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32)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요엘서<2>
요엘서의 구조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를 여기서 다 언급할 수는 없겠다. 다만 많은 학자들이 동조하고 있는 대표적인 견해 하나만을 소개하자면 요엘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견해인즉, 서론 (1:1) 다음을, 전반부 (1:2-2:17)와 후반부 (2:18-3:21)로 나누는 견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전반부는 황충 재앙과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회개하라는 내용 (어두운 내용)이고 후반부는 성령을 부어주심과 민족들은 심판 받고 시온은 회복되리라는 내용 (밝은 내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장절 구분이 히브리 본문과 한글 본문은 차이가 있는데 이 글은 한글본문의 장절을 따른다).
스튜어트의 구조
이러한 이구분 (二區分)을 토대로 스튜어트 (D. Stuart, WBC 31: 226)는 더 자세히 다음과 같이 나눈다. 전반부를 다시 두 구분하여 1:2-20 및 2:1-17로, 후반부를 2:18-27 및 3:1-21로 본다. 이러한 구분의 문제점은, 1) 종래의 역사비평학자들의 문서비평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분이라는 점, 2) 히브리 성경 기자의 내용 전개 방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구분이라는 점이다. 소박한 자료비평이나 양식비평, 그리고 여러 신학들의 다양한 편집층을 상정하는 편집비평은 그것들을 증명할 만한 역사적 자료도 부족할 뿐 아니라, 선지서의 내용의 유기적이고 통일적인 측면에 무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결국 얼토당토 않은 역사적 재구성을 독자들에게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빗대어 말하자면, 이는 마치 건물로 통하는 메인 게이트와 후문과 옆문이 버젓이 있는데 먼저 어떤 인간이 울타리의 어떤 튀어나온 지점을 문인양 생각하여 그 지점을 헤집고 통로를 만들고 그 후에 자꾸자꾸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어 사이를 벌려 놓음으로 나중에는 메인 게이트보다 더 넓어진 꼴과 같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으례 그곳이 문인 줄 알고 드나든다!
A//A’+B의 전개 방식
요엘서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저자가 어떤 것 (A)을 말한 다음에 다른 주제로 옮겨가서 다른 것 (B)을 말하고, 또 그 다음에 또 다른것을 말하고 (B)…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엘은 하나를 말하고 (A), 그와 같은 내용을 약간 다른 표현으로 말하고 (A’) 거기에 이어서 무엇인가를 첨언 (B)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요엘은 먼저, 여호와의 날 (1:2)과 메뚜기 재앙 (및 가뭄)과 ‘다른 한 민족’ (異族)의 침략을 말하고 (1:3, 6 등), 제사장들을 비롯한 백성의 금식-회개를 권면한다 (1:13-14). 이것을 A라고 하자. 그런데 요엘은 이 내용들을 변화를 주어 ‘한번 더’ 말한다. 2:15부터 보면 다시 여호와의 날을 말하는데 이번에는 가뭄과 화재의 재해를 말하면서 (1:16-20, 2:3) ‘많고 강한 백성’의 침략 (2:2, 4-11)을 말하고, 제사장들이 백성을 모아 금식-회개할 것을 권면 (2:12-17)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A를 똑같이 반복하지는 않지만 기실 같은 내용임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A’로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주의할 것은 A’의 경우는 A’와는 그 가리키는 시간대도 다르고 A’의 심판의 내용과는 반대되는, 말하자면 하나님의 그분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심으로 나타나는 조치들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B로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회복의 조치는 1)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심으로 농사가 잘 되어 먹을 것이 풍족함 (메뚜기 재앙에 대해 갚아주심), 2) 북쪽 군대를 격퇴시키심, 3) 성령을 부어 주심, 4) 민족들을 심판하심 (하나님이 백성이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주심) 등이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구약의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에스겔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A//A’+B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B에 해당하는 내용들의 시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1:15에서 시작된 A’의 내용의 반전을 가리키는 시점은 2:18에서 시작되되 그 내용이 종말에 벌어질 내용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즉, 가뭄과 불 재앙이 일어나는 여호와의 날을 많고 강한 백성의 침략으로 오버랩시키고, 이에 대해 제사장들의 회개 촉구에 이어 나타나는 것은 곡식의 풍부와 더불어 ‘북쪽 군대’에 대한 격퇴의 내용인데 (2:20) 이것은 앗수르의 침략에 대한 것이나 바벨론의 침략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이러한 예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어난 것 같지는 않다. 이스라엘을 침략한 군대를 격퇴하셔서 바다로 몰아 죽이시는 것은 ‘출애굽’을 연상케 하는데 이는 종말의 사건 (예수님의 재림시로 생각됨)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사건이 아마겟돈 전쟁을 가리키는지, 곡과 마곡의 전쟁 (겔 38-39장)을 가리키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역사적 전천년설을 지지함으로 이 두 전쟁이 천년왕국의 전후에 있을 서로 다른 전쟁들이라고 봄). 아무튼 이러한 재림 어간을 시사하는 내용이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 (2:27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으로 일단락되고 있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흥미롭게도 오순절에 성취된 예언인데 이는 시점이 재림 때는 아니고 주님의 초림 어간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2:28-29는 베드로의 설교로부터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그런데 여기에 이어지는 것은 또 재림 어간의 사건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욜 2:30-31). 이 사건은 마 24:29나 계시록의 6째인을 떼실 때의 사건 (6:12-14)이나 4째 천사의 나팔로 나타나는 사건 (8:12)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천체의 격변과 재앙은 더 진행되지 아니하고 일단은 예루살렘의 남은 자의 회복 (욜 2:32)으로 다시 마감되고 있다.
즉, 또다시 시점이 약간 거슬러올라가는데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만국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내용이다. 이 시점은 초림 어간은 아닌 것 같다. 즉 2:28의 오순절 사건 보다는 재림 어간의 시점으로 이해되는데, 물론 이 3:1이하의 내용도 ‘두로, 시돈, 블레셋’등에 대한 유다의 보복 내용을 담고 있기에 요엘 당시의 시기와 그리 멀지 않은 시기로 보이기는 하지만, 역시 천체의 격변과 재앙 (욜 3:15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의 시기와 맞물려 있는 큰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 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의 시점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은 3:16에 표현된대로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때인데 (참고. 2:10) 역시 위의 1:15-2:27; 2:28-32과 마찬가지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종말론적인 회복으로 마친다. 자연의 회복과 풍요 (3:18),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옴 (3:18), 애굽과 에돔은 황무지가 됨 (3:19), 여호와께서 시온에 그분의 백성과 함께 하심 (곧 ‘언약의 완성’) 등이 요엘서의 제일 마지막에 오는데 이는 천년왕국과 그 이후의 시점의 사건으로 보인다. 여기서 특히 3:18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의 내용은 요엘서 맨 앞의 ‘가뭄’의 상황과 수미쌍관을 이룬다고 할 것이다.
병행적, 선형적, 수미쌍관적 구조
이로써 우리는 요엘서를 이질적인 두 부분이 서로 다른 시대에 작성되어 짜깁기되었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신학을 전시한다고 하는 역시비평의 무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역사비평은 이사야도 쪼개고 예레미야도 쪼개고 다니엘도 쪼개고 스가랴도 쪼개고 또 요엘도 쪼개어 토막살인적 취미를 드러내었다. 그러나 어디 하나님 말씀이 쪼개지랴. 오히려 하나님 말씀이 그것을 쪼개신다. 요엘서는 내용의 반복과 변화, 병행을 이루면서도 내용의 확장을 꾀함, 그러면서도 시점은 점차 현재에서 가까운 미래로 그리고 아주 먼 미래로(오버랩을 주면서) 오고 감으로 선형적 구조를 띄고 처음과 말미를 열고 닫음으로 수미쌍관적 구조를 갖는다. 요엘서는 이사야나 에스겔에 비해 짧은 책이지만 그 자체로 완결된 전체를 이룬다. 놀라운 문학적 솜씨로 선지자의 설교 특히 예수 재림시의 세상 세력의 멸망과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전달한다.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