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1월1일 새해가 밝은지 한 달이 다 돼가지만 한국 사람에게 정작 한 해의 시작을 알리고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것은 바로 음력 정월 초하룻날인 ‘설날’을 보내고부터이지 않나 생각한다. 온 가족과 함께 둘러 앉아 설날 음식을 해 먹고 덕담과 세배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 한 해가 시작된다. 그러나 점점 더 서구화된 문화와 생활방식, 세대의 차이로 우리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설날은 명절의 분위기보다는 휴가라는 인식이 크다. 설을 전후해서 치루는 의례와 놀이보다는 쉬는 날을 맞아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거나 놀이동산, 영화, 스키 등 개인적인 여가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모든 가족들, 친지들이 모이는 것이 번거로운 일로 변해가고 있다. 가족의 유대를 중시하여 설날을 지켜왔던 선조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들이다. 더구나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며 명절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자녀세대에게 온전히 명절의 의미와 분위기, 정신 등을 설명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이 이번 설날을 맞아 한인커뮤니티에서 민족설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가족들, 특히 자녀 세대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지면을 통해 잊고 있던 설날의 유래와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설의 유래
설이라는 말의 유래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고 있다. 다만, 이에 관한 여러 의견이 있는데 삼간다는 뜻으로서, 새 해의 첫날에 일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내게 해 달라는 바람에서 연유했다는 견해와 ‘섦다’의 뜻에서 유래된 뜻으로, 해가 지남에 따라 점차 늙어 가는 처지를 서글퍼 하는 뜻에서 생겼을 것이라는 견해, ‘설다, 낯설다’의 의미로 새로운 시간주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그리하여 완전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생겼다는 견해, 한 해를 새로 세운다는 뜻의 ‘서다’에서 생겼을 것이라는 견해, 마지막으로 설이라는 말이 17세기 문헌에 ‘나이, 해’를 뜻하는 말로 쓰여진 것으로 보아 ‘나이를 하나 더 먹는 날’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설에 관련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에서는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하였으며, 신라에서는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설은 일제가 강점기에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의도로 양력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강제적으로 쇠지 못하게 하였으나, 오랜 전통에 의해 별 실효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월 초하루에 설을 지냈다. 이러한 정책은 광복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도적으로 양력설에 3일씩 공휴일로 삼았으나, 오히려 2중과세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기까지 하여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정하여 공휴일이 되었다가 사회적으로 귀향인파가 늘어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설날로 다시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섣달 그믐날(음력12월 마지막 날) 풍속
그믐 전날, 궁궐에서는 나희(儺戱)를 하며, 이때 신하들은 윤목(輪木)을 던지는 놀이를 한다. 15세기 말에 저술된 성현의 [용재총화]에 의하면, 나희는 나례라고도 하는데, 어린이 수십 명을 모아서 초라니를 삼아 붉은 옷과 두건을 씌워 궁중에 들여 보내면 관상감에서 북과 피리를 갖추고 방상씨(方相氏)와 함께 새벽에 이르러 쫓아내는 놀이로서, 잡귀를 쫓는 놀이이다. 윤목은 12면에 각각 하나씩 동물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3개를 던져, ‘사(獅)’자가 많이 나오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다.
섣달 그믐날은 까치설날이라고 하여, 어린아이들은 미리 설빔으로 갈아입고, 어른들은 서로 찾아보고 인사하는데, 이것을 과세(過歲) 또는 ‘묵은세배’라고도 한다. 아마도 정초에 바쁘기 때문에 미리 세배를 하는 풍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밤에 눈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한편 그믐날 밤에 자면 눈썹이 희어 진다고 하여 밤을 세우는데, 이를 수세(守歲)한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집에 와서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가면 그 아이에게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어, 신을 감추고 일찍 잔다고 한다.
설날 아침의 풍속
조선시대 국가의 의례서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하면, 정월 초하루 새벽에 종묘에서 임금이 큰제사를 올린다. 날이 밝으면 궁궐에서는 왕이 왕세자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북쪽을 향하여 망궐례(望闕禮)를 행하고 이어서 왕은 왕세자와 백관, 왕세자빈으로부터 조하의(朝賀儀)를 받거나 지방관들에게서 올려 온 방물과 전문 등을 받는다. 벼슬아치들은 다투어 친척과 동료들의 집에 가서 명함을 문안에 던지는데, 대가집에서는 미리 함을 설치하여 받기까지 하였다. 이것을 세함(歲啣)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새 옷을 갈아입는 날은 1년에 3일뿐인데, 설날을 비롯하여 수릿날(端午)과 가위날(秋夕)이 그것이다. 이러한 명절날에 입는 옷을 특히 ‘비음’이라고 하는데, 이날 새 옷을 입는 것은 새로운 사회적 지위나 생활단계에 들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통과의례의 하나인 것이다. 어른들은 설날 아침에 설비음[세장(歲粧)] 위에 예복을 차려 입고, 사당이나 대청에서 4대 조상의 신주를 내어 모시고 차례로 차례를 지낸다. 그리고 성묘를 하고 돌아온다. 설 차례에는 떡국을 올리고 차례를 지낸 다음에 음복으로 함께 모여 비로소 떡국을 먹는다. 차례와 성묘가 끝나면, 이웃의 어른들께나 친구끼리도 서로 집으로 찾아 가서 세배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이때에 서로 나누는 말들을 덕담(德談)이라고 하는데 덕담의 표현은 시제를 항상 과거형으로 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덕담의 형식이 미래에 닥칠 일에 대한 축원으로 변하였다. 어린이들에게는 세배돈을 주는 풍속이 전해오며, 세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마련하는 음식을 세찬(歲饌), 그리고 술을 세주(歲酒)라고 한다.
설의 놀이와 연희
새해에 개인의 신수를 점쳐 보기 위하여 오행점을 보거나 윷점을 치고, 토정비결을 보기도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3일이 지나면, 어린 아이들이 보름날까지 연날리기를 하다가 14일날 저녁에 줄을 끊어 날려 버리면 그 해에 드는 액을 날려 버린다고 생각하였으며, 이것을 ‘액막이연’이라고 불렀다. 설을 지내고 3일째 되는 날에 일반 농촌이나 산촌에서는 마을고사, 또는 동제라고 하는 공동제사를 지내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농악을 치고 고사를 지내는 ‘지신밟기’를 하였다. 지신밟기를 할 때에는 집집마다 조금씩 쌀을 내 놓는데, 이것은 마을의 공동자산으로 삼는다. 마을제사와 지신밟기는 새해를 맞아 공동의 생활공간을 새롭게 만들기 위한 의미를 갖는다.
설날 차례상과 세배 손님 접대를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 음식들을 통틀어 세찬(歲饌)이라고 한다. 세찬에는 떡국, 세주, 족편, 각종 전유어, 각종 과정류, 식혜, 수정과, 햇김치 등 여러 가지 음식들이 있는데 준비는 가세에 따라 가지 수와 양이 다르지만 정성을 다해 만들며 어느 집에서나 만드는 대표 음식은 떡국이다. 그래서 떡국 한 그릇을 더 먹었다는 말이 설을 쇠고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한편 설 전에 어른들께 귀한 음식을 보내는 일, 어른들이 아랫사람들에게 보내는 먹을 것들도 세찬이라고 하였다. 그때 보내는 음식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대표적인 것은 쌀, 술, 담배, 어물(魚物), 고기류, 꿩, 달걀, 곶감, 김 등이었다.
세배
정월 초하룻날에 하는 새해의 첫인사이다. 설 차례를 지낸 뒤 자리를 정하여 앉는다. 조부모, 부모에게 먼저 하고 형, 누나 등 나이 차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한다. 세배를 드려야 할 어른이 먼 곳에 살고 있을 때에는 정월 15일까지 찾아가서 세배하면 예절에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세배하러 오는 어른에게는 술과 음식을, 아이들에게는 약간의 돈 또는 떡과 과일 등을 내놓는다.
시드니에서도 정을 나누는 설날
계절도 반대이고 낯선 이국땅에서 설 명절을 지낸다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설날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한국인만이 느끼는 정서와 마음이 이곳 시드니에서도 이웃과 타문화권 사람들에게 풍성히 나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가족을 챙기듯 이웃을 챙겼던 옛 조상들의 넉넉한 인심들이 우리네의 삶의 현장에서도 동포들에게 그리고 타문화권 이웃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가족과 친지, 이웃들이 유대와 정을 나눌 수 있는 뜻 깊고 소중한 시간인 설날, 이국땅에서 맞이하는 설날이지만 한민족의 정과 마음으로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인들과 타문화권인들 안에서 앞으로 더 풍성한 명절로 자리매김하기를 기원해본다.
에듀라이프편집부
<자료참조: 한국문화재보호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