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지리
아덴(Athens)에서의 바울, 고린도(Corinth), 델피(Delphi)
아덴(Athens)에서의 바울
사도행전 17:16-21절은 바울이 아덴(Athens, 현 아테네)에서 디모데와 실라를 기다리는 동안에 아덴의 도시를 살펴보며 기독교의 변론과 당시의 철학자들과 논쟁하는 내용입니다. 계속되는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인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지만 바울을 핍박하고 괴롭혔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바울을 쫓아다니며 많은 고난과 고통을 주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베뢰아 지경까지 따라와 바울은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긴박하게 당시의 철학의 도시인 아덴으로 피하게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의 역사가 안디옥을 중심으로 소아시아로 확산되고 이때 예루살렘교회는 핍박을 받았다. 소아시아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성령은 마게도냐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통해 바다를 건너 유럽에 복음이 전해졌다. 그리고 당시의 세계의 중시지인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해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며 성령의 주도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바울의 선교의 여행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진 것이다.
고린도(Corinth)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고린도(Corinth)는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 중심지로 국제적인 도시였다. 고린도(Corinth)는 천해의 지리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는대 즉 서쪽에는 이오니아 해아 이탈리아로 향하는 레카이온 항구를 품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아테네를 바라보면서 에게해로 아갈 수 있는 겐그리아 항구를 품고 있었다. 현재 고린도(Corinth)라고 하는 시는 신 고린도(Corinth)로 1858년과 1928년의 대지진 이후에 세워진 곳으로 아테네에서 서남쪽으로 80km 되는 거리에 있다.
아카 지방의 수도였던 고린도(Corinth)는 번창한 항구 도시였으나 심한 빈부의 차이와 퇴폐적인 윤리생활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했다. 사도 바울은 제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 3년 동안 머물면서 고린도전서를 집필했고, 57년경 그리스 북부 마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를 써서 보냈다. 고린도(Corinth)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은 교우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어 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사목적인 대답을 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서신에서 다룬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린도(Corinth) 성도들 중에는 의붓어머니와 동거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이를 방관만 하고 있었고(고전 5:1-13), 어떤 성도는 자유를 구실 삼아 창녀 관계를 맺었고(고전 6:12-20), 또 성행위라고 하면 무조건 죄악시하는 극단적인 사람들이 있었다(고전 7:1-10).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결혼, 이혼, 독신 등성윤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그 외에도 교우들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이교도 법정에 가서 소송하는 문제(고전 6:1-11),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문제(고전 8:1-11), 성찬의 전례시 부자들은 그들이 가져온 음식을 배불리 먹고 가난한 사람들은 굶는 경우도 있었기에 올바른 성찬례를 가르쳐 주고(고전 11:17-34), 그 외에도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고(고전 14장), 부활신앙을 부인하는(고전 15:12) 사례를 그리스도 부활의 근거로 삼아 주장하며 가르쳤다.
그러나 고린도(Corinth)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성도들 간의 분쟁과 파벌 의식이었다. 성도들 간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파벌 의식이 만연되었다는 교회의 소식을 듣고 바울은 이 서신에서 그들이 전해 듣고 받아들인 복음을 상기시키면서 교회공동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역설하였다.
둘째편지인 고린도후서는 첫째편지를 발송한 다음에 고린도(Corinth)에 거짓 선지자들이 들어와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부인하였다. 사태가 다급함을 인식한 바울은 직접 고린도 교회를 찾아갔지만 이미 대부분의 성도들이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동조하여 그를 맞아 주지 않았다.
바울은 비통한 마음을 안고 에베소에 돌아와 ‘번민과 비통한 마음을 안고 울면서’ 매우 격양된 어조로 편지를 썼는데 이것이 고린도 교회로 보낸 ‘눈물의 편지’(고후 2:4)이다.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로 보내어 이 눈물의 서신을 보내고 그 사이에 마게도냐로 건너가서 디도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디도를 만나 고린도 성도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도에게 순종하고 모든 적들을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역속을 들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답신으로 나온 편지가 고린도후서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이 고린도후서는 사도직에 대한 편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도직의 본질과 역할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겸허한 태도로 자신의 약함 안에서 힘차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높이 기리고 있다.
델피(Delphi)
델피(Delphi)는 그리스의 포키스 협곡에 있는 파르나소스 산의 남서쪽 산자락에 자리잡은 고대 그리스의 지명이자 도시를 가리킨다. 델피(Delphi)는 고전기 그리스 시대 가장 중요한 신탁이었던 델포이(Delphoi) 신탁이 이루어진 곳이자, 땅의 배꼽 옴팔로스가 놓여있던 장소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아폴론이 이를 지키던 괴물 여신 피톤을 죽였고 그 이래로 델포이(Delphoi)는 아폴론을 숭배하는 주요 성소가 되었다.
일각에서는 피톤이 아폴론에게 패배하기 전 이곳의 지명이 본래 ‘피톤’이었다고 주장한다, 델피(Delphi)의 아폴론 성역은 범그리스적인 기원전 586년붜 4대 범그리스 경기 중 하나인 피티아 경기가 열려 4년마다 모든 그리스 세계에서 온 운동 선수들이 실력을 겨루었다. 경기의 승자는 피톤의 살해를 재현했던 소년이 템피 계곡의 월계수를 잘라와 그 월계관을 쓰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