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11)
지금은 절개 (節槪)를 구할 때: 호세아서<11>
호세아 선지자가 자신의 설교를 진행하는 방법은 아주 독특하다. 그는 ‘이스라엘의 배도’라는 하나의 중심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하나의 키워드 곧 ‘자나’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다. 이 단어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음행하다’이다. 4-14장에서 첫 단락으로 묶을 수 있는 4:1-6:3은 이 키워드를 거듭거듭 사용하여 중심 사상을 전달한다. 이스라엘의 배도를 남편에 대한 정조를 팽개치고 바람을 피운 행위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자가 ‘음행하다’라는 비유적인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가 이스라엘의 배도를 서술하기 위해 명시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네가 지식을 버렸다”, “네가 네 하나님의 토라를 잊었다” (4:6), “그들이…여호와를 버렸다” (4:10), “그들이…하나님을 버렸다” (4:12)와 같은 서술을 통해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배도를 아주 분명하게 언급한다.
한편, 여기서 주의할 것 한 가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행위를 ‘음행하다’라는 비유적인 단어로 표현한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단지 ‘영적 음행’에 그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들을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자들도 제의 창녀 (cult prostitute, 4:14)와 성관계를 맺었고,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너희 딸들, 너희 며느리들, 4:13) 음행과 간음 (히브리어 ‘나아프’)을 하였다. 물론, 이러한 음행은 맨정신으로 아무런 연고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먼저 마귀가 거짓말 (바알 신화)로 이스라엘의 성적 타락을 정당화시켜 주었다. 이스라엘은 그것에 속아 바알과 그의 배우자의 성을 흉내내게 된 것이다. 림버그 (James Limburg)는 그의 호세아서 주석에서 말한다. “바알종교의 신화론에 의하면, 바알 신은 연례적으로 죽음을 당한다. 가나안의 지리적인 특징에 바탕을 둔 그 죽음은 여름철의 가뭄이나 겨울철의 혹한에 반영되어 있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고 나서 잠시 동안 바알은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거기서 자신의 배우자를 발견한 바알은 그와 성관계를 맺으며, 그 결과 비가 오고 태양이 비치며 농작물이 자라기 시작하고 자연이 다시금 소생하게 된다. 바알과 그의 배우자 사이의 결합을 경축하는 행동은 이제 연례적인 행사가 된다.” (56-7) 비가 귀한 이스라엘, 풍부한 비가 내려 농사가 잘 되도록 하기 위해 바알이야기를 따라 제사를 지내고 창녀와 몸을 섞는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 (곧 바알이야기=거짓말)을 만들어주고, 시가지 행진으로 관광 수입을 올려주겠다는데 누가 동성연애를 말리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그 처벌의 실효성이 문제되니 (곧 바알이야기=거짓말) 간통은 더이상 죄가 아니라는데 누가 배우자에 대한 정조를 지키겠는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를 성적 자기결정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위헌 결정을 하였을 때, 간통 중인 유부남 유부녀들은 쾌재를 부르짖었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게이gay들의 행진은 아시아와 중동에서 으뜸이라고 한다. 2015년 퍼레이드에 18만이 모여 환호하였다 ( MSNBC, 6/Mar/2015).
한편, 이렇게 백성과 제사장들의 여호와를 버림 (4:1-10), 그들의 점치는 행위, 바알 숭배와 실제적 음행 (4:11-19)을 말하면서 진행되는 호세아의 설교는 일견 어떤 이음새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 소단락들에 이어,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속들 그리고 왕족들 (베이트 함멜렠, house of the king)’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즉, 앞에서 말한 제사장, 백성에 ‘왕족들’을 더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그는 또하나의 소단락 (5:1-7)을 형성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누적 기법’이다. 여기에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여호와의 날 주제, 5:8-14)과 회개 예시 (5:15-6:3)가 연결되어 있다. 즉, 4:1-6:3은 ‘죄-심판-회개 예시’가 논리적 순서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단락에서 주목할 것은 우상 숭배에 세 가지 사항이 붙어다닌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음란영’ (4:12, 5:4)이다. 이 영적 존재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로 우상에게 절하도록 꼬드긴다는 것이다. 음란영은 히브리어로 ‘루아흐 제누님’, 개역개정은 ‘음란한 마음’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여기서 ‘루아흐’를 ‘바람’이라고 번역하면 ‘음탕한 바람’ (공동번역, 곧 ‘음풍’ 淫風)이 되는데 신기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부부의 도의를 저버리는 것을 ‘바람났다’라고 한다. 또 이 ‘루아흐’를 ‘영’으로 번역하면 ‘음란의 영’ (the spirit of whoredom, ASV; the spirit of harlotry, RSV)이 되는데 오늘 한국 교회는 이를 ‘음란마귀’라고 부른다. 사람이 음란마귀의 유혹을 받으면 자기 욕심을 채워주는 우상에게 절을 하게 된다.
둘째로 우상 숭배에 붙어다는 것은 ‘술’이다. ‘술마귀’가 여기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4:11)고 말하며 산당에서의 우상숭배를 지적한다. 동시대 선지자인 이사야도 비슷하게 이스라엘의 음주문화를 이렇게 탄핵한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5:11-12)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5:22)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일 것이라…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특히, 이사야 56장의 술취함 주제는 (12절) 57장의 산당의 우상숭배 (몰렉 숭배)와 연결되었는데 그는 이스라엘을 “간음자와 창녀의 자식들’ (57:3)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우상 숭배에 붙어다는 것은 ‘음행’이다. 하나님 지식과 토라 (4:6), 곧 진리의 말씀을 버리고 마귀의 거짓말 (바알 신화)에 미혹된 자들이 우상 숭배를 하게 되며, 그들은 더불어 음란 마귀와 술 마귀에 미혹되어 이제 실제로 마시고 실제로 ‘성적 교합을 실행’하는 것이다.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호 4:17-18)
이로 인한 결과는 무엇일까. 이 사람은 ‘병’이 들고, ‘상처’가 생긴다. 그는 음주로 간경화나 뇌일혈에 걸리게 되고 그의 자녀와 가족은 깊은 상처와 분노를 품게 된다. 그의 동성연애나 간통으로 ‘에이즈’ 병이나 ‘가정파탄’의 상처가 생기게 된다. 병을 깨닫고 상처를 깨닫게 된 그는 이를 고치려고 여러 인간적인 수단들을 찾아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5:13)
호세아서를 정독하고 묵상하다 보면 영적 전투의 원리가 보인다. 그 시작은 말씀에 비추어 나를 살피는 것이다. 내 욕심 (우상숭배)을 정당화하도록 나를 속이는 거짓말 (바알신화)은 무엇인가. 그 거짓의 배후에 어떤 영이 있는가. 내가 술취함, 음란 등의 죄들에 실제로 연루되어 있는가. 나와 가족에게 병이나 상처가 생겼는가. 나는 이것을 낫게 하려고 누구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나는 다시 주님과 그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것이 영적 전투다. 성령을 의지하여 돌이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으며, 아버지께서 내 삶의 주인으로 좌정하시도록 나를 내려놓는다.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6:1) 힘써 여호와를 알려 하면 (6:3) 그분은 새벽빛 같이 어김 없이 오셔서 (6:3) 나를 살리실 것이요 (6:2) 나를 도로 낫게 하실 것이다 (6:1). 지금은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 시간, 하지만 이내 아침 여명이 밝아올 것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29/Nov/2015, 06:40 AM) 우리를 반기던 새벽빛이 이 시간 눈앞에 선하다. 그것은 아침 구름 (6:4; 13:3)을 뚫고 들어온 환한 새벽빛이었다.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 같이 어김없나니”
최영헌 교수 (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