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 : ‘관계 속 행복’의 관점으로 경제학을 재구성하다
스테파노 자마니, 루이지노 브루니 / 북돋움 / 2015.2.15
–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의 경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관계성’과 ‘상호성’은 이기심 · 이타심에 앞선 사람의 본성
.21세기 저성장·고실업의 새 해법을 제시하는 시민경제론
사회적 경제, 공유경제, 제3부문 … 최근 자본주의 경제의 난제를 돌파하려는 시도로서 각광받고 있는 영역에 붙여진 이름들이다.『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은 이런 시도를 한데 아우르며, ‘시민’을 주요 경제 주체로 끌어들여 새로운 경제의 장으로 초대한다. 시장과 사회의 이분법을 넘어서 있는 ‘시민경제’는 계약의 원칙과 상호성의 원칙, 부의 재분배가 조화롭게 작동하는 경제다.
시민경제학의 시각은 ‘자유시장-복지국가’ 모델이 부딪힌 저성장 • 고실업 문제에 새로운 해법을 내놓는다. 저자는 “모두에게 임금 노동의 형태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개념은 순전한 유토피아적 발상이자 위험한 거짓말”이라며 “민간 부문에서 ‘해방된’ 노동력이 사적 시장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재화, 즉 관계재와 가치재를 생산하는 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를 쓴 협동조합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의 신작(공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중세 가톨릭 전통에서부터 출발하는 경제학사, 사회학과 경제학을 넘나드는 풍성한 논의를 담아낸 대작이다.
○ 목차

한국어판 특별 서문
들어가는 말
1장. 사회가 조화롭게 발전하려면
‘시민경제’란 무엇인가
시민경제의 관점
사회가 조화롭게 발전하려면
세계화 속 시민경제
2장. 시민경제의 뿌리
중세와 수도원 문화, 그리고 경제 담론의 발명
시민 상업이라면 금상첨화
빈곤과 부, 그리고 상호성
시장으로 가는 길로서의 증여와 상호성
3장. 시민 인본주의: 중세 시대의 번성과 완성되지 못한 근대화의 여명
시민 인본주의, 그리고 그 너머
인본주의의 유토피아
시민의 밤
시민성의 새로운 존재론을 향해
공공 행복
4장. ‘유복한 사회적 삶’의 과학: 이탈리아 계몽주의와 시민경제
나폴리의 황금기
시민경제의 단어들
밀라노 학파
5장. 영국의 전통: 인본주의자 애덤 스미스에서 로빈슨 크루소의 경제학까지
애덤 스미스: 시민사회를 위한 도구로서의 시장
시장과 사회성
애덤 스미스 이후의 정치경제학: ‘로빈슨 크루소 경제학’의 탄생
영국의 다른 흐름들
6장. 시민경제의 쇠퇴에서 부활까지
20세기 경제학에서의 개인주의
‘국가와 시장’에 대한 사회 질서 모델 내에서의 제3부문
NPO는 과도기적 조직인가?
시민경제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다
7장. 시민경제의 주체는 누구인가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호모 레시프로칸스
상호성의 원칙과 등가교환의 원칙
자원봉사 단체와 상호성의 원칙
사회적기업과 시민기업의 정체성
사회적기업과 시민기업의 전염성
8장. 고용, 복지사회, 시민경제
부유한 사회의 불확실성
완전 고용에서 완전 직업으로
고용의 황금률은 불가능하다
시민경제의 해결 방안
‘복지국가’에서 ‘시민복지’로
사회적 품질 시장
역량 중심 접근과 보충성의 원칙
9장. 다시, 행복
이스털린 패러독스
지위의 행복
관계재
관계와 행복
행복을 계산하는 데 우리는 왜 실수를 저지를까?
관계에 기초한 행복의 취약한 힘
나오는 말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해제(정태인)
옮긴이의 말(제현주)
○ 저자 소개 : 스테파노 자마니, 루이지노 브루니
– 저자 : 스테파노 자마니 (Stefano Zamagni)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 정치경제학과 교수이자,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학 대학원 볼로냐 센터 부학장이다. 2001년부터 AICCON(이탈리아협동조합 비영리 문화협회) 회장직을 맡았고, 2007년에는 비영리 단체를 관리하고 지원하는 정부행정기관인 제3섹터 관리국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국내에는 협동조합 경제학 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을 앞둔 2012년 10월에 기획재정부, 2013년 11월에는 협동조합 관련 단체의 초청으로 강연회를 가져 크게 주목받았다. 주요 저서로 2012년 국내 출간되어 화제를 모은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Cooperative Enterprise)』 외에 『이타주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Altruism)』, 『협동조합이라는 신경제이론에 관하여(Per una nuova teoria economica della cooperazione)』, 『미시경제학 이론(Microeconomic Theory)』 등이 있다.
– 저자 : 루이지노 브루니 (Luigino Bruni)
이탈리아 밀라노 비코카 대학교 정치경제학 부교수이자 영국 리버풀 호프 대학교의 겸임 교수다. 윤리와 경제학, 경제 사상의 역사, 경제학의 방법론, 경제학의 사회성과 행복에 이르기까지 경제학과 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시민 행복(Civil Happiness)』, 『상호성과 이타주의, 시민 사회(Reciprocity, Altruism and the Civil Society)』, 『시장의 기원과 정신(The Genesis and Ethos of the Market)』 등이 있다.
– 역자 : 제현주
임팩트 투자사 옐로우독(Yellowdog)의 대표. 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경영 컨설팅업체 맥킨지, 투자은행 크레딧스위스, 사모펀드운용사 칼라일에서 기업경영 및 M&A, 투자분야 전문가로 10년여간 일했다. 2010년에 직장을 떠나 이후 6년여간 한 곳에 소속되지 않은 채, 책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협동조합 롤링다이스의 콘텐츠 디렉터, 작가, 번역가, 팟캐스트 진행자, 독립 컨설턴트 등 다양한 역할들을 오가며 일했다. 2017년 옐로우독에 합류해 투자를 통해 돈의 힘을 좋은 사회적 영향력과 연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일하는 마음》,《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일상기술 연구소》(공저) 등이 있고, 《뒤에 올 여성들에게》,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경제학의 배신》,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 등 10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책 속으로
우리의 목표는 비영리 세계의 새로운 의미론을 내놓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비영리 부문의 역학 구도 중 많은 것이 영리와 비영리 부문 모두를 아우르는 경제 현실 전체를 새로이 읽어내도록 우리를 이끌 것이며, 그에 필요한 우화들을 쥐여줄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보기에 시민경제란 주로 경제 담론 전체를 해석해낼 하나의 문화적 관점이다. 하나의 이론이 현실에 대한 하나의 시각이라고 본다면, 시민경제라는 이 문화적 관점은 다양한 경제 이론에 대한 토대를 닦아줄 수 있다. _ 22쪽 ‘시민경제’란 무엇인가
사회성과 상호성은 정상적인 경제생활과 동등한 것도, 그에 앞선 것도, 뒤에 오는 것도 아니다. 시민경제는 이익 추구와 도구적 교환 이외의 원칙이 경제 활동 자체 안에서 자리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시민경제는 첫 번째 시각, 즉 시장과 경제가 등가교환의 원칙만을 기초로 삼는,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장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선다. _ 27쪽 시민경제의 관점
이런 맥락에서 홉스의 이론은 사회 이전에 ‘버섯처럼’ 태어난 개인들 간의 인공적 계약을 제안함으로써 본성상 사회적이진 않더라도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로 구성된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착상의 대가로 시민 인본주의, 그리고 시민 인류학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했다. ‘인간의 윤리학’을 ‘개인의 윤리학’으로 교체한 것이다. _ 93쪽 시민의 밤
근대 정치경제학이 윤리학의 속박에서 벗어나면서 탄생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근대 사회과학이 아주 특별한 윤리학(개인주의적이며 반사회적인 윤리학)을 받아들이며 탄생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시민의 밤’ 시기가 지난 후 윤리학을 사회과학에서 떼어내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따라서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근대 경제과학에서 중요한 두 학파의 선구자인 스미스와 제노베시가 ‘경제학에 대한 논고에 앞서 도덕 철학과 인류학에 대한 저술을 먼저 내놓았음’은 우연이 아니다. _ 99쪽 시민성의 새로운 존재론을 향해
공공 행복의 전통에서 핵심적인 세 가지 요소를 뽑아낼 수 있다. (1) ‘개인의’ 행복이 ‘공공’ 행복으로 변모하는 것은 즉각적이지 않다. 공공 행복은 사적 이익의 총합도, 사적 이익의 의도치 않은 결과도 아니기 때문이다. (2) ‘공공 행복’이라는 용어는 ‘공익(공공 이익)’이라는 말과 엄밀히 연결된다. 공익은 스콜라주의와 시민 인본주의의 자연법 전통에서 직접 탄생한 개념이다. (3) 공공 행복과 시민 덕성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있다. 사적이건 공적이건, 행복은 덕성에서 온다. _ 108쪽 공공 행복
시민경제로부터의 이탈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논의는 벤담의 공리주의다. 공리주의에서 행복은 쾌락이 되고, ‘공공 행복’은 개인적 쾌락의 총합이 되었다. 이렇게 관점이 전환되면서 행복에 대한 고전적 시각과의 접점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 벤담이 행복과 효용을 동일시함으로써 신고전파 경제학은 공공 행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개인의 효용과 선호의 탐색으로 더 달음질쳐갔다. _ 159~160쪽 애덤 스미스 이후의 정치경제학
새로운 이론 체계가 목표라고 공언한 것은 공리주의를 가치 판단 문제에 중립적이게끔 하는 것(개인이 무엇을 가치 있다고 판단하건)이었으나 그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선호는 생물적 욕구의 표현만이 아니라, 개인을 그가 속한 환경에 따라 인식하게 담는 사회화 과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말인즉슨 선호란 절대적인 선호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이바지하는 문화적 기반을 어떤 식으로든 반영한다. 따라서 특정한 사회적 맥락 아래 살아가는 개인의 주어진 선호에 대한 만족을 최대화하도록 처방하는 이론은 그 선호를 결정지은 구조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고로 이론은 ‘보수적’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중립적이지 않다. _ 183쪽 20세기 경제학에서의 개인주의
포드-테일러주의 (Ford-Taylorism)가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데 ‘중립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방법론 차원에서 순진함을 드러내는 명백한 사례다. (…) 포드주의가 가져온 노동의 구조적 ? 조직적 변화는 그에 못지않게 큰 소비 영역에서의 변화와 함께 나타났다. 조립 라인의 성공이 동반자로 맞은 것은 마찬가지로 성공을 누리던, 준비를 마친 과도한 소비주의였다. 그 결과 근대의 전형적 특징이 되어버린 노동과 소비의 이분화가 탄생했다. 이 안에서 노동의 주체는 소외되고 노동은 무의미해진다. 보상은 물질적 풍요뿐이다. _ 186쪽 20세기 경제학에서의 개인주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유를 보호하려면 제3의 기둥, 바로 시민사회가 필요하다. 열린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국가 범위 밖에 남아 있는 결사체들 안에서 우리의 삶이 펼쳐진다는 점이다.(다렌도르프) _ 196쪽 ‘국가와 시장’에 대한 사회 질서 모델 내에서의 제3부문
시민경제의 관점이 최근 들어 수면으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오늘날의 경제 프로세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대 경제 이론 대부분이 지닌 환원주의적 성격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경제학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 경제 이론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괴롭히는 새로운 문제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만 들면 환경 오염, 사회 불평등의 증가, 부가 늘었음에도 늘어나는 시민들의 불안감, 대인 관계에서의 의미 상실, 정체성 충돌의 대두 등이 있다. 두 번째는 전통적인 복지국가 모델이 위기에 처하고 양호한 노동의 보장이 어려워지면서 경제학자들이 현재의 성장 지향 모델이 지닌 심원한 특성에 대해 고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_ 210쪽 시민경제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다
중요한 사실은 서구 사회에서 사적 재화라는 경제적 범주 (그 소비가 다른 이에게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재화)는 서서히 지반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커지는 재화의 범주는 (상대적 의미에서) 공공재와 관계재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가 점점 익명성에 젖어들수록 개인이 사회적 인정을 받고자 자신의 정체성을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적어지기 때문이다. 고로 재화가 우리가 누구인지 타인에게 소통하기 위한 주된 수단이 되고 말았다. 내 이웃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인정받으려는 마음에 새 스포츠카를 집 앞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웃과 소통한다. 이 때문에 현대 사회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익명성, 사적인 것으로의 회귀 현상은 사적 재화의 소비를 늘리는 대신 사적 재화를 공공재로 변모시킨다. 이것이 현대 사회의 전형적 모습이다. _ 217쪽 시민경제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다
일의 본성에 일어난 심원한 변화를 생각해보라. 일(work)이라는 활동은 일자리(job)라는 활동의 장소와 분리되었다. 오랫동안 일과 일자리는 같은 의미였다. 하지만 일자리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사회적 발명품이다. 2차 산업혁명에 와서야 일하는 활동이 일자리와 연계되었다. 각 노동자에게 작업 과정에서 딱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포드-테일러 시스템의 위대한 발명이었다. … 현재의 과도기가 새로운 점은 우리가 두 번째 전환점에 다다랐다는 데 있다. 탈-일자리(dejobbing), 즉 고정된 일터는 종말을 맞았다. 활동으로서의 일이 끝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의 전환은 적극적 자유의 측면에서 폭넓은 장을 열어준다. 그러나 불안정성이 내생하는 탓에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비용도 있다. 각자가 일종의 ‘일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일하는 삶 전체에 걸쳐 그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_ 220쪽 시민경제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다
보장해주어야 할 대상은 ‘아래에 있는 이’인가, ‘바깥에 있는 이’인가? 과거의 복지 모델은 ‘아래에 있는 이’만을 돌본다. 이를 위해 주로 누진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가 수단으로 쓰인다. 오늘날은 이것으로 더 이상 충분치 않다. 우리가 시민복지(civil welfare)라고 이름 붙이고자 하는 새로운 복지는 배제된 사람들을 향해야 한다. 노동 과정에서, 교육에서, 공동체의 참여 등에서 배제된 사람들. 우리의 관심을 사람의 생존의 권리에만 국한하는 것은 존엄의 권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시민복지가 추구하는 바는 사회 안에서 살아갈 권리다. _ 223쪽 시민경제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다
산업은 끊임없는 생산성 증가로 생겨난 가용 인력을 흡수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가용 인력은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실업 또는 저임금 일자리를 통해 잉여가 되어버린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아니면 노동 시간을 줄임으로써 필요한 일을 모든 주체에게 재분배하는 방식으로. 첫 번째 방식은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두 번째 방식은 충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사유재를 위한 시장의 규칙 안에 머물러 있어서는 생산성의 증가로 ‘해방된’ 사람들 모두에게 일을 줄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_ 296쪽 시민경제의 해결 방안
따라서 민간 부문에서 ‘해방된’ 일이, 사적 시장(사유재를 위한 시장)이 생산할 여력도 관심도 없는 재화를 생산하는 활동으로 흘러가도록 길을 내주어야 한다. 이런 재화가 바로 시민재화(civil goods)로, 등가교환의 논리를 적용할 수 없는 재화다. 관계재, 가치재, 일부 공공재, 공유지 등이 여기에 속한다. 등가교환의 원칙에 따라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만을 일로 규정하는 생각을 극복해야 한다. _ 296쪽 시민경제의 해결 방안
○ 출판사 서평
– 시장과 사회, 성장과 분배, 거래와 증여 : 이 모든 이분법에서 벗어나라
주류 경제학은 모든 비효율의 해결책이 시장의 확대에 있다고 본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시장은 사회적 차원과는 별개의 동떨어진 것이며 기업은 비-사회적인 기구다. 주류 경제학의 반대쪽 끝에는 기업을 반-사회적인 기구로 보는 시각이 있다. 마르크스와 칼 폴라니가 그 대표 주자다. 칼 폴라니가 보기에 시장은 사회를 위협하면서 발전한다. 오늘날의 정치 담론은 이런 두 가지 경제적 시각으로 양극화하고 말았다. 한쪽은 시장을 정치적 문제의 해결 수단으로 떠받들고, 다른 한쪽은 시장을 필요악으로 치부한다. 이 책이 두 발을 딛고 선 시민경제학의 전통은 이 두 가지 시각과 완연히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시민경제학은 인간의 사회성과 상호성을 경제생활의 중심 요소로 바라본다. 사회성은 경제의 영역과 따로 떨어져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경제학은 개개인의 이익 추구와 사회성의 작동이 경제 활동 안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민경제학은 성장이냐 분배냐를 묻는 이분법 역시 넘어선다. 성장을 통한 소득 창출이 일어나고, 그다음에 국가가 사회적 역할을 맡아 부의 재분배를 이룬다는 2단계 논리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 시대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포드에 좋은 것이 나라에도 좋은 것”이라는 말이 회자되었고, 그 말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유령이 되어 21세기 대한민국에까지 떠돌고 있다. 그러나 국가적 관점으로 국가와 기업, 시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 셋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시민경제에서는 성장과 분배가 하나의 통합된 경제 행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비로소 경제 행위는 사회 안에서 더불어 사는 시민의 손을 통해 벌어지는, 그 자체로 사회적 행위가 된다. 시민경제가 작동할 때,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는 질문은 더 필요하지 않다.
– 중세 인본주의 전통, 더 거슬러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시민경제의 기원을 찾다
시민경제의 사상적 기반인 시민 인본주의는 그리스 로마의 전통과 기독교, 그리고 자유도시가 낳은 새로운 정치 • 경제적 요구의 합성물이다. 이 사상의 황금기는 15세기 초반이고 그 지역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였다. 지금도 피렌체에서 화려한 건축물로 확인할 수 있는 도나텔로, 보티첼리, 안젤리코의 세계를 상상하면서 시민 인본주의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유가 흘러넘치는 도시의 생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 등 교부철학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온 ‘시민 덕성’의 강조, 그리고 자치와 자율의 공화주의 정치는 시민 인본주의의 산물이었다. 시민 덕성은 도시 안에 자치적 질서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데 요구되는 덕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상호성의 코드를 내재하는 가치다.
이런 환경에서 시장이 발전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민경제가 번성했다. 수도원은 ‘세속적 일상생활의 차원으로 이해되고 옮겨질 수 있는 경제적 태도의 규범’을 정식화하려는 기구로서 시민경제 실현의 첨병으로 활약했다. 가톨릭 사상과 긴밀히 결합된 시민경제의 전통에서는 무엇보다도 공동선 (common good)의 원칙이 중요했다. 공동선의 원칙 아래서 수도사는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들에게 돈을 빌려줄 의무가 있었으며, 이를 위해 수도원이 토지를 보유하는 것은 사유재산의 윤리적 정당성을 뒷받침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유재산은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한에 있어서 정당하다”라고 한 말 또한 시민경제의 전통에 그 뿌리가 있다.
– 행복은 효용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 공리주의의 덫에서 벗어나 공공 행복의 확대를 지향하라
사회 밖에 행복은 없으며, 시민 덕성과 공공선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없다. 시민경제의 관점은 이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시민경제학이 추구한 것은 부가 아니라 행복이며, 그것도 각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공공의 행복’이다. 개인의 행복은 단순히 그 총합으로써 공공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공 행복은 사적 이익의 총합도, ‘보이지 않는 손’을 거쳐 만들어지는 의도치 않은 결과도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 행복은 시민 덕성의 ‘보이는 손’을 거쳐 이뤄지는 경제 활동이 낳는 산물이다.
시민경제학은 흥망성쇠를 거듭했지만, 산업화와 함께 부상한 공리주의 사상은 시민경제에 무엇보다 큰 타격을 입혔다. 공리주의에서 행복은 효용(공리)으로 축소되고, 공공 행복은 개인적 효용의 총합이 되었다. 공리주의의 선구자 벤담이 행복과 효용을 동일시하면서, 신고전파 경제학은 공공 행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개인의 효용과 선호를 탐색하는 쪽으로 달음질쳤다. 공리주의의 그림자는 오늘날까지도 경제학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공리주의가 경제학을 점령하면서 일으킨 부작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결과주의다. 행위의 가치는 결과로써만 가늠된다. 둘째는 그 결과를 가늠하는 기준이 오로지 효용으로 수렴된다는 문제다. 결국 효용으로 전환되지 않는 요소, 이를테면 인간의 권리와 자유 같은 웰빙의 다른 측면들은 배제되고 만다. 마지막 부작용은 개인 효용의 단순한 총합이 그대로 전체의 효용으로 환산되어버리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공리주의 원칙 아래서는 한 사람이 100만큼의 효용을 누리고 다른 한 사람이 0만큼의 효용을 누리는 상황과, 두 사람이 각각 50만큼의 효용을 누리는 상황이 동등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리고 공리주의가 득세하는 경제학에서는 전자의 상황을 후자의 상황에 가깝게 조정하려는 노력을 경제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시민경제는 경제 활동의 목적이 효용의 최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 행복의 확대에 있다고 규정한다. 행복은 물질적 부(富)뿐만 아니라 자유의 함수이기도 하며, 이때의 자유는 소극적 의미로서 통용되는 ‘선택할 자유’를 뛰어넘는 적극적 의미의 자유다. 이런 시민경제의 관점이 최근 들어 새로이 주목받는 이유를 자마니와 브루니는 두 가지로 지적한다. 하나는 현대 경제 이론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환경 오염, 사회 불평등의 증가, 부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시민들의 불안감, 대인관계에서의 의미 상실, 정체성 충돌과 같은 세계 곳곳에 만연한 문제들에 대해서 공리주의적 세계관에 입각한 주류 경제학은 제대로 된 답을 내놓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두 번째로는 전통적인 복지국가 모델이 위기에 처하고 양질의 일자리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현재까지 고수해온 성장 지향 모델이 지닌 근본적 한계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 저성장과 맞물린 고실업, 지금까지의 복지 처방은 모두 무용했다 : 완전 고용의 환상에서 벗어나라, 일과 일자리는 다르다!
오늘날 복지국가가 맞닥뜨리고 있는 재정상의 위기는 복지국가 자체의 무용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의 특정한 형태, 즉 국가 통제주의 모델의 부적합함을 보여줄 뿐이다. 애초에 복지국가를 가능케 한 가치 자체를 위협하는 것도 아니며, 복지국가가 민주적 • 시민적 진보를 최상위의 형태로 구현해낸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 통제주의 모델의 위기는 재정적인 것에만 있지 않다. 더 근본적으로, 국가 통제주의 모델이 자유와 평등을 조화롭게 구현하지 못한다는 데서 위기는 출발한다. 선진 사회 시민들은 이제 평등의 확대를 자유의 축소와 맞바꾸려 하지 않는다. 국가 통제주의 모델이 추구하는 온정주의적 방식은 수혜자의 기호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가 선심 쓰듯 베푸는 온정주의가 아니라, ‘품위 있는 사회’다. 시민들이 지닌 적극적 자유를 부인하면서 너그러운 혜택을 베풂으로써 사회 구성원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잔인한 사회적 배제는 경제적 소외다. 자신이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존재라는 인식은 착취당한다는 인식보다 훨씬 파괴적이다.
그렇다면 통제주의적 복지국가가 부적합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의 본성에 일어난 심원한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일(work)이라는 활동은 일자리(job)라는 장소와 분리되었다. 우리 사회는 일을 한다는 것과 일자리를 갖는다는 것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곤 했지만, 일자리라는 개념은 2차 산업혁명과 함께 등장한 개념이다. 각 노동자에게 딱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포드-테일러 시스템의 위대한 발명이었지만, 우리는 이제 또 다른 변곡점에 다다랐다. 탈-일자리(dejobbing), 즉 고정된 일자리의 종말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활동으로서의 일은 언제나 존재하겠지만, 일이 벌어지는 고정된 장소로서의 일자리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불안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고정된 일자리는 소외를 초래했지만 안정성은 주었다. 탈-일자리의 현상과 함께 우리는 끝없는 불안정성에 맞닥뜨리게 된다. 고용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언제나 겪어온 고질이었지만, 이제는 그 형태와 특성이 달라졌다.
두 저자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생산성 탓에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인력을 소비의 증가로 흡수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에게 임금 노동의 형태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개념은 좋게 봐주어도 순전한 유토피아적 발상이며, 나쁘게 보자면 위험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민간 부문에서 ‘해방된’ 노동력이 사적 시장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재화, 즉 관계재와 가치재를 생산하는 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어야 한다는 것이 자마니와 브루니의 생각이다.
일자리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가는 사회에서 일자리를 갖지 못한 소수에게 혜택을 베풀어 다시 일자리를 얻도록 돕는다는 식의 복지 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고용이 이루어지는 시장과 따로 떨어진 채, 시장에서 잠시 이탈한 자를 연대를 통해 돕는다는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시장과 연대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더욱 그래야 한다. 시장이라는 기구 자체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목적을 위해서 활용될 수 있다. 이것이 시민경제학이 추구하는 새로운 복지 모델이다.
– 복지는 국가가 베푸는 자선이어서는 안 된다 : 시민의 선택권이 작동하는 ‘시민복지’ 모델을 구축하라
1980년대 이래 복지국가가 위기에 부딪히고 ‘사회적 경제(또는 제3부문)’가 부상하고 있는 데서 두 저자는 시민경제 복원의 희망을 읽는다. 위기 속에서 시민 인본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가 열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자마니와 브루니에게, 사회적 경제를 시장 기능이나 국가 기능의 보완물로 보는 견해는 신랄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사회적 경제를 아우르는 시민경제는 시장 옆에 존재하는 한 부문이 아니라 시장경제 총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마니와 브루니는 상호성의 원칙 아래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장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 설명한다. 누누이 강조하듯이, 시장은 단순히 물건이 교환되는 장소가 아니며, 인간이 자기실현을 위해 서로 관계를 맺는 장소다. 특히 물적 생산성이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더구나 행복이 물질(1인당 GDP)에 비례하지 않고 이스털린 패러독스가 작동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각종 사회 서비스를 포함하는 관계재(relational goods)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 따라서 국가가 시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물건과 서비스의 표준을 정해서 스스로 생산하거나 기업이 조달하게 하는 신국가주의(neo-statism)의 복지혼합(welfare mix)은 한계를 지닌다. 여기에서 사회적 경제 또는 제3부문은 국가가 정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전달하는 보충적인 자원에 불과하다.
저자들은 공공 행복이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생산해서 나누는 시민복지(civil welfare)를 통해서만 증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복지는 이원화된 사회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며 인간 본성에도, 시민경제의 전통에도 걸맞은 모델이다. 시민복지 모델은 기본적으로 보편주의적 인식에 기초한다. 여기서 국가는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와 그 질적 수준을 규정하고, 그 서비스의 분배 규칙을 수립한다. 그러나 사회적 서비스를 직접적으로 생산하고 분배를 관리하는 임무는 국가가 아니라 시민경제 조직의 몫이다. 여기서 시민경제 조직은 국가의 복지 정책에서 적극적인 파트너로서 기능하게 된다.
○ 독자의 평
21세기 시민경제학 책을 보게 된 것은 이 책이 대상으로 하는 경제학의 배경 때문이다.
1. 민족주의 국가가 형성되고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시스템을 생각하는 현재의 경제학 프레임과 다르다. 이 책은 통일국가를 이루기 전에 도시 기반 공동체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졌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현재 국가 기반 경제학의 한계를 보는 시점에서 도시 기반 경제학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2. 내가 보는 미래학의 트렌드는 다음과 같다. 생산수단을 지닌 개인이 산업혁명을 거쳐 생산수단이 일부 자본가에게 귀속되고 대다수 개인은 비자본가인 노동자로 변신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시 자본가에 귀속된 생산수단이 개인에게 돌아가는 시점에 현재 서 있다.
1) 3D 프린터가 보편화되는 시점이 개인이 공장장이 되고 사업가로 서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본다.
2) 탈원전되면서 신재생 에너지가 더 큰 비중으로 차지하면 개인 전기 사업자의 비중이 커진다. 그러면서 국가 단위 에너지산업이 도시 단위 에너지산업으로 변화될 것이다.
3) 이 밖에 사례들도 있지만 이쯤으로 줄이자.
이 때 필요한 경제학은 국가 기반보다는 도시 기반이 더 어울릴 것이고 이에 맞는 경제학을 이 책이 잘 설명한다고 본다.
3. 경제학의 시초라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가정과 “경제 시스템에서 행동하는 행위자”에 대한 가정은 우리가 학문적 전제를 들여다봐야하는 지적 사고를 요하기 때문에 철학적 분야에 속한다.
고전 경제학에서 말하는 행위자는 상당히 이성적이기 때문에 심리학을 첨가한 행동경제학이 탄생했다. 이 정도로는 경제행위자가 현실의 인간을 모사했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현제 경제학의 능력으로는 국가 단위나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막을 수 없었고 경제의 팽창과 수축 싸이클이 필연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경제학이 완성된 학문이 아니니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완성된 학문의 예를 들면 고전 역학이다. 고전 역학영역에선 모든 것이 잘 짜여지고 설명이 된다. 미완성 학문의 예는 면역학이다. 아토피 치료가 잘 안되는 이유는 면역시스템을 우리가 잘 몰라서 치료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아토피 환자가 매우 고생하니 면역학 학문이 빨리 완성되길 소망한다.
이런 관점에서 미래의 경제학을 말하는 책을 찾는 중에 책 1권이 걸렸다..
4. 밑의 서평 말처럼 쉽게 읽혀지긴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배운 학문의 관점이 너무 모더니즘 패러다임에 기초해서 우리가 생소하게 여기기 때문이다(모더니즘-근대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라투르의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를 참고하길 바란다). 간단히 말하자면 경제학이 원래 정치경제학에서 출발해서 경제학 이야기 나오면 꼭 좌파 우파 이야기로 정치 진영 이야기가 나오고 대립하고 서로 갈등 일으키고 끝난다. 우리나라 정치시스템은 좌 우파 기반으로 섞여있는데 경제시스템은 우파 기반이 크고 경제 교육과 경제학자들은 우파 편향이다. 이러다 보니 경제시스템에 좌파 측면을 강조하고 국가 정책을 시행하면 경제학자가 반대하는 구조다.
하지만 3의 입장에서 보면 이 또한 우스운 상황이다. 모더니즘이 중세시스템을 부정하고 단절시켜서 생겼다고 배웠지만 사실 중세 시스템에서 단절된 100 % 새로운 시스템은 아니다. 이런 내용은 움베르크 에코의 “중세” 책이 쓰여진 배경이니 참고하시라. 모더니즘은 “단절”을 기반으로한 세계관이자 페러다임이다. 정치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단절”을 기초해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는 서로 싸워야 되는 필연적 운명을 가지고 있다.
3의 입장은 “연속성”을 가지고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우리 세상을 선택할 지를 논해야한다. 이 관점을 이해해야 아래 책의 “박애”의 가치로 경제학을 논하는 것이 이해될 것이다.
서평도 함께 보면 책을 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위의 내글과 관점이 다르고 책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