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필레보스 (Philebus)
플라톤 / EJB / 2015.12.30
–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9, ‘필레보스’
.어떻게 살 것인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좋은 삶’, ‘행복한 삶’
그리스어 원전을 완역해 출간하고 있는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의 19권으로 ‘필레보스’가 나왔다. 기존에 출간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원문에 기반한 충실한 번역과 친절한 주석, 내용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될 작품 해설과 개요, 풍부한 찾아보기가 돋보이는 책이다. 특히 이번에 출간한 ‘필레보스’는 플라톤의 대화편들 중에서도 내용이 다소 난해하고, 따라서 해석도 다양한 만큼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의 이전 책들보다 자세하고 긴 작품 해설을 담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이라 하겠는가?”는 누구나 시시때때로 묻고 고민하는 문제며, 플라톤 역시 자신의 긴 철학 여정에서 늘 고민했던 주제다. ‘필레보스’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적도(適度: to metrion)’에 맞는 삶이 곧 ‘좋은 삶’,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적도’에 맞는 혼합을 통해 우주의 아름다운 것들과 좋은 것들이 생겨나듯이, 인간의 삶 역시 ‘적도’에 맞게 혼합되어 균형과 조화를 갖추고 살 때, 좋은 삶이자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동양의 ‘중용(中庸)’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테며, 이와 비교하는 재미도 얻을 수 있을 테다.
이 책에서의 대화는 “아직 사소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적어도 선생님께서는 저희보다 먼저 물러서지는 않으실 게 분명합니다. 남아 있는 것들을 선생님께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라는 프로타르코스의 말로 끝난다. 무언가가 남아 있다고는 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옮긴이가 작품 해설에서 말하듯이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적도가 인간과 우주에 있어 좋은 것, 혹은 인간의 소유물들 중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물론 선생님 말씀대로 적도가 좋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적도 즉 알맞음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어떤 것은 적도에 맞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다른 내용의 대화로 이어질지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

○ 목차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을 펴내며
작품 해설
작품 개요
등장인물
본문과 주석
부록
옮긴이의 글
참고 문헌
찾아보기
○ 저자소개 : 플라톤(Platon)
플라톤은 그 유명한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는 해, 그리스 아테나이에서 태어났다. 전쟁은 기원전 404년 아테나이의 패배로 끝났으므로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했다. 플라톤 집안은 비교적 상류계급이었고 그러한 배경의 귀족 출신 젊은이답게 정계 진출을 꿈꾸었지만, 믿고 따르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고 철학을 통해 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로 결심한다.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라 이집트·남이탈리아·시칠리아 등지로 떠났던 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 초 아테나이로 돌아와 서양 대학교의 원조라 할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열고 철학의 공동 연구, 교육, 강의를 시작했다. 그곳을 통해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을 배출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한다. 주로 스승 소크라테스가 등장해 대화를 주도하는 철학적 대화편을 집필하는데, 그러한 대화편이 무려 25편에 달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이온』 『프로타고라스』 『메논』 『파이돈』 『파이드로스』 『국가』 『향연』 『필레보스』 『소피스트』 『정치가』 『티마이오스』 『법률』 등을 남겼다.
– 역자 : 이기백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필레보스’편을 통해 본 플라톤의 混和思想〉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정암학당 학당장이며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이다. 최근 논문으로는 〈플라톤의 적도(適度, to metrion) 사상〉(2011)과 〈히포크라테스학파의 합리적 사고와 신학〉(2012), 〈히포크라테스의학에서 엠페도클레스의 영향: 가정(hypothesis)과 인간의 본질(physis) 문제〉(2013), 〈고대 그리스 의학에서 수사술의 쓰임새〉(2015)가 있다. 최근 저서로는 《철학의 전환점》(공저, 2012), 《서양고대철학 1》(공저, 2013)이 있고, 번역서로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공역, 2005), 《크라튈로스》(공역, 2007), 《크리톤》(2009), 《히포크라테스 선집》(공역, 2011)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옮긴이의 소개 글
플라톤은 ‘필레보스’에서 즐거움과 분별 중 무엇이 좋은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논한다. 이 대화편에서 그가 좋은 것을 문제 삼는 이유는 어떤 삶이 좋은 삶, 즉 행복한 삶인지를 밝히기 위함이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하는 문제는 플라톤이 자신의 철학 전체 여정에서 일관되게 큰 관심을 기울였던 주제이다. 그런데 플라톤이 초, 중기 대화편들에서 좋은 삶을 위해서는 분별이나 지식이 있어야 하고, 특히 좋음의 형상을 보아야 한다고 역설한 반면, 그의 말년의 저작인 ‘필레보스’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 혹은 우주에 관한 논의를 기반으로 해서 좋은 삶을 실현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우주에서 좋은 것들이 한정되지 않은 것에 한정자가 개입되어 적도(適度: to metrion)가 이루어질 때 생성됨을 밝힌다. 그리고 인간의 좋은 삶도 그처럼 적도가 이루어질 때 성취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적도’란 ‘중용’ 개념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인데, 플라톤은 ‘적도’를 사람과 우주에 있어서 좋은 것이라고 여긴다. ‘필레보스’에서는 좋은 삶의 문제와 관련해 우주론적 논의뿐 아니라, 변증술에 관한 논의도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그리고 이 대화편은 “즐거움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갖고 있을 만큼 즐거움에 대한 긴 분석도 담고 있다.
– 이 책의 주제에 대하여
‘필레보스’의 필사자들은 이 대화편에 “즐거움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붙이곤 했다. 이는 즐거움에 관한 논의가 대화편 속에서 상당히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세 철학자들까지 종종 이 대화편의 논의를 즐거움에 관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으나, 이미 6세기의 올림피오도로스(Olympiodoros)를 비롯한 신플라톤주의 주석가들도 그 부제가 부적합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오늘날도 이 부제가 이 대화편의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고 보는 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대화편의 주제는 일단 “도대체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밝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플라톤은 좋은 것들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 그것도 사람들의 소유물로서 가장 좋은 것을 문제 삼는다. 그리하여 “무엇이 좋은 것인가?”라는 문제는 “무엇이 사람의 소유물들 중에 가장 좋은 것인가?”라는 문제로 다시 언급된다. 또한 플라톤은 사람들의 소유물로서의 좋은 것을 문제 삼되, 건강, 아름다움, 좋은 가문, 권력, 명예와 같은 외적인 좋은 것들이 아니라, 사람의 내적인 좋은 것, 곧 “혼의 상태”로서의 좋은 것에 그의 관심을 한정시키고 있다.
이러한 혼의 상태로서 좋은 것의 후보로, 이 대화편의 등장인물인 필레보스와 프로타르코스는 즐거움과 기쁨을 내세우는 반면, 소크라테스는 분별, 지식, 지성, 참된 판단 등을 내세운다. 그리하여 분별과 즐거움 중 어느 것이 좋은 것인지가 논의의 주제가 되지만, 나중에는 제삼의 것이 좋은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둘 중 어느 것이 그것과 더 닮은 것인지 판정하는 것이 현안 문제가 된다.
그런데 ‘필레보스’에서 플라톤이 좋은 것, 더욱이 가장 좋은 것을 문제 삼는 까닭은 궁극적으로는 어떤 삶이 좋은 삶(행복한 삶)인가, 혹은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밝히기 위해서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플라톤의 관심은 단순히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밝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좋은 것인가, 즉 무엇이 “우리가 좋은 삶을 사는 데 가장 좋은 것”인가를 밝히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고르기아스)라는 초기 대화편의 문제의식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말년 작품인 ‘필레보스’는 두 가지 측면에서 초.중기 대화편과는 다른 지평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 대화편에서의 좋은 것에 대한 논의는 특히 중기 대화편인 ‘국가’에서 논의된 ‘좋음’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필레보스’는 ‘국가’와는 다른 측면을 보여 주고 있다. ‘국가’에서는 “좋음 자체란 무엇인가?”가 문제였지만, ‘필레보스’에서는 “무엇이 사람의 혼의 상태로서의 좋은 것, 혹은 인간의 소유물들 중에 가장 좋은 것인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필레보스’에서는 ‘좋음의 이데아’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좋은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와 달리 ‘필레보스’는 좋음의 이데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삶의 본으로서의 그것의 기능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필레보스’의 문제는 그와 정반대이다. 이 대화편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 일시적이며 순수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 어떻게 훌륭하게 될 수 있는가를 문제 삼는 것이다. 따라서 ‘필레보스’는 ‘국가’를 비롯한 중기 대화편에서 전개된 형상들에 대한 논의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삶을 가능한 한 훌륭하고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필레보스’에서는 좋은 삶의 실현에 대한 플라톤의 관심이 자연 혹은 우주에서 온갖 좋은 것이 생성되는 방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점에서 ‘필레보스’는, 주로 인간사에 한정된 소크레테스적 관심의 울타리 속에 있었던 초?중기 대화편에서와는 다른, 또 하나의 특이성을 보여 준다. 플라톤은 우주론적 논의를 통해 우주 속에서 좋은 것들이 생성되는 방식이 ‘적도(適度: to metrion)에 맞는 혼합’임을 밝히고, 인간의 좋은 삶도 이런 혼합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 ‘작품 해설’ 중에서
○ 작품 개요
1. 즐거움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분별(지식)이 좋은 것인가?(11a-12b)
2. 변증술(dialektik) 관련 논의(12c-20c)
1) 하나와 여럿의 문제(12c-16a)
(1) 즐거움이나 지식의 단일성과 다수성(12c-14b)
(2) 하나와 여럿의 문제(14c-15c)
① 생성소멸하는 것에서의 하나와 여럿 문제(14c-14e)
② 생성소멸하지 않는 것에서의 하나와 여럿 문제(14e-15c)
(3) 진술 자체의 역설적 속성에 따른 혼란(15d-16a)
2) 변증술(16a-18d)
(1) 변증술의 두 절차 : 모음과 나눔(16a-17a)
(2) 변증술의 활용 예시 : 문법과 음악(17a-18d)
3) 좋은 것의 문제와 변증술의 연관성(18d-20c)
3. 좋은 것의 세 가지 요건에 따른 판정 : 완전함, 충족함, 택함직함(20c-23b)
1) 즐거움과 분별이 혼합된 삶이 좋은 삶이다.(20c-22c)
2) 즐거움과 분별 중 어느 것이 혼합된 삶의 원인과 더 동류의 것이고 더 닮았는가?
: 어느 것이 이등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22c-23b)
4. 우주론적 논의(23b-31b)
1) 우주 속에 존재하는 네 부류(23b-27c)
(1) 한정되지 않은 것(24a-25a)
(2) 한정자(25a-b)
(3) 혼합된 것(25b-26d)
(4) 혼합의 원인(26e-27c)
2) 혼합된 삶이나 즐거움과 네 부류 사이의 관계(27c-28a)
3) 지성(분별)과 원인의 부류 사이의 관계(28a-31b)
5. 즐거움의 종류들의 분류(31b-55c)
1) 몸이나 혼의 상태와 관련해 생기는 세 종류의 즐거움과 괴로움(31b-36c)
(1) 몸과 관련된 즐거움과 괴로움(31b-32b)
(2) 혼과 관련된 즐거움과 괴로움(32b-35d)
(3) 몸과 혼에 관련된 즐거움과 괴로움(35d-36c)
2) 세 종류의 거짓된 즐거움(36c-44a)
3) 괴로움과 혼합된 즐거움(44a-50e)
4) 세 가지 종류의 참된(순수한) 즐거움(50e-52b)
5) 즐거움에 대한 그 밖의 논의(52c-55c)
(1) 한정되지 않은 부류에 속하는 즐거움과 그렇지 않은 즐거움(52c-d)
(2) 즐거움의 진실성의 기준 : 순수성(52d-53c)
(3) 즐거움의 생성과 존재(53c-55c)
6. 지식의 종류들의 분류(55c-59d)
1) 순수성과 정확성에 의한 지식의 분류(55c-57e)
2) 변증술과 설득술의 비교(57e-58e)
3) 변증술의 대상 : 언제나 같은 상태로 동일하게 있는 것들(59a-59d)
7. 혼합된 삶으로서의 좋은 삶과 좋은 것들(59d-67b)
1) 훌륭하게 혼합된 삶이 좋은 삶이며, 이런 삶 속에서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다(59d-61c)
2) 지식들과 즐거움들을 선별하여 ‘혼합된 삶’을 구성함(61d-64b)
3) 혼합된 삶 속에 있는 좋은 것(혼합의 원인)은 아름다움, 진실성, 적도(균형)이며, 분별(지성)이 즐거움보다 이것들과 더 동류의 것이다.(64c-66a)
4) 인간의 소유물인 좋은 것들의 서열(66a-67b)
○ 등장인물
– 소크라테스(Sokrates)
기원전 469~399년. 이 대화편의 등장인물인 소크라테스는 초기 대화편의 소크라테스를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 문답법을 활용하고 논박을 시도하는 방식이나 그가 다루는 윤리적 주제가 그러하다. 그러나 플라톤은 말년의 작품인 이 대화편을 통해 소크라테스적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되,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펼친다. 사실상 그의 사상의 대변자인 소크라테스는 무엇이 좋은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즐거움이 아니라 지식이나 분별이 좋은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지만, 즐거움과 지식 외의 제삼의 것이 좋은 것일 가능성을 열어 둔다. 이후에 그는 제삼의 것이 좋은 것임을 밝히고(20c-23a), 대화편 말미에서 마침내 적도나 균형과 아름다움 및 진실성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며 즐거움보다는 지성이나 분별이 이것들과 더 동류의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64c-66a).
– 필레보스(Philebos)
그는 청소년으로 등장하는데, 보통 가공인물로 간주된다. 그는 즐거움이 좋은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그는 즐거움과 좋은 것(좋음)이 같은 것이며, 즐거움이 유일하게 좋은 것이라고 보는 극단적인 쾌락주의자이다(60a-b). 그런가 하면, 그가 즐거움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언급되기도 한다(19c). 그는 소크라테스의 견해에 동의하거나 반대할 권한을 프로타르코스한테 넘기고 어쩌다 한 번씩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다.
– 프로타르코스(Protarchos)
그는 필레보스와 같은 또래의 친구이며, 소크라테스의 주된 대화 상대이다. 그는 필레보스의 주장을 넘겨받아 쾌락주의를 옹호해야 할 입장에 있지만, 초반부터 즐거움이나 분별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 좋은 것일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그는 즐거움과 좋은 것이 동일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22c), 소크라테스와 함께 제삼의 것이 좋은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된다. 더욱이 대화편 말미에서 그는 가장 좋은 것을 기준으로 삼을 때 즐거움이 지성이나 분별보다 못함을 인정하기까지 한다(64c-66a). 다른 한편 그는 소피스트인 고르기아스(Gorgias)의 제자였던 것으로 보인다(58a).
그는 이 대화편에서 ‘칼리아스(Kallias)의 아들’로 불리는데(19b5), 실제로 칼리아스의 두 아들(‘변명’ 20a) 중 하나이다. 칼리아스(기원전 약 450~370년)는 아테네의 큰 부자 가문에서 히포니코스의 아들로 태어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소피스트들과 아첨꾼들 및 여인들에게 재산을 다 써버렸다고 한다. 그가 소피스트들에게 큰돈을 썼다는 것은 이 대화편뿐 아니라 ‘변명’ 20a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특히 프로타고라스의 학설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테아이테토스’ 164e). 그리고 ‘프로타고라스’를 보면, 그의 집에는 프로타고라스를 비롯해 여러 소피스트들이 머물고 있었고, 소크라테스가 그곳을 찾아가서 논의를 한 것으로 묘사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