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희망의 원리 세트 [전5권]
에른스트 블로흐 / 열린책들 / 2004.10.20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과 메시아적 희망을 접목시킨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사유가 집약된 책이 10여 년을 걸친 끝에 번역되었다. 네오마르크스주의, 신학, 문학,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준 책으로, 사회주의를 하나의 진리로 취급하면서 이러한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무엇을 희망하였는지, 미래에 무엇을 희망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미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었다.

책은 블로흐가 미국에 이주해 있던 10년 동안 저술되었으며, 총 5부 55장으로 구성되어 더 나은 삶에 대한 동경을 모티프로 삼은 대상과 사건들을 분석했다. 조형 예술, 건축, 음악, 문학 등 전통적인 예술들뿐만 아니라 동화, 영화, 여행, 유행 의상, 진열장, 춤, 팬터마임, 낮꿈과 밤꿈, 종교, 신화 등에 대해 탐구했다. 소외되지 않은 사회, 정치적 관계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는 다양한 표현 형식들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블로흐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과 메시아적 희망을 접목시킨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대작 ‘희망의 원리’가 한신대 박설호 교수의 번역으로 완역되어 열린책들에서 출간
1949년에 처음으로 출간된 “희망의 원리”는 그 후 55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그 의미가 완전하게 파악되지 않은 신비스러운 저술이다. 블로흐의 평생의 사유가 집약된 이 책은 이후 네오마르크스주의, 신학, 문학, 음악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에 충격적인 영향을 주어 왔으며, 최근에는 ‘탈근대 이후’를 사유하려는 철학자들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을 정도로 심원한 사고의 결정체를 담고 있다. 그 철학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난해하고 방대한 내용으로 말미암아 오로지 소수의 몇몇 국가에서만 번역되었던 “희망의 원리”를 우리도 갖게 된 것은 오로지 한신대 박설호 교수의 10여 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덕분으로, 그의 노고에 대한 어떤 찬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목차
제1부 보고 ― 작은 낮꿈들
제2부 기초적 논의 ― 선취하는 의식들
제3부 이행 ― 거울에 비친 갈망의 상 (진열장, 동화, 여행, 영화, 연극의 무대)
제4부 구성 ― 더 나은 세계의 개관 (치료 기술, 사회 제도, 기술 ,건축, 지리학, 예술과 지혜에서의 전망)
제5부 동일성 ― 성취된 순간을 갈구하는 상 (윤리, 음악, 죽음에 관한 그림들, 종교, 동방의 나라 자연, 최상의 재화)

○ 저자소개 :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
1885년 7월 8일 루트비히스하펜 암 라인에서 철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뮌헨과 뷔르츠부르크에서 철학, 물리학,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 입학 후 여섯 학기밖에 지나지 않은 1908년 ‘리케르트와 근대 인식론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해명’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탁월한 천재성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루카치, 브레히트, 벤야민, 크라카우어, 아도르노 등 동시대의 지성인들과 친교를 맺으며 루카치와의 표현주의 논쟁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으며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왕성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저술 활동에 몰두하여 철학, 정치 경제학, 신학, 문학,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법철학, 예술 등 가히 백과사전적이라 할 정도로 폭넓은 분야를 섭렵하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는, 아도르노와 벤야민 등 동시대 지식인들의 청년 시절에 큰 영향을 미친 『유토피아의 정신』을 비롯해 『기독교 속의 무신론』, 『혁명의 신학자 토마스 뮌처』, 『흔적들』,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 『주체 – 객체: 헤겔에 대한 주해』, 『크리스티안 토마시우스』, 『아비센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유물론의 문제들』, 『기독교 속의 무신론』, 『경향성 – 잠재성 – 유토피아』 등이 있다.
– 역자 : 박설호
현재 한신대 인문콘텐츠 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동독 문학 연구』 (1998/2005), 『하이너 뮐러 연구』 (공저, 1998), 『떠난 꿈, 남은 글. 동독 문학 연구 2』 (1999), 『독일인 어떻게 살(았)지?』 (공저, 2000), 『유토피아 연구와 크리스타 볼프의 문학』 (2001), 『전환기 잊혀진 독일 문학과 사회적 (불)평등』 (공저, 2002), 『독일 문학의 이해. 동독 문학과 통독 이후 문학의 이해』 (공저, 2003), 『생태 위기와 독일 생태공동체』 (공편, 2004), 『새로운 눈으로 보는 독일 생태공동체』 (공편, 2005), 『하이너 뮐러의 연극 세계』 (공저, 2006), 『작은 것이 위대하다. 독일 현대시 읽기』 (2007), 『새롭게 읽는 독일 현대시』 (2007), 『현대 문화 이해의 키워드』 (공저, 2007),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 고백하다』 (2008), 『꿈과 저항을 위하여』 (2011), 『망각의 시대에 명작 읽기』 (2013),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 통일 전후의 독일 소설』 (2013), 『자연법과 유토피아』 (2014), 『비행하는 이카로스』 (2016),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 사회심리학』 (2016)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베를린의 유년 시절』 (1992), 『문화적 투쟁으로서의 성』 (1996), 『카를 마르크스, 토마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 (E북, 2003), 『빵과 포도주』 (1997), 『희망의 원리』 (5권, 2004), 『자발적 복종』(2004),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2008),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 (2009),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 (2011), 『마르크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 (2012) 등이 있다.
○ 내용
블로흐가 미국에 이주해 있던 10년 동안 (1938 ~ 1947) 저술된 ‘희망의 원리’는 총 5부 5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더 나은 삶에 대한 동경을 주요 모티프로 삼은 모든 대상과 사건들을 분석하고 있다. 한마디로 ‘더 나은 삶에 관한 꿈’에 대한 분석이 이 책의 테마이다. 여기서 블로흐는 조형 예술, 건축, 음악, 문학 등 전통적인 예술들뿐만 아니라 동화, 영화, 여행, 유행 의상, 진열장, 춤, 팬터마임, 낮꿈과 밤꿈, 종교, 신화 등을 탐구하고 있다. 그는 통속 문학, 싸구려 영화, 키치, 시장이라고 해서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희망은 일상 의식과 동화에서부터 위대한 철학적, 정치적 유토피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문화적 형식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소외되지 않은 사회, 정치적 관계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는 다양한 표현 형식들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은 블로흐의 사고의 결정체가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블로흐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와 정치 경제학자들이 현실의 계급 관계 등에 관심을 집중한 것과 달리 지금까지 연구 대상에서 외면된 미래 영역을 주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각 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부 보고 ― 작은 낮꿈들
제1부에서 블로흐는 꿈의 직접적인 특성과 간접적인 특성을 폭넓게 실험하고 있다. 이중 특히 간접적인 특성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그는 사적인 꿈, 상호 교환 가능한 공중의 환영에서부터 무언가를 긴급하게 갈구하는 ‘낮꿈’ 등을 서술한다.
제2부 기초적 논의 ― 선취하는 의식들
제2부에서는 ‘사실’에 대한 기초 작업을 다루고 있다. 이 부의 중심 문제는 ‘굶주림이라는 주요 충동이 과연 중요한 기대 정서인 희망으로 향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리고 블로흐는 여기서 ‘아직 의식되지 않은 것’ (Nicht-Bewußte)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이 개념은 라이프니츠의 잠재의식에서부터 밤과 원초적 과거를 지향하는 낭만주의 심리학을 거쳐, 프로이트의 심리 분석으로 이어진 무의식에 관한 연구의 시간적 차원과 전혀 다르다. ‘아직 의식되지 않은 것’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다시 기억해 낼 수 있는 망각된 것도 아니고, 억압되거나 잠재의식 속에 고대 지향적으로 가라앉은 것도 아닐 뿐더러, 그와 정반대로 궁핍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의 모티프로 작용하며, 미래 지향적 동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제3부 이행 ― 거울에 비친 갈망의 상 (진열장, 동화, 여행, 영화, 연극의 무대)
제3부에서는 에로스의 낮꿈으로서의 갈망의 상이 다루어지고 있다. 실현을 통한 충족감보다 더 강렬한 인간의 갈망을 분석하면서 블로흐는 힘없는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갈구하는 내용들이 부르주아의 교묘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착색되어 있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그는 동화와 통속 소설, 영화, 팬터마임, 연극 등에서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읽어 내면서 규범으로까지 변한 거울 속에 투영된 갈망들을 이 부 전체에서 다루고 있다. 여기서 블로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동정심과 공포가 아니라, 거역과 희망이 연극의 기본 정서라고 단언한다.
제4부 구성 ― 더 나은 세계의 개관 (치료 기술, 사회 제도, 기술 ,건축, 지리학, 예술과 지혜에서의 전망)
제4부에서 블로흐는 의학적 유토피아, 사회 유토피아, 기술 유토피아, 건축 유토피아, 지정학적 유토피아, 회화와 문학 작품의 갈망의 현실상 등을 차례로 거론한다. 의학적 유토피아에서 나타나는 건강에 대한 갈망의 상은 삶의 연장 내지 영원한 삶으로 요약되고, 사회 유토피아의 장에서는 마르크스 이전에 선보였던 더 나은 국가의 모델로서 플라톤의 ‘국가’, 스토아학파의 ‘세계 국가’, 기독교의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나라’,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등이 검토되고 있다. 기술 유토피아에 관한 장에서는 세상을 황금으로 정화하려는 욕망을 담은 중세의 연금술에 대해 말하고 건축 유토피아의 장에서는 이집트 건축물과 고딕 건축을 그 전형으로 발견한다. 또한 회화와 포에지의 장에서는 우리의 삶에 더욱 적당하다고 여겨지는 풍경에 대한 갈망에 대해서, 그리고 지리학적 유토피아에 관련된 장에서는 주어진 현실을 추월하려는 인간의 갈망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제5부 동일성 ― 성취된 순간을 갈구하는 상 (윤리, 음악, 죽음에 관한 그림들, 종교, 동방의 나라 자연, 최상의 재화)
제5부에서는 인간답게 되려는 시도, 즉 여러 가지 윤리적인 핵심적인 상들과 정의로운 삶에 대한 핵심적 목록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상적인 인물들인 돈 조반니, 오디세우스, 파우스트 등에 이어 죽음에 대항하는 희망의 상으로서의 종교와 최상의 선이 다루어진다. 블로흐에 의하면 종교의 판타지로 규정되는 모든 기쁨의 전언은 죽음과 운명에 대항한다는 신비주의적인 것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종교,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이슬람교, 불교와 유교, 유대교와 기독교 등의 특성을 차례로 논하면서, 특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과 내세의 의미를 현실 세계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일종의 비유로서 파악하는데, 이러한 블로흐의 입장은 위르겐 몰트만의 해방 신학에 긍정적인 모티프를 제공하게 된다.

○ 출판사 서평
– 총 원고 매수 13,000매에 달하는 거작, 국내 최초 완역! 한신대 독문과 박설호 교수의 10여 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결실!
이 책의 옮긴이인 한신대 독문과 박설호 교수가 에른스트 블로흐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4년 친구가 건네 준 책 한 권 (브라이덴슈타인의 ‘인간화’)을 통해서였다.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과 신학적 견해 등을 싣고 있던 이 책의 부록에 블로흐의 삶과 철학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옮긴이는 블로흐 사상의 중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독일에 유학 중이던 옮긴이는 ‘에른스트 블로흐와 동독 문학’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뮌헨 대학의 한 세미나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고 최초로 블로흐의 책을 손에 읽게 된다. 하지만 옮긴이는 이 독서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엄청나게 방대한 내용, 그리고 문화의 온갖 영역을 넘나드는 지식의 스펙트럼과 신비로울 정도로 압축된 문장들을 그 당시의 옮긴이로서는 소화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1986년 그는 뮌헨 대학에서 학제적 연구를 중시하는 빌레펠트 대학으로 학교를 옮겨 그곳에서 문헌학과 역사, 철학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블로흐에 서서히 눈을 떠가기 시작한다. 이때 그는 빌레펠트 대학 학제 연구소 소장이었던 독문과 교수 빌헬름 포스캄프 교수의 유익한 조언을 받아가며 에른스트 블로흐의 책을 읽고 또 읽었던 것이다.
1980년대를 독일에서 보낸 옮긴이는 1980년대 말에 귀국하여 대학에 자리를 잡는다. 이즈음부터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붕괴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주의적 이상을 가지고 있던 전 세계의 많은 지식인들이 혼란과 좌절을 겪으며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서서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동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당면한 현실을 절대화하면서 사회주의적 이상이 원래 추구하고자 했던 목표를 망각한 채, 체제 내부의 부조리와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외면했다. 체제 붕괴는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현실의 사회주의가 역사에서 퇴장하기 시작하는 이러한 시점에서 박설호 교수는 오히려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를 번역할 시대적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는 사회주의를 하나의 진리로 취급하면서 이러한 기준에서 다른 모든 것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희망하였으며, 그리고 미래에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긍정적인 미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로흐의 희망 철학과 예술론을 모르고서는 벤야민,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 동시대 지식인들을 그 근본에서 이해할 수 없으며, 자연법 철학, 유토피아 사상, 근대 신학의 흐름 등을 논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이 10여 년에 걸 쳐 지속적으로 번역에 매진할 수 있게 만든 동기였음을 옮긴이는 밝히고 있다.
‘희망의 원리’는 그 내용의 일부가 솔 출판사에서 ‘자유와 질서’ (1993), ‘더 나은 삶에 관한 꿈’ (1995)이라는 제목으로 두 권짜리로 간행된 바 있었다. 하지만 원문의 약 5분의 1정도가 소개된 데 불과하였고, 책 전체를 소개하려던 최초의 계획마저 출판사의 여러 사정과 맞물려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설호 교수는 블로흐의 아들 얀 로베르트 블로흐 박사와 블로흐 문헌실의 비간트 박사와 지속적으로 서신을 교환하며 번역의 의지를 불태우며 때를 기다렸다. 드디어 1999년 열린책들에서 판권을 획득하여 ‘희망의 원리’ 완역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2002년 6월 다시 번역에 착수한 지 4년 만에 드디어 초역을 끝내지만, 옮긴이는 초역을 검토하는 작업에 8개월을 더 보낸다. 그리고 박설호 교수로부터 원고를 넘겨받은 지 1년 반 만에 전5권으로 구성된 ‘희망의 원리’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 추천평
나는 블로흐의 메시아적인 철학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신학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철학적 범주들을 발견하였다. 나는 그의 ‘희망의 원리’ 초판을 구입하여,1960년에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이를 읽었다. 나는 너무나 매료되어 ― 내 아내에게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 스위스 산의 경관을 감상할 틈도 갖지 못하였다. 나의 첫인상은 다음과 같았다. 왜 그리스도교 신학은 희망을 내팽개쳤는가? 희망은 원래, 그리고 본질적으로 그 자신의 가장 고유한 주제가 아닌가? 하지만 그 다음에 나는 자기비판적인 질문을 던졌다. 원시 그리스도교의 생생한 희망의 영은 오늘 어디에 남아 있는가? – 위르겐 몰트만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는 20세기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 중의 하나이다. 철학적이고 정치적이면서 시적이기도 한 이 책은 사상과 문학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정치와 종교에 대한 블로흐의 사유는 아무리 길러내도 결코 그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거대한 수원이다. – 조지 스타이너
백과사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블로흐의 주저 ‘희망의 원리’는 헤겔의 ?정신 현상학?처럼 상승하는 형식들의 사다리가 아니라 현실의 모든 차원에서 현현된 희망의 모습에 대한 방대하고 무질서한 탐구이다. … 문제는 불안을 희망으로 대치하거나 괴로워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계시해 준다거나, 좌절의 막판에서 전향자를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다. 이와 반대로 블로흐는 부정적인 것 자체 속에 긍정적인 것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며, 부정적인 것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 긍정적인 것의 확증으로서 부정적인 것을 견지하고자 한다. … 바로 이 희망의 핵심에 자리한 근본적인 불만족이야말로 시간을 앞으로 추진시키며, 각각의 우연적인 소망을 소망 자체의 형상으로, 또한 각각의 우연적인 현재를 유토피아의 그 궁극적 현존의 형상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 프레드릭 제임슨
블로흐는 일반적인 사회주의 문헌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품위 있고, 공정하며, 방법적인 결함이 전혀 없는 사유라는 시민 사회의 전통으로, 그의 경우에 그것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바탕을 둔 사유로 드러난다. 고도로 정교한 개념적 수단들을 이용하여 그는 오늘날의 시민 사회의 문화 ― 유행에 극도로 민감하고, 그 결과 아주 경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정치경제적 상황에 그 의존성을 드러내는 ― 를 진단하고 해부한다. – 헤르만 헤세
헤겔의 철학이 역사와 문화를 통하여 정신의 오디세이를 분명하게 표현하였듯이, 블로흐의 철학은 희망의 변천사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블로흐에 의하면 희망은 일상 의식과 동화에서부터 위대한 철학적, 정치적 유토피아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문화적 형식에 스며들어 있다. 아직 미완성 상태인 개인들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과 완성에 대한 유토피아적 갈망을 통해 삶의 의욕을 얻는다. … 나는 이데올로기 비판을 부르주아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타파로 제시하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부르주아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융합시켜 버리는 지배적인 모델들과는 상당히 다르면서도 더 나은 문화 이론과 이데올로기 비판의 모델을 제공하는 데 블로흐가 오늘날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 더글러스 켈너
부활절 때 나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블로흐의 집에 며칠 동안 머물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블로흐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갑자기 집 안에 산소가 공급된 것처럼 잠시 동안 숨쉬기가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의 생명력 ―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즉 그의 놀라울 정도로 강인한 체력뿐만 아니라 강인한 정신력을 말한다 ― 은 비범하다. 새벽 두시가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따라 갈 수가 없었지만 그는 서너 시까지 계속해서 자신의 생명력을 발산하고 나서 두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있었다. 오전 아홉시쯤 내가 밤을 새 멍해진 상태로 아침식사를 하러 갔을 때,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일상의 하찮은 일들이 그를 번거롭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그것들을 돌아보지 않았고, 그 존재를 눈치 채지도 못한 채 그 사이를 가로질러 나아갔다. – 알프레트 칸토로비츠
블로흐의 대작 ‘희망의 원리’는 슈펭글러가 ‘서구의 몰락’에서 ‘세계 불안’ (Weltangst)이라는 개념으로 도식화했던 세계사를 ‘희망’으로 대체한다. 블로흐 철학의 독창성은 역사, 인류학 인류 현상학의 중심에 ‘희망’을 놓았다는 데 있다. – J. P. 스턴

○ 언론사 소개
– “미래 읽는’블로흐의 꿈’ 좇아 원고지 1만3000장 번역”
희망의 원리/ 에른스트 블로흐 지음/ 박설호 옮김/ 열린책들
“원서 1쪽 번역하는 데 평균 9시간을 들이는 고역이었습니다. 원고지 1만3000여장 분량을 번역하고나니 제 인생의 40대는 훌쩍 지나갔고 눈만 나빠졌습니다.” _ 4년에 걸쳐 독일 사상가 에른스트 블로흐의 대작 ‘희망의 원리’를 번역한 박설호 교수
총 5권 3050쪽에 이르는 20세기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문제작 ‘희망의 원리’(열린책들)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끝낸 박설호교수(50·한신대 독문학). 장장 14년에 걸친 번역이었기에 지긋지긋했던 지난날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여느 철학책처럼 개념과 사고를 배열하는 게 아니라 문학 건축 음악 미술 종교 역사 철학이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난해한 용어나 내용들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적어도 한국적 맥락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에 대해서는 상세한 해설이 불가피했습니다.”
도대체 에른스트 블로흐는 어떤 인물이며, 또 ‘희망의 원리’는 어떤 책이기에 한 학자의 황금기 ‘40대’를 송두리째 앗아간 것일까? 1885년 독일 루드비히스하펜에서 태어난 블로흐는 20세기 초의 대표적 지성들인 루카치, 베버, 브레히트, 아도르노 등과 친교를 맺으며 사상적 영향을 서로 주고 받았다.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일체의 교조나 교리를 거부하는 성격으로 인해 그에게서는 ‘이단’의 이미지가 강했다. 왕성한 지적 탐구욕을 가진 블로흐는 철학은 물론 정치경제학 신학 문학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법철학 예술 등 전방위적으로 저술활동을 전개했다. 그의 대표작 ‘희망의 원리’는 그만의 독특한 철학인 ‘아직 아닌 존재’를 구체화시킨 것이다. 즉 그는 이미 있었던 것을 총정리한다는 의미에서 ‘황혼에야 날기 시작하는 올빼미로서의 철학’을 거부하고 미래를 끌어들인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아직 의식되지 않고 있는 무엇’ 등에 관심을 쏟는 것도 그 때문이다.
“블로흐의 철학은 어떤 의미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프로이트는 현재의 의식을 과거의 것에서 구하려 한 반면 블로흐는 미래의 것(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엇)에서 찾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두 사람 모두 꿈에 주목했지만 프로이트의 꿈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창(窓)인 반면 블로흐에게 꿈은 미래를 읽어내는 단서였습니다.”
꿈꾸는 철학자였기 때문일까? 현실 속 블로흐의 삶은 우여곡절 그 자체였다. 박 교수는 “현실에는 둔감한, 좀 꺼벙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대인이기도 했던 그는 1933년에 나치에 쫓겨 스위스로 망명했다. 1935년 파리, 1936년 프라하를 거쳐 1938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8년 라이프치히대학의 초빙에 응해 동독으로 돌아가지만 ‘동독적 현실’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으로 1957년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소련에 대해서 극찬을 했던 ‘사회주의자’ 블로흐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1961년 서독 여행 중 서독 잔류를 결심하고 동독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튀빙겐대학에 자리를 구하게 된 그가 취임하면서 행한 강연의 제목은 ‘희망이 환멸로 바뀔 수 있을까?’였다.
2004년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블로흐가 소개되어야 하는 까닭에 대해 역자 박설호 교수는 “개인이나 사물 모두 변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 어떤 사상가나 철학자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역동성과 개방성을 배울 수 있다”며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 사회에 요즘 필요한 정신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 독자의 평
‘희망의 원리’는 품절되었다. 출판사에 문의한 결과 한질씩 겨우 반품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연락을 해준다. 아직까지 다시 찍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찾는 사람들은 빈번한 것 같다. 품절은 되었지만, 블로흐의 문제의식에 대해 감동하면서, 몇 글자 리뷰를 적어본다.
1.
사람들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짐으로써 삶을 포기하거나 단념하지 않으며, 지금 부딪혀 있는 한계와 장애를 넘어서길 바라고 꿈꾸며, 실천해 나아간다. 희망은 현재의 한계와 장애들을 넘어서는 힘으로 발휘되면서, 현재를 넘어서 미래로 나아가게끔 한다. 이렇게 희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서 항상 삶의 원천으로서, 삶의 활력으로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철학은 삶에 바탕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루는 핵심요소인 이러한 희망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물론 허버트 마르쿠제 (Herbert Marcuse, 1898~1979)는 ‘일차원적 인간’의 결론에서 벤야민의 말을 인용하면서 희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에게 희망이 주어지는 것은 오로지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이다.(한글번역본, 한마음사, 295쪽)
마르쿠제는『일차원적 인간』의 결론에서 “사회의 비판적 이론은 현재와 미래의 간격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미래로 건너 갈 다리로서 ‘희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란 무엇인가? 마르쿠제는『일차원적 인간』의 결론에서 희망의 필요성만을 강조할 뿐 희망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
또한 칸트의 비판철학의 핵심을 관통하는 세 가지 물음에도 희망은 등장하고 있다. 칸트에 의하면, 이성의 모든 관심은 다음과 같은 세 물음으로 통합된다.
1.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나는 무엇을 행위 해야만 하는가?
3.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순수이성비판,805, B833)
여기서 칸트는 단지 희망의 대상(무엇을)과 그 대상을 희망할 기초를 실천적인 도덕법칙과 연관시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칸트는 첫째 물음과 관련하여『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전체를 통해서, 앎이 무엇인지, 앎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앎의 한계까지도 규명하고 있다. 그리고 둘째 물음과 관련하여『윤리 형이상학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와『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을 통해서 이성의 실천적 사용과 도덕법칙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도덕적 기준 내지는 명령을 규명하고 있다. 그러나 셋째 물음과 관련해서는 무엇이 희망인지, 왜 희망이 가능한지, 왜 희망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생략한 채, 단지 희망의 대상의 가능성만을 ‘실천적인 도덕법칙’을 통해서 취하고 있다.
이렇게 희망은 단지 언급되기만 했을 뿐, 희망 자체는 철학의 주요한 관심이 되지 못했다. 희망이 철학의 대상이 되지 못함에 따라 희망은 단순히 개인적 ‘희망사항 (wishful thinking)’으로만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자신만의 희망이라는 독백적이고 고립적인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단순한 공상이나 헛된 상상의 차원에서 이내 사라져 버리거나 자신만의 안위와 이익만을 위한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희망은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기 때문에 현재에 순응하게끔 하는 태도를 유발하고 지속시킨다. 이것은 삶 자체가 권력의 대상이 된 지금의 사회에서는, 즉 삶의 미시적인 부분까지 침투하여 삶 자체를 관리하려는 현재의 통제사회에서는 권력의 핵심적인 지배 수단이 된다. 이러한 권력은 사람들의 정서까지도 통제하려는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삶 자체를 생산하고 재생산하기 위해서 ‘희망’이라는 정서와 ‘희망의 담론’을 지배의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며, 실제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희망은 기만적이다. 권력층의 신년인사와 덕담이 항상 ‘희망찬 미래와 새로운 시대’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내용을 아주 쉽게 보여준다.
그래서 희망이 자신만의 안위나 이익을 위한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배 권력의 통제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기 위해서, 진정하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다 나은 삶을 구성해 가기 위해서는 희망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요구된다. 이러한 철학적 규명은 희망이 관계론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세계를 구성하게끔 하는 역량으로 발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새로운 정치적 기획과 전략을 구성하게끔 하는 하나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마르쿠제의 ‘현재와 미래의 간격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개념’으로서 희망의 필요성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희망이란 무엇인가?여기서 이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참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 1885 ~ 1977)이다. 블로흐는 희망이 철학의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희망에 대하여 철학적 접근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다. 또한 희망에 대한 유일한 철학적 저서는 그의『희망의 원리』이다.에른스트 블로흐에게 ‘희망’은 그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진실된 힘 자체였고, 그 힘은 나치의 체포령을 피해 겪어야 했던 유랑의 길을 견디게 했고, 미국과 서독에 망명해야 하면서 겪어야 했던 고난과 역경을 버티게 했다.그러한 상황에서도 블로흐는 희망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으며, 희망을 원리적으로 규명하고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이러한 그의 관점과 노력은 동 시대 아도르노의 상처받은 영혼의 절망과는 대조를 이룬다. 즉 블로흐는 이성과 계몽에 대하여 우울함과 슬픔을 자아내는 총체적, 냉소적 비판보다는 현재보다 나은 삶을 바라는 희망을 선택했던 것이다. 블로흐가『희망의 원리』첫머리에서 말하는 다음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가? 많은 이들이 단지 혼란스럽게만 느끼고 있다. … 중요한 것은 희망을 배우는 것이다.
‘희망을 배우는 것’은 ‘누구’라는 혼란과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에 맞서서 희망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기획하고, 실천해 나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는 불안과 두려움, 절망에 맞서는 희망을 규명함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2.
희망은 본질적 속성은 희망의 미래지향성인데, 이 미래지향성은 미래를 선취하게 한다. 그것은 때로는 앞서 나타내고 (Vor-schein), 앞서 붙잡고 (Vorgriff), 아직-아닌 것 (das Noch-Nicht)을 선취한다. 아직 아닌 것은 ‘아직-이루어지지-않은 것 (das Noch-Nicht-Geworden)’과‘아직-의식되지-않은 것 (das Noch-Nicht-Bewußte)’ 을 선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블로흐에게 핵심적인 내용이다. 데카르트, 칸트, 헤겔로까지 하나의 의식철학의 패러다임을 형성하였다면, 이 의식철학의 패러다임은 의식되지 않은 것의 존재를 기각하거나 침묵한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영역을 개척했다. 그러나 이 무의식의 영역은 과거지향적이다. 과거의 상처받은 자아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억압된 무의식을 해석하고 치료하는 방식으로서 과거로 향할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미래의 새로움의 창조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전자를 ‘의식의 길’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무의식의 길’이다. 그러나 이 둘다 미래의 새로움을 창조하고 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여기에 블로흐의 신선한점과 뛰어난 안목이 있다. 블로흐는 아직-의식되지-않은 것과 아직-이루어지지-않은 것을 선취하는 길은 미래의 새로움을 창조하는 길로 열려있다. 그것은 의식의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무의식의억압을 찾기 위해 과거로 향하지 않는다.
『희망의 원리』는 모두 5부로 구성되어 희망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방대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을 형식적으로 살펴보면, 1부「보고-작은 낮꿈들」에서는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일상에서 갖는 꿈들이 서술되어 있고, 2부「정초적 논의(Grundlegung)-선취하는 의식(antizipierende Bewußtsein)」에서는 희망이 존립하는 근거를 철학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3부「이행-거울속의 바람의 상」에서는 영화, 연극, 여행, 동화에서 ‘바람의 상’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4부「구성-더 나은 세계의 개괄」에서는 ‘바람의 상’들로서 건강, 사회, 기술, 건축, 지리에 대한 유토피아를 개괄하고 있다. 그것은 각각 의학적 유토피아, 사회적 유토피아, 기술적 유토피아, 건축 유토피아, 지리적 유토피아로 드러난다. 이것은 일종의 유토피아로서 희망에 대한 개괄적인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5부「동일성-실현된 순간의 바람의 상」에서는 ‘실현된 순간의 상’속에서 개방된 자연과 인간의 일치로서의 동일성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고향(Heimat)이다. 창세기의 태초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향은 시원이나 태초로의 복귀가 아닌 진정한 역사창조 과정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이 방대한 내용은 언듯 보면, 병렬적으로 나열된 백과사전식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렇게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희망의 원리』는 먼저 일상적인, 아직 정례화 되지 않은 이런 저런 사람들의 낮꿈들에 대한 서술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고, 이러한 공감 속에서 희망을 철학적으로 정초함과 아울러 예술작품 속에서 어떻게 바람과 낮꿈의 상들이 나타나는지를 방대하게 추적하여 살을 붙인다. 그리고 나아가 바람의 상들이 어떻게 유토피아로 개괄되고 실천될 수 있는지를 조망하고, 진정한 역사의 시작점을 향한 고향을 가리키면서 끝맺음하고 있다.『희망의 원리』는 희망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일관적이고 전략적인 서술의 구조로 전개해가고 있다. 즉 ‘보고-정초적 논의-이행-구성-동일성’의 서술과정은 희망과 그 희망의 실현의 과정을 현상하는 바에 따라서 일관적으로 그려가고 있다.
3.
블로흐는희망을 철학적으로 기초짓고, 동화, 예술작품, 문학속에서 등장했던 사람들의 바람의 상들을 추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흐의 초점은 사회변화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2부 마지막을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의 테제를 분석하면서 2부의 결론을 맺고 있다. 그것은 희망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으로 초점을 수렴시켜감과 동시에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4.
희망의 선취와 실천적 중요성은희망의 시간을 구성한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직선적인 시간이 아니라 원환적인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선취를 통해서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고, 다시 선취된 미래는 실천을 통해서 미래로 나아가면서 실현되고, 또 다른 현재가 된다. 이러한 원환적인 시간은 ‘…미래-(선취)-현재-(실천)-미래…’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희망에서 결정적인 것은 선취된 미래를 현재화시키는 실천적인 문제이다. 블로흐는 ‘노동하는 인간’을 아르키메데스의 점으로 수용하고, 이로부터 ‘보다 나은 삶’이 무엇인지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희망을 세계를 변화시키는 정치적인 혁명적 실천으로 수렴시키고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의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아마도 블로흐의 문제의식은, 즉희망에 접근하려는 블로흐는 의도는 여전히 보다 나은 삶을 실현해갈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했던 것 같다. 블로흐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간주할 때,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치경제학에서 변혁의 전망과 실천을 제기하였다면, (그래서 상당히 건조하고 논리적으로 함몰된 부분도 없지 않다.) 블로흐는 인간의 정서에서 미래의 보다 나은 삶의 실현가능성을 기초짓는다고 볼 수 있다.
5.
중요한 것은 희망을 배우는 것이다. (Es kommt darauf an, das Hoffen zu lernen)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서적소개 – 희망의 원리 세트 [전5권] (에른스트 블로흐 / 열린책들 / 2004.10.20)](https://chedulife.com.au/wp-content/uploads/희망의-원리-세트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