- 하늘의 신이 필요없다면 지옥의 신을 움직이리라 ; 프로이센수상 비스마르크가 즐겨쓴 어구…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