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지리
에베소(Ephesus, 에페수스)
에베소(Ephesus) 지역은 유적지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현장이었다. 전 세계에서 크루즈를 타고 관광하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10,000여명을 넘을 정도로 에게해 연안의 최대의 고대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에베소(Ephesus) 는 BC 2~6세기경 인구 20만 명의 대도시로 식민지 건설과 무역으로 발전하였고, 그 당시 인근의 쿠사다시 항에 그리스나 페니키아 상인들이 싣고 온 화물과 사람들로 흥청거렸던 도시였다. 오늘날은 그저 작은 마을 정도에 불과하지만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던 아르데미스 신전 등 당시의 유적이 광범위하게 남아있는 곳이며, 만물의 유전을 설명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시인 칼리노스도 이 고장 출신이다. 에베소(Ephesus) 박물관을 향하는 초입에 누가의 묘가 있다.
에베소(Ephesus) 는 AD 53년부터 2년간 사도 바울이 이곳에 머물면서 전도활동을 하며 교회를 세웠다. 후에 알렉산더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262년 고트족이 침입해 시가지와 신전을 파괴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또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로부터 마리아를 돌볼 임무를 부여 받고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서 살면서 보내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64년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밖에서 순교하자 요한은 그를 대신하여 에베소(Ephesus) 의 지도자가 되었다. 요한은 노구를 이끌고 페르가뭄, 이즈미르 등지에서 선교를 하다가 로마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지중해 연안의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했으나 황제 도미티안이 피살당하자 유배에서 풀려나 이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레토의 딸로 순결의 여신이다. 이 신전은 바로 그녀에게 바쳤던 것처럼 고대 7대 불가사의로 꼽히던 건축물이다. BC 7세기경에 만들기 시작한 신전은 120년에 걸쳐서 만들어 졌는데, 길이 115m, 폭 55m의 터에 높이 19m의 대리석 원주 127개가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규모였다고 한다. 당시 에베소(Ephesus) 주민들은 이 신전을 지구상 어느 신전보다 크게 짓기를 원했던 때문에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로 만들었다고 전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했던 신전도 계속해서 아시아를 침임해오던 고트족에 의해 약탈, 파괴하여 오늘날은 페허로 변한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졌다가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T.J Wood에 의해서 발굴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들어나게 된다. 이곳에서 발견된 일부 유적은 런던위 대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기도 한다. 에베소 유적지는 원형극장, 도서관, 도로, 화장실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정문을 통과해 조금 걸어가면 바로 원형극장이 보인다. AD 117년경에 완공된 3층 규모의 이 극장은 원래 극장은 그리스, 로마 원형 극장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부채모양으로 넓게 퍼진 이 극장은 원래 연극 상영이나 시민의회가 열리던 곳이었으나 후에는 맹수와 검투사의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 극장의 모든 시설이 현대 과학을 능가할 만큼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입구와 출구, 전 좌석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들리는 소리 등은 최고라 할 수 있다. 셀서스 도서관은 에베소(Ephesus) 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뛰어나 조형미를 자랑하고 있다.
이 건물은 AD 135년 JULIUS AGUILA가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POLEMAENANUS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대리석 기둥이 지탱하고 있는 2층 도서관 건물은 조각 장식이 매력적이다. 1층 정면에 지혜, 운명, 학문, 미를 상징하는 영성상이 놓여있고 하부층은 코린트와 이오니아식이 결합되어 있으며 상층부는 코린트식의 대리석 기둥이 바치고 있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한 때 12,000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셀서스 도서관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약간의 경사진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왼쪽으로 하드라인 신전이 보인다. 아주 심플한 건축물이지만 정면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한 요한이 노년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는 이유로 교회가 세워졌고 이어서 6C에는 동로마의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교회로 변모시켰다. 7C에는 아랍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교회 주위에 성벽을 쌓았고, 14C 초에는 이슬람 사원으로도 사용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정면 입구에는 ‘추격’이라는 의미를 지닌 문이 있고 동쪽과 서쪽에도 문이 있으나 정원에는 유감스럽게도 일부 성벽과 둥근 기둥, 바닥의 모자이크만이 남아 있다. 한 쪽에는 흰 대리석으로 세워진 사도요한의 묘가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