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이해
에스라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에서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성전과 국가를 제건하였는가 하는 역사를 제사장의 입장에서 기술하려 한 책으로서 종교적 또는 제사 의식의 관점에서 유다 백성의 포로에서 귀환과 성전 재건을 말하고 있다.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의 내용이다.
1. 명칭
본래는 에스라와 느헤미야 이 두 책은 한 책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라틴어 번역 성경인 벌게잇에서는 에스라서를 ‘제1 에스드라스’라고 하고 느헤미야서를 ‘제2에스드라스’라고 부르고 있다.
또 이 두 책 (에스라와 느헤미야)은 정경상의 위치도 다르다. 즉 한글 성경에는 역대하 다음에 있는데 히브리 원전에는 성문서집 중에서 다니엘 다음에 있다 (히브리 원전 중에도 팔레스틴 계통의 원전). 전통적으로 우리는 에스라가 느헤미야보다 앞서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고 믿고 있는데 최근의 어떤 학자들은 사실은 그 반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2. 저자 및 기록연대
비록 저자가 명시되지 않고 화자 (話者)가 1인칭과 3인칭으로 나타나지만, 에스라가 직접 여러 칙령과 서한, 계보들을 기본 자료로 사용하여 이 책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부 바벨론 문서들도 이와 비슷한 서술형식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인칭의 변화가 에스라의 저작설을 부인하는 결정적인 논거는 되지 못한다. 에스라가 자신을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 (7:6)로 언급한 사실도 그의 저작설을 반증하는 실제적인 논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 (민수기 12:3 참조). 에스라는 느헤미야 시대까지 살았기 때문에 에스라 10:17-44의 사건이 일어나던 주전 458년 봄부터 느헤미야가 바사 궁전을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한 주전 444년 여름에 걸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그의 책을 완성하였다.
3. 배경
1) 역사적 배경
에스라서는 70년간의 포로생활 후에 이스라엘 조국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들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를 기록하고 있다. 세 바사 왕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의 보호와 도움 및 스룹바벨과 예수아, 학개, 스가랴, 에스라와 같은 위대하고 경건한 유대인들의 인도를 통하여, 예루살렘에서는 두 번째 성전이 완성되어 참된 예배가 다시 드려졌다. 1-6장까지는 고레스왕 (BC 538-530) 치세 초기의 2,3년과 다리오왕 (BC 522-486) 치세 6년 동안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나머지 7-10장은 (4:7-23 포함) 아닥사스다1세 (BC 465-424) 통치 초기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바사의 아끼메니드 왕조에 있어 중요한 80년간의 기간이 에스라서의 해당 기간이지만, 바사의 두 차례 희랍 원정 실패와 에스더서의 사건들이 일어났던 주전 516-458년 사이의 58년간에 대해서 그것은 실제로 아무 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2)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서 결코 돌아올 수 없었다. 그들이 민족적 실체로서 계속 존재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1) 북왕국에는 유다와는 달리 돌과 흙으로 된 것이든 마음 속에 있는 것에든 성전이 없었다. (2) 이스라엘에는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된 후 왕족 생존자가 없었다. 여하튼 그들은 그 이전에 이미 다윗 혈통을 잃었으며, 이로 인하여 영원한 왕국의 보좌 위에 “다윗의 아들’이 앉을 것이라는 위대한 예언적 이상 (理想)이 말살되었다. (3) 앗수르는 대부분의 백성들을 북왕국 밖으로 몰아내고 이방인을 그 땅에 이주시켰다. 이로 인해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 사인에 잡혼이 이루어지고,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로부터 그처럼 증오를 받던 혼혈족인 사마리아인이 나타나게 되었다. (4)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앗수르에 있던 이스라엘 포로들 중에는 그들의 종교적,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할만한 계속적인 종교적 지도력이나 예배 중심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대 중동의 떠돌이 민족들 속으로 사라졌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열 지파”가 되었다.
그러나 유다 왕국의 포로 역사는 이와 달랐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도성을 마지막으로 점령하고 불사른 것은 앗수르가 아니라 바벨론이었고, 정복민에 대한 바벨론의 정책은 매우 달랐다. (1) 바벨론은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루고 거주하도록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을 섬기고, 그들 자신의 학교를 운영하며, 그들의 민족적, 종교적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2) 유다도 마찬가지로 다윗의 혈통을 왕으로 삼았고 다윗의 한 후손이 백성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갔다. 이것은 다윗의 후손이 거기에 있어 다윗 왕조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간직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3) 바벨론은 앗수르가 사마리아에서 행했던 것과 같이 고의로 유대의 거주민을 교체시키지는 않았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남아 있었고, 바벨론의 포로들도 거룩한 시온산 위에 폐허로 남아있는 거룩한 도성과 영광스런 성전을 결코 잊지 않았다. (4) 가장 중요한 것은 유다에서 끌려간 포로들은 율법 책을 보존하고 가르쳤던 서기관과 제사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포로에서 살아남은 백성은 “성경의 백성”이 되었고, 바벨론께서 귀환한 (주전 538년경) 해에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는데에 종교생활의 중심을 두는 민족이 되었다.
4. 신학과 역사관 : 유대 성경의 관점
성경 정경의 에스라 책과 느헤미야서는 에스라의 활동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반면 에스라에 관한 다른 책들은 (첫째 에스드라, 3-6 에스라) 나중 정경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다.
에스라 – 느헤미야 서는 원래 두루마리로 엮어진 한 개의 문서였다. (느헤미야 3:32, 각주) 후에 유대인들은이 두루마리를 나누어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에스라라고 불렀다. 현대 히브리어 성경은 현대 다른 성경 번역과 마찬가지로 이 두 권의 책을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부른다. 에즈라 서 몇 부분 (4:8~6:18과 7:12~26)은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대부분은 히브리어인데, 에스라 자신은 두 언어에 능숙했다.
에스라는 바벨론에 살고 있었다.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칠년 (기원전 457 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라고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많은 포로된 유대인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에스라는 그곳의 유대인들이 유대인이 아닌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절망 속에서 자신의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며, 동족 몇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죄 많은 결혼 생활을 해소함으로써 공동체를 정화하려고 했다. 몇 년 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도시 벽을 재건하는 임무를 지닌 주지사로 예루살렘에 느헤미야 (유대인 귀족 집안이면서 왕의 측근이었다)를 보냈다. 성벽이 완성되자, 느헤미야는 에스라에게 모세 율법 (토라)을 모은 책을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읽게 했고, 백성과 제사장은 율법을 지키고 모든 다른 민족들과 섞이지 않겠다는 언약을 맺었다.
5. 내용 및 주요사상
에스라는 제사장이요 율법 학자였다 (스7:11). 그는 아닥사스닥왕 때 바벨론으로부터 많은 유대인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그는 먼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이방 여자와 결혼한 제사장과 백성들에게 이혼할 것을 명령하고 율법 준수를 강조하였다.
그는 또 조직적으로 종교 교육을 실행할 것을 계획하는 등 성전 건축과 종교심의 고취 혈통의 순화와 후세 교육의 강화 등 민족 재건에 주력 하였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닥왕의 명령을 받고 예루살렘의 성곽을 제건할 권한과 유다를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에스라가 돌아온 후 10년 후 이었다.
이 때에 주변 여러 이방 민족의 방해가 있었지만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인 느헤미야는 백성을 무장시켜 일면 재건, 일면 국방의 중대사를 성공적으로 지도하였다.
그는 종교적, 사회적 부패와 나약을 극복하고 민족 중흥과 개혁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웠다.
6. 분해
I. 포로들의 귀환 (스1:1-9:43)
1) 고레스왕이 성전 재건을 선포함 (스1:1-11)
2) 돌아온 자들의 이름 (스2:1-70)
3) 예수아와 스룹바벨이 성전의 기초를 놓음 (스3:1-13)
4) 방해 때문에 공사가 중지됨 (스4:1-24)
5) 학개와 스가랴가 격려함 (스5:1-17)
6) 성전을 완공하여 헌당함 (스6:1-22)
II. 서기관 에스라 (스7:1-10:44)
1)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옴 (스7:1-28)
2) 함께간 자들의 명단 (스8:1-36)
3) 백성의 죄에 대한 에스라의 자복 기도 (스9:1-15)
4) 백성들의 회개와 잡혼자의 명단 (스10:1-44)

임운규 목사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편집·발행인)
CerIII · IV, Diplom, B.Th, M,A, M.Div, M.Th, D.Th, D.Pt ca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