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허난설헌 시집
허난설헌 / 평민사 / 2015.8.20
‘허난설헌 시선’의 완역개정판인 ‘허난설헌 시집’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여류문인인 허난설헌의 대표작 중 엄선하여 원문과 번역본을 함께 수록한 작품집이다.

난설헌은 죽으면서 자기 시를 모두 불태워 버렸지만, 아우 허균이 자기가 베껴 놓은 것과 자기 기억을 더듬어 211편의 시를 엮어낸 ‘난설헌집’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출판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이 시집은 깊으면서도 아름다운 그녀의 시 90여 수를 되짚어보며, 짧은 생애동안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다 간 난설헌의 삶을 다시 그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 목차
완역 개정판에 덧붙여
초판 머리말
오언고시
칠언고시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절구
칠언절구
그밖의 시들
부록
누이 난설헌에게 붓을 보내며 : 허 봉
《두율》 시집 뒤에다 써서 난설헌에게 주다 : 허 봉
해설: 정한의 여인 난설헌의 삶과 시
연보
원시제목 찾아보기

○ 저자소개 : 허난설헌 (許蘭雪軒)
조선이 낳은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명종 18년 (1563), 강릉 초당동에서 허엽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이름은 초희 (楚姬)이고 난설헌 (蘭雪軒)은 그의 호이다.
천재시인 난설헌의 소녀시절은 아버지 허엽의 관직생활로 부유하였고, 그의 시세계 형성에 크나큰 영향을 준 친 오라버니 허봉도 난설헌 열살 때 대과에 합격하고 열다섯 살 때 교리가 되는데, 이러한 오라버니의 출세도 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난설헌의 꿈을 한껏 부풀게 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난설헌은 14살 되던 해, 한 살 위인 교리 김첨의 아들인 김성립과 결혼을 하게 된다.
김성립의 아버지 김첨과 허봉이 강당의 동창이었고 또한 각별히 사이가 좋았으므로 혼담이 이루어졌다.
안동 김씨 집안인 시댁은 5대가 계속 문과에 급제한 문벌있는 집안이었고, 시어머니 송씨 역시 당내 경학으로 유명한 이조판서 송기수의 딸이었다.
허균은 누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파 마지 않는>, <오호라 살아서는 부부사이가 좋지 않더니, 죽어서도 제사를 받들어 모실 아들하나 없구나. 아름다운 구슬이 깨어졌으니 그 슬픔이 어찌 끝나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부부금슬도 좋지 않았고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원만치 않았던 난설헌에게 설상가상으로 밀어닥친 불행은 사랑하는 두 자녀를 차례로 잃은 일이었다.
그 충격으로 유산까지 하게 되는 등 불운이 연속되었다.

난설헌을 애지중지하던 아버지 허엽은 난설헌 18세 되던 해 경상감사 벼슬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상주 객관에서 돌아가셨고, 가장 믿고 따랐던 둘째 오라버니 허봉 역시 난설헌이 21세 되던 해 동인에 속한 학자들과 율곡을 논하다 죄를 얻어 갑산으로 귀양갔다 풀려난 후에도 한양에는 들어갈 수 없어 금강산을 떠돌다가 끝내 38세라는 젊은 나이로 객사하는 비운을 맞았다.
난설헌은 허봉이 죽고 1년이 지나 27세 되던 해 이 세상을 하직했다.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여성의 삶의 목표가 되던 시대에 현숙한 어머니와 어진 부인이 될 수 없었던 난설헌에게 단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활화산처럼 넘쳐 흐르는 시혼의 분출이었다.
난설헌의 시풍은 일찍이 오라버니 허봉과 당시 삼당시인으로 유명했던 이달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주위의 사물을 매우 정감있게 묘사하고, 시어에 있어서도 평이하고 간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점이 특징이었다.
1589년 3월 19일 꽃다운 나이 27살에 요절한 누이 난설헌의 재능을 애석하게 여긴 동생 허균은 그 유작을 모아 ‘난설헌고’를 편집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초간본이 나온 것은 선조 41년 (1608)으로 난설헌이 세상을 떠난 지 19년 후의 일이었다.
그 사이 난설헌의 시는 헌신적인 허균의 노력에 의해 멀리 중국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1579년은 정유왜란의 해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명나라 원군이 조선에 들어오는데, 1598년 봄 명나라 시인 오명제가 조선의 시문을 모아 ‘조선시담’을 엮은 과정에서, 당시 중국의 장군들을 접대하는 관직인 경리감독이었던 허성과 병조좌랑이었던 허균의 집에 오명제가 머물게 된 것이 난설헌 시가 중국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 역자 : 허경진
현 淵民學會 편집위원장. 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피난 시절 목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시를 썼으며, 1974년 <요나서>로 연세문학상을 받았다. 대학원 시절 도서관 고서실에 쌓인 한시 문집을 보고 독자로 하여금 쉽게 다가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이때부터 한시 번역에 힘써 최치원부터 황현에 이르는 ‘한국의 한시’ 40여 권을 출간했으며, 앞으로 100권을 채우는 것이 꿈이다.
지은 책으로 《사대부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한평생》, 《조선의 중인들》, 《주해 천자문》, 《한국의 읍성》, 《악인열전》, 《허균 평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서유견문》, 《삼국유사》, 《매천야록》, 《택리지》 등이 있다. 특히 외국 도서관에 있는 우리나라 고서를 조사 연구해 간행한 《하버드대학 옌칭 도서관의 한국 고서들》은 전공자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큰 호평을 받았다.

○ 독자의 평
도대체 언제 산 책인지 기억이 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책이다.
한시를 좋아하지만 문제라면 한자 문맹인지라 아주 간단한 한자를 제외하고는 옥편에 의지해야한다.
이제는 그마저도 가물가물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고전을 한참 읽을 때는 한자를 쓰고 읽고 해서 지금보다는 나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의 나는 그저 문맹이로소이다를 외치고 있다.
초반 몇 수는 해석하려다가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 것이다.
단체일을 하다보니 하는 일이 없어도 여유가 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얼마나 오래 묵혀두었는지 출판사에서는 개정판이 나왔다고 한다.
시를 읽기 전에 일종의 선입견이랄까, 매우 부드러운 시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번역된 시들을 읽으면서 나는 화려함에 압도당했다.
알 수 없게 모든 곳에서 화려함이 느껴진다.
지독하게 화려하다.
음 몇개를 따서 읽어도 설핏 그러하다.
화려함에 모든 것이 묻혀서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다.
시의 내용은 삭막한데 삭막한 것이 화려한 비단의 삭아진 삭막함이다.
멀리서 보면 광채가 나는 듯 한데 가까이 가보니 손을 대면 스러질 것 같은 화려한 비단을 보며 느끼는 쓸쓸함이 내가 느낀 점이다.
이토록 화려함에 치여보기도 오래간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한자의 세계를 몰라서 드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화려함 속에 원없이 묻혔던 독서였다. 허난설헌의 암울한 일생과 좌절을 선입견으로 가지지 않았다면 다른 감상을 지녔을 지도 모르겠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