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콜롬바(St, Columba)의 생애와 영성
콜롬바(521-597)는 스코틀랜드의 선교사로써 아이오나 섬에 첫번째 수도원을 563년에 설립하고 선교사역을 시작 하였다. 그의 생애를 살펴 보기로 한다.
1) 유년시절
콜롬바는 521년 아일랜드 북부 도네갈(Donegal) 지역에서 왕실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4세기 아일랜드왕 이었던 니올(Niall)의 후손이었고, 그의 모친 에트나(Eithne)도 레인스터(Leinster)왕의 후예였다. 휜레이에 의하면, 콜롬바가 어릴 때부터 거룩한 훈련을 받도록 쿠르스네찬(Cruithnechan) 이라는 사제에 의해 가르침과 양육을 받게 되고, 그로부터 유아세례도 받은 후로 하나님의 천사들은 콜롬바에게 세 가지의 은사를 주었는데 그것은 자비심, 지혜 그리고 순례여행 이었다. 어린시절부터 학교에서 라틴어를 읽고 쓰는 교육을 받은 것이 사제로서의 길을 앞서 가는데 보탬이 된다. 모빌(Moville)이라는 학교에서 교육받으면서, 거기서 유명한 휘니안(Finnian) 아래서 수도원생활을 훈련받게 되며 20세가 되기 전에 집사안수를 받게 된다. 기초학업과 훈련을 마치고, 어머니 선조의 땅인 레인스터(Leinster)로 여행을 떠나 신학자이며 은유 시인인 겜만(Gemman) 아래에서 수학하게 된다.
그 당시 은유 시인들은 아일랜드 민속적 전통의 가르침의 보존자며, 전승자였고, 12년간의 수업후, 올람(Degree of Ollam) 학위를 받았고, 그들의 제자들 중에는 유명한 수도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곳에서 콜롬바는 당대의 시인들의 감명을 받아서 은유시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가 태어 나기전에 모친 에트나가 하루는 태몽을 꾸었는데, 무지개 색깔을 가진 커다란 망토가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란드까지 닿았고 꿈에 어떤 현인이 나타나서 “당신의 아들로 인해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당신 아들의 가르침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 당시 백성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우상을 섬겼고, 특히 젊은이들은 요술쟁이들의 요술마법을 숭상했다고 한다. 마술 생들이 마술을 견습생들에게 전수 하듯이,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콜롬바, 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자신을 심어주었다고 했다.
2) 청년시절
이형기에 의하면, 영국에서 온 아일랜드 출신의 선교사들 중 콜롬바는 그 중에 가장 탁월한 선교사라고 밝히고 있다. 후일에 콜롬바가 수도원을 세우고, 선한 일을 감당 할 수 있도록 한 스승, 크루스네찬(Cruithnechan)과 겜만(Gemma)에게 많은 감화와 영향을 받았다. 은유시인 겜만(Gemman) 밑에서 수년을 사사한 후 콜롬바는 드디어 크로날드(Clonard) 수도원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휜레이에 의하면, 한꺼번에 일년에 3000명이 넘는 입학생들이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전 지역과 독일에서까지 몰려 왔고, 그는 이곳에서 좋은 태생적 배경과 천성적 재능으로 수도사로서의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곳에서 사제안수를 받고, 25세까지 사제로서, 수도사로서의 훈련을 받게 된다. 콜롬바의 생애에 만났던 2명의 스승들의 이름은 모두Finnian이었다. 학업을 마친 그는 클로나드의 피니안(Finnian of Clonard)에게 가서 그의 기도방을 어디에 지어야하느냐고 물어보니, 교회 앞에 지으라고 답했다고 한다. 클로나드의 주교들은 방앗간에서 거친 가루를 빻는 일을 하였지만, 콜롬바는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서 방앗간 일을 도와 주었다고 한다. 그후 콜롬바는 Derry로 가서 어느 날 교회를 짓기 위한 나무를 베어오도록 수사들을 숲으로 보냈다. 공교롭게도 교회근처에 사는 개인 소유나무를 베자 주인은 몹시 화를 내었다. 콜롬바는 그 얘기를 듣고 식솔들에게 일러서 “그 베어온 나무만큼의 보리를 가지고 가서 주인에게 그것을 땅에 심으라 하시오” 그때는 벌써 한여름이 지났지만 땅에 뿌려졌을 때 그 곡식이 자라났고, 추수 때에 그 소산을 맺었다. 데리에 있을 때 콜롬바는 로마와 예루살렘을 방문하려 했으나 가지 못하고 투르(Tour)에 가서 Martin의 가슴위에 일백년 동안 놓여 있었던 복음서를 가지고 돌아왔다. 주님께서는 데리에서 콜롬바를 위하여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다. 그후에 그는 Teffia의 왕에게로 가서 ‘듀로우’라는 땅을 받고 수도원을 세웠고, 그후에도 계속해서 300개의 교회들을 세우고 300권의 책들을 저술하였다. 그가 쓴 복음에 관한 책은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었으나 단 한 글자도 지워지지 않았다.
콜롬바는 남의 눈에 띌 정도로 큰 신장과 강인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그의 크고 선율적인 목소리는 이쪽과 저쪽의 언덕을 넘나들 정도였다. 그가 정말로 당대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성자같은 성품과 자기를 부인하는 낮아진 모습 때문이었다.
콜롬바는 믿음과 신앙심을 뿌리는 가운데 아일랜드 전국을 여러 번 순례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수많은 교회들과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각 곳에 지도자들, 성골함, 유골들을 남겨 놓았다. 휜레이의 저술에서, 처음 그의 수도원 생활은 성경을 복사하는 일이었는데, 주후 561년에 성 휘니안(St. Finian of Moville)과 시편 저작권 논쟁에 휘말리며 불거진 전쟁(Battle of Cul Dremhe)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 하였다. 이에 책임을 지고 콜롬바는 추종자들과 함께 그의 조국 아일랜드를 등지게 된다. 수도원은 복음을 접하지 못한 이웃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는 역활뿐 아니라 언어교육, 영성훈련, 수도사훈련, 성서번역 등을 한 장소였음으로, 청년시절의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찍이 그가 가지고 있던 순례의 결심이 다시 그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스코틀랜드의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12명의 주교들, 40명의 사제들, 30명의 부제들, 그리고 50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갔다. 그는 오늘날 히옥코럼실(Hi og Colomb Cille)이라고 불리는 곳에 오순절 밤에 도착할 때까지 강행군을 했다. 그곳에서 아이오나 공동체를 만들고, 콜롬바는 스코틀랜드, 브리튼, 쌕슨 땅을 거치면서 선교여행을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금식을 하고, 많은 기적을 행하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신앙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그의 얼굴에서 거룩한 기쁨을 계속해서 볼수 있었기 때문에 콜롬바의 가장 깊숙한 영혼을 채우고 있는 성령님이 항상 함께 하셨던 것이다. Picts지방에서 그는 겸손한 신자의 죽은 아이를 살리고, 순수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했다. 예수님과 같은 이적을 행하고, 거룩한 성령님은 그에게 어떤 의로운 사람들의 영혼이 천사들에 의해 최고의 하늘까지 옮겨지는 것과 또한 어떤 사악한 존재들이 악마들에 의해서 지옥으로 가는 것을 보여 주었다. <다음호에 계속>
노정언 장로
학남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