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36)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요엘서<6>
요엘은 그가 살던 당대를 기준으로 하여 가까운 미래에 있을 전쟁 (적국의 침략)에 대하여 예언한다 (1:6; 2:1-11). 이 전쟁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유린당하는 전쟁이다. 필자는 이 전쟁을 바벨론의 유다 침략일 것으로 추정한다 (BC 605, 597, 568/7). 뿐만 아니라 그는 종말에 있을 전쟁에 대해서도 예언한다. 종말에 있을 전쟁은 앞의 전쟁과는 달리 하나님의 백성이 북쪽 군대를 격파하는 전쟁이다 (2:18-20). 시점으로 보면 이 전쟁은 성령 강림 사건 곧 오순절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날 복음의 시대보다 후에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단은 이중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곧,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 흩어버린 이방 나라들의 죄 (3:2, 5-6)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세상 나라들에 대한 심판 (3:11-23과 계 14:14-20을 비교). 이 둘은 역사적 차서는 있을 것이나 모두 성취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원전 6세기를 예로 들어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유다를 징벌하시기 위해 바벨론을 불러 유다를 공략케 하시지만, 바벨론이 교만 속에서 유다를 처참하게 짓밟은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메대-바사를 통해 보복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이사야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바벨론을 종말적으로 투사하여 하나님 백성에 대해 공격하는 세상 나라로 설정하고 있으신데, 이 종말의 바벨론과 바벨론 왕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언과 그 성취가 이중으로 적용된다.
전쟁 예언은 이해가 어렵다
요엘서에 기록된 이 전쟁들이 어떤 전쟁들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이 전쟁들은 예언 형태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언은 경고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그것은 일부러 모호한 표현으로 전달이 된다는 것이다. 몇 날 몇 시에 어느 나라가 쳐들어온다고 표현되지 않고 ‘얼마 안있어 북쪽 나라가 침입할 것이다’는 식으로 기술된다는 것이다. 이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그 자체의 사건에 치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고를 따라 회개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여 오늘을 충실히 살라는 취지에서 예언이 주어지는 까닭이다. 둘째로, 이 전쟁들은 ‘여호와의 날’이라는 주제에 맞물려 빈번하게 사용되는 공통 모티프들, 예를 들면, ‘해와 달의 변화’나 ‘하늘과 땅의 진동’, ‘전쟁에 동원되는 많은 수의 사람들’ 등의 모티프들을 휴대함으로 이 전쟁이 어느 전쟁인지, 저 전쟁이 어느 전쟁인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쟁 언급에 비슷한 말들이 따라 붙는다는 것이다. 셋째로, 예언이 흔히 갖는 이중/다중의 의미 때문이다. 즉, 위에서 잠시 논하였듯이, 하나의 전쟁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 언약 밖에 있는 이방 나라들과의 관계에 의해 파악되도록 주어질 뿐 아니라 신약적 의미에서는 새 언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과 그 언약 밖에 있는 세상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해석되도록 주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새언약 백성과 세상 나라들 간의 전쟁도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 혹은 여럿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의 예언들에 대한 해석에 관한한 이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세대주의자들처럼 문자주의에 빠지거나 이스라엘이 곧바로 교회로 대체되었다는 대체신학을 주장하는, 말하자면, 양쪽 중에 하나의 극단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먼미래에 대한 예언들이 대체로 하나의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에게서도 성취될 뿐 아니라, 그것의 신약적, 영적 성취들도 있을 것으로 본다. 넷째는, 예언의 서술하는 방법에 있어서 구약 기자들이 어떤 때는 병행 (竝行)적으로 또 어떤 때는 계기 (繼起)적으로 예언을 서술한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여기서 말한 전쟁이 뒤에 또 비슷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이 앞의 전쟁을 다시 말하기 위해 병행 (반복)하여 제시된 것인지 아니면 앞의 전쟁 다음에 계기적으로 일어나게 될 다른 전쟁을 말하는 것인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요엘이 말하는 종말의 전쟁은?
이러한 측면들을 충분히 감안하여 보면, 우선은 요엘서 2:18-19 및 3:1-17에 나타난 예언은 병행으로 보이고 (즉 같은 예언), 둘째로 이 예언은 언제일지는 모르나 현재의 이스라엘이 주변국들의 공격을 받되 이들을 격퇴하게 되는 것으로 성취될 뿐 아니라 (이것은 정말 곧 일어날 것 같기도 함),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세상 나라들의 공격에 대하여 예수님과 하늘 군대 (성도들)의 강림으로 그 공격을 격퇴하는 것으로 성취될 것으로도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계시록의 유브라데 전쟁 더 나아가 아마겟돈 전쟁으로, 더더욱 나아가서는 곡과 마곡 전쟁으로도 보인다. 즉, 하나의 사건 예언인데 성취는 이중적 혹은 다중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중 성취 중에 이스라엘 나라와 주변국들과의 전쟁 외에, 먼저 요엘서에 묘사된 이 전쟁을 유브라데, 더 나아가 아마겟돈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전쟁과 관련된 요엘서의 표현들로 볼 때 그런 판단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표현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자. 첫째는 욜 3:13이다.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이것은 계 14:8-20과 비슷하다. 이는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받게 될 심판 (포도주로 표상)과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의 그 백성의 구원 사역 (곡식으로 표상)으로 계시록에 표현되고 있는데, 이 심판과 구원은 사실상 계 16장의 일곱 대접 심판, 17-18장의 음녀 멸망, 19장의 예수님의 성도와 함께 강림 및 아마겟돈 전쟁으로 구체화된다. 둘째는 욜 2:30-32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및 3:15-16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이다. 이것은 마 24:29-30과 계 6:9-17; 8:10-12; 9: (1-11), 12-21; 15:1-16:21; 17:-18:; 19:1-21과 관련이 있다. 이 내용들은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즉, 성도들은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고 ‘3년 반 적그리스도의 통치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마 24:29과 계시록의 다섯 째인과 여섯 째인, 및 셋째 나팔 재앙과 넷째 나팔 재앙). 하늘에는 인자의 징조가 있을 것이다. 땅의 족속들은 통곡하고 인자는 큰 나팔 소리와 함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실 것이다 (마 24:30-31, 휴거). 땅에서는 먼저 전쟁을 위해 예비한 말들 같은 황충의 공격으로 사람들이 해를 입으며, 유브라데에서 전쟁으로 사람 3분의 1이 죽고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계속 우상 숭배), 이 나팔 재앙이 대접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다. 대접 재앙으로 지구는 초토화되며, 세상 도시들 (음녀)이 망한다. 이제는 유브라데가 아니라 아마겟돈으로 적그리스도의 군대가 모인다. 예수님의 강림과 성도가 공중에서 내려옴으로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및 세상 왕들, 그 군대들이 죽는다 (특히 계 16-19장). 따라서 요엘서에 예언된 전쟁은 주변 나라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1차적으로 성취될 것이고, 2차적 성취는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죽인 후 (다섯째 인 후에도 성도들이 더 죽어 수가 채워지게 되는데 거의 전멸된다고 보임) 해가 어두워 지고 별들이 떨어지고 (요엘의 언급과 계시록의 여섯째인과 셋째 나팔과 넷째 나팔이 맞물림), 성도들은 공중으로 올라가고 (예수님이 계신 피난처로 올라감 곧 인자의 곡식 추수), 땅에는 먼저 유브라데 전쟁으로 사람 3분의 1이 죽고, 이어지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세상 나라 군대들이 다 멸망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요엘서의 전쟁을 3차적 성취 곧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전쟁에서 사면 열국 군대가 모이는 곳이 ‘여호사밧 골짜기’ (히. 에메크 예호솨파트, 3:2, 12) 혹은 ‘판결 골짜기’ (히. 에메크 헤하루츠, 3:14)로 되어 있는데 이곳이 ‘골짜기’라면 아마겟돈 같은 평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가 아마겟돈에 가서 본 것은 전쟁을 위한 넓은 평지이고 그 중간에 약간 돌출한 언덕 (옛날에는 요새로 사용)이 있지만 골짜기는 없었다는 것이다. 요엘서의 묘사가 골짜기이고 열국 백성이 예루살렘을 공격한다면 이곳은 기드론 골짜기든지 힌놈의 골짜기든지 (아가페성경사전, 1229 참조), 아니면 겔 39:11에 묘사된 ‘하몬곡의 골짜기’ (바다 동쪽 사람이 통행하는 골짜기, 필자는 기드론이나 힌놈이 아니라 이 장소가 더 맞을 것이라고 생각함)든지, 언덕이나 평지가 아니고 계곡일 것이 틀림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곡과 마곡 전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대적들을 멸하신다는 사실이다. 곡과 마곡 전쟁에 대해 묘사한 겔 39:6을 보거나 계 20:9를 보면 ‘불’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해와 달의 변화’나 ‘하늘과 땅의 진동’과 함께 해석하면 요엘서의 전쟁이 ‘유브라데-아마겟돈 전쟁’으로, ‘여호사밧 골짜기’나 ‘불’에 대한 언급으로 보면 천년 왕국 후에 있을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요엘서의 전쟁이 이스라엘을 에워싼 주변국들과의 전쟁이라고 보는 것까지 합친다면 이중적, 아니 다중적 성취로 나타나는 예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스가랴서에 나타나는 전쟁들과 관련하여서는 다음호에 좀더 언급하기로 한다.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